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23화
24. Never Ever(5)
나는 스피커폰 설정을 해제하고, 전화를 고쳐 잡아 귀에 가져다가 댔다.
“뭐라고요?”
남소리 선배님은 수화기 너머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동안 이 일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천사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과 이야기를 해보았다고.
그렇게 머리를 맞대어 ‘너무 숨기는 것보다는 일부 진실을 알리면서 경고하는 게 낫다’고 결론을 내렸단다.
- 알아듣기 쉽게 비유를 들게요. 완전히 동일한 개념은 아니니까, 대략적으로만 이해해 주기를 바라요.
“아, 네.”
- 처음에는 기적이라고 이야기했죠. 그런데 사실 기적 자체가 희귀한 건 아니에요. 정의헌 씨가 겪은 일은 물론 희귀하지만, 본래 기적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에요.
예컨대 길거리에서 돈을 줍거나, 복권에 당첨되거나, 투자한 사업이 대박을 치거나, 사소하게는 시험 문제를 찍었는데 높은 성적이 나오는 것도 ‘기적’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선배님은 덧붙였다.
그런 소소한 행운과 시간을 되돌리는 버거운 일은 큰 개념 안에서는 비슷하다는 것 같았다.
- 그리고 왜 사람에게 그런 크고 작은 기적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아직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어요.
나는 그쯤 듣고 깨달았다.
남소리 선배님이 이야기하는 ‘체계’란 상태창 그 이상의 개념 같다고.
그러니까 이건 내가 시간을 거슬러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길에서 지폐를 줍고 복권 1등에 당첨되는, 이런 ‘행운과 기적의 체계’ 이야기였다.
이 세계를 이루는 시스템 말이다.
- 우주로 예를 들어볼게요. 우리는 아직 우주에 관해 잘 모르는 게 많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살아가죠.
그 말을 듣고 자연스럽게 밤하늘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보며 살아왔던 SF 영화라든지, 뭐 그런 것들도.
- 그렇지만 그 우주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위험하게 접근하는 사람을 막기 위해서, 또 이해한 것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사용하기 위해서요.
“NASA……?”
- 예, 비유하자면……. 국가 소속은 아니지만요.
잠시 생각해 보았다.
‘묘하게 ‘위험하다’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군.’
물론 우주도 깊게 들어가면 위험할 테지만, 비유가 조금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짧게 이런저런 개념을 머릿속으로 훑다가 나는 비슷하지만 새로운 비유법으로 물어보았다.
“지진이나 홍수, 화산 폭발 같은 자연 재해를 연구하는 느낌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 자연재해……. 그것도 백 퍼센트 맞는 말은 아니지만, 일리는 있네요.
“어렵네요, 이렇게 이해하려니까…….”
그래도 대답을 들어보면, 아예 내가 틀리게 짚은 뉘앙스는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남소리, 그러니까 ‘천사’의 말은 이런 식이었다.
시간을 돌리는 것 같은 ‘기적’의 시스템은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고, 그보다는 초자연적 현상에 가깝다.
그리고 자칭 천사들은 그것을 연구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렇다면…….
“선배님은 인간이겠네요.”
- 아니라고 한 적 없어요.
“……그런가?”
하지만 천사라고 부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면 보통 인간이라고 생각 안 하지?
대화 흐름 문제로 태클은 마음에 담아두기로 했다.
“그런데 제가 질문한 내용과 이 진실이……. 어떻게 관련이 있는 건가요.”
설마 ‘나도 모르니까 물어보지 마’라고 알아들어야 하는 건가.
그런데 내가 묻자, 선배님은 자신이 뛰어넘은 절차가 있는 것 같다고 금방 실토했다.
남소리 선배님이 처음의 그 우주 비유를 다시 꺼내왔다.
- 제가 보는 상태창은, 외계의 신호를 제가 알 수 있게 번역한 장치에 가까워요. 저희가 나름대로 기술 개발을 한 거죠. 그런데 정의헌 씨는 그런 장치가 없잖아요, 그렇죠?
“네, 그렇죠.”
- 그런데 어떤 외계인이 정의헌 씨에게 한국어로, 보는 사람이 다 알아들을 수 있게 신호를 보내는 거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도 약간 불안한 방식으로요. 그러면 저희는 당황할 수밖에 없잖아요?
……뭔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으로 눈높이 설명을 해주는 기분이다.
그런데 설명이 쉽고 외계인 얘기도 나오니까 어쩐지 흥미진진해서 집중이 잘되었다.
- 그래서 그 외계인이 무슨 꿍꿍이인지 우리는 모르고, 어쩌면 그 외계인은 악의를 품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웬만하면 떨어지라고 정의헌 씨에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제게 붙어 있는 외계인을 자극하지 말라는 의미로?”
- 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고……. 잊고 살아요.
쉬운 설명의 부작용인지, 상상 속 외계인이 점점 귀여운 캐릭터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내게 외면당해 슬퍼하는 외계인 캐릭터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나는 질문했다.
“선배님은 외계인과 계속 접촉해도 괜찮은 건가요?”
왠지 남이 옆에서 들으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말이었다.
- 제가 다루는 건 번역 장치니까요, 정의헌 씨보다는 안전하죠.
“연구가 진행된다면 저도 소통을 해도 괜찮은 상태가 될까요?”
- 음……. 확답은 못 드리겠어요. 그건 앞으로 저희가 조사해 봐야지요.
그러니까 내가 궁금했던 질문에 대해서만 대답을 간추리자면…….
미션 알림이 오지 않는 것이 정상적인 상태기 때문에, 너무 궁금해하지 말라는 말이 되시겠다.
그때 내가 겪은 일은 운석을 머리에 맞은 꼴이고 뭐 굳이 두 번 맞을 필요까지는 없다는……. 그런 메시지일까.
미션에 의지하지 말고 알아서 잘 살아야 한다는 것 같기도 하고.
나의 반려 외계인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이거 귀신이나 유령 같은 건데, 내가 너무 좋게 생각하고 있는 건가?’
으스스한 방향으로 출발하기 시작하는 상념을 억지로 잡아 멈추고 나는 다시 정리해 보았다.
아직 ‘천사’라는 집단에 관해 질문하기에는 타이밍이 이른 것 같았다.
‘대답해 주지도 않을 것 같고.’
이쪽은 내가 더 관찰해서 증거를 잡아내거나, 아니면 그들이 나서야 할 일이 생길 때에나 소통이 될 듯했다.
그러니까 오늘도 남소리 선배님의 개인적인 도움을 받는 선에서 세계의 비밀 캐내기는 만족하기로 하고.
다만 한 가지 제대로 대답을 듣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그 건은 추가로 확인을 받았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쭐게요.”
- 진짜 마지막이죠……?
“첫 번째 미션은 왜 제가 〈데프아〉 1위를 했을 때 클리어가 된 건지 궁금해요.”
- 아, 그거요.
이 질문은 꽤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 미션이 연계되어 등장하는 구조라서 그래요. 한 챕터가 끝났다는 게 그렇게 표시된 것 같아요.
“어……. 음, 그러면 이번 미션도 끝나지 않았을 수 있다는……?”
- 어…….
…….
침묵이 찾아왔다.
“선배님……?”
- 죄송해요, 잠시 아찔해서…….
“나중에 한번 뵐까요…….”
- 예. 그렇게 해요…….
만나서 내 상태창이나 미션 목록을 읽어보겠다는 이야기다.
그런 식으로 미션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면 내 두 번째 미션, 〈오디뮤〉 건도 아직 끝나지 않았을 수 있으니까.
너무 온 신경을 기울이지는 말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두려워하거나 너무 안심하지는 않은 상태로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우선 너무 늦지 않게 남소리 선배님과 대면해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진단부터 하고 말이다.
그렇게 결론을 낸 뒤 전화를 끊고, 오 분쯤 지났을 때쯤.
호텔 방으로 룸메이트들이 들어왔다.
3인 1실이라 룸메이트는 강주찬과 한이주였다.
“전화는 끝났냐.”
“방금……. 음? 나 주는 거야?”
“형 그냥 올라갔으니까……. 무슨 전화였는데?”
“행정 좀 처리하느라…….”
전화 때문에 미리 올라온다는 말은 아침 먹을 때 했고, 한이주가 내 손에 테이크아웃 커피 컵을 들려주었다.
행정 때문이라는 건 넓게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조금 식은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배터리가 닳은 핸드폰 속 시계를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내 생각보다 통화가 오래 진행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우, 나 나가야겠다.”
“어디 가는데?”
“나 옷 사러…….”
선약이 있었다.
이번 일은 토요일 공연을 하고 일요일인 오늘은 휴가를 받아서 월요일 아침 출발하는 스케줄이었다.
그리고 월요일에는 저녁에는 위라이브를 하기로 팬들과 회사와 이야기했기 때문에 조금 촉박한데…….
하지만 여행까지 왔는데 쉬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안승준, 천진섭과 쇼핑하러 가기로 일정을 잡아두었다.
옷 사고, 지갑이나 가방 같은 것을 사지 않을까.
둘째가 성인 되는 기념 선물도 사오라고 엄마가 말씀하셔서, 그것도 사야 했다.
‘대학도 잘 들어갔는데, 큰 선물을 못 해줘서……. 겸사겸사.’
멤버들도 각각 휴일을 보낼 계획이 없거나 있다는 것 같았다.
이영하나 김지상, 서드림은 풀 휴식 모드로 호캉스나 즐기겠다고 들었고.
서난영, 한이주는 같이 시장 먹거리 투어, 강주찬은 매니저 형이랑 근처 공원 산책이나 나간단다.
멤버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몇 명씩 쪼개져서 움직이는 게 우리는 이미 습관이었다.
“나 먼저 내려가 볼게. 커피 고맙다~”
나는 곧바로 겉옷에 지갑에 반쯤 마신 커피만 챙겨서 로비로 내려갔다.
업무로 출국하긴 했지만, 해외 여행은 또 오랜만인 것 같았다.
〈데프아〉 일본 공연 때에는 호텔과 사인회장과 공연장과 공항 정도만 오갔던 터라…….
금방 기분이 바뀌고 나아지고 하는 게 스스로 웃기기도 했지만, 즐거운 일은 즐겁게 즐겨야지. 별수 있나.
* * *
“그런데 너 그 지갑, 비슷한 거 있지 않나?”
“브랜드가 다르잖아. 어떻게 비슷해, 이게.”
쇼핑몰을 한 바퀴 돌고,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찾아온 레스토랑.
겨울이었지만 날씨가 한국 가을보다도 따스했기 때문에 우리는 테라스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릇을 치우고 커피를 주문한 뒤에는 새로 산 품목을 하나씩 꺼내보는 중.
안승준이 천진섭의 지갑을 들여다보며 핀잔했고, 천진섭은 톡 쏘아붙였다. 나는 따지자면 안승준과 비슷한 입장이었다.
쇼핑을 마친 내 가방에는 간식거리나 여성용 가방, 카드지갑, 화장품(이건 엄마 거) 등이 가득했다.
동생 둘이 각각 대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때문에…….
걔들 것을 고르다 보니 출혈이 커서 내 물건은 많이 사지도 못했다.
“그래도 잘 샀어, 할인 많이 받아서.”
“맞아, 맞아.”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안승준의 시선이 문득 내 등 뒤로 스윽 움직였다.
‘누가 오나?’
무심코 나도 그 방향을 따라서 몸을 돌렸던 것 같다.
그리고 마주쳤다. 우리가 있는 테라스로 나오는, 여섯 명쯤 되는 인원의 단체를.
‘……어?’
전원의 얼굴을 알아본 건 아니었지만, 그들의 정체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한 명만 알아채더라도 대충 짐작이 가능했기 때문에.
‘달고나밴드.’
〈밀리어네어 Z 트랙〉에 스테리나인과 함께 출연 예정인 인디밴드였다.
천진섭은 보고도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았고, 안승준의 표정은 살짝 관리가 안 되었다.
그런데 내 표정도……. 아마 승준이와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예희잖아.’
달고나밴드의 보컬이자 리더, 프론트 담당.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했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