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26화
25. Outsider(2)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나에게로 몰렸다.
멤버들에 매니저님도 계시고, 어나더뮤직 트레이너 선생님들, 뮤직 팀 직원들이라든지 손님이 많았으니까.
〈밀제트〉 촬영 감독님이 ‘멤버들만 대화하는 그림으로 보이면 좋겠다’고 해서 직원들은 뒤로 빠지고, 나도 말을 놓았지만 말이다.
어색함은 숨기고 긴장감 또한 최대한 지워보며…….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곡은……. 〈Run and Run〉인데.”
〈밀리어네어 Z 트랙〉 첫 방송 ‘대면식’에는 특별한 규칙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로 기존 음악을 커버하지 않고 자신의 노래로 무대를 꾸릴 것.
그리고 특수효과나 무대장치, 백업댄서, 세트 등 무대가 화려하게 보일 수 있는 요소를 사용하지 않을 것.
퍼포먼스에 따라 의자나 손에 들 수 있는 물건처럼 간단한 소품 정도만 꼭 필요하다면 허용된다고 들었다.
다시 말해 맨몸으로, 웃기게 표현하면 저예산으로.
참가자들은 자신이 이제까지 쌓아온 이미지나 커리어를……. 무대를 통해 소개해야 했다.
‘하지만 아예 대표곡을 골라서도 안 돼.’
제일 잘하는 건 아무래도 히든 카드로 남겨두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최소 한두 회 정도는.
우리가 자제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런 건 다소 아껴두기를 제작진이 바라는 눈치였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되 벌써부터 필살기를 뽑아들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
사실 내가 〈데프아〉는 열심히 봤어도, 〈밀제트〉에 관해서는 속속들이 잘 아는 수준은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은 대충 방송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포맷뿐.
그래도 OTV가 최초로 시즌 없이 정규 편성하고 간판으로 민 예능이니만큼 대중 수준의 배경 지식은 있었다.
활동하다 보면 이러쿵저러쿵 주워듣는 것도 많다 보니, 적당히 아는 것을 주워 조합해 보자면…….
‘필살기를 꺼내 들어야 하는 때도 오기는 할 거야.’
하지만 그게 첫 방송 대면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면식에는 대표곡은 아니되 지금의 스테리나인 색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노래가 좋을 테다.
그렇다면 최신 발매곡이 제일 무난하겠지만…….
‘가장 최신 곡은 아무래도 〈오디뮤〉에서 했으니까.’
또한 〈나에게〉는 기존 스테리나인 이미지를 고집한 결과물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스테니라인은 이런 것도 잘할 수 있습니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제일 적절한 선택은 그 직전, 여섯 번째 미니 앨범 타이틀곡이었던 〈Run and Run〉.
‘아, 대면식은 규칙에 더해서 추가 조건도 있다.’
추가 조건 하나. 대면식 무대에는 방청객이 따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관객 호응에 의존하는 무대도 효율이 좋지 않았다.
따라서 떼창이 필요한 무대, 콘서트에서 할 만한 앵콜의 앵콜 곡 스타일도 탈락.
‘그리고 두 번째 조건.’
대면식은 우리가 평소 OTV 음악방송에 출연하면 사용하는 스테이지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OTV의 〈오 마이 트랙 리스트〉는 다른 몇몇 음방처럼 상암 근처 공개홀에서 촬영하는데, 이번 〈밀제트〉 촬영지는 경기도였다.
즉 촬영지는 최근에 겨우 완공된 OTV 특별 실내 스튜디오인데…….
이 특별 스튜디오 무대는 음악방송보다 가로로 더 길다는 디자인적인 특징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안무 동선을 넓고 다양하게 사용하는 〈Run and Run〉이 큼직한 무대를 활용하면 가장 멋있을 것 같다는 판단을 세운 거다.
나는 여기까지 생각한 내용을 간단히, 이상하게 들리지 않게 조심조심 잘 설명한 다음 한 가지 이유를 더 들었다.
“그리고 우리 아홉 명이 이 곡으로 무대에 서본 적이 없잖아.”
서드림을 보며 말하자, 드림이가 눈을 감고 고개를 꾸벅꾸벅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래서 나는 이 곡을 전부터 되게 9인 버전으로 해보고 싶었거든.”
뭐라고 해야 하나.
〈나에게〉를 지나 〈Run and Run〉까지 봉합해야만 진정한 의미로 완전체를 기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전부터 마음에 걸리던 게 있기도 했다.
서드림은 〈나에게〉로 활동을 재개했다.
그런데 그 후 몇 주도 지나지 않아서 〈데프아〉 출신 셋이 그룹에 합류해 버렸다.
막말로 하자면 약간은……. 비교가 된 감이 있었다.
실은 서드림이 활동을 쉬다가 돌아온 것과 에이레 해체 후 세 멤버의 방향 결정은 결론만 같을 뿐 다른 케이스였다.
그러나 언급하는 사람들은 결론에 집중했고, 그러므로 그 버즈량 차이가 눈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드림이가 복귀를 결심한 게 더 어려운 일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나나 김지상, 안승준은 과거와 비해 상황이 많이 달라지기도 했고, 우리끼리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도 시간도 많았다.
그런데 서드림은 옛날과 크게 달라질 것 없이 혼자서 생각하고 시간을 보내고 이겨낸 다음 행보를 결정했다.
그 비하인드를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음.’
제대로 짚고 가고자 하는 마음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러니까, 제대로 축하하고 싶은 마음.
둘만 있을 때도 아니고, 카메라가 앞에서 이런 의도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나는 좋은 것 같은데~”
“너무 튀는 느낌 아닐까 싶은데……. 〈런앤런〉 좋지.”
“연습 시간만 괜찮으면……? 드림이 노래는 알아?”
여기저기서 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난영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고, 강주찬이 걱정 한 스푼을 더하고, 이영하가 서드림에게 질문했다.
서드림은 어깨를 으쓱였다..
“안무는 잘 몰라.”
“음, 시간이 없는 건 아닌데…….”
이영하가 조용조용 말하고 주변 눈치를 슬쩍 봤다.
시간은 있지만, 모여서 연습할 시간이 과연 충분한지 살피는 것 같았다.
개인 활동 스케줄이 많은 멤버들이 몇 있다 보니, 지금 우리는 모일 시간을 잡는 게 가장 어려웠다.
지금도 가까스로 하루 시간을 비워 만든 여유라서 며칠만에 보는 얼굴도 있었다.
‘숙소 생활을 하는데도 이렇게 드문드문 만나면 진짜 심각한 거지.’
〈오디뮤〉 무대 준비를 하면서 나와 안승준은 스테리나인 숙소로 짐을 옮겼다.
원래 8명이 사는 게 적절한 듯 살짝 좁은 듯한 집이라서 아홉은 포화 상태라는 느낌도 들었지만…….
집에 있을 시간도 없이 밖에서 나다니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좁은지 넓은지도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오가고 밖으로 나가기도 편하게 서로서로 방을 이사하고 룸메이트도 임시로 바꾸어서 지내기를 몇 주.
시간이 있으면 집 정리도 하고 청소도 할 텐데, 요즘은 매니저 형도 시간이 없다 보니 숙소 거실에서 자는 일이 많아서 여유가 없었다.
조정 결과 김지상은 침대에 누워야만 체력과 정신력이 회복되는 타입이라 1층 내 방을 서난영(특징: 방 조용히 씀, 전화하는 친구 없음, 내 룸메이트였음)과 쓴다.
그리고 나는 그냥 내 방에서 나와서……. 1층 현관과 가까운 안승준-한이주 방에 이불을 펴고 자는 중이다.
셋 다 생활 면에서 무던하기도 하고 안승준도 스케줄 때문에 외출이 잦아서 생각보다는 지낼 만하다.
‘아무튼.’
〈Run and Run〉 선곡의 장점은 9명 무대를 최초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 선곡에는, 시간이 없는데 동선을 처음부터 다시 맞추고 파트를 나누고 다시 녹음하는 등 작업이 필요하다는 단점도 있다.
“우선 다른 의견 있는 사람들……. 꺼내 봐.”
장단점은 확실하니까, 더 준비해 온 사람들이 있는지 의견 교환부터 했다.
기존 타이틀곡 중 골라야 하고, 아마도 대표곡일 〈Express〉나 이미 공연한 〈나에게〉 제외하고…….
사실 그렇게 되면 선곡 폭이 그렇게 넓지 않았으므로 다양한 의견이 나오지는 않았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멤버들도 있고 〈런앤런〉을 생각해 왔다는 멤버도 나를 포함해 서너 명이었다.
결국 회의 흐름은, 단점이 있다고 해도 〈런앤런〉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래라는 결론으로 향해갔다.
“편곡 방향 같은 건 생각한 거 있나?”
이번은 강주찬이 내게 질문했다.
뉘앙스를 듣자 하니 이번에도 참여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원곡 느낌 비슷하게 가고 싶은데, 아. 동선은 조금 구상해 봤어.”
“동선 어떻게?”
“파트는 내 마음대로 나눠서 수정 더 필요하겠지만……. 한번 볼래?”
“여러분……. 이거 각본 아니에요.”
한이주가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보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대기 시간마다 조금씩 작업해서 뒷부분은 아직이라고 먼저 고지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따라서 주섬주섬 다들 일어나서 상황은 안무 연습 느낌이 되었다.
핸드폰 메모장을 켜고 한 명씩 자리를 잡아주고, 안무 동작보다는 동선을 이동하는 것 위주로 숙지를 시작했다.
그쯤 되면 카메라가 우리를 지켜보거나 다른 직원분들이 계시거나 하는 문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실제로 직원들 몇 분은 돌아가시기도 하고, 트레이너들은 카메라 안으로 들어와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냥……. 평소의 단체 연습할 때 모습이었다.
“어때?”
준비한 분량까지 발표 겸 체험이 끝나고 나는 멤버와 트레이너들에게 물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안무 트레이너와 강주찬이 한두 문장씩 대답을 얹었다.
“이대로 끝까지 준비만 하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시간 문제로 뒷부분은 조금 잘라내야 할걸. 마무리만 정하면 될 것 같은데.”
사람이 많이 추가되거나 동선이 많이 복잡해지는 것도 아니라서, 애초에 까다롭거나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조금 싱거운 듯한 반응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물론 파트 분배는 앞으로 더 이야기해야 하고, 그에 따라 동선도 수정하고, 앞으로 할 일도 많았지만.
다들 아주 들뜨거나 흥분되었다기보다는 일상적으로 본인 일을 하는 태도였다.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나와 영하가 상황을 정리했다.
“오늘은 동선 촬영 한 번만 하고, 드림이 안무 외워오면 또 맞춰보자.”
“그때까지 파트 나눠서 녹음 준비까지 미리 해둬야 할 것 같아.”
그렇게 회의는 일차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동선을 숙지하기 위한 연습, 그리고 영상 촬영.
이 과정까지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서드림도 주변 모습을 관찰하며, 빠르게 안무를 카피해 나가고 있었고.
한 시간쯤 연습실에서 연습만 하니까 촬영 감독님은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 듯해 보였으나……. 아무튼.
계획해 온 대로 일은 진행되었고 의도는 잘 충족되는 듯했다.
‘어…….’
그런데 동선을 촬영한 영상을 가만히 보는데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카메라 동선도, 표정 연기도, 안무도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대로 진행하면 안 되나?’
나름대로 여러 가지 고려해서 파트를 쪼개고 동선을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영상만 보아서는, 서드림의 존재가 많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내가 처음 의도했던 것과 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