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39화
27. 너라는 이유(3)
토큰이 무엇인지 정식으로 소개할 기회는 머지 않아 찾아올 예정이므로, 우선 하던 일부터 계속 해보자.
“그러면 의헌 씨가 리더로서 한마디 감상을 말씀해주실까요?”
“아~ 섭섭해요. 그래도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정진해서 멋진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꼴찌 소감을 잘 가다듬어 발표한 뒤, 우리는 이용익 선배님에게 첫 번째 미션을 받았다.
미션이라는 것은 곧……. 대면식 바로 다음 방송, 〈밀제트〉 2회의 무대 주제였다.
처음으로 관객들이 들어오고 최초 탈락자가 결정되는 공연의 주제.
사실 이 역시 지난 단체 촬영에서 알려줄 줄 알았는데……. 내용을 들어보면 왜 이렇게 선배님을 통해 따로 알려주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밀리어네어 Z 트랙〉, 그 첫 번째 경연 주제를 공개합니다.”
선배님은 제작진에게서 받은 봉투를 뜯어, 봉투에 담긴 카드 내용을 차분하게 읽었다.
“멘토의 노래로 공연하라!”
“멘토, 말이지요?”
“좋은 질문이에요, 난영 씨. 여기서 말하는 멘토란 각 팀의 특별 담당자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는 건 저희가 이용익 선배님의 노래로 무대를 해야 한다…… 는 거네요?”
“바로 그렇습니다!”
내가 묻자 선배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카드에 적힌 글을 보여주었다.
받아서 대충 눈으로 읽어본 글에는 가능하고 불가능한 규정 및 예시가 세세하게 분류되어 적혀 있었다.
연주자부터 댄서까지 여러 장르 아티스트가 섞인 프로그램 특징상 필요한 문구인 것 같기는 했다.
‘우리는 그냥 단순하게 노래에다가 춤까지 해야 하는 거겠지.’
당장 브레인스토밍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전에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짤막한 리액션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선배님을 먼저 보내드리고 나면 우리는 즉시 추가 촬영에 돌입해야 했다.
〈밀리어네어 Z 트랙〉의 순위 및 점수 시스템이 낯설 시청자들을 위해 미리 이튜브 콘텐츠를 녹화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준 대본만 신경을 쓰면 되고, 어차피 편집은 제작진이 알아서 쏙쏙 재미있는 장면만 뽑아서 한단다.
뭐, 우리도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연기하는 쪽이 흐름이 끊기지 않고 좋았으니까 깔끔하게 승낙했다.
‘무슨 꽁트를 대본으로 준 건 어쩐지 황당하지만…….’
너무 어려운 임무를 준 거 아니냐고 윤아 작가님께 항의하니까 콘셉트 자체가 ‘발연기 PPL’이란다.
그리고 이런 콘셉트라면 음료수나 샌드위치 말고 안마의자나 제공해달라고 했더니 무시당했다.
첫 시작은 나와 안승준이 카메라에 나타나서 멘트를 주고받는 장면이었다.
〈데프아〉의 인지도에 외향적인 이미지가 겹쳐서, 이런 발표 기회가 생기면 요즘은 무조건 우리 둘이 뽑혔다.
참고로 언제 승준이한테 우리 둘도 슬슬 무슨 조합 이름 같은 거 정해야 하지 않냐고 했더니 나랑 그렇게 깊게 얽히고 싶지 않다고 거절당했다.
어쨌든 대본에는 텐션을 끌어올려서 최대한 해맑게, 되도록 음악방송 MC처럼 연기하라고 적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승준씨! 저희가 무엇을 하려고 여기 모였죠?!”
“네네, 코너 속의 코너! 바로 광고 시간인데요!!”
그리고 안승준은 지금 조금 과했다.
촬영의 공간적 배경은 우리 회사 연습실과 작업실 등으로, 카메라는 실내에서 돌아갔다.
“오늘 저희가 광고할 아이템은 바로~ 〈밀리어네어 Z 트랙〉의 ‘Z 토큰’입니다!”
“와아~ 박수, 박수!”
물론 스태프들은 딱히 시키는대로 박수를 막 쳐주지는 않았다.
“아, 힘들다……. 그냥 합시다.”
“헐. 좋죠, 대본 버립시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단박에 큐카드를 바닥에 버리는 과장된 동작을 취했다.
공중파라면 대본에 없는 짓은 하지 않았겠지만, 케이블에 추가 콘텐츠라서 애드리브가 막 나갔다.
그리고 우리 둘은 흔들리는 카메라 감독님의 눈을 피해, 재빨리 뛰어 연습실 문을 열었다.
강주찬, 천진섭, 서드림이 연습실에 있는 노래방 기계로 음역이 맞지도 않는 걸그룹 댄스곡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셋 다 연습실 문이 열리자마자 무슨 운동경기라도 뛰고 온 사람처럼 과장되게 숨을 내쉬었다.
“헉, 헉, 헉……. 역시 Z 토큰이 있어서 잘 된다, 그렇지?”
천진섭이 대놓고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대사를 뱉었다.
마이크에 어설프게 붙여놓은 금색 토큰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런 과장된 연기는 체질에 맞지 않는 녀석인데,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얘들아, 미안해. 우리 컨셉 버렸어.”
“미리 말해!!”
“드림이가 제작진분들께 사과의 의미로 애교하겠대요.”
그리고 서드림은 안승준이 시키는 대로 진짜 했다.
“마음이 따끔따끔 아프잖아~”
틱탭에서 챌린지로 유행하는 애교였는데, 무반주로 노래까지 부르면서…….
직접 노래하면 저작권이 안 걸리나? 의심도 잠시.
카메라 너머 제작진들을 다 함께 쳐다보니까, 우리가 대본을 던질 때에도 가만히 보시던 중년 남성 PD님께서 기어이 한마디를 하셨다.
“아니, 왜 이렇게 의기양양하신……?”
“하지만 귀엽잖아요.”
“귀엽긴 하잖아요.”
‘귀여우면 용서해야 된다’와 ‘그래서는 안된다’는 입장이 짧게 대립하고, 우리는 마저 촬영을 진행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는 ‘Z 토큰’의 기능부터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요~ 주찬 씨가 알려주실래요?”
“네에, 이 토큰은 〈밀리어네어 Z 트랙〉 속에서 성적을 나타내는 지표이자 화폐 역할을 하는 동전입니다.”
강주찬이 열심히 외운 티를 내며, 대본에 적혀 있던 내용을 열심히 카메라에다가 대고 말했다.
내가 시키지 않아도 옆에 선 천진섭이 알아서 다음 순서를 받아서 발표를 이어나갔다.
“토큰으로는 〈밀리어네어 Z 트랙〉 방송에 필요한 여러가지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무대에 필요한 장치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게 제트 토큰의 장점이죠. 그러면 그 품목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드림 씨?”
“예를 들어서……. 퍼포먼스를 도와주시는 백업 댄서라든지 피처링 게스트, 무대 세트, VCR 등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모두 무대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요소들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것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사실 이 모든 것의 진짜 장점이 뭡니까?”
내가 이번에는 승준이를 지목했다.
안승준은 의기양양하게 큐카드를 흔들며 외쳤다.
“바로 토큰으로 소모되는 제작비 전액 제작진 지원!”
그렇다. 요약하자면 아주 간단한 공식이었다.
출연진은 Z 토큰을 지불해 무대 퀄리티를 높일 수 있고, 이때 실제로 들어가는 금액은 제작진 지갑에서 나간다.
그리고 토큰이 없다면 댄서나 피처링, 세트 장치 등을 무대에 사용할 수 없다. 사비를 써도 안 된다.
그쯤 소개를 마치고 나와 안승준은 멤버들을 두고 연습실을 나서서 계단 위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 출연진은 이영하와 서난영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이쪽도 우리가 다가가기 전까지 대본을 읽고 있었다.
“새 메뉴가 정말 맛있기는 하다.”
“와~ 그러게. 그러면 우리 이거 먹고 힘내서 제트 토큰도 벌 수 있겠네?”
“우리, 어, 우리 멤버들 다 먹여살리려면 토큰 한두개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이영하가 발연기를 연기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천재 같았다.
그나저나 지금 어떤 제품을 홍보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휴게실 옆 계단에서 대기하다가, 나는 우리 쪽 카메라에만 대고 슬쩍 속삭여 질문했다.
“저 토스트도 PPL이에요?”
“들켰네…….”
윤아 작가님이 대답했다. 함정 아래에 함정이 또 하나 더 있는 기분이었다.
긴장을 놓을 수가 없는 진실을 듣자마자 휴게실 촬영 팀에게서 사인이 왔고, 나와 승준이가 투입되었다.
“여러분! 지금부터 묻는 말에만 대답해주세요.”
“네. 토스트님은 잠시 내려놓고, 빨리 찍고 갑시다.”
안승준이 재촉하자 서난영이 아무것도 모르고 토스트를 내팽개치려고 했고, 나는 조심스레 받아서 귀중히 포장지를 잘 덮어드렸다.
휴게실의 두 사람과 이야기할 내용은 바로 토큰을 버는 방법이었다.
“영하 씨가 먼저 말씀해주실까요? 제트 토큰은 어떻게 해야 습득할 수 있나요?”
“아, 그건 간단합니다! 대면식 이후부터는 이제 본격적으로 방청객 심사와 심사위원 심사 점수가 들어가게 되잖아요?”
“맞습니다. 토큰은 심사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차등 지급하고, 방송 후 이튜브에 올라오는 무대 영상 조회수 집계로도 주어집니다.”
이영하의 설명에 서난영이 부가 정보를 덧대어주었다.
사실 토큰을 얻는 법은 내가 미래를 보고 아는 내용과 제작진들이 준 기획 사이에 자잘하게 내용 차이가 있었다.
점수 계산이라든가 순위를 매기는 방식, 토큰의 지급량 따위가 미묘하게 달랐던 것이다.
그런데 설명을 잘 들어보면, 과거에도 지금 시스템에서 출발해서 서서히 바꿔나간 듯했다.
다시 말해, 이 규칙은 프로토타입이자 베타 테스트였다.
요지는 ‘본방송 성적을 통해 토큰을 지급한다’는 대목뿐이었다.
“좋아요, 그러면 우리 이제 한번 배운 것을 정리해볼까요?”
“제트 토큰으로는 특별한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다, 그리고 무대가 좋으면 제트 토큰을 얻을 수 있다! 이 정도가 되겠네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우리가 더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는지 작업실로 찾아가봅시다. 어때요, 승준 씨?”
“좋습니다! 갑시다, 형님!”
두 번째 팀과도 작별하고, 복도에 서서 승준이와 한마디씩 나누고 마지막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남은 멤버인 김지상과 한이주는 음악 작업실을 사용하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배치가 되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아, 물론 대본 연기로 낚시질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고 또 했다.
둘이서 다정하게 건반으로 젓가락 행진곡을 연주하는 척을 하는데 민망해서 봐줄 수가 없었다.
안승준이 큰 소리로 한바탕 웃어젖히더니, 마이크를 김지상의 입가에 가져다가 댔다.
“지상 씨, 이제 추가 규칙을 조금 알려주시겠어요?”
“제일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토큰의 유통기한이죠. 경연 두 개가 지나면 토큰은 소멸합니다.”
“묵혀두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그리고 안승준이 마이크를 한이주 방향으로 돌렸을 때.
“네, 네. 그렇죠……?”
NG가 났다.
편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이루어졌으므로, 촬영은 장난과 돌발상황에서도 끊기지 않고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흐름이 뚝 끊긴 건 처음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바로 이어서 갈게요~”
물론 특이하거나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실수였으니까.
한이주는 사과했고, 내가 쉬어가지 말자고 스태프들과 멤버들에게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 분위기가 크게 틀어지지 않고 촬영은 재개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하위권 세 팀은 해당 경연이 끝나고, 순위를 발표하자마자 잔여 토큰이 소멸합니다.”
“과연 ‘브레이크’ 트랙이네요. 토큰은 아껴두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네요?”
“정답! 있을 때 펑펑 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이주는 가까스로 텐션을 높여 멘트를 수습했고, 나도 말을 주고받으며 질서를 되잡았다.
마지막으로 멤버들이 다 같이 모여서 마무리 인사를 하고 나면 오늘 몫의 〈밀제트〉 촬영이 전체 종료되었다.
그리고 나는, 1층 문가까지 내려가서 퇴근하는 스태프들에게 열심히 인사하는 한이주의 어깨를 슬며시 감싸잡았다.
“이주야…….”
나를 서서히 돌아보는 한이주의 얼굴이 마치 허깨비라도 본 사람처럼 공포에 질려 있었다.
…….
좀 상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