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31화
26. BREATH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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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짓말쟁이들……!’
서드림은 생각했다.
만만한 안무라면서, 너무너무 잘하고 있다면서, 조금만 더 하면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쉬워진다면서.
연습할 때마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대더니만, 그 형들도 리허설이 끝내고 다 녹초가 되어 있었다.
리허설은 무대 의상 위에 이름표를 부착하고 시간 관계상 메이크업도 어느 정도 마무리한 채로 진행했다.
실제 방송과 비슷하게 시간을 조절하고 카메라 워킹이나 연출 등을 모두 동원한 덕분에, 멤버들의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실전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대기실에 도착하자마자 다들 앓는 소리를 내며 풀썩풀썩 쓰러지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다.
“안 힘들다고 했잖아…….”
그리고 그 쓰러지는 인원의 선두 중 하나를 담당하는 게 바로 서드림이었다.
만져놓은 헤어가 망가지지 않게 머리만 조심해서 대기실 소파에 몸을 던진 서드림이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자면 활동을 중단하면서 떨어진 체력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도 같았다.
〈나에게〉는 페어 안무나 유닛 안무 위주라서 중간중간 쉬는 구간도 많았고, 군무도 디테일을 맞추는 것이 힘들었을 뿐 동작 하나하나가 격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Run and Run〉은 상상 이상으로……. 그냥 일 분 일 초가 힘들었다.
곡 초반이라면 원곡보다 느린 호흡으로 진행되어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중간부터는 무대를 넓게 사용하게 되어서, 난이도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안무 만든 사람은 라이브라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불한당일 게 틀림없었다.
“우리는 너 없을 때 이 노래로 매주 음방 돌았어…….”
“거짓말하지 마…….”
한이주가 알려주는 진실을 제멋대로 매도하면서 서드림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무대 이후로 모니터링도 하고 씩씩하게 인사도 하고 긴 복도를 지나왔는데, 아직도 호흡이 진정되지가 않았다.
‘체력을 보강하려면 운동이 필요하다’는 마음과 ‘춤을 이렇게 추는데 운동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그의 머릿속에서 열렬히 충돌할 때였다.
한이주가 대기실 밖으로 나가고, 선풍기로 땀을 다 식히고 냉수까지 한 컵 마시고 돌아온 김지상이 소파로 다가왔다.
서드림은 툭툭 치는 손길에 발을 슬쩍 비켜주고, 김지상이 소파에 앉자 다시 다리를 내려놓았다.
긴장을 꽤나 했는지 김지상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아직도 핏기가 돌아오지 않았다.
두 사람의 무릎이 소파 위에서 씨실과 날실처럼 얽히고, 추가로 강주찬이 비틀비틀 다가와 소파 다리를 등받이 삼아 앉았다.
그가 앉자마자 중얼거렸다.
“힘들다…….”
힘든 건 다 매한가지였다.
강주찬은 앉은 채로 고개를 뒤로 꺾어, 뒷머리를 서드림의 무릎 위에 가볍게 올리고는 물었다.
“야, 할 만해?”
“그냥 하는 거지 할 만해서 하나…….”
“너 말고.”
“어~ 너 잘났다~”
두 형들이 자기들끼리 떠들다가 서드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
“엉, 너 〈런앤런〉은 처음 해보잖아.”
비스듬하게 틀어진 시선이 맞았다.
강주찬뿐만 아니라 김지상도 이쪽을 주목하고 있었다.
작게 말한 탓에 다른 멤버들은 본인 일을 하면서 그저 바빴지만 말이다.
서드림은 괜스레 머쓱한 감정에 눈동자를 빙글 돌렸다.
딱 기절할 만큼 힘에 부쳤지만, 그렇다고 해서 싫었냐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제게 주어진 센터라는 직책이 부담스럽기는 했다.
‘센터라니…….’
솔직히는 ‘센터’라는 낱말 자체가 묘했다.
지금까지는 안무를 만들거나 연습하면서 굳이 센터 포지션을 정한 적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자신이 센터라고 해도 초반만 잠깐일 뿐, 중앙에 서는 사람은 노래가 진행되며 계속 변했다.
아무리 센터라는 표현이 유행이어도……. 이렇게까지 강조하는 사유를 서드림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솔직히는 정의헌이 카메라 앞에서 말해준 선정 사유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냥 그 형이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정의헌이 말해준 서드림의 장점은, 객관적으로 정의헌 본인 역시 지니고 있었다.
긴장도 잘 하지 않고, 무대에 몰입도 잘하는 편이고.
심지어 키도 더 큰 데다가 춤 실력은 현역 아이돌 중에서도 톱급이다.
그 사실을 시청자라고 해서 모를까. 서드림도 알 수 있는 것을.
하물며 이제는 인기도 많고 얼굴도 많이 알려져서, 중앙에 서는 편이 시선을 모으기 더 좋을 텐데.
생각에 잠긴 서드림이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강주찬이 피식 웃었다.
“부담스러워도 그냥 해. 어차피 이제 못 바꾼다.”
“……안 바꿀 거야.”
“영 하기 싫으면 나는 언제든 대타 가능.”
김지상이 손을 들자 강주찬이 ‘서바이벌 나가더니 이상한 욕심이 생겼다’고 투덜투덜 야유했다.
서드림은 그보다는, 김지상의 묘하게 막나가는 화법이 방송에서 지나치게 비가시화되었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들 해?”
그때 서난영이 의자를 끌고 와서 맞은편에 앉았다.
의자가 바닥에 끌릴 때마다 다른 쪽 손에 든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 속 얼음이 바글바글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그냥 드림이 〈런앤런〉 어땠는지 물어봤어.”
“에이, 이게 뭐가 힘들다고. 나 때는 〈런앤런〉으로 음방에 행사까지 돌았다.”
강주찬이 대신 대답했고, 서난영이 조금 전 한이주의 말과 똑같은데 한 술 더 뜬 발언으로 놀렸다.
서드림이 입술을 쭉 내밀고 노려보자 서난영은 아차 싶었는지 부루퉁한 볼을 주물러주며 칭찬으로 잡담 노선을 바꾸었다.
“잘하던데, 그래도.”
“내 말이. 드림이 잘해.”
“누가 가르쳤는데 당연하지~”
두 형이 칭찬을 건네고 강주찬도 고개를 끄덕였다.
야채튀김 속 채 썬 야채처럼 얽혀 있는 멤버들을 발견하고 다가오려는 정의헌을, 서난영은 손짓으로 물리며 말을 이었다.
“당장은 잘 모르겠어도……. 드림이 네가 이해해 줘.”
이 네 명만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저 형이 우리 신경 많이 써주는 거야, 일부러.”
“…….”
“그냥……. 그러려니 해. 지금은 그럴 때야.”
서난영은 돌려서 이야기했지만, 아무리 눈치가 둔치여도 서드림 역시 어렴풋이 아는 내용이었다.
오늘날 정의헌은 단순히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라고 칭할 수 있는 레벨을 뛰어넘었다.
그는 온 연예계가 주목하는 라이징 스타이자 젊은 남자 아이돌의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었다.
10대부터 30대까지 화제성 원톱, 20대 및 30대 여성의 대세 이상형, 광고계의 러브콜이 수백 수십 건이고…….
며칠 전에서 혼자서 4천 석 규모 팬미팅을 양일 매진시켜, 소속사가 수요 예측을 실패했다며 몰매를 맞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서드림은 한 가지를 더 알고 있었다.
정의헌이 현재 그룹 멤버들의 방송 참여를 꽤나 활발하게 독려하고 있다는 것.
“그래, 주는 거나 잘 받아먹으면 돼. 우리야 좋지, 뭐.”
“나는 여기서 뭐라고 말해야 되냐……?”
강주찬의 뼈 있는 농담에 김지상이 난색을 표했다.
1위와 2위에 점수 차이가 꽤 있다고 해도 김지상 또한 성적이 좋았고, 광고도 이미 몇 개 촬영한 데다가 여러 방송 출연 및 개인 팬미팅이 예정되어 있었다.
“너무 불편해하지 마. 어차피 나나 의헌이 형은 연습할 시간도 부족해서, 네가 최선이야.”
그러나 김지상도 나름의 방법으로 서드림을 달랬다.
서드림은 시선을 들어서, 거울 앞 의자에 앉아서 이쪽을 기웃거리는 정의헌을 보았다.
여기서 흐르는 이야기에 꽤나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쟤 좀 오라고 해. 너무 심심해 보인다.”
“형 와도 된대애~”
서난영이 불러내서 질문으로 대화의 선수를 쳤다.
“리허설 어땠어?”
“관객이 없어서 심심해영.”
“리허설에 무슨 관객이야…….”
“맞아, 형은 그래도 다음주인가 팬싸 한다면서.”
힘을 합쳐 다른 이야기로 말을 돌려버리면 굳이 원점으로 화제가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단순한 건지 다만 넘어가 주는 건지 서드림은 알 수 없어서, 형들의 현란한 주제 돌리기 스킬을 구경하기나 했다.
“팬싸 너무 오랜만이라서 떨려…….”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떨리기는 뭐가 떨려.”
“맞아, 그거 거짓 감정이야.”
“내가 떨린다니까??”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김지상과 강주찬이 힘을 합쳐 정의헌을 공격했다.
팬사인회 스케줄은 정의헌이 광고 모델로 있는 화장품 브랜드에서 제품을 판매하며 진행된 이벤트였다.
그러므로 당연히 개인 활동 스케줄인데, 단발성 이벤트라서 필요 이상으로 구매자가 몰리고 있다고 서드림도 기사를 본 것 같았다.
사인회에서 시작하여 영양가 없는 농담으로 한참 시끄럽게 굴던 멤버들의 목소리는 밖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곧 멈추었다.
“똑똑똑~ 스테리나인 여러분~”
입으로 내는 노크 소리를 들어보면 마이크로 증폭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특유의 기름기 가득한 저음과 말투를 들어보면 그 주인공을 모를 수가 없었다.
〈밀제트〉 심사위원 패널 중 한 명인 ‘이용익’의 목소리였다.
90년대 후반에 데뷔해 발라드 가수로 활동하다가 케이팝 프로듀서로 노선을 튼 대선배님이자 남성 예능인.
멤버들은 후다닥 일어나서 잽싸게 어질러진 자리를 정리하고,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반전은 없었다. 이용익을 선두로 카메라 및 스태프들과 함께 대기실로 물 밀듯 들어왔다.
서드림은 약간 허둥지둥했으나 주변 멤버들은 어색한 기색 없이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네, 저희 그러면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둘, 셋!”
카메라가 돌았고, 정의헌의 선창으로 인사부터 진행되었다.
얼굴 근처에서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가 펴는 간단한 손동작과 함께.
“Keep Brightening! 안녕하세요, 스테리나인 인사드립니다!”
얼마든지 대충 뭉개고 넘어갈 수 있는 발음도, 팔을 전체적으로 몸 쪽으로 당겼다가 놓아야 하는 손동작도 오늘은 제대로 선보였다.
“우리 스테리나인, 저도 사실 리허설을 옆에서 봤는데요. 어우~ 너무 멋있더라!”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이리저리 주고받으며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감상 포인트 같은 거 미리 알려줄 수 없어요?”
“아, 네! 우선은 〈밀리어네어 Z 트랙〉에서 최초 공개하는 〈Run and Run〉의 아홉 명 완전체 무대라는 게 의미가 깊은 것 같고요.”
정해진 대형 없이 오른쪽 가장자리에 서 있는 서드림을 이영하가 슬쩍 인터뷰가 진행되는 반대쪽으로 밀어주었다.
그 신호를 서드림보다 빠르게 알아챈 정의헌이 슬쩍 서드림을 당겨와 그 어깨를 감싸잡고 소개를 이어갔다.
“또, 우리 멤버 드림이가 인트로에서 센터에 서거든요. 드림이가 함께해서 더 풍부해진 〈런앤런〉 무대, 많이 기대해주세요.”
“오오, 드림 씨가 원래는 없었구나.”
“네. 그리고 드림의 인트로와 이어지는 댄스 브레이크도 감상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제가 굉장히 멋있게 나와요.”
길게 설명할수록 민감해질 수 있는 질문은 가벼운 자기 자랑으로 휙 넘기는 그였다.
정의헌이 카메라를 보고 고개를 까딱이자 카메라 뒤 스태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