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33화 (133/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33화

26. BREATHE(3)

전원이 참여하는 군무로 이루어진 댄스 브레이크.

스테리나인은……. 이제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소화해왔다.

여러 콘셉트와 장르를 시도했으며, 멤버끼리 포지션이 겹치는 경우도 많아 표현 방법이 다양했다.

포지션 겹침은 기본적으로 그룹 내 서브 포지션을 엄격하게 나누지 않아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래서 랩과 보컬을 둘 다 하는 멤버도 있었고, 센터나 킬링파트, 독무 담당도 곡마다 달랐다.

일례로 서드림은 엄밀히 말하자면 그룹 내 서브보컬 역할에 가까웠다.

한 포지션을 메인이나 리드 급으로 꿰차기에는 그룹에 쟁쟁한 실력자가 너무 많았으므로.

그러나 분위기가 맞는 곡은 그가 도입부를 담당하기도 했고, 후렴 센터에 서기도 했다.

그렇게 이것저것 융통성 있게 처리하는 스테리나인 기획이었지만…….

이 그룹을 운용하는 데 있어 기어코 바꾸지 않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로 두 메인보컬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메인 멜로디를 채우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댄스 브레이크.

댄스 브레이크가 없는 노래도 있었으나, 보컬 없이 춤을 추는 구간이 삽입된다면 그 방식은 언제나 동일했다.

아니, 스테리나인 모든 노래 모든 파트에 적용되는 규칙.

결코 스테리나인은 잘하는 사람을 숨기거나 가리지 않는다.

이번 〈런앤런〉 댄스 브레이크는 짧고 굵었다.

무대를 본래 모양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기에, 공간이 좁아서였다.

스테이지가 좁으면 춤을 추는 사람도 불편하고 답답해 보일 수도 있으니까.

넓게 퍼지지 않고 사실상 앞, 중간, 뒤 세 줄로 구도로 안무가 진행되었다.

마치 피라미드처럼 중앙 한 점을 집중해 뒤로 갈수록 점점 퍼지는 좁은 구도였다.

쿵쿵거리며 정확하게 맞는 발소리가 점점 크게 울리는 음향에 묻혔다.

모든 멤버가 같은 춤을 추되 중앙의 메인댄서에만 안무 변형이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같은 시간, 같은 리듬을 쓰나 정의헌에게만 몇 가지 동작이 더 필요했다.

당연히 체력도 더 요구되었고, 다른 멤버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그는 당연하게도 해냈다.

서드림의 자리에서는 뒷모습만 보였으나, 한 무대에 섰으므로 알 수 있었다.

선두의 춤꾼은 아무런 문제 없이 춤을 소화했다.

훌륭한 리드.

심지어 연습 때보다도 더 세찬 에너지가 피부에 와닿았다.

차마 따라할 수도 없을 만큼 정교하고 힘이 들어간 움직임들.

그 움직임이 느려지고, 자연스럽게.

첫 코러스가 벌스보다 먼저 시작되었다.

다만, 본래 다 함께 부르던 구절이 정의헌 한 명의 가창으로 바뀌었다.

남들과는 달라 별빛의 네온사인

깊게 숨을 마셔 Run Run Run

기운찬 목소리 이후 동선이 바뀌며, 카메라 감독 또한 무대 코너를 따라 꺾이듯이 이동했다.

다시 무대의 가로 긴 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다.

런웨이 연출을 위해 직사각형 무대를 길게 걸어 끝까지 오기는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노래 전체를 이 구도로 담기에는 폭이 좁았기 때문이다.

아홉 멤버들은 느리게 걸어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Run and Run〉이라는 제목처럼 달리고 또 달려서.

몇 명은 이동 거리가 짧았고, 두세 명은 멀리까지 뛰었다.

먼저 자리를 잡아 멈춘 서드림의 발밑으로 쿵쿵거리는 울림이 느껴졌다.

다 함께 부르는 후렴 구절이 이어졌다.

새벽 도로 위를 달려 Let’s Go High

우린 이제 다시 만날 거야

Run and Run, Run and Run

본래는 긴 공백기를 깨고 컴백하는 것을 기념하는 뉘앙스의 가사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노래하면 같은 가사여도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연습했던 대로 무대가 제 궤도에 올랐다.

환호성도 응원법도 없었지만, 무대 위에 오르자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누가 보고 있든 누가 상대든 열심히만 하면 될 것 같다는 감각이.

바둑을 처음 시작할 때, 그리고 막 데뷔했을 때에나 느꼈던 감정이…….

겁내지 않아 까만 밤하늘

푸른 빛의 길을 따라

Go Round and Round

서서히 다시 타오르고 있었다.

천진섭 다음의 벌스를 받아 서드림이 입을 떼었다.

진심을 다해 필요 없으면 지워버려

나는 전력으로 Light it up More

그는 목소리를 뱉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런 느낌으로 부르는 노래였구나.

아래에서 연습할 때와 실전 경험은 역시 달랐다.

조금 더 좋았다, 이 편이.

우리가 On the Road, Squad Nine

또 다시 시작해 Round 2

강주찬의 랩 벌스가 지나가고, 이후 다시 후렴.

남들과는 달라 별빛의 네온사인

깊게 숨을 마셔 Run Run Run

떼창으로 진행하는 후렴의 중앙은 김지상이었다.

그리고 후렴구의 두 번째 파트는 재분배를 통해 서드림에게 주어졌다.

덕분에 안무도 두 사람의 팔이 얽히는 페어 안무로 변경되었고 말이다.

새벽 도로 위를 달려 Let’s Go High

우린 이제 다시 만날 거야

Run and Run, Run and Run

인터뷰에서처럼 말했듯, 서드림의 해석이 추가된 면이 있었다.

시작과 만남이 조금 더 설레게 느껴지도록.

두 번째 후렴이 지나가고, 어느덧 프리코러스를 지나 하이라이트.

달려가 너에게로 가

나를 보여줘 Run my way

한이주의 목소리에 겹쳐 이영하의 기세 좋은 고음 애드리브가 무대를 쩌렁쩌렁 채웠다.

그쯤 되니 서드림은 체력적으로 한계였고 숨이 턱에 찼지만, 마무리를 허술하게 할 수는 없었다.

한 번의 코러스가 더 진행되고, MR 속 화려하던 악기가 하나씩 멈추며 소리가 단순해져갔다.

그리고 정의헌의 목소리가 메인보컬들의 더블링과 함께 멜로디를 채웠다.

포기 따위 없어 갈증을 느껴

위험해도 끝까지 Go away

부족해 더 원해

Run and Run, Run and Run

발 스텝에 치중되던 움직임이 자연스레 상체 손동작으로 올라오고…….

‘센터’의 역할에 걸맞게 노래 맨 끝 한 마디는 서드림의 몫이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지

앞 열의 네 멤버는 무릎을 꿇고 앉고, 뒷 열 멤버들은 서드림의 왼쪽과 오른쪽에 둘씩 섰다.

음악이 멎으면 수가 많지 않은 출연진과 스태프들의 박수 소리가 스튜디오에 우렁차게 퍼졌다.

사실 저렇게 씩씩한 가사가 제게 어울리는지 서드림은 연습 도중 몇 번이고 고민했다.

그런데……. 막상 실전에서 부르게 되니까, 녹초가 되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후우…….’

하지만 개운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었고 몸은 피로했다.

리허설보다 다섯 배는 힘들었다.

그리고 오십 배는 재미있었다.

귓가에 잘했어, 칭찬이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공연 조금 전 들었던 그 목소리로.

* * *

“와, 이거 화면 꽤 잘 나왔네.”

짧은 쉬는 시간, 우리의 〈Run and Run〉 무대 영상을 미리 모니터링하며 나는 중얼거렸다.

나름 경연 시스템을 취하므로 당사자에게는 영상을 미리 보여주지 않을 줄 알았는데, 〈밀제트〉 제작진들은 생각 이상으로 친절했다.

이 리액션마저도 카메라가 옆에서 찍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민망했으나, 각을 잡고 촬영하는 것은 또 아니었다.

영상이 좋게 나오면 사용하고 아니면 말 작정인 것 같았다.

지금 모니터링 화면에 나오는 것은 댄스 브레이크 이후 가창이 시작되기 전 장면이었다.

런웨이를 거꾸로 달려서 무대 동선으로 다시 자리를 잡는 파트.

이렇게 달리는 퍼포먼스 하나에도 사실 여러 논의가 이루어졌다.

영화 및 드라마 감상이 취미인 한이주의 아이디어를 확장한 결과였다.

‘드라마에서 보면 사람들이 감정이 끓어오를 때 거리에서 조깅을 하잖아. 그런 느낌이면 좋겠어.’

그래서 카메라에 보이는 이동 방향은 우에서 좌로.

사람들은 보통 글이나 정보를 좌에서 우로 읽기 때문에, 반대는 부자연스러웠다.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불안하다는 의미고, 여기서 불안은 나쁘지 않았다.

긴장감 있고 역동적이며……. 끓어오르는 감정이 선명히 보였다.

적어도 지금까지 공연한 〈Run and Run〉 중에서는 가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무대였다.

“거기서 클로즈업 들어가니까 더 멋있다.”

“관객분들 오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관객이 없어서 이렇게 퍼포먼스를 한 거 아닌가……?”

옹기종기 모여 한마디씩 주고받는 중에 내가 한마디를 하자 김지상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다 보면 아까 대기실에서도 이야기한 내용의 반복이었다.

아무튼 나는 곧 개인적으로 팬 사인회가……. 계획되어 있다는 이야기.

‘으음…….’

팬을 대면해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앞으로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겠어서 스케줄은 승낙했는데…….

개인으로 사인회를 진행하는 것은 처음인 데다가 여러모로 이 사이 변화가 많아 조금 긴장되는 느낌이 있었다.

〈런앤런〉 활동 끝나고 사인회를 몇 주 진행했으니까 따지고 보면 아주 오랜만은 아니기는 했다.

다만 그때 한이주가 내 뒤에서 등을 꾹꾹 밀어대는 통에, 그 생각이 오래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다음 순서 무대 보러 가자!”

“아, 그래. 다음 누구시지?”

“달고나밴드 님들이래요~”

요사이 새로운 만남이 너무 잦았다.

그룹 있고, 팬들 있고, 라이벌인 달고나밴드에, ‘특별 담당자’라는 방송 포맷으로 우리와 묶인 가수 및 프로듀서 이용익…….

〈밀제트〉 심사위원 중에는 친분을 쌓아두면 좋은 사람이 많았지만, 특히 이용익 선배님은 알고 지내면 도움 될 일이 많았다.

추후에도 그럴 테고 지금 당장도 아는 게 워낙 많으신 분이라서 가까워질 수만 있으면 좋을 테다.

‘친해지기 쉬운 타입은 아닌 것 같긴 한데.’

괜찮다. 그래봤자 이제 겨우 첫 녹화였다.

같이 더 지내보고도 영 시원치 않으면 그때 생각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뭐라고 할까, 내외적으로 참 신경 쓸 것도 많고 바쁜 시기였다.

물론 바쁘게 사는 게 아무런 일도 없이 시간 보내는 것보다는 좋지만…….

‘팬싸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정신적으로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팬 사인회 같은 이벤트는 내게 그런 의미로 도움이 될 것이다.

* * *

정의헌의 팬, 허니문 = ???????????????????????????????????? = 밀월여행 = 밀월의 3월.

모든 대학생의 개꿈과 절망인 개강 시즌이었다.

그는 피곤에 찌들어 겨우겨우 매일을 버티고 있었으나, 최근 넘쳐나는 최애 떡밥만은 그를 위로해주었다.

라디오, 광고, 각종 이벤트, SNS 업로드, 방송 출연, 이따금 공식 카페 소통까지.

정의헌은 많은 스케줄에 본인도 신이 나는지, 피곤한 티를 내지도 않고 무척 좋은 텐션으로 왕성하게 활동과 소통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밀월도 유일하게 아주 약간 심심함을 느끼고는 했는데…….

바로 그 모든 스케줄이 비공개로 진행되어 최애와 대면 소통 기회가 없어서였다.

물론 비공개 일정도 어떻게든 알아내서 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밀월은 그들과는 달랐다.

달라야만 하기도 했다. 그는 비공개 스케줄을 따라다니다가 스태프에게 적발되어서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아무튼 그는 공개 스케줄에서 최애를 만날 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하늘에서 팬 사인회 공지가 내려왔다.

광고사와 제휴해서 진행하는 사인회는 심지어 처음이었다.

밀월은 통장에 구멍을 뚫을 기세로 과소비를 하고, 쌓이고 넘친 로션과 크림을 주변에 죄다 선물하며 사인회에 응모했다.

‘팬싸컷 얼마였을까…….’

솔직히 말해서는 밀월도 그렇게 많은 돈을 쓰지는 않았다.

본인 기준으로는 무리해서 응모했지만, 진짜 갑부들의 소비와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액수였을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이번 팬사인회 이후 언제 다시 사인회가 있을지 몰라서 문제였다.

스테리나인이 OTV 새 방송에 출연하며 다음 앨범 플랜도 불분명한 상황(보통 팬 사인회는 앨범 발매 이벤트로 개최되고는 하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정의헌 실물을 보고 싶은 팬들은 수백만 원, 천에 가까운 금액을 쏟아부었다.

〈데프아〉 이후 커진 팬덤 규모도 규모였고 그들의 자금력도 상상을 초월했다.

그런데…….

‘미친! 이거 동명이인 아니야? 이름 윤희주, 윤선주 이런 거 아니야?’

세상에 다시 없을 행운과 함께, 당첨 소식이 그녀를 찾아왔다.

이름과 생일, 핸드폰 번호 뒷자리를 몇 글자 가린 리스트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밀월은 두 눈을 의심했다.

그리고 며칠 뒤 핸드폰으로 당첨 문자가 도착하자, 그제야 그는 기쁘게 인정했다.

‘이게 얼마만이야!’

믿지도 않는 신에게 밤낮으로 기도하던 시기는 이제 끝이었다.

일차적으로 긴장할 일이 끝나니까 잠시 사라졌던 입맛도 다시 도는 것 같았다.

밀월은 핸드폰을 양손으로 곱게 쥐고 침대에 풀썩 쓰러져 누웠다.

‘……어떡하지?’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속이 울렁울렁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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