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28화
25. Outsider(4)
내가 차 안에서까지 핸드폰을 보고 너무 실실 웃었는지, 매니저 형이 룸미러를 통해 나와 눈을 맞추며 농담을 툭 던졌다.
“그……. 연애까지는 금지 못 하겠는데, 사진 올리지 마. 카톡 대화 캡처해서 올리는 것도 안 돼.”
……농담이 아닌가?
어디까지 말하는지 궁금해서 일단 들어보았는데(직접 이 경고를 들어보는 건 처음이기도 하고), 내용이 가관이었다.
커플 아이템도 안 되고, 같은 장소에서 사진 찍는 것도 엄금, 팔로우 등을 실수할 가능성이 높으니 비밀 SNS 계정도 지양할 것.
왜 조목조목 금지하는지 이유는 알겠는데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줄 줄은 몰라서 들을수록 흥미로웠다.
‘지금 톡 하는 분께 말해서 대화 내용 블로그나 SNS에 올리지 말라고 꼭 말해’ 대목에서 나는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거울에 비추었다.
“안 해…….”
화면 알맹이는 바로 스테리나인 공식 팬카페……. 잔소리는 깔끔하게 종식되었다.
약한 차멀미와 적당한 침묵 끝에 차가 오늘의 촬영지인 광고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광고 오퍼는 회사에서 한번 걸러서 내게 전달해 주고, 조건이 특별히 좋은 게 아니라면 내가 기획을 보고 품목을 고르고 있다.
광고 모델로 기용해 CF 촬영을 원하는 회사도 있고, 제품을 홍보하는 엠버서더 활동 계약을 맺고자 하는 브랜드도 수가 제법 되었다.
사실 나도 광고 모델과 엠버서더 차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대충 영상을 찍으면 광고, SNS에 사진을 올려야 하면 엠버서더……. 정도로 생각 중이다. 계약서 내용도 조금 다르다.
‘다 모르겠지만, 내가 엄청나게 대충 생각하고 있다는 건 알겠다.’
하여간 그런 얄팍한 이해를 거쳐 나는 패션이나 뷰티, 주얼리 브랜드 위주로 계약을 몇 체결했다.
이미지 소모가 크지 않은 제품 위주로 선정하면 패션 쪽이 가장 무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의 광고 아이템은 봄 신상 스니커즈.
가벼운 활동성을 강조하여, 대학생들의 새 학기를 염두에 두고 출시하고 광고를 만든다고 했던 것 같다.
‘사실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오늘 광고에는 공동 모델이 한 명 존재한다.
“의헌 씨,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이건 광고 촬영 스태프들이고.
“차가 안 막혀서 금방 왔네요. 안녕하세요~”
“착장 점검하고, 헤어도 살짝 다듬을게요.”
이건 나와 우리 쪽 스태프.
“……어서 오세요.”
그리고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있는 이 사람이, 오늘 나의 파트너였다.
평소 취향보다 훨씬 스포티한 패션이었다. 계절을 앞서 나간 가벼운 아우터에 청바지, 광고 브랜드의 분홍색 스니커즈.
머리에는 산뜻한 흰색 야구모자를 쓰고,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은 하나로 묶어 모자 뒤 고리 사이로 빼냈다.
광고 콘셉트에 맞추어 캐주얼하게 스타일링했지만, 화려하고 도도해 보이는 이목구비는 쉽게 가려지지 않는 듯했다.
‘달고나밴드의 예희.’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라서, 현재 20대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뮤지션이 함께 섭외된 것 같았다.
‘나도 따지자면 20대에게 인기가 많은 뮤지션인가?’
하여튼, 처음 기획을 받아 읽었을 때는 남녀 한 명씩인 캐스팅이 다소 우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투샷이 유의미하게 많은 것도 아니고, 연기 장면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오케이했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촬영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긴장이 되었던 광고 촬영도 몇 번 해보니까 익숙해졌고.
지난 두어 달 동안 겪어보니까 광고 촬영도 뮤직비디오 촬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세트가 있고, 스태프들이 있고, 시키는 대로 춤을 추거나 행동을 하면 되니까.
촬영장은 화기애애하게 분위기가 좋았고 스태프도 대개 친절했다. 여느 촬영장이 그렇듯이.
“대면식 준비는 잘 되고 계세요?”
중간중간 주어지는 대기 시간에는 매니저나 예희와 잡담을 나누었다.
“그냥~ 그럭저럭하고 있어요.”
“무슨 노래 하실지 궁금해요.”
“저희야 뭐, 늘 하던 거 하겠죠?”
사람들이 빠져서 잠시 둘만 남은 촬영장 한구석.
각자 아이스 커피를 손에 들고, 세트가 무너지고 다시 지어지는 것을 보며 우리는 〈밀제트〉에 관해 대화했다.
스포일러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모호한 대화 중간, 내가 질문했다.
“스테리나인은 무슨 곡 할 것 같아요?”
“그러게요, 진짜 궁금한데. 〈Express〉 안 하세요?”
“어, 그 노래 어떻게 아세요?”
그렇게 유명한 노래는 아닐 텐데 노래 제목이 나오는 것이 신기해서 묻자, 예희는 출연진 정보를 찾아봤다고 순순히 고백해 왔다.
관심 받은 것을 좋아해야 할지 우리의 인지도를 슬퍼해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내 리액션에 짧게 제동이 걸리자 예희가 달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노래 정말 좋아요. 저 다 들어봤어요.”
“감사합니다…….”
예희가 웃었다.
“괜히 라이벌이라고 말한 게 아니라니까요. 춤도 다 잘 추시고…….”
잠깐.
그 말에 집중했다.
내가 찾고 있던 ‘스테리나인의 장점’ 몇 가지가, 예희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같은 직업군에, 나름대로 라이벌. 심지어 노래를 직접 쓰고 부르는 아티스트.
거기다가 한술 더 떠서 스테리나인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
왠지 괜찮은 말을 해줄 것 같은 느낌에, 나는 황급하게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문장은 조금 김이 새는 감이 없지 않았다.
“……다들 잘생기셨고…….”
“아……. 그렇죠.”
춤을 잘 춘다, 잘생겼다.
아이돌 보이그룹이니까 평소에도 자주 듣는, 어쩌면 상투적인 칭찬이었다.
그런데 혼자 곱씹어보니까 그 장점에는 묘하게 울림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음?’
그러고 보니, 지금 〈밀리어네어 Z 트랙〉에 1화부터 출연하기로 한 보이그룹은 스테리나인이 유이했다.
이후 출연진이 탈락하고 새로 투입되면 다른 보이그룹도 출연할 테지만, ‘원년 멤버’ 중 보이그룹은 둘밖에 없었다.
심지어 다른 쪽은 일명 ‘실력파 힙합 그룹’이기에 보컬과 춤, 비주얼이 무기인 스테리나인과는 색이 조금 달랐다.
‘그러네, 비주얼도 무기지.’
아직 불분명한 스테리나인의 정체성을 굳이 정체화해 증명하려고 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출연진보다 우리가 잘하는 것을 드러내, 상대평가를 노리는 것도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아이돌’으로서의 우리 재주를 보이면 된다.
알쏭달쏭하던 해결책에 드디어 한 줄기 빛이 내리쬐는 것 같았다.
막 떠오른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고 싶어서 생각을 정리하는데, 문득 예희가 목소리를 낮춰 내게 질문했다.
“혹시……. 제가 조금 어색하세요?”
물리적인 거리가 거리인지라 남들은 듣지 못할 말이었다. 그래도 아주 조용했다.
뜨끔한 바가 없지 않았지만, 나는 침착하게 답했다.
어쩌면 내가 갑자기 말이 없어져서 물어본 것일 수도 있으니까.
“네? 아니요, 죄송해요. 잠깐 말씀 듣고 생각 난 게 있어서요. 생각하느라…….”
“글쎄요, 그보다는 그냥……. 며칠 전에 만났을 때에도 생각했어요.”
“아하하…….”
“낯을 가리시는 건 아니잖아요.”
예희의 말투가 돌연 톡 쏘는 듯 날카로워졌다.
갑자기 안승준이 마카오에서 예희와 나를 두고 비슷하다고 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도 눈치가 느리다고는 할 수 없고……. 예희도 분위기를 꽤나 잘 읽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이걸 직접 말한다고?’
하여간 사람 골치 아프게 하는 데에는 도가 텄다.
과거 내게 보여준 됨됨이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같은 사람이라 본판은 같은 건지.
물론 내가 친분이 있는, 혹은 아는 티를 일부러 내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숨겨지지 않은 것이다.
예희는…….
본명으로 고예닮은, 내가 지난 생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 중 하나다.
좋다고 하면 좋은 인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쁘다고 생각하면 몹시도 나쁜 인연.
‘하아…….’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았다(물론 사람을 앞에 두고 진짜 한숨을 쉬지는 않았다).
안승준이 기억하는 예희의 모습은 아마도 중학생 내지 고등학생 무렵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예희는, 그보다 십 년은 지난 미래의 모습이었다.
예희도 나도 20대 후반이었을 때.
‘얘도 인생이 조금……. 꼬였지.’
〈틴에이지 스타〉 방송 최종 우승을 하고, ONE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이 되고, 아이돌 연습생에서 인디밴드 리더가 되고.
밴드가 흥행해 여러 수입을 벌어들인 뒤에는 그 자본을 바탕으로 의류 사업을 시작했다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다.
굴지의 사업가로 성장한 건 아니지만, 음악으로 들어온 수입 이상으로 큰돈을 만지게 되었다나.
그러나 그 뒤 예희의 미래는 찬란하지만은 않았다.
사업에 신경을 쏟는 통에 최초의 본업에 소홀하게 된 것이다.
예희는 이후 밴드 멤버들과 사이가 멀어지고, 기존 멤버들은 줄줄이 밴드를 탈퇴한다.
결국 예희는 혼자서 달고나밴드 이름을 달고 음반을 발매하지만, 성적은 전성기의 반의반도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쁜’ 일이 겹쳐 사업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축소가 되고, 마무리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 및 소식 없이 잠적하기를 몇 년.
한참이 지나 연예인들이 하나둘씩 이튜브 채널을 만들 때……. 예희는 이튜버로 복귀한다.
생방송을 하지 않았으므로 스트리머는 아니었다. 그러나 노래를 커버해 올리지도 않았다.
다만 예희는 유행하는 패션을 소개하고 협찬 및 광고 제품을 리뷰하는 이튜버가 되었다.
‘나름대로 인생 2막이라고 할 수 있나.’
이튜버로 성적을 아예 내지 못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영상 센스도 있었고.
그러나 예희는 이튜버로 데뷔한 이후 노래는 한 곡도 부르지 않는다.
활동을 쉬는 사이에 목이 많이 상해 음을 전처럼 높일 수 없다는 것이, 표면적인 사유였다.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표출하던 한 가수는 그렇게 은퇴했다. 5년은 활동했을까.
‘하지만 나는……. 들었어.’
말마따나 목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전성기 때 달고나밴드의 곡은 음을 낮추어 불러야 했지만.
무대도 아니고, 동네 노래방 한구석이었지만.
은퇴 선언 이후에도 가끔씩 예희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흠…….’
중간 지인에게 소개를 받아 얼굴을 트고 일대일로 연락을 잠깐 주고받았다.
딱히 특별한 사이였던 것은 아닌데, 연락하던 것을 하필 이영하한테 걸려서…….
‘제대로 혼나고…….’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택되지 못하고 끊긴 인연이다.
물론 비밀 SNS 계정을 만든다거나, 커플 아이템을 착용한다거나, 같이 사진 찍는 사이까지는 아니었다지만.
영하가 화를 낼 만한 일이기는 했다. 내 실수라면 실수고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회상하면 나만 왠지 민망하고 꾸리꾸리해지는.
이영하가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다시 보고 싶지 않기도 하고, 그 외 여러 이유로도 그 짓을 또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런 옛 관계 때문에 예희를 껄끄러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불편한 건 아니고요,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요.”
그보다는.
나는 그럴싸하게 들릴 수 있도록 말을 골랐다.
“음, 혹시 손끝이 쉽게 붉어지지 않나요.”
예희의 특징이다. 수족냉증도 있다고 했나.
내가 손을 힐끔 내려다보며 말하자, 예희가 손을 들어 자신의 손톱 밑에 시선을 두었다.
“위가 약해서 탈도 자주 나고, 우유 같은 거 못 드시고.”
이것도 대화 몇 번 나누면 알 수 있는 건강상의 특징.
그러나 예희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는 듯.
“저 사이비나 이상한 거 파는 사람 아닌데요…….”
“아……. 네.”
“그거 검진 한번 미리 받으시는 게 좋을 거예요. 가족력이면 가족분들도 같이요.”
나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예희를 마주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많은……. 어두운 속사정을 들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나쁜’ 일들 이야기다.
어머니의 간암을 너무 늦게 발견한 게 그녀가 겪은 최초의 불행이었다.
병수발을 들고 병원비를 내야 해서 사업을 정리하고 빚을 내고, 돈을 갚기 위해 예희는 온 심력을 쏟아야 했다.
그런데 그만큼 노력하고도 결국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말았단다. 내가 들은 말에 따르면.
“……그런 거 위가 아니라 간 문제일 수도 있대요.”
알고 있다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지금 하는 소리에 의학적 근거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조기에 검진하고 병을 발견한다면 사람 한 명은……. 살 수도 있지 않나.
이 타이밍에 이렇게 뜬구름 잡듯 할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도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