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19화
24. Never Ever(1)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면 ‘아 찍지 마시라고요’라고 갑자기 상황극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애초에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화 주제는 안승준이 카메라에 대고 소개했듯이, 무대 활용에 관해서였다.
〈오디뮤〉 공연장은 본무대가 있고, 그 앞에 본무대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가로 ‘돌출 무대’가 있고, 그 둘을 긴 세로의 ‘런웨이 무대’가 연결하는 구조였다.
그 무대 셋을 붙인 생김새를 보며 안승준은 알파벳 ‘H’ 대문자를 구십 도 뒤집은 모양이라고 했고, 서드림은 그냥 알파벳 대문자 ‘I’ 모양 아니냐고 주장했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 주세요~”
서드림이 셀카봉을 들었고, 안승준은 그 뒤에 찰싹 달라붙어서 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말하는 사람을 향해 카메라 방향을 조정하는 것은 안승준 역할이었다.
“이런 거 다 말해도 되나?”
“문제 생기면……. 편집해 주시겠지? 편집해 주세요.”
서난영과 이영하가 쑥덕거렸고, 정의헌이 자신이 설명하겠다는 듯 카메라에 대고 손짓했다.
그때 바닥에는 무대와 1:1 비율인 청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정의헌이 본무대 그림 쪽으로 카메라맨들을 데려가면서 설명은 시작되었다.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는 이영하와 서난영도 뒤를 졸졸 따라와서, 총 다섯 명이 목적지에서 멈추었다.
“영상 올라갈 때쯤이면 다 보셨을 테니까, 그냥 이야기할게요. 세트는 여기 본무대에 설치되고요.”
이번 〈오디뮤〉는 해외에서 개최되고, 시상식보다는 단체 콘서트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전녹화 없이 무대는 모두 생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래서 세트도 구조물보다는 소품 위주고, 이마저도 VCR 재생, 광고, MC 멘트 등의 타이밍을 이용해 스태프들이 빠르고 일사불란하게 옮기고 빠져야 했다.
따라서 스태프가 오가기 번거로운 돌출 무대나 런웨이 무대에는 세트를 세울 수가 없었다.
물론 모든 방향에서 가수가 보여야 하는 돌출, 런웨이 무대에서 세트를 쓰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도 했다.
“저희는 저 스크린이 옆으로 갈라지면서 등장해서 이 계단을 내려오기로 되어 있어요.”
정의헌의 설명이 이어졌다.
“세트도 여기 있고, 댄서 분들도 여기 있고, 원래는 이 본무대만 활용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요.”
그리고 잠시 침묵.
고민할 거리가 많았다.
사실 〈나에게〉는 멤버들만 참여해도 손색이 없는 곡이었다.
공백의 미학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기에, 꽉 채우기보다는 빈 자리가 조금 보이는 것이 좋았으므로.
그렇지만 〈오디뮤〉는 복귀를 기념하는 무대기도 하고, 〈밀제트〉 방송 출연의 시작을 알리는 목적도 있었다.
멋있어보일 수 있도록 일부러 규모를 키운 것이다.
화려함과 수수함, 그리고 섬세함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추기도 어려운데, 무대 구성 때문에 새로운 과제가 추가된 셈.
“음, 아무튼. 이런 문제 저런 문제가 섞여서 저어기 있는 돌출까지 나가야 되는 상황입니다.”
정의헌이 많은 생략 끝에 말을 정리했다.
두 무대를 잇는 런웨이 무대 길이가 어느 정도 되었기 때문에, 이동 시간도 고려해야 할 요소였다.
서드림이 셀카봉을 빙글 돌려, 돌출 무대를 카메라에 담았다.
느리게 걸으면 끝까지 가는 데만 해도 일 분은 걸릴 것 같은 거리.
이영하가 돌출 무대 쪽을 보며 중얼거렸다.
“〈밀제트〉 카메라를 본무대 쪽으로 옮겨달라고 부탁하는 게 최선 아닐까 싶은데.”
“오……. 이 말은 정말 편집되겠다. 잠시만…….”
정의헌은 그 말을 끝으로, 혼자 성큼성큼 무대 방향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돌출 무대까지 가서 바닥에 표시해 놓은 것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급작스럽게 전력으로 질주해 본무대로 돌아왔다.
“이거, 무대 장치 설명해 둔 종이 있는 사람.”
“어? 나한테 있어, 그거.”
“나 줘 봐.”
그는 이영하에게서 서류 뭉치를 받아 몇 페이지를 팔락팔락 넘겼다.
“영아, 1절 끝나고 여기까지는 올 수 있지?”
“그래도 좀 뛰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시간이 언제까지?”
“그건 봐야돼. 아직 안 정했어.”
“야. 정하고 말해, 정하고.”
이영하의 핀잔에 답하는 대신 정의헌은 주변 사람들에게 요청했다.
“난영이, 승준이. 가서 애들 좀 데리고 와줘.”
그 와중에 막내라서인지, 카메라를 들고 있어서인지 서드림에게는 시키지도 않았다…….
집중하는 것을 보면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했다.
〈오디뮤〉 무대를 위해 간만에 염색한, 연보라색 머리카락 사이로 눈동자가 빛났다.
지지부진하던 대화에 불현듯 활력이 도는 느낌. 시각으로 느껴지는 변화.
안승준은 그 지시를 이행하기 전, 서드림에게서 떨어져 나와서 질문했다.
“어떻게 된 건데? 좋은 생각이라도 난 거야?”
“아니, 다른 게 아니라. 돌출에 리프트가 있더라고.”
정의헌이 손에 든 종이를 안승준 눈앞에 보여주면서 말했다.
안승준은 기억해 냈다. 본무대(랍시고 표시해 놓은 자리)의 바닥 중앙에 테이프가 붙어 있던 것을.
‘아, 그게 리프트 위치를 나타내는 테이프였나’
리프트는 상승-하강 장치라서 보통 이런 무대에서는 등장할 때 사용하고는 하는데.
……기묘하게 불길한 느낌에 안승준은 차분히 다시 계산해 보았다.
여기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은……. 전원을 세울 수는 없을 텐데…….
“……우리 설마 다시 녹음해?”
라이브 예정이지만, 관계자들에게 전달한 용도로라도 AR은 필요해서 파트가 바뀌면 재녹음을 해야 했다.
노래를 부르면서 창법이나 호흡을 깨닫는 경우도 없지 않았기 때문에, 보컬 연습 겸해 녹음을 하기도 했고.
안승준이 듣고 싶지 않았던 대답이 거의 즉시 돌아왔다.
“그거 얘기하게, 애들 데려와 봐…….”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고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안승준은 들리지 않게 투덜거리면서도, 멤버들을 찾아 나섰다.
등 뒤에서 정의헌과 이영하가, 안무 선생님 및 스태프와 함께 무대 구성 이야기를 마저 하는 것이 들렸다.
저희 이 무대 두 개 사이에서 공연하는 것도 가능한가요, 정의헌이 질문했다.
* * *
마카오.
강주찬의 팬은 이곳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사실 그녀는 자신을 ‘강주찬의 팬’이라고 해도 괜찮을지 슬슬 의심이 들던 차였다.
최애가 강주찬이긴 하지만 꽤 온건한 스테리나인 올팬이었으므로.
심지어 요즘 세상이 흉흉해진 덕분에 그는 스스로 ‘레디’ 정체성을 상당히 단단하게 굳혔다.
그 꽃밭 덕질을 지향하는 익명의 레디가 흐린 눈으로 지나가기도 힘들 만큼 여론이 험악했다는 의미다.
‘새삼 인터넷은 악플러 천국이구나…….’
그가 출입하는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 ‘복덕방’은 원래 연예인 이슈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래서 익명의 레디는 인구가 많은 스크랩방이나 베스트방, 케이팝방, 〈데프아〉방, 에이레방은 출입하지도 않았다.
단지 스테리나인 단독 게시판에서 덕질 글이나 쓰고 댓글을 달며 행복하게 마이웨이를 즐기려고 했는데…….
워낙 어그로가 많이 꼬여서 독방까지 들어오지를 않나, 아무래도 호기심에 못 이겨 베스트방 글을 누르지 않나.
그런 사유들로 예기치 않게 찾아본 현 인터넷 상황은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탕이었다.
‘굳이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인데…….’
정보 스크랩도 아니고 케이팝방에서 단순히 잡담이나 호감을 표하는 글에도 댓글이 180개씩 달렸다.
그런데 그 댓글을 열어보면 절반은 작성자가 삭제, 삼십 퍼센트는 규칙 위반으로 삭제되어 보이는 댓글도 몇 없었다.
게다가 마지막 댓글을 사수해서 언쟁에서 이긴 척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았고, 기본적으로 악의가 많은 댓글은 눈에 띄기도 했다.
물론 정말 어나더뮤직의 결정에 부정적이라서 오프라인 행동까지 불사하는 사람들은 이제 잘 보이지 않았다.
이건 KMC 건물 앞에 가서 시위하고, 어나더뮤직 사옥에 항의하는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에이레 재결성’ 모금을 받던 사람들 이야기다.
‘다 확정되었다는데 더 활동하기도 어렵겠지, 그쪽은…….’
이제 그런 행동은 하지 않지만……. 그들은 분명 인터넷에 살아 있을 터였다
그들 혹은 그들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 즉 ‘레디는 아닌 에이레’들은 가장 먼저 ‘어나더즈’의 이름을 바꾸었다.
‘어나더즈’, 정의헌, 김지상, 안승준을 묶어서 부르는 호칭.
일각에서는 ‘스나즈’라고도 부르고 했었는데 그보다는 어나더즈라는 이름이 더 많이 쓰였다.
레디 팬덤에서는 ‘서바즈’나 ‘데프아즈’라고 불렀고.
그런데 사람들은 이제 셋을 묶어 ‘의승지’나 ‘비타민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비타민은……. 에이레 자컨에서 셋이서 비타민 이야기를 하던 장면에서 착안했다나 뭐라나.
‘같은 그룹에서 출발했다는 것조차 지우고 싶다는 거겠지.’
익명의 레디는 속셈을 그렇게 판단했다.
〈데프아〉로 생긴 세 멤버의 개인 팬들은 몸집이 큰 만큼 목소리도 컸다.
– 에이레 해체 소취하고 고독방 테러하던 올팬도 많던데 나도 일반화 좀 하면 안 돼? 쟤들이랑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 싫다고
– 제발 승준아 햄랑단이랑 기싸움 좀 하지 마 에이레 되고나서도 맨날 유어들 유어들 이러고 누가 너 키워줬는데 ㅋㅋㅋ
– 어나더뮤직은 착각을 하고 있구나. 지금 애들 무대에 서있게 해준 건 ‘꿀벌단’, ‘유어’란다. 유어라는 엄연한 팬덤을 무시하네??
– 갑자기 레디 되어버린 유어는 어떡하라는 거죠 ???????? 엿먹으세요 제발
– 그룹 좋아하시는 분들 죄송하지만 팔로우하시면 블락할게요 ㅠ 의승지만 응원합니다
그리고 ‘의승지’를 제외한 다른 멤버 최애인 유어 팬덤도 과잉반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쪽은 어나더뮤직이 이례적으로 빠른 공지를 세우고, 스테리나인 멤버들이 가장 타격 없이 본진으로 복귀하는 그림을 그려서 배가 아픈 것 같았다.
– ㅈㅇㅎ 조카 괘씸하다 일부러 탈주하려고 리더 안 맡을 때부터 알아봤음
– ㅆ발 정구야 우리애들 살려줘 이제라도 공지 내리고 에이레 유닛한번만 해줘
– 에휴 걔들이 그룹 들어가서 무슨 미래가 있겠냐 ㅋㅋ 뻔할뻔자인데 왜이렇게들 좋아함
– 해체무새들이 머리 꽃밭이지 행회 그만 좀 돌리고 현실을 봐 강행이 왜 안되는데? 멀리 보자 좀
특히 정의헌에게 열폭하는 부류는 해체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유구했으니까 말 다 했다.
일개 아이돌 리더가 본인 소속사도 아니고 남의 소속사에서 무슨 힘을 낼 수 있겠냐고 익명의 레디는 조용히 생각했다.
그 외에 이튜브 영상 등에 ‘우리가 좋아하는 건 에이레 관계성, 에이레에서의 모습, 스테리나인 관심 없음’이라고 악플을 다는 사람도 꽤나 존재했고…….
공지만 올라오면 댓글로 ‘우리 지상이 화이팅’, ‘모든 활동 응원할게’, ‘여전히 사랑해’ 같은 말을 하며 이를 악무는 개인팬들도 보였다.
너무 끔찍한데 참겠다는 의지가 텍스트 사이사이로 느껴져서, 그쯤이면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렇지만 생각보다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
익명의 레디는 손에 든 응원봉을 고쳐 쥐며 답답한 생각을 환기했다.
싫은 말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것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수도 많았으니까.
‘예를 들면……. 나?’
팬덤 내부의 전체적인 정서 역시 산산조각이 나서 뿔뿔이 흩어지는 모양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동안 소속사와 팬덤이 내외적으로 차근차근 쌓아놓은 몇 가지 빌드업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