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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36화 (136/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36화

26. BREATHE(6)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윤혜주가 최애 앞에서 마음 놓고 펑펑 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까지 상세하고 간곡하게 새기고 새긴 다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냥 너무 쪽팔렸다.

좋아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는 죽기보다 싫었고, 상황이 겸연쩍어지는 것도 사절이었다.

그래서 우선 그녀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울음을 그치려고 애쓰며 말해보았다.

“어? 나……. 나 왜 울지?”

“괜찮아, 괜찮아! 침착해. 좋은 날인데 왜 울어……. 여기, 휴지 있으니까.”

“나 왜 울지? 어……? 미안해. 그러게, 나 왜 울어…….”

하지만 당황한 목소리는 제대로 문장이 되어 나오지 못하고 횡설수설 꼬여대고 말았다.

아무리 머리로 계산을 하고 제정신을 유지하려고 해도 넘실넘실 차오르는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까지 스스로에게 필사적으로 건 냉소적인 암시가 물거품처럼 부서져 가라앉았다.

‘왜? 나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말이 되어서 입밖으로 터져나왔다.

한마디로 뒤죽박죽, 전부 헝클어져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준비해온 말도 한마디 하지 못하고, 손과 다리도 몇 년 전 처음 봤을 때보다 떨렸다.

오히려 첫 팬 사인회에서는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 몰라서 말도 편하게 하고 장난도 쳤는데…….

찰나의 순간에도 몇백 가지 회상과 반성이 머릿속에서 솟아나고 사라졌다.

“……혜주 누나!”

그리고 그를 현실로 끄집어낸 것은, 익숙하고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참 많은 것이 변하고 모든 것이 낯설어지고, 팬도 직원도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오로지 한 명 선명하게 존재하는 이가 있었다.

그는 친숙하다가도 낯설어지고, 가까웠다가도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아이돌이었지만…….

지금 윤혜주를 부르는 그는, 과거 어느 순간보다도 긴밀하게 느껴졌다.

따라서 윤혜주는 그 부름에 가까스로 혼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누나, 그러면 이렇게 하자. 포스트잇 확인부터 하고, 그래도 진정 잘 안 되면 내가 말할게.”

“응? 어, 응……?”

이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으므로, 무슨 말이라도 하는 게 맞았다.

윤혜주가 휴지를 받아서 훌쩍거리며 눈가를 닦는 사이 정의헌은 포스트잇에 주관식 답을 써넣었다.

포스트잇에 적힌 질문은 ‘이번 〈밀리어네어 Z 트랙〉 첫 촬영 스포일러를 조금만 해주자면?’이었던가…….

아무튼 무난한 질문이었다.

“맞다, 나 기사 봤어. 첫 스튜디오 촬영 끝났다는 거 다 기사로 떴더라. 스포일러는 뭐가 있지……? 음, 내가 보기에는 진짜 멋있었어. 원래 서바이벌 방송은 시간을 되게 안 주거든. 덜 만족스러워도 빨리 내보내야 하고, 순발력으로 대응해야 하고, 그런 경우가 되게 많아. 그런데 이번에는 나름 편곡이나 안무 수정이나 할 시간이 충분히 있어서 좋았고~ 아! 그리고 우리 경연 규칙이 좀 재미있어.”

포스트잇에 받아 적는 내용을 설명하는 말은 경황이 없어 한 귀로 들으면 다른 귀로 흘러나갔다.

다정다감한 말투에 밀월의 정신이 멍하니 느슨해지려는 찰나, 정의헌이 대답을 갈무리하고 물었다.

“이제 좀 괜찮아?”

“으응……. 그런데 나, 의헌이가 무슨 말 하고 싶었는지 듣고 싶어…….”

“에엥.”

“……그리고 사인 언제 바꾼 건지도 궁금해.”

윤혜주가 코를 훌쩍이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바로바로 말했다.

사실 준비해온 말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기도 했고, 시간이 없어서 아무런 말이나 한 것에 가까운 대처였다.

“아, 사인? 이거 〈Run and Run〉 활동 중이었나……. 아마 음방은 다 끝나고였을걸.”

“왜 바꿨어……?”

“사인 하나 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빨리 끝내고 이야기 많이 해야지…….”

어느 시기쯤 바뀌었는지는 윤혜주도 알았지만, 물어본 후기를 찾지 못해서 굳이 질문했다.

잡담 덕분에 대화가 조금 가벼워졌다.

하지만 이러다가는 삼천포로 흘러갈 것 같은 느낌에 윤혜주는 슬그머니 한번 더 요구했다.

“이제 하고 싶었던 말 들려줘.”

“나도 누나 말 듣고 싶은데…….”

“난 편지 써왔어.”

“윽, 알았어. 오늘 가서 읽을게……. 음.”

처음부터 할 말이 많아서 말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는지, 정의헌은 짧게 말을 골랐다.

아예 고쳐 앉아서 진지하고 성실하게 이야기하려는 것을 보고 윤혜주는 왠지 불길함을 느꼈다.

울음을 그치려고 했는데, 이상한 자충수를 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음……. 사실 나 〈Run and Run〉 활동 때 누나 엄청 보고 싶었다.”

윤혜주는 왜 당시 활동 시기에 오프라인 이벤트 따위에 참여하지 않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아이돌이 몰라도 되는 진실도 있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고개만 조용히 끄덕일 뿐.

“되게 생각이 많이 났는데…….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아쉽다’ 하고……. 뭔가 좀, 우울해하지 않고 기다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응…….”

“그러다가 우리가 〈데프아〉 첫 경연 때 밖에서 봤잖아. 난 그날 되게 똑똑하게 기억 나. 엄청 사람 많고 소란스럽고, 막 더워서 기온도 삼십 도씩 올라가고……. 연습생 친구들도 많고, 우리 보려고 오신 분들도 많은 데다가……. 소리가 워낙 섞여서 어디서 나를 부르는지도 잘 안 들렸거든. 그런데 되게 거짓말처럼 딱 보이는 거야.”

지난여름 〈데프아〉 1차 경연을 속으로 돌이켜보면 가만히 있어도 절로 체력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당일 몇 시간이나 그 자리에서 앉아서 기다리고, 서서 기다리고, 사람들 틈에 뒤섞여 기다린 윤혜주는 정의헌의 말보다 더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었다…….

지독한 소음, 공개적인 장소, 길바닥에는 쓰레기가 가득하고, 밀고 밀치고, 알바들은 아주 팬들을 우습게 보고.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윤혜주는 모든 악조건이 상관 없어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정의헌이 띄엄띄엄 그날의 미니 팬미팅을 묘사하며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좋았던 순간을 회상하는 듯이…….

아드레날린이 머리 끝까지 치닫는 일을 겪은 윤혜주도 그날에 관해 이야기할 때 저런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이건 비밀인데, 솔직히 서바이벌……. 각오를 많이 하고 나가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결정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거든. 걱정도 많았고.”

“네가 제일 잘하는데 걱정할 게 뭐가 있다구…….”

“그렇게 보이면 다행이고~ 아무튼 이게 맞는 것인지 아닌지 확신이 살짝 없었는데, 그전부터 나를 알던 사람들이 계속 지지해주고 또 그 모습이……. 내가 확인할 수 있게…… 라고 해야 하나, 눈에 바로 보이니까……. 정말 힘이 많이 됐어. 자신감도 많이 얻었고. 누나 다시 보게 되면 그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윤혜주는 당연히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이쯤 되자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한 손으로 눈가를 훔치는데 다른 손을 정의헌이 손깍지를 껴 잡아주었다.

“늘 너무너무 고맙고, 내 이름 검색하면 툿투에 누나 글 많이 나오는 거 알아? 그런 글이나 사진 볼 때마다 누나가 나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느껴져서 되게 신기하고 좋고 그래. 나도 모르는 내 모습 같은 걸 누나가 매번 발견해주니까.”

“의헌아…….”

“진짜 고마워. 내가 진짜, 앞으로도 더 노력할게. 그냥……. 고마워.”

꾸미지 않은 언어, 사용한 단어를 몇 번이나 다시 쓰고, 화려하지도 않은 말이었다.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도 모르는 채로 윤혜주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끅끅거리며 숨을 들이마셨다.

시간이 다 되었다며, 현장 스태프가 다가오는데 정의헌이 조용히 고개만 들어 말을 전달했다.

“잠시만요, 조금만.”

스태프의 말에 윤혜주가 반사적으로 일어나려고 해서, 자연스레 잡은 손이 풀렸다.

그는 여전히 앉은 채였고 윤혜주는 어정쩡한 자세로 의자에서 일어나 있었다.

동등하던 눈높이가 일순간 위아래로 차이를 벌리며 틀어졌다.

그가 올려다보면서 질문했다.

“누나, 행복해야 돼. 알았지?”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는 진갈색 눈동자.

참을 수 없이 올라오는 설명 못할 마음에 윤혜주는 그만 반박하고 말았다.

“바보야……. 나 다다음주에 너 팬미팅도 가……!”

“진짜? 고마워! 그러면 그때 보자.”

“응, 또 봐.”

“고마워~”

담백한 인사와 함께 단상에서 내려온 뒤, 그녀는 사진도 영상도 녹음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가져온 장난감 프로펠러도 본인에게 제때 주지 못해서 스태프에게 건네주었을 정도니까.

말마따나 깨끗하고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 화장실, 세면대 거울로 마주본 얼굴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워터프루프라고 그렇게 광고하더니만 화장은 다 번져 있고, 눈도 퉁퉁 부어서 체면과 컨디션과 몰골이 모두 엉망이었다.

지울 것은 지워내고 덧그릴 것은 덧그리기 위해 화장품 파우치를 세면대 근처에 올려두었는데, 손으로 잘못 건드려 내용물이 쏟아졌다.

달그락대는 소리와 함께 플라스틱 용기가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둥근 세면대 안으로 굴러가기도 했다.

수습을 위해 상체를 숙였다가 그녀는, 그 아래에 아직 고인 감정을 발견해냈다.

다시 눈가가 촉촉해졌다.

‘아…….’

왜 울었는지, 그는 눈물을 전부 내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슬픔도 무서움도 초조함도 속상함도 감동도 아니었다.

그저 윤혜주는 정의헌 앞에서 안심했던 것이다.

그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여전히 진솔하게 자신을 바라봐주고 있었으니까…….

윤혜주가 좋아하는 모습 그대로, 좋아하는 이유를 조금도 잃지 않은 채로.

‘뭐였을까.’

그는 오늘 하루 벌어진 모든 일을 차근차근 회상해보았다.

자랑스레 준비했다고 말하던 도시락 역조공부터 깜짝 이벤트, 도시락 실수를 바로잡고, 일대일로 대화한 내용까지.

정의헌은 일관성 있게 서글서글했다.

오버하지도 않았고 억지로 분위기를 끌어올리지도 않았고, 여느 때처럼 단순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끔 윤혜주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진정한 속내가 알고 싶었다.

‘그건 아마……. 앞으로도 알 길이 없겠지.’

누군가는 아이돌의 진짜 내면 따위 관심이 없다고들 하던데, 윤혜주는 최애에 한해서는 더러 궁금해지고는 했다.

매주, 매번 팬 사인회에서 만나 이야기하던 시절부터 그랬다.

자주 보면서도 헤어질 때는 이렇게……. 평생 다시 못 볼 것처럼 애틋하게 인사한다거나.

비밀 따위 없을 것처럼 솔직하게 굴면서도 만날 때마다 또 새로운 이야기를 해준다거나…….

그럼에도 사람이 달라진 것 같지 않을 때, 소중하게 대해줄 때.

그 순간들을 접하면 호기심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이상해.’

윤혜주는 차가운 세면대 가장자리를 붙잡고 몇 분 더 생각했다.

그리고 정의헌이 해준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곱씹어보았다.

여전히 이상했고, 좀처럼 그 묘한 울렁거림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오늘 그는 조금 더 오래 밀월이 아닌 윤혜주로 남게 될 것 같았다.

닉네임보다도 프라이빗한 본명으로.

팬으로서.

조금 더 오래, 아이돌을 지켜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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