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32화
26. BREATHE(2)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타고, 대기실에 찾아온 손님 이용익이 마저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좋습니다, 그러면 다른 분들께도 질문을 조금 하고…….”
오랜 라디오 DJ 경력으로 단련된 듯, 이용익의 사회 실력은 상당히 출중했다.
발음과 로우톤의 목소리가 좋을뿐더러 다인원 그룹임에도 소외되는 멤버 없도록 멘트를 하나씩은 챙겨주었다.
텐션을 끌어올린 멤버들 덕분에 서드림도 정신을 차리고 힘차게 무대에 임하는 다짐을 발표했다.
“〈런앤런〉은 고난에 굴하지 않고 너에게 달려가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인데요. 저는, 그. ‘너에게 간다’ 부분에 무게를 두고 곡을 해석해서, 시작과 만남의 설렘을 더 많이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느낌의 차이를 눈여겨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약간 횡설수설 말한 것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기회를 잡아서 하고 싶었던 말은 모두 했다.
각자 한 명씩 문답을 하면서 어느 정도 분량을 뽑아내었을 때쯤, 이용익이 문득 과장되게 분위기를 잡았다.
“자, 자! 제가 이 자리에서 중요하게 밝힐 일이 있습니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예능감 스테이터스가 현저히 부족한 서드림은 속으로 조금 혼란스러웠다.
‘지금이 웃을 타이밍인가?’
그는 동시에 정의헌이 방송 기획과 예고편 등을 보고 파악해서 미리 알려준 내용을 빠르게 복기(復棋)해 보았다.
〈밀리어네어 Z 트랙〉은 심사위원이 따로 있는 시스템인데, 이들은 오디션 멘토 같은 역할은 아니었다.
무대를 보고 피드백을 주기보다는, 무대 구성 요소를 전문적으로 조목조목 칭찬해 주는 방청객 대표에 가깝다나.
물론 무대에 점수를 매기기는 할 테지만……. 본래 그들의 일은 심사보다는 맛깔나는 리액션이라는 것 같았다.
심사위원들은 〈밀제트〉 무대를 준비하는 출연진들의 예능감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서 필요했다.
경연하는 이들은 예능 방송 출연이 처음인 사람도 많았고, 긴장을 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그래서 분위기를 풀어주고 무대를 즐기며, 진정성 위에 재미와 웃음을 양념해주는 예능인들이 섭외된 것이다.
물론 예능인이라고는 해도 음악에 조예가 깊은 프로듀서나 안무가, 작사가, 작곡가, 연주자 등이었지만.
‘그러니까 진지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거겠지……?’
추론은 정답이었다.
이용익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려는 것처럼 한참 바람을 잡더니 난데없는 단어를 내뱉었다.
“제가 바로 여러분의 ‘특별 담당자’가 되었다는 소식!”
“오오오~ 와아~?”
“이제 이 밑에 네모 박스로 설명 편집해서 올라가나요?”
멤버들은 일단 웃었고, 한이주가 양손으로 허공에 네모를 그리며 농담을 던졌다.
* 특별 담당자: 심사위원 한 명당 한 참가자씩 일대일로 매칭해 주는 방송 시스템.
무대 외, 연습실이나 대기실 등 무대 뒤에서도 예능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역시 출연진들의 예능감을 제작진들이 믿지 못했기 때문에 준비한 제도였다.
특별 담당자는 말하자면 일종의 1호 리스너이자 팬, 그러면서도 매니저 같은 역할이었다.
서바이벌 형식을 차용한 것에 비해서는 꽤나 출연진을 하나하나 존중하고 띄워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최근 〈데프아〉에서 멤버들의 왜곡된 모습만 본 서드림으로서는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았다.
심지어 〈밀제트〉 제작진과 〈데프아〉 제작진 인원은 공통분모가 많다고 해서 더 정리가 되지 않았다…….
진실은 저 너머에(설명하자면 연재 소설로 116화 분량은 필요했다).
하여간 낯선 사람을 보면 경계부터 하는 서드림에게 최근의 여러 변화 및 새로운 만남은 다소 버겁기도 했다.
다른 멤버들은 서드림만큼 힘들어하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낯가림이 심한 편인 강주찬이나 김지상도 지금의 서드림처럼 예민한 상태는 아니었다.
붙임성 좋은 멤버, 특히 정의헌은 마냥 좋은지 이용익을 보는 눈빛이 아주 반짝반짝했다(그렇게까지 좋아할 이유는 없어 보였는데도).
‘…….’
설마 잠시 활동을 쉬어서 그런 건가, 그래서 쫓아가지 못하는 건가. 부정적인 생각이 밀려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잘하는 멤버들이었는데 그 사이에 또 격차가 벌어진 것은 아닌가.
카메라 앞에서는 웃음을 지었지만, 속이 울렁울렁했다.
언제 제작진들과 이용익이 대기실에서 철수했는지도 제대로 인지가 되지 않았다.
메슥거리는 감각마저 느껴질 때쯤, 뒤에서 누가 서드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리 드림이, 다 커서 말도 잘 하네.”
그리고 볼을 쿡 찌르는 손가락.
실없는 장난질에 일순간 정신이 느슨해졌다.
서드림이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리자 정의헌은 괜스레 웃고, 덧붙였다.
“잘했어.”
무엇을 칭찬하는지는 불분명했다.
* * *
다시 정리하자면.
〈Run and Run〉은 2016년 4월 19일 발매한 스테리나인의 미니 6집 《Start Line》 앨범의 타이틀곡이다.
힙합 비트, 다양한 신스 사운드와 중독성 있는 멜로디의 후렴구가 특징.
강렬하고 다소 어두운 에너지를 끌어올려 달리는 구성으로 퍼포먼스를 위한 노래기도 했다.
서드림은 제작 과정에 참여하거나 비하인드를 실시간으로 전해들은 게 아니므로, 그러한 정보 위주로 곡을 기억했다.
노래는 꽤 좋았다.
외국에서 받아온 곡으로 해외 작곡가 여러 명의 작업물을 꿰매듯이 이어붙여 프로듀싱했는데, 벌스와 코러스, 하이라이트가 배치가 잘 되어 완성본이 제법 세련되게 뽑혔다.
한두 번 들어도 후렴구는 외울 수 있었으나, 이지리스닝의 딱 정반대에 있는 노래였다.
의상 등의 콘셉트도 스테리나인치고는 컨셉추얼하게 가져갔다.
본래 음악방송을 돌 때에는 민소매나 크롭 상의도 자주 입고, 제복을 변형한 스타일의 의상에 체인, 벨트, 플라스틱 버클 등을 주렁주렁 달아 무대에 섰다는 듯했다.
때때로 비교적 캐주얼한 스포티 의상을 입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나 무대의상이에요’를 전신으로 외치는 듯한 콘셉트였다는데…….
오늘 〈밀제트〉 대면식 착장은 컨셉추얼함과는 꽤 거리가 있었다.
다짜고짜 블랙 수트.
그렇다고 해서 쓰리피스 수준으로 무거운 의상은 아니었다.
겉옷 안에는 각자 셔츠나 티셔츠, 터틀넥 등 본인과 어울리는 스타일을 갖추었고, 겉옷으로 입은 재킷은 기장이 다양했다.
의상은 다들 포인트나 디테일이 달랐으며 서드림의 경우 아예 재킷 없이 흰 셔츠에 검은 넥타이, 검은 슬랙스 차림이었다.
한마디로 캐주얼 정장이었다는 이야기다.
‘으음…….’
무대 뒤에 홀로 서 있으니 또 이런저런 상념이 치고 올라왔다.
서드림은 심호흡했다.
죄다 잡스러웠다.
잡스러운 것은 버릴 때였다.
목적은 단 하나.
무대를 성공리에 마친다.
그 목표를 제외한 모든 것은 버려도 되는 것들이었다.
음악이 들어오기 이전에 서드림이 움직여야 했기에, 스태프가 목소리로 카운트다운을 세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그리고 일 초 더 홀드.
따로 설치된 조명이 켜지고, 서드림은 감았던 눈을 떴다.
오늘의 〈Run and Run〉 무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백스테이지에서.
말하자면 편법이지만, 제작진은 연출이라는 이름하에 허락해 주었다.
스테리나인은 관객이 들어오지 않는 무대의 단점을 장점으로 살렸다.
단순히 말해, ‘관객이 어디에서 보고 있는지’ 그 위치를 고려하지 않은 무대였다.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오로지 카메라 렌즈의 시선.
서드림은 카메라를 한번 쳐다본 뒤, 걸었다.
백스테이지에서 무대 위를 향해서.
카메라가 앞서가며 그를 촬영했지만, 그는 카메라가 저를 따라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 걸음째에서 MR이 재생되었다.
다시 카메라를 보고 서드림이 목소리를 내었다.
온몸으로 부딪혀
Get it? All Ready
음악이 흐르는데 이상하게 고요했다.
스스로의 목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
카메라 렌즈는 보였지만, 카메라 감독은 보이지 않았다.
서드림은 투명한 긴 선을 밟으며 세 칸짜리 계단을 올랐다.
격자 무늬의 실선이 그를 이끄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사람이 많고, 이렇게 눈이 많고, 이렇게 알록달록한데도.
완벽하게 반듯하다니.
그는 가만히 두면 새어 나올 것 같은 감탄을 입안으로 삼켜냈다.
서드림이 오르는 계단은 무대 중앙이 아니라, 좌측 계단이었다.
즉 그는 무대 한쪽 끝에서 등장하는 계획이었고…….
그곳에서는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가로로 넓은 무대를 일부러 수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즉 무대가 세로로 길어 보이도록 구성을 변경했다.
그저 무대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걷는 퍼포먼스였다.
카메라는 전신을 잡고,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서서 기다리던 이들이 한 명씩 행진에 합류했다.
패션 쇼의 런웨이처럼.
이곳에 있는 여덟 참가자 중에는 스테리나인보다 노래를 더 잘하는 이도, 춤을 더 잘 추는 이도 있었다.
이 라인업이면 아이돌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인터넷 여론을 서드림은 기억한다.
아무리 〈데프아〉 후광을 입었어도, 기본적으로 대중성이 부족한 남자 아이돌은 남들과 비교 당하며 발판이나 될 것이라고……. 이름 없는 자들이 험담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기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
서드림은 생각했다.
싸워보기도 전에 승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조건이 나쁘다고 해서 적 앞에서 수를 접고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었다.
스테리나인이, 우리가.
여덟 중 가장 잘하는 것도 있었으니까.
예컨대.
다인원 그룹의 위압감.
그리고 대체적으로 큰 키.
길쭉길쭉한 몸의 비율.
누구 한 명 빠지지 않는 비주얼.
그것도 스테리나인의 무기였다.
서드림은 선두에서 걸었다.
한 걸음씩.
성큼성큼, 당당하게.
웃지 않는 편이 나으니까 무표정으로.
그러나 무대 끝에 섰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실소가 새어 나왔다.
멈추어서야 배경에 깔려 내내 재생되던 음악이 귀에 들어왔기 때문에.
다만 연습 때문일까, 혹은 운이 좋았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머리가 아니라 몸이 음악을 받아들인 걸까.
올바른 박자로 그의 발이 정위치에 자리 잡았다.
크게 웃지는 않고, 서드림은 입꼬리만 슬쩍 올렸다.
그리고 발 앞꿈치에 힘을 실어 몸을 삼십 도 각도로 빙글 기울였다.
그를 지나서 더 걸어 나오는 후발 주자가 있었다.
찰나 그림자가 드리웠다가 시야가 다시 밝아졌다.
실제로는 몸이 닿지도 않았는데 마치 손바닥을 서로 마주친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퍼포먼스에 댄스 브레이크가 삽입된다면 언제나 중앙은 정해져 있었다.
Yeah, Yeah
I will Run to you, Now
단순하면서도 큰 의미는 없는 영어 가사가 선행했다.
정의헌이 목소리로 흥을 돋우며, 탱탱 튕기는 신스 사운드 리듬에 맞추어 손을 움직였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듯이 허공을 툭툭 두드리는 동작.
그 손이 왼쪽을 향하면 왼편에 선 멤버들이, 오른쪽을 향하면 오른편에 선 멤버들이.
파도가 치는 모습처럼, 지휘자를 따르는 연주자처럼…….
신체에 시동을 걸듯 가볍게 흔들렸다.
질주는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