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20화
24. Never Ever(2)
우선 무엇보다.
만약 여기 이 익명의 레디가 온라인 커뮤니티 케이팝 게시판에 팬이 아닌 척 질문을 해본다면.
– 스나 합류 관련해서 팬들 반응은 어때?
그 글에 달릴 댓글은, 한결같은 모양일 게 직접 보지 않아도 뻔했다.
– 그런데 다들 예상하던 바야 ㅋㅋ 생각보다 빠르긴 하지만 반대할 이유가 없지
– 악개가 목소리 커서 악개 의견만 잘보이는 거지 대부분 기뻐함
– 합류 안시키는 게 이상할 정도지 이쪽은... 본인들도 그룹에 애정 있어보이잖아 ㅋㅋㅋ 잘됐음 좋겠다
– 레디는 원래 기다리는 거 잘해 이름부터 레디인걸 ㅎㅎ
사실 ‘의승지’를 함께 응원하는 사람들은 절반 이상 정의헌 최애였다.
팬덤 성향 때문이 아니라 그냥 정의헌을 좋아하는 사람 수가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스테리나인의 존재에 호의적이었다.
깊게 덕질하는 사람은 최애가 스테리나인 안에서 보였던 모습까지도 좋아했고, 얕게 좋아하는 사람은 에이레 속에서의 부리더보다는 스테리나인에서의 리더 이미지를 더 높게 쳤다.
‘꼭 의헌이만 그런 것도 아니고…….’
세 사람의 팬덤 다 비슷한 사유로 스테리나인을 나쁘지 않게 여겼다.
일단 정의헌은 대중적으로 호감을 샀고, 김지상도 개인사를 무기 삼아 팬덤 코어를 모았으며, 안승준도 나름 리더십으로 인기를 몰았다.
그들의 실력 이상으로 개개인의 캐릭터가 팬덤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새로 생긴 팬들은 인물의 스토리를 좋아하고, 사연에 감동을 잘 받는 성향이 강했다.
즉 ‘최애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좋아할 수 있는’ 이들도 적은 수가 아니었다.
‘팬덤이 크니까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다 있는 거지.’
익명의 레디는 생각했다.
그리고 진실로, 합류를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그럭저럭 생각하거나 나아가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또한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예 스테리나인에 빠져든 몇몇 개인 팬들도 있었다.
아무튼 정의헌이나 안승준이 바랐던 ‘그룹 인지도 높이는 일’이 잘 작동했다는 의미다.
– 나 꿀벌인데 이번 스나 컴백 봤다가 감겼다... 헌이 친구 동생들이니까 의리스밍은 해줘야지! 하고 시작했는데ㅜㅜ 자꾸 생각나ㅜㅜ
– 전 상상단 현 레디 공지보고 성불하다 •° •°(캴ㅁT °)°• °•ᄚ
– 어나더뮤직에 감사해본 거 입덕하고 오늘이 처음이다 의헌오빠 지상오빠 승준오빠 우리 스나 레디 모두 이제 꽃길만 걷자 ㅠㅠ
– 데프아로 어나더즈 후원활동 → 꿀벌단/상상단/햄랑단 → 스나 컴백보고 레디 됨 → 합류 공지보고 환호 이거 국룰인가봐 ㅋㅋㅋ
적절한 타이밍에 터진 스테리나인의 신곡 〈나에게〉가 케이팝 팬덤에 만족 요인으로 작용했다.
백번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곡이 좋았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듣고픈 말을 해주는 기획 또한 빛을 발했다.
하여간 다들 힘을 내라는 말이 필요했고, 수고했다는 말이 필요했던 셈이다.
팬이 되지는 않더라도 곡을 가끔 들어주는 사람이 생겼고, 그중에 몇은 아예 스테리나인의 팬이 되기도 했다.
예컨대 여기 익명의 레디도 입덕을 굳혔다(이쪽은 타이밍이 완전히 맞는 건 아니다만).
그는 노래가 나오기도 전에 티저만 보고 응원봉을 주문했고, 공개방송 몇 주 동안 드문드문 방청에 참여하며 쏠쏠하게 응원봉을 흔들었다.
레디 2기 가입을 새로 받거나 1기를 추가로 모집한 건 아니지만, 팬클럽에 가입하지 못한 팬들이 많아서인지 현장에서 많이들 신경을 써주는 것이 느껴졌다.
요약하자면, 오프라인 분위기도 재미있고 좋았다.
‘대체 왜 예전에는 팬덤 분위기가 나쁘다고 소문까지 난 거지?’
개인적으로 의아한 마음이 들 정도로, 레디 팬덤은 질서도 잘 지키고 팬매니저가 금지한 일은 하지 않았다.
팬들이 서로서로 친하고 멤버들과도 심적 거리가 가까운 작은 팬덤 특징상 미니 팬미팅이나 팬사인회를 하면 개인 멘트가 많은 편이었으나, 익명의 레디는 거기까지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없었다.
‘그 사람들도 다 좋아하더라.’
합류 공지 말이다.
한 줌 크기였던 기존 레디 올팬들이 가장 감격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테다.
– 스테리 “나인” ㅠㅠㅠㅠ
– 솔직히 이번에 나에게 노래 넘 좋아서 애들 목소리로도 듣고 싶었는데 진짜 잘됐다 ㅠ
– 존버는 승리한다고 말하는 저, 개레디인가요?
이에 더해 한 가지 괄목할 만한 진실도 있었다.
바로……. 레디도 유어도 아닌, 세 사람의 개인팬들이 각자의 사유로 그룹 합류를 찬성했다는 것이다.
– 그냥 내가 더 노력하고 더 응원해서 지상이 성공하는 모습 꼭 볼래 어디에 있든 좋아할 거야
– 그런데 첨부터 스나도 나올 급 아닌데 나왔다고 말 많았잖아 왜 그룹은 망돌이라고 이제와서 깎아내리는지 모르겠다 망돌이라는 단어도 이상해 어떻게 사람 인생에 망했다는 단어를 붙이냐고... 난 승준이가 자기 출신이든 소속이든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어디서든 부디 당당했으면 좋겠어
– 에이레 정의헌이든 스테리나인 정의헌이든 솔로든 유닛이든 의헌이는 의헌이야 사랑해
그런 온건한, 아직 그룹에 정을 못 붙였을 뿐인 개인팬도 있었고.
– 해체 때 헌이 욕먹는거 보고 ㅇㅇㄹ에는 마음 떠난지 오래야 빠른 합류 오히려 고맙지 어차피 꿀벌단은 의헌이가 뭘 해도 응원해
– 솔직히 그룹한다면 ㅇㅇㄹ보다는 ㅅㄴ가 나음 멤들이 더 착해보여
– 해체됐으면 돌아가야지 우짬 이미 다 각오했다 돌아와서 활동만 잘해다오 지상이 데려갔으면 파트 많이 주세요 @어나더뮤직
강경한 개인팬도 있었지만, 그들의 결론은 같았다.
‘어나더즈’가 쓰리픽 내지 투픽이었던 개인팬들의 분위기도 대개 온화했다.
– 상상단┽햄랑단┽꿀벌단┽레디 다 같이 잘 지냈으면 좋겠어!!
– 말 안해도 소속사픽이 조용히 제일 강했다는 거 다들 알 텐데 셋 같이 활동하는 게 어디야 어나더즈 사랑해♥
– 근데 그룹에도 왜 데프아 안 나왔는지 아까운 애들 많더라 애들끼리 케미도 좋고 나이 보면 멤들 군대가 급한것도 아니고 어나더뮤직은 공카 등업이나 빨리 처리해주길~~
최종 데뷔한 멤버가 한 명이나 두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된다는 점 역시 호사였다.
그리고 그룹 결성과 해체 그리고 복귀까지 아주 순식간에 이루어졌다는 것도 여론을 둥글렸다.
쓸데없는 기다림이 길어지면 사람들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기대감을 부풀리게 되는데,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그룹에 합류하는 것보다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팬들은 대개 더 두려워하기도 했고.
종합적으로는 여러가지 특수한 상황이 섞이기도 했고, 회사 및 멤버들의 발빠른 결정이 큰 불만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어떻게든 막아냈다고 간추릴 수 있었다.
‘……다들 받아들이시길.’
익명의 레디는 한편 툿투 구독 계정으로 본 투잇 몇 개를 복덕방 커뮤니티 스크랩방에 옮기기도 했다.
????작은키위새 @k11w100
그룹이 데뷔조차 하지 못하고 무산된 상황이 아쉬운 팬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가만히 보면 표현하는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처음부터 방송을 할 때 후원자라는 이름을 쓰면 안 됐다. ‘후원’했으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안다. 돈을 냈으니까 미래에 관해 왈가왈부하고, 불만을 가져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 애초에 후원자는 그런 존재가 아니잖아요. 단어의 오염이나 다름없다.
이건 ‘처음부터 방송할 때 후원자라는 이름을 쓰면 안 됐다.toot’이라는 제목으로 업로드했다.
삼새두 @samsaedoo__
아니 “그분”들은 대체왜 천년만년 사랑하고 두당 100억씩 쏟아부은 것처럼 말하시는거임 데뷔도안해 콘서트도 방송콘서트였지 곡도 없고 공식 팬클럽도 없고 광고도 안찍었고 방송도 뭔 데뷔 준비하는 리얼리티 1개 있었는데 그러면 공식에 돈써봤자 문자투표 100원? 썼을거 아녀? 그런데 말투만보면 아주 뭐 갑중의갑임 뭐 얼마나 떼어먹혔다고 악다구니쓰고 모든걸 레디탓함 저도 문투 백원 썼는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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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새두 @samsaedoo__
저희가 뭘했냐고요 서바이벌 나간대서 응원했고 돌아온다니까 환영했는데 개레디 극혐이라고 싸불당하고 난리 ????????????
님들은이제 후원자가아닙니다
그냥 후레자(식)입니다 ㅇㅇ
그리고 이 투잇은 ‘점점 심해지는 듯한 레디(스테리나인 팬덤) 괴롭힘’이라는 제목을 달아 올리니, 스테리나인 팬들을 응원하는 댓글이 많이들 달렸다.
아무쪼록 그렇게 익명의 레디가 열심히 〈나에게〉 공방을 뛰고 커뮤니티에 글과 댓글을 쓰며 덕질하고 있을 때.
좋은 소식이 하나 생기기도 했으니…….
바로 그녀의 회사 1층 프랜차이즈 카페와 OTV가 제휴해 주최한 이벤트에 당첨된 것이다.
무려 〈오디뮤〉 티켓이 걸린 응모 이벤트.
스테리나인 덕분에 케이팝에도 관심이 생기기도 했고, 어차피 커피는 매일 마시니 무심코 응모했을 뿐인데.
‘운이 좋았지!’
비기너즈 럭인지 〈오디뮤〉 티켓에 더해 마카오로 가는 비행기편까지 포함된 2등 상품에 당첨되었다.
당일치기로 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데, 무려 스테리나인 출연까지 공지가 나왔다.
‘운이 진짜 좋았어!’
복덕방에서 동행인을 구해 숙소를 쉐어하기로 하고 회사에 금요일 연차까지 내서 마카오에 온 익명의 레디.
동행인과는 자리가 나뉘어 지금은 혼자 앉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참 설레는 해외여행이었다.
이렇게 큰 무대를 현장에서 보는 것 역시 처음이었다.
‘무대 진짜 대박이다~’
그의 자리는 돌출 무대 바로 앞 스탠딩 석이었다.
체력을 걱정했지만, 돌출 무대에서 공연하는 가수가 꽤 있어서 놀다 보니 나쁘지 않았다.
과연 〈오디뮤〉는 〈오디뮤〉라고나 할까.
작년과 연초를 빛낸 가수들이 많이 나와서 흥을 돋우고, 노래도 죄다 익숙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익명의 레디가 진심을 다해서 기다리는 것은 스테리나인뿐이었지만.
‘스나 언제 나와……!’
〈데프아〉 내내 검은색이나 최대 갈색으로 머리 색을 유지하던 정의헌이 무려 탈색을 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도 진정한 미남만이 소화할 수 있다는 보라색으로……!
〈나에게〉 활동 중 스테리나인은 염색을 해도 갈색이나 최대 베이지 톤으로 머리색을 얌전하게 맞추었는데…….
‘이런 자리에서 갑자기 누가 봐도 염색인, 화려한 컬러로 등장하다니!’
알음알음 업로드되는 리허설 프리뷰 사진을 보며(당연히 몰래 찍었을 것이다), 익명의 레디는 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염색한 것 같다는 루머만 들었을 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사진을 보니까 본인에게도 잘어울리고 팀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 같았다.
어떻게 무대 위에서 어우러질지는 봐야 알겠지만…….
알 수 없다 보니까. 그래서 더 보고 싶었다.
무대가 하나둘씩 지나가고, 어느덧 어두워진 겨울 하늘.
젊은 남자 배우 MC가 긴 무대를 걸어 나왔다.
다음 순서를 소개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