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30화 (130/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30화

25. Outsider(6)

언더독 효과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약자가 역경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원한다는 이론이다.

상대적으로 약해 얕보이던 사람이 강한 적을 쓰러뜨려 끝내 승리를 쟁취하는 그림.

허윤아 작가가 〈데프아〉에서 그렇게 자주 그리고 집요하게 요청받았던 게 바로 그 언더독 서사였다.

실력도 특출나지 않고 첫눈에 바로 이목을 끌지도 못하는 연습생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윗선은 주장했다.

스토리의 재활용이었다. 〈틴에이지 스타〉, 〈90’s Dreamers〉, 성공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다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게 맨땅에 되겠나요?’

허 작가는 회의적이었다.

이야기가 활기를 얻으려면 매력적이고 좋은 재목이 필요했다.

‘그나마 〈데프아〉에서는 비슷한 역할을 송수민이 가져갔나.’

왜 프로그램 연출가들이 언더독을 원하는지는 허윤아 작가도 이해했다.

옛이야기만 보아도 그랬다. 천대받던 막내아들이나 막내딸이 손위 형제를 제치고 마침내 승리하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들이 감정을 이입하기도 쉽고, 주인공을 응원하기도 쉬웠으며 약자의 승리에는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그러나 서바이벌 방송에서는 사실……. 언더독을 연출하기가 쉽지 않았다.

‘출연진들은 배우가 아니니까…….’

게다가 〈데프아〉 출연진들은 배우는 고사하고 대개 연예계 활동을 해본 적조차 없는 연습생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제작진이 편집을 통해 밀어주었을 때 따라오는 시청자들의 비판 혹은 비난을 감당할 힘이 없었다.

〈틴스타〉, 〈구공드〉 출연진들 모두 그랬다.

그들은 인기를 얻는 족족 그 다음 녹화에서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잔뜩 주눅이 들고 주변 눈치를 보느라 나서지 않았고, 긴장해서 실력도 제동이 걸리기 십상이었다.

출연진의 의사를 조사하지 않고 억지로 만들어낸 스토리에는 그렇듯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형편이 조금 다르지.’

허 작가는 〈데프아〉 PD진 및 메인 작가에게 약자 승리 서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히도록 들어왔고, 왜 불가능한지 그 기간 내내 자문했으며 이제는 까닭에 대해 어느 정도 고찰을 마쳤다.

바로…….

‘이 나라 국민들은 실력과 성적에 미쳐 있으므로…….’

아무리 스토리가 좋아도 실력이 좋은 사람을 못 이기는 것이다.

실제로도 처음에 소속사 심사 때 실력으로 매긴 순위가 최종 순위와 큰 차이가 없지 않았는가.

좋은 편집을 받은 연습생들이 움츠러든 사유도 다른 게 아니었다.

자신 있게 나서기에는 실력이 부족한 건 팩트였으니까.

다시 말해서 이번이 그전과 경우가 다르다는 것은, 한 차이점 때문이었다.

‘스테리나인은 실력이 있잖아.’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랩, 비주얼, 피지컬, 기획이라면 기획까지.

허 작가는 무엇보다 스테리나인 멤버들이 팀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전 인터뷰만 떠올려보아도…….’

그들은 각기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화면에 잘 나오는지, 무엇이 특기인지 평소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신인 아이돌은 –이제 4년 차면 신인은 아니라고 쳐도– 그렇게까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없고, 또 없어야 하는 게 맞는데 말이다.

이런저런 실패가 멤버들을 진중하고 성실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그래도 괜찮아, 오히려 플러스 포인트다.’

사람들은 이제 〈밀제트〉로 스테리나인을 처음 접하기도 할 테니까.

마치 〈데프아〉 속 정의헌이나 김지상, 안승준이 경력에도 불구하고 신선한 이미지였던 것처럼.

스테리나인도 〈밀제트〉 시청자들에게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언더독으로 비칠 것이다.

그것도 생각이 깊고 매사 열심히 노력하는 그룹으로.

‘출연하는 각오를 리더가 대표로 한마디만 말해줄 수 있을까요?’

‘네! 저희는 스테리나인이고요, 〈밀리어네어 Z 트랙〉을 통해 우리 스테리나인의 다양한 매력을 소개하고, 새롭고 멋진 모습도 많이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다들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사전 인터뷰 속 한마디는 정석에 가까운 멘트였다.

특별히 건방지지도 않고 필요 이상으로 겸손하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 담은.

그래서 스테리나인이 보여주고자 하는 ‘다양한 매력’이란 무엇인가. 허 작가는 생각했다.

“굳이……. 싶기도 한데.”

순간 서드림의 조용한 목소리가 정면에서 들려왔다.

그러고보니 대면식 〈Run and Run〉 무대 가운데에 서드림을 세우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왜?”

“진짜 ‘굳이’야. 메리트를 잘 모르겠어.”

서드림은 정의헌의 질문에도 딱히 주눅이 잡히지 않고 당당하게 대꾸했다.

허 작가는 그 틈을 타서 조심스럽게 옆구리에 끼고 있던 스테리나인 자료집을 들어 펼쳐보았다.

아홉이나 되는 멤버를 외우고 각자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미리 조사한 내용을 정리한 서류 파일이었다.

종이를 소리가 나지 않게 넘겨서 맨 마지막 페이지 근처에서 멈추었다.

‘서드림, 두 막내 중 진짜 막내. 특이한 이력이 있었지.’

준 프로 급 바둑 실력. 전 한국기원 바둑 연구생.

정보를 머리에 주워담고 다시 보니까 왠지 묘하게 고고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허 작가는 뭉게뭉게 떠오르는 바둑에 관한 이런저런 스테레오타입을 머릿속에 그려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대면식 무대는 우리가 지금까지 해본 무대 느낌이 안 날 거야.”

허 작가가 괜한 생각을 펼쳐나가는 사이에 정의헌은 꿋꿋하게 말을 이어갔다.

처음부터 어떻게 설득할지 근거까지 조목조목 준비해 온 듯, 주장에는 막힘이 없었다.

“일단 관객이 없지. 우리 팬들이 안 들어오셔.”

“응.”

“대신에 우리 심사하는 선배님들이나, 같이 경연하시는 분들이 보실 거고.”

그의 말대로였다.

OTV의 새 스튜디오는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사실을 말하자면 완공된 것이 아니었다.

방청객을 몇백 명씩 받기에는 무슨 절차인지 심사를 더 거쳐야 한다던가. 허 작가도 대충 전해들었다.

첫 무대부터는 방청객을 들일 수 있겠지만……. 시기상 대면식을 촬영할 때에는 팬들을 부를 수 없었다.

그래서 아예 ‘대면식’이라는 포맷이 생긴 것이다.

‘서로 인사를 하고 적의 역량을 파악한다’고 제작진들은 어떻게든 문제를 포장했다.

“그리고 우리가 무대를 넓게 쓸 계획이잖아. 물리적으로 움직임이 많다는 거지.”

서드림은 듣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게다가 방송 첫 무대고.”

정의헌은 지금까지의 조건들을 두 가지 근거로 요약했다.

“그래서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집중력이랑 긴장을 컨트롤하는 능력이야.”

“오~”

다른 멤버에게서 감탄이 튀어나온 것을 보면, 그 두 가지는 진실로 서드림의 재주인 듯했다.

허 작가는 재차 멘탈 스포츠 선수의 스테레오타입을 짧게 생각하려다가 접었다.

그렇게 센터를 포함한 파트가 정해지고, 단체 연습에 들어가기 전 단체 및 개인 인터뷰 시간.

〈밀제트〉 촬영 팀을 해산하고 연습을 길게 시작하기 위해서 스케줄 구성이 인터뷰가 중간에 낀 형태로 되었다.

회의에서 본 모습을 토대로 허 작가가 작성한 질문대로 질의응답은 진행되었다.

“센터를 담당하게 된 마음가짐이 어때요?”

“음…… 떨려요. 뭔가…… 제가 잘할 것 같아서 맡긴 거겠죠? 열심히 할 거예요.”

서드림의 그 질문 아닌 질문은, 허 작가가 정의헌에게 그대로 들려주었다.

“센터 선정에 관해서 코멘트가 더 있다면 말해줄 수 있을까요?”

“드림이가 크고 중요한 무대일수록 잘해요. 긴장도 잘 안 하고.”

“걱정되는 것은 따로 없고요?”

“걱정이요? 음……. 그사이에 드림이가 안무 다 못 외우면 도로 뺏어올 겁니다.”

촬영 일자가 열흘은 남았으므로 순도 백 퍼센트 우스개소리였다.

수습하는 말이 추가로 이어졌다.

“농담이고요, 원래 드림이 없이 하던 곡이라서 그게 조금 신경 쓰이죠.”

그러나 한마디 말 이상으로 걱정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인 정의헌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허윤아 작가는 언젠가 자신이 ‘정의헌 연습생’을 두고 김미진 PD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의헌이 있고 없고, 분위기 차이 엄청 심하잖아요.’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도 반장 잘 뽑아두면 선생님 입장에서 엄청 편하다잖아요. 딱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그때가 〈데프아〉 촬영 초반이었다.

첫 번째 합숙을 막 마쳤을 때였나.

그로부터 반 년은 넘게 지난 듯했으나, 허 작가의 그 첫인상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정의헌이 〈데프아〉에서 보인 리더십과 스테리나인 리더로서 말하는 방식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아닌데, 뭔가 살짝 다른 것 같은데.’

허 작가는 인터뷰 대본이 들어 있는 태블릿 PC를 손에 들고 고민했다.

단순히 친밀감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결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의문에 관해서는 의외로 그 다음 인터뷰 주자가 해결해 주었다.

정의헌과 함께 스테리나인의 맏형 라인을 담당한다는 멤버, 이영하였다.

“회의하는 분위기는 보통 이런가요?”

“보통은 다른 직원분들하고도 많이 이야기를 해요. 이번에는 좀 저희들끼리 회의하는 것처럼 되었는데…….”

이영하는 인터뷰 카메라와 낯을 가리면서도 질문에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세 명을 제외하고는 허 작가나 다른 스태프들과 초면일 테니까, 서로 더 격을 차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저희끼리 있으면 의헌이가 많이 리드를 하고요. 그 다음에는 주찬이나 승준이……. 그런데 다들 말은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룹 분위기가 되게 좋아 보이더라고요.”

“다들 오래 알고 지내서 위아래가……. 많이 없어요.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많이 편해요.”

그 말은 웃으라고 하는, 귀여운 불평이었지만…….

이영하의 태도가 진지하고 긴장도 하고 있어서 왠지 무겁게 들리는 감이 있었다.

그래도 허 작가는 웃어주면서, 머리로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편해서였다. 그냥 친한 게 아니라, 편해서.

카메라가 돌거나 꼭 그래야 하는, 혹은 그러는 게 나은 상황이 아니라면 〈데프아〉에서 정의헌은 잘 나서지 않았다.

팀 리더 역할을 하더라도 그 이상으로는 오버하지 않고 점잖게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반으로 갈수록 그러지도 않았지만, 초반 허 작가는 분명 그런 태도가 미묘하게 느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허 작가는 정의헌이 편집을 의식해서 일부러 조심하는 줄로만 알았다.

‘원래 성격이었구나.’

거리감이 있는 상대 앞에서는, 많은 사람이 볼 때에는 습관적으로 존재감을 내리누르는 것.

그래서 편할 때에나 활개를 치는 것이다 지금처럼.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원하는 대로 무대를 주무르고, 기획하고 연출하고, 욕심을 드러내는 모습으로.

허 작가는 순간 오싹해졌다.

‘〈데프아〉에서 보여준 게 다가 아니라고?’

그 우승자의 손에 새로운 카드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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