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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37화 (137/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37화

27. 너라는 이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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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무릎부터 현관에 털썩 쓰러지자, 부엌에서 홀로 늦은 저녁을 먹던 이영하가 나를 반겨주었다.

“야~! 내려가, 왜 2층 와서 그래.”

“방에 아무도 없다고요~ 애들 주말이라고 놀러 나갔더라…….”

몸을 빙글 돌려서 천장을 보니까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떨어지고, 내려놓은 가방이 밀려났다.

절그럭절그럭 소리가 실내에 참 외롭고 쓸쓸하도 울렸다.

“잉. 어디 갔는데? 승준이도?”

“몰라, 강남에 무슨 콜라 팝업스토어 열려서 구경하러 갔대. 승준이는 오늘 뭐 스케줄 미팅 있다고 가서 아직 안 왔고.”

“진짜 주말에도 지치지를 않네……. 승준이는 어떻게 너보다 더 바쁜 것 같아.”

“승준이는 사람이 웃기잖아. 난 노잼이고, 지쳤고…….”

자학적인 농담이나 한번 쳐주고, 나는 겨우겨우 신발을 벗고 현관에서 빠져나왔다.

해가 뜰 때쯤 밖에 나가서 한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스케줄.

정신은 고스란히 들뜬 채인데 몸이 피곤했다.

겉옷을 정리하고, 손도 씻고, 떨어진 핸드폰도 주운 다음, 나는 영하가 앉아있는 식탁 맞은편에 가 앉았다.

배달음식인 줄 알았건만 직접 요리했는지 밀키트 포장 쓰레기가 덜 정리된 채로 싱크대에 놓여 있었다.

“맛있냐.”

“야, 야. 젓가락 바로 대지 말고 접시 가져와.”

“네에~”

떡볶이를 주워먹으며 잠시 잡담 시간.

과하게 매운 느낌도 들었지만, 지금은 자극적인 맛이 오히려 마음에 들어서 군소리 없이 주워먹었다.

“나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잘 안 나와…….”

“누구든 5시간 팬싸를 하고 1시간 반이나 라방을 하면 목이 나간단다.”

“그래도 내일은 나 저녁까지 쉰다……. 애들은 뭐 해?”

내가 묻자, 이영하가 닫히거나 열린 방 문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진섭이랑 주찬이는 테니스 친다고 나갔고.”

“테니스 재밌겠다.”

“……드림이는 1층 애들 따라서 나갔을걸?”

“아, 데이트가 아니었구나. 지상이는?”

묻자마자 닫힌 문 안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지상이 누워 있다!”

조용히 대화한다고 했는데 방 안에서도 다 소리가 들렸는지, 3인칭 대답이 돌아왔다.

“건드리지 말라는 것 같지.”

“그래, 우리 입 다물고 밥이나 먹자.”

하지만 입을 다무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였다(애초에 입을 벌리지 않고 식사를 할 수는 없었다).

침묵은 몇 초 지나가지 않았고, 식탁 앞은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괜찮게 했어?”

“뭐, 그냥 했지……? 오랜만이라 재미는 있었어.”

“아까 검색하니까 사진 예쁜 거 많이 떴더라고.”

“벌써? 나 볼래, 보내줘.”

미리보기도 아니고, 고화질 보정 사진은 올라오려면 아무리 빨라도 며칠은 기다려야 되는데…….

영하가 보내주는 사진과 원본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니까 당일에 올라온 사진도 제법 수가 되었다.

마음에 드는, 잘 나온 사진을 우르르 저장하고 나면 기어이 김지상이 이불 속에서 기어나왔다.

지상이가 그릇을 들고 내 옆에 앉고, 우리는 근황 토크나 더 나누다가 식탁을 치웠다.

“아! 나 오늘 라이브하다가 들었는데, 시그 달력에 내 생일이 안 들어간대.”

“헐, 맞아. 그거 드림이 생일도 빠져 있더라고. 지상이나 승준이도 그렇고.”

“우리는 시그 사진 안 찍어서 그런가……. 이 얘기는 어쩌다가 들었는데?”

“이주 생일 내일 모레인가 그렇잖아. 그 이야기하는데 댓글에서 그러더라고.”

달력에 붙일 수 있는 투명 스티커를 만들어서 배포하네 마네 떠들고, 김지상은 곧 자기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후 강주찬과 천진섭이 귀가하고, 씻으러 들어가고…….

강주찬은 심지어 답답하다고 샤워를 하러 1층으로 내려가기까지 했다.

아무튼 인사도 해주고, 먹은 그릇과 프라이팬은 설거지도 하고, 정신없는 과정 이후.

나는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다.

딱히 중요한 용건이 남은 건 아니었지만, 영하에게 막대 아이스크림을 반 쪼개 건네주고 물었다.

“우리 연습실 촬영 월요일이지?”

“응. 그 이용익 선배님도 오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 그래? 그러면 연습하는 장면 찍어가는 건 아니려나…….”

방송 흐름을 생각해보면 미션을 주거나, 지난 무대 성적을 공개하는 촬영일 것 같았다.

그도 아니라면 단순히 친목 장면을 위해서일 수도 있었으나……. 이 추측은 왠지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잠시 혼자 예상해보는데 이영하가 문득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사실 나 그런데……. 그 선배님 조금 무서워.”

방 안에서는 듣지 못하게,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였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어 발음은 제법 뭉개졌지만 말이다.

“왜?”

“아니, 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조금 분위기가? 쎄한 거 말고 그냥 무서운 거 있잖아.”

“어어……. 그러냐.”

“뭐라고 해야 되나, 아이돌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고.”

이영하가 설명을 덧붙였다.

가만히 사정을 들어보니까 정말로 무슨 이야기를 들었다거나, 나쁜 일을 겪어보았다는 투는 아니었다.

다만 이용익 선배님은 이영하가 다니는 무슨 방송 연예 미디어 대학교의 교수님인데, 학생들에게 평이 좋지 않은 분이란다.

엄격하고 원칙적이며 학생에게 자비가 없어서 그렇다는데, 성적은 또 객관적인 기준으로 매긴다나.

‘객관적으로 성적 매기면 좋은 분 아니야?’

심지어 이영하도 그런 교수님을 좋아하는 축일 텐데 말이다.

추측은 영하가 직접 이용익 교수의 수업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역시’ 하고 종식되었다.

녀석은 학교에 떠도는 미스터리 괴담 같은 느낌으로 내게 ‘이용익 전설’을 전했다.

‘아무튼 엄청 시시한 이유구나.’

생각이 표정으로 바로 나타났는지 이영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사람 말을 못 믿네…….”

“믿을 만한 말을 해야 믿지.”

그나마 신경이 쓰이는 대목은 ‘아이돌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뿐이었다.

아무리 스테리나인의 보컬 능력 평균이 아이돌 중에서는 높은 편이라고 해도, 발라드 가수였던 이용익이 우리를 담당하는 것은 언밸런스한 면이 있었으므로.

〈밀제트〉 심사위원 겸 멘토, 특별 담당자를 맡은 방송인은 총 여덟 명이었다.

방송 기획이나 특집, 여러 사정에 따라 이 심사위원단은 교체되거나 특별 게스트가 추가되기도 했지만…….

적어도 우리와 함께 캐스팅된 원년 멤버들은 무대를 직접 하는 출연진만큼이나 커리어와 전문 분야가 다양했다.

가수 겸 프로듀서 이용익, 댄서이자 예능인인 체리본, 대선배 록 밴드 보컬, 작곡가, 1세대 아이돌 선배님 등.

‘대체 왜 스테리나인에게 더 잘 어울리는 담당자를 붙여주지 않았는가…….’

그게 궁금한 점이었다.

댄서인 체리본 선생님이나, 아이돌이 본업인 심사위원이나……. 선택지는 많았으니까.

물론 이용익 선배님도 케이팝 프로듀싱을 하기도 하고, 단지 우리가 남은 팀이라서 맡게 되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개인적으로는 뒷사정이 알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었다.

스읍, 숨을 들이마시는데 이영하가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런데 이주도 선배님 약간 불편하대.”

“응? 이주가?”

이 말이야말로 믿기 힘든 발언이었다.

저번 촬영에서도 이주는 불편해하기는커녕 어려운 티도 하나 내지 않고 농담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이주는 스테리나인 자체 설문 결과 만장일치로 1등 예능 블루칩으로 뽑힌 인물이었다.

다시 말해 이주는 무슨 상황도 무던하게 적응하고, 짜증도 없으며, 웃기게 파고 들어가는 타이밍도 잘 알았다.

그렇게 구김살 없는 녀석이 누군가를 불편해한다는 것 자체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별로 그런 느낌 아니었는데……. 너한테 따로 말했어?”

“응, 그냥 지나가는 말이기는 했는데.”

“아. 오케이……. 접수.”

이건 백 퍼센트 무슨 사연이 있는 거다.

한이주도 안승준 못지않게 말이 많고 부산스러운 캐릭터였다.

즉, 내가 당장 짚이는 기억이 없다는 것은 둘 중 하나라는 의미다.

하나는 한이주 본인에게 과실이 있는 사연이라서 지난 생에서는 나에게 딱히 말하지 않았을 경우.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냥 너무 쓸데없고 사소한 일이라서 내가 듣고도 기억에서 지웠을 경우…….

‘후자 아니냐?’

솔직히…….

별것도 아닌 말을 부풀리는 한이주와 당치도 않은 일까지 고민하는 이영하가 괴상한 역(逆)시너지 효과를 낸 것일 수도 있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이용익이라는 인물은 미래에도 별다른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다.

오래 연예계 활동을 하는 사람은 금전 문제든 사고든 범법행위든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더 드문데, 선배님은 바로 그 드문 부류였다.

문제라고 해봐도 구시대적인 외국 문화 비하 발언이 십여 년 후 재조명되어 비난을 받는 케이스가 전부였다.

‘그것도 뭐 금방 공개적으로 사과문을 써서 수습되었고.’

흠.

나는 잠시 생각을 이어가보다가 그만두었다.

이주 본인에게 사정을 듣지 않는 이상 길게 추리를 이어가봤자 무의미할 것 같아서였다.

한이주라면 그리고 조금만 꼬드기면 통장 비밀번호까지 말해줄 아이라서 걱정은 되지 않았다.

‘……아니, 통장 비밀번호까지 말해준다는 점을 걱정해야 하나?’

뭐, 아무튼.

* * *

〈밀리어네어 Z 트랙〉 자투리 촬영이 예정된 월요일.

어제 하루 동안은 목 상태가 말도 제대로 안 나올 정도였는데, 하루 쉬니까 조금 나아졌다.

‘어제 스케줄이 팬미팅 무대 연습 정도라서 다행이었지.’

그것도 커버 무대 안무 연습이고 라이브 연습은 하지 않아서 겨우 살았다.

여전히 목소리가 애매하게 잠긴 듯도 했으나, 노래할 일은 딱히 없다고 해서 조심히 참여하기로 했다.

제 시간에 멤버들은 모두 모였고, 우리 회사 연습실로 촬영 팀과 이용익 선배님이 찾아왔다.

“우리 연습실로 외부인들 오실 때마다 사실 나 약간 민망해…….”

“왜 여기는 아무리 깔끔히 써도 이렇게 꼬질꼬질한 느낌이 드는 걸까?”

그렇다. 촬영 장소는 악명 높은 바로 그 어나더뮤직 지하 암실이었다.

OTV에서 나온 비하인드 카메라가 돌든 말든 이영하와 안승준이 중얼중얼 대화를 나누었다.

나도 이 깜깜한 지하 공간을 남에게 공개하는 것이 참 비통하기 짝이 없었지만, 제일 넓은 연습실이라 어쩔 수 없었다.

대기 시간이 끝나고, 내가 대표로 손뼉을 맞부딪혀 슬레이트를 치면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자, 스테리나인 멤버들! 오늘 내가 들고 온 게 뭐냐면~”

이용익 선배님이 마이크를 들고 한쪽 사이드로 등장했다.

토요일 밤의 대화나, 이영하에게 전해들은 한이주의 발언이 무색하게 좋은 분위기였다.

한이주는 발랄하게 웃으며 촬영에 임했고, 선배님도 호랑이 교수님 같은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선배님이 제작진에게 받은 USB를 카메라에 보이도록 치켜들며 외쳤다.

“여러분의 ‘대면식’ 무대 리액션 및 코멘트 영상입니다!”

“와아~!”

우리는 내용물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반사적인 환호를 먼저 내뱉었다.

이거…….

아직 〈밀제트〉는 방영은 물론 선공개도 되지 않았으므로…….

같은 참가자들과 심사위원의 감상을 모은 영상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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