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27화 (127/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27화

25. Outsider(3)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적절할지 잘 모르겠다.

속상하다기보다는 일이 마음대로 쉽게 흘러가지 않아서, 조금은 답답했고 동시에 약간 난처했다.

아니. 그보다는 불길한 느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대략적으로 만들어놓은 동선인 데다가, 찍어놓은 영상도 초안의 초안에 가까웠지만…….

묘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나쁜 예감이 머릿속에 뭉게뭉게 차올랐다.

‘흠.’

잠시 생각을 더 해보았다.

만약 카메라 동선이 더해진다면, 만약 실제 촬영에 들어간다면, 만약 동선 및 파트 수정이나 안무 숙지가 더 이루어진다면.

아무리 상상해 보아도 ‘팟’ 느낌이 오지 않았다.

할 일이 있는 멤버들은 먼저 내보내고, 단체 연습실은 다음에 예약해둔 연습생들이 있어서 나도 태블릿 PC만 들고 휴게실로 나왔다.

“형, 뭐 해?”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서난영이 휴게실에 찾아왔다.

“동선 좀 마저 고치고, 영상 찍은 것도 모니터 좀 하려고.”

“우왕.”

자연스럽게 옆에 앉는 난영이에게 태블릿 PC 화면을 45도 돌려 보여주었다.

“너는 일 없어?”

“어어, 드림이랑 진섭이 안무 봐주기로 했어.”

천진섭은 안무 디테일을 잊어버린 부분이 있어서 서드림과 같이 연습하기로 했단다.

그런데 둘 다 아까 건물 밖으로 나가던 것 같은데. 나는 그 점을 짚어 물었다.

“애들 어디 갔는데?”

“아직 밥 안 먹었다고 해서 먹고 오라고 했지.”

“어, 그래. 잘했다……. 삼십 분은 걸리겠네.”

“그 둘이면 한 시간은 잡아야 될걸…….”

느리다…….

서드림은 원래 느리고, 천진섭은 밥만 먹으면 빠릿빠릿하던 애가 갑자기 거북이가 된다.

“형은 뒤에 스케줄 없어?”

“라디오 하나 있는데, 밤이라서 지금은 여유 좀 있어.”

나는 대답하면서 태블릿 PC를 완전히 틀어 영상을 서난영에게도 보여주었다.

서난영의 표정을 보면, 여유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할 계획인지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마침 잘됐다. 시간 있으면 너도 좀 도와라.”

마침 망태기에 담기 딱 좋은 인물이다.

난영이는 춤 멤버에 기획이나 제작에도 관심이 많고, 분석력도 어느 정도 있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먼저 동선 수정부터 완성해 나갔다.

연습하면서 대충 같이 만들어본 후반 동선을 다듬고 1절 속 지저분한 이동도 매끄럽게 고쳤다.

삼십 분쯤 지나 그 작업이 끝나면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제 끝난 거 아니야? 또 뭐 필요해?”

내가 이튜브로 〈Run and Run〉 무대 영상을 검색하자 서난영이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짧게 망설였다가, 곧 고민하고 있는 바를 녀석에게 에둘러 털어놓았다.

“콘셉트를 좀 더 잡아보고 싶어서.”

“부족한 게 보이나봐?”

“음……. ‘이게 완전체다!’라는 느낌이 더 났으면 좋겠어.”

에둘렀다고는 하지만 그게 본질인 것 같기도 했다.

태블릿 PC에서 〈Run and Run〉 무대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어우…….’

영상 시작과 함께 갑자기 닥쳐오는 몇 년 전 실력의 내 모습…….

흑역사인지 아직 역사가 되지 못한 현재인지 모를 얼굴을 보며 머리로는 노래를 곱씹어보았다.

〈Run and Run〉은 다양한 신스와 힙합 비트 위에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올린 음악이었다.

한마디로 제대로 ‘빡센’ 노래.

보컬 역량보다는 댄스 퍼포먼스를 강조하고, 후렴구도 ‘떼창’으로 사운드를 꽉 채웠다.

강렬하면서도 단순한 후렴과 감미로운 보컬의 벌스를 끊임없이 교차하는 식으로 만든 노래.

후반으로 가면 두 메인보컬이 경쟁하듯 고음을 올려 한마디로 쉴 틈이 없는 구조였다.

‘따지자면 〈나에게〉와는 정반대 전략을 썼지.’

〈나에게〉는 여백을 과도하게 배치해, 듣는 이가 여백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도록 했다면…….

〈런앤런〉은 각자의 존재감과 부피를 늘리는 방식으로 빈 자리를 어떻게든 채우고자 했다.

조금 더 추상적으로 비유하자면, 〈나에게〉는 하얀 도화지 위에 색이 선명한 물감을 몇 방울 떨어뜨린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런앤런〉은, 아예 도화지 전체를 검은색으로 빼곡하게 색칠한 모양새였다.

시각적으로 강렬해 보이도록.

‘〈나에게〉는 사람이 돌아올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으니까……. 다르지.’

〈런앤런〉 때의 실패 아닌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서 성장하기도 했고.

사실은 〈런앤런〉 활동은……. 힘에 부치는 면도 없지 않았다.

사고로 인한 충격, 결원으로 인한 혼란이 다 수습되기도 전 앨범 프로모션이 시작되었으므로.

‘그때는 갑갑한 심정에 뭐라도 빨리 활동하고 싶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그게 멀리 보지 못한 결정이었더라.

그 깨달음은 몇 년 뒤 어느 날, 정말 늦게 찾아왔지만 말이다.

아무튼 성적만 따지자면 나쁘지 않은 선이었고 모두 열심히 하려는 의지도 있었다.

가진 것의 백 퍼센트를 다 보여주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닐 테지만.

‘그냥 나만 좀 미련이 남은 건가?’

그럴 수도 있고.

뭐…….

내 개인적인 아쉬움이라도, 무대를 훌륭히 끝낸다면 모조리 털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도 있고 답도 있고. 이론만 놓고 보면 쉬웠다.

“아이디어 없어?”

영상이 두어 개쯤 끝난 뒤, 나는 서난영을 재촉해 보았다.

아이디어는커녕 와닿는 것조차 없는지 녀석은 어깨만 가볍게 으쓱일 뿐이었다.

“그냥 아홉 명 같이 있으면 완전체 아닌가.”

“아니, 연출 이야기잖아. 드림이를 좀 더 정면에 세워보고 싶어서 그래.”

“그렇게 하고 싶으면 말처럼 정면에 세우면 되잖아~”

지나치게 가벼운 톤으로 돌아오는 대답에 왠지 힘이 빠졌다.

어쩌면 정말로 나에게만 〈런앤런〉이 아쉬운 활동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태블릿 PC 화면을 툭 터치해 무대 영상을 리플레이했다.

공백을 숨겨가며 만든 노래의 단점이 이렇게 나타나 발목을 잡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도화지가 까만색이라서 한 명 더 까만 존재가 들어온다고 해도 잘 티가 나지 않았다.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

“이러다가 또 무대 이틀 전에 새거 가져와서 갈아엎을 거지…….”

“…….”

이틀은 과장이다. 그런 적 없다.

……있나?

“어차피 안무 따고 편곡에 재녹음까지 하려면 시간 걸리잖아. 그거 다 되기 전에는 끝낼게.”

“그래서 며칠?”

“음……. 사흘.”

그때 타이밍 좋게 서난영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슬쩍 보니까 서난영 특유의 저장 센스가 돋보이는 이름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아기호떡]

천진섭이었다.

작명 비하인드는……. 뭐라고 했더라.

천진섭은 잠을 자든 밥을 먹든 무슨 일만 있으면 얼굴이 붓는 타입인데, 그게 귀여워서라고 했나.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자, 이제 막 도착했으니 연습실에서 보자는 전언이 들려왔다.

“어, 지금 갈게~”

-양치하고 있을 테니까 빨리 내려와.

“양치를 다 하고 연락하라고…….”

도저히 태클을 걸지 않을 수 없는 태도였다.

나는 그 자리에 같이 있을 서드림에게 말을 걸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내 기획 의도나 바람 따위는 조금 더 내 속에서 말이 정리된 다음에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조금 더 진지하게, 직접.

“그런데 헌이 형.”

그때 서난영이 자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형이 생각하는 ‘완전체 같은 느낌’이 뭔데?”

어라.

의외로 정곡이었다.

바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으니까.

* * *

그 뒤 나는 이틀 동안 마땅한 답을 내리기 위해 고민했다.

생각해 보면 서난영의 물음은 당연했다.

지금 난영이는 ‘완전체가 아닌 모습’을 많이 접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스테리나인 활동 기간을 대략 세 가지 분기로 나눌 수 있다.

1분기. 데뷔 초. 일 년에 세 번씩 컴백하고 다들 필사적으로 활동하던 시기.

2분기. 첫 번째 인원 감축과 정비를 마치고, 다시 힘을 내보기로 한……. 운 좋으면 일 년에 두 번은 컴백하던 때.

그리고 3분기. 일 년에 한 번은 활동해야 한다고 가까스로 모이며 서로를 다잡던 시기.

여기다가 4분기인 ‘회귀 후 달라진 노선’을 추가할 수도 있겠지만, 해체 전 타임라인은 그렇게 세 도막이었다.

‘첫 번째 분기점은 역시 〈데프아〉와 일 년의 공백기였지.’

어차피 〈데프아〉의 송출과 흥행, 그리고 잡음이 발생할 일이었다면 다 끝난 이제는 잘 이용했다는 생각만 든다.

그러니까 첫 번째 위기는 나쁘지 않게 넘겼다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분기점은 천진섭의 탈퇴와 재계약 이야기가 나오던 시기인데……. 그건 또 먼 미래니까 지금 고민할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겪은 스테리나인의 변화를 다른 멤버들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1분기 시절 ‘완전체 스테리나인’과 2분기 및 3분기 시절 ‘인원이 적어진 스테리나인’의 차이를 말할 수 있지만…….

‘다른 애들에게는 영 생소한 개념이겠군.’

그래서 나의 고찰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1분기에서 이어지는 4분기 스테리나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더 쉽게 말하자면, 지금 스테리나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요즘 말로 하면 ‘세계관’이라고 표현해도 될 테다.

서난영의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그 결론을 짓기 위해 요 이틀 동안 나는 참으로 많은 인터넷 글을 찾아보았다.

공식 카페 글이나 SNS, 이튜브 댓글, 팬 브이로그나 팬튜버들의 영상, 익명 커뮤니티 등등.

아무래도 우리의 장점을 발견해 주는 일은……. 아주 잘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으니까 말이다.

그 사람들에게 물론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 레디이ㅣ이ㅣㅣ 저 궁금한 거 있어요 (이상한 질문 아님, 우울하지 않음, 공격적인 의도 없음, 보험 권유 아님, 다단계 아님, 물건 팔지 않음, 무대 준비 때문, 멋진 댓글 달면 방송에 나올 수도 있음, 그냥 궁금해서) 레디가 생각하는 스테리나인의 장점? 스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 길게 생각할 거 없이 바로 딱 나오는 거!! 그게 알고 싶어요!

단문과 장문이 섞여 수많은 의견이 댓글로 달렸고, 나는 팬들이 남긴 글을 하나하나 찬찬히 읽어보았다.

노래 이야기도 많고, ‘나’를 좋아하는 이유를 적은 댓글도 많고, 팀 분위기를 손꼽는 사람도 많았다.

그중 정말 방송에 실리면 좋을 것 같은 댓글은 캡처해 저장해 두기도 하면서 정독은 계속되었다.

오늘, 광고 촬영 스케줄을 위해 이동하는 시간과 틈틈이 생기는 대기 시간에도 쭉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을 정도다.

‘……칭찬 많이 받으니까 좋긴 좋구나.’

덕분에 컨디션 최고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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