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24화 (124/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24화

24. Never Ever(6)

그렇다고 해서 예희가 나를 보고 무리에서 벗어나 저벅저벅 다가오고,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단지 눈이 마주쳤고……. 서로의 존재를 쌍방으로 알아챘다.

낯선 외국 쇼핑몰 한복판에서 비공식적인 만남이었다.

어제 〈오디뮤〉 대기실을 잠시 함께 쓴 덕분에 첫 만남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안승준은 슬쩍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 화면에 코를 박았지만, 그야말로 소득이 없는 움직임이었다.

이 녀석이 왜 이러는지는 둘째치고, 우선 달고나밴드와 예희가 누구냐면…….

‘요즘 인디밴드 뮤지션 중에서는 가장 대세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레스토랑에 들어온 인원 수는 정확히 그 두 배가 되지만, 정식 멤버는 세 명일 것이다.

멤버 세 명의 성씨가 각자 ‘문’, ‘고’, ‘나’ 씨인데 그중 ‘문’을 영단어 ‘Moon’이라고 읽어서 ‘달고나’.

‘달고나’ 순서대로 드럼, 기타와 보컬, 베이스를 맡고 객원 멤버가 모자라는 악기 역할을 담당한다고 알고 있다.

‘팬덤보다는 대중성 위주 가수긴 해.’

음악은 음원 위주로 흥행해 작년 여름 발매곡이 아직도 각종 스트리밍 사이트 일간 차트 톱을 기록하는 중.

정체성이 인디밴드라고는 하나, 음악 색이나 그 메이저함을 생각하면 실제로는 자체 제작이 가능한 로큰롤 팝 가수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처음에는 홍대 라이브클럽이나 페스티벌 위주로 활동했다고 했나…….’

그러다가 음악 프로그램 등지에 출연하고 공중파 예능 등에서도 호평을 얻어, 팬층을 확보해 차츰 성공했을 테다.

작년 대중음악의 성공 코드였던 ‘공감’과 ‘위로’를 수립하고 확산한 것도 달고나밴드였다.

덕분에 스테리나인도 흐름을 참고하고 댄스음악에 맞게 감성을 잘 녹여내서 〈나에게〉라는 곡을 발매할 수 있었다.

사실 정말로 이런 사람들과 스테리나인이 경쟁해야 하는 것이 〈밀리어네어 Z 트랙〉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아마 초반 몇 주는 탈락이나 멤버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까……. 나는 스테리나인이 두 달 버티고 탈락하면 기적이라고 본다.

‘물론 리더끼리 현 시점 화제성을 비교하면 어깨를 견줄 수는 있겠지.’

이것도 내가 작년 8월인가 9월부터 거의 반 년을 ‘아이돌 개인 브랜드 평가 지수’ 1위를 달성하고 있어서 겨우 가능한 비교였다.

아, 당연히 남자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덤 성향과 인디밴드 노래를 듣는 대중 성향은 잘 겹치지 않는다는 점은 감안해야겠지만.

하여간 달고나밴드는 대중이 좋아하는 가수였고, 사람들은 예희나 달고나밴드의 멤버 구성을 잘 모르더라도 노래를 꾸준히 잘 들었다.

그리고 달고나밴드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예희의 얼굴이었다.

‘예희는 예명이다.’

본명은 고예닮. 발음하기 어려워서 예명을 쓴다고 했던가.

예명이 더 이름처럼 들리기 때문에 보통 주변 사람들도 다 예명으로 부른다는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다.

보컬, 프론트, 리더, 기타. 작곡을 하고 작사를 하고, 달고나밴드의 감성을 도맡는 사람.

가사를 잘 쓰고 특유의 감성이 있다.

조금은 몽환적이고 조금은 우울한, 본인만의 세계가 있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 외의 신상 정보는 아마 나보다는 안승준이 더 잘 알고 의식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다고 가려지는 거 아니니까 적당히 해…….”

“안승준 왜 이래?”

천진섭이 형들을 막 불러대는 건 강주찬에게 나쁜 것만 배워와서 그렇다.

윗물이 아무리 맑아도 중간이 맑지 않으면 아랫물은 더렵혀진다는 교훈이다.

“나 없는 셈으로 쳐주라…….”

안승준은 이번에는 메뉴판을 펼쳐 얼굴을 가리며 엄살을 부려댔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지…….”

아직 방송 시작도 안 하긴 했지만, 대기실을 쓰며 안면을 트기도 했고.

앞으로 한 달은 그래도 꾸준히 얼굴을 봐야 할 사이기 때문에 굳이 보고도 못본 척 무시할 필요는 없었다.

구태여 대화 나누는 수준이 아니더라도 인사 정도는 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게 매너니까.

“나갈 때 하자, 나갈 때.”

“우리 이제 나가려고 하고 있었는데…….”

안승준이 겨우 고쳐 앉자 천진섭이 중얼거렸다. 진섭이는 왜 안승준이 이런 반응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내가 천진섭이 모르는 것 같다는 뉘앙스를 담아 가볍게 턱짓하자, 안승준은 알아서 운을 떼었다.

“어, 이거 진섭이는 잘 모르나?”

“진섭이 그때 미국에 있었을걸.”

“아~ 그러네. 그러네.”

우리끼리 대화를 주고받는데, 천진섭은 여전히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고 있었다.

천진섭은 스테리나인에 둘 있는 유학파 중 한 명이었다(다른 하나는 강주찬이다).

둘 다 –억울하게도– 국적은 한국이지만, 어린이부터 10대 초반 시절을 미국 동부에서 보냈다.

그리고 천진섭의 유학 기간은 안승준이 〈틴에이지 스타〉에 출연했던 시기와 교묘하게 겹쳤다.

천진섭이 예희를 모르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틴에이지 스타〉 첫 시즌, 최종 2위는 안승준이었다. 그리고…….’

최종 1위는, 예희였다.

그리고 방송이 종료되고 둘 다 대한민국 2대 연예기획사 중 하나인 ‘ONE엔터테인먼트’에 입사했다.

안승준은 그러다가 그만두고 나와서 어나더뮤직에서 데뷔했고, 예희도 지금은 원엔터 아이돌은 아니지만……. 아무튼.

요약하자면 둘이 대형 기획사 연습생으로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다.

안승준은 그때 이야기를 대강 간추려서, 저쪽 테이블에서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천진섭에게 들려주었다.

“……사실 연락 안 한 지 오 년도 넘은 것 같은데, 그때 사이가 좀 안 좋았거든…….”

“그런데 그 시절이면……. 네 태도가 문제…….”

“…….”

안승준이 매섭게 노려보기 시작해서 나는 적당히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원엔터를 퇴사하고 어나더뮤직 데뷔조에 들어오기 전까지 안승준은……. 글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으니까…….

조금만 엇나가거나 연습을 빼먹으면 예희가 트레이너 직원들한테 일러바치고 안승준은 다 같이 놀러갔는데 혼자 지목당한 게 억울해서 싸우고, 그런 일이 ONE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시절에는 반복되었다고, 안승준은 첨언했다.

“내 말은 그때 저 친구가 사람 잡는 게 의헌이 형보다 심했다……. 이런 얘기지.”

“싫다…….”

“무서운 것도 아니고, 짜증나는 것도 아니고 ‘싫다’니…….”

천진섭의 코멘트까지 기가 막혔지만, 나는 그 이상 불평하지 않고 커피나 마셨다.

어렸을 때 사건사고들은 모쪼록 이것저것 쌍방 과실인 흑역사로 똘똘 뭉쳐 있었으므로…….

안승준이 설명하기를, 그 시절 예희는 방송 이미지 그대로 깐깐하고 원칙적인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나더뮤직에서 나를 보고 ‘남자 예희가 나타났다’는 심정으로 겁부터 집어먹었다는 비하인드까지.

“나 그런 느낌이었나?”

“내가 받은 느낌은 그랬다는 거지! 지금은 좀 달라.”

내가 충격을 받은 지점은 한시라도 그렇게 보였다는 점인데, 안승준은 어떻게든 좋게 포장해주었다.

‘아니, 뭐……. 그래, 어렸을 때는 그랬을 수도 있지.’

사람은 원래 살아가면서 많이 변하는 법이니까.

그래서 〈틴스타〉에서의 이미지와, 안승준이 보았을 때와, 내가 아는 예희의 미래의 모습이 다 다른 것이다.

지금 예희의 인상도 〈틴스타〉 때의 ‘전교 1등 학생회장’ 캐릭터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보지만…….

내가 ‘예희’라고 했을 때 연상하는 성격은 그보다 더 악착같고 독한 분위기라서 말이다.

20대 후반의 모습.

‘현재 달고나밴드에서 예희는……. 좀 더 즐거워 보이네.’

오늘 예희에게서는 인생의 황금기를 만끽하는 사람 특유의 밝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ONE엔터테인먼트에서 아이돌로 데뷔하지 않고 본인의 꿈대로 밴드 보컬이 되어서, 나름대로 인기를 얻은 삶.

원하는 음악을 하고 대세로 손꼽히고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들어주고……. 그야말로 성공한 모습이 아닌가.

보기 싫다는 건 아니었다. 아니, 싫기는커녕 좋은 편이었다.

‘같은 방송에 출연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안승준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아서인지 한결 후련해보이기도 하고 긴장을 푼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그 뒤 차와 커피를 다 마시고 짐을 정리하고, 나오면서 달고나밴드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밴드 멤버들은 아직 음식이 서빙되지 않아 식전빵을 뜯고 사진을 찍으면서 여유를 누리는 중이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다 뵙네요.”

외국이라서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말을 걸거나 사진 찍는 사람은 물론이고, 쳐다보는 사람도 적어서 말이 편하게 나왔다.

쇼핑하러 왔는지 묻고 무엇을 샀는지, 음식은 어떻게 시켰는지, 기념품을 사려면 무슨 매장이 좋은지 등등 잡담이 오갔다.

안승준은 예희와 말이 겹칠 때마다 서먹함이 올라오는 듯 머뭇거렸으나 그동안 단련한 사회성으로 어색함을 틀어막고 있었다.

듣자하니 이 자리 여섯 명은 밴드 멤버 셋에 객원 키보드 한 명, 그리고 매니저와 밴드 멤버의 친구 한 명으로 이루어진 모임이란다.

사람이 많아서인지 화기애애하고 분위기도 꽤나 훈훈했다.

그리고 그 달고나밴드의 중심에 선 것은 누가 뭐래도 예희인 것 같았다.

“그러게요, 이거 방송으로 찍으면 재미있었을 텐데. 이렇게 우연히 만난 거 엄청 드라마틱하잖아요.”

예희가 자신의 긴 검은 생머리 끝을 매만지며 말했다.

밝게 웃는 얼굴. 하얀 머리띠와 손끝의 연분홍색 네일 아트도 눈에 들어왔다.

말을 섞어보니까 확실히……. 다르긴 했다. 20대 후반 고예닮과는.

“저희끼리도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스테리나인이 라이벌이라고.”

“맞아, 저희 그랬어요.”

“이렇게 만나니까 진짜 라이벌 맞나봐요. 운명적이네요.”

옆에서 뿔테안경을 쓴 밴드 멤버가 거들었다.

달고나에서 ‘달’을 담당하는, 키가 크고 뼈대가 얇으며 마른 베이시스트 남성이었다.

감사 인사가 절로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저희는 라이벌이면 너무 영광인데요.”

계절이 두 개가 바뀌었는데 음원 스트리밍 상위권에서 흥행하는 밴드…….

그리고 완전체 소식으로 살짝 역주행을 해서 겨우 음원 순위 80위권까지 오른 우리나인…….

라이벌 급이라고 생각해주면 그야말로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방송에서도 꼭 그렇게 이야기해달라고 당부하며 농담하는데 종업원이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그쯤 마무리하면서 다음에 한국에서 만나자고 인사하는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들떠서 레스토랑을 나오는 길에 우리 셋은 더 떠들었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라이벌이 또 생겼군.’

슬슬 라이벌이라는 단어에서 데자뷰마저 느껴진다.

나 없이도 잘 지내는 나의 〈데프아〉 라이벌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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