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16화 (116/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16화

23. ONE(6)

간단한 인사 후,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그럭저럭 알맹이 없는 잡담이 오갔다.

“스테리나인이 컴백했던데요.”

“멋있지 않아요? 칭찬해 주시면 제가 다 전달할게요.”

“노래도 좋고, 퀄리티도 좋고. 준비 많이 해서 나온 것 같더라고요.”

준비 시간이 많기는커녕 개미 눈물보다도 없었지만, 그렇게 보인다니까 정말 다행이었다.

“반응도 괜찮죠? 그 SNS 글 봤는데, 음반 판매로 커리어 하이 찍었다고.”

“어, 맞아요. 음원도 나름 높은 순위였고요.”

앨범 초동 판매 기간이 끝난 지금.

〈너에게〉는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최고 158위, 음반 초동 판매량 2만 8천 장을 기록했다.

음원은 아직 실시간 차트가 새벽까지 운영 중인 시대라서 믿을 수 없는 순위가 나온 것 같다.

아마 새벽 차트 기록 중단이 2018년, 실시간 차트 폐지가 2020년에 이루어졌을 테니까.

‘찾아보니까 기록이 좋아서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앨범은 초동이 아니라 총 판매량이 중요하지 않냐’고 어깃장을 놓는 사람들이 다투고 있더라…….’

아직 음반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도 전이라, 사람들이 초동 판매량 기록도 등한시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에 미처 다다르지 못한 시대가 어쩐지 색달랐다.

하여튼 기록도 팬들의 반응도 좋았다.

〈데프아〉 시기를 잘 타기도 했고, 팬 대상 프로모션 또한 재미있는 게 많았다.

예컨대 앨범 제목 《Letters to》와 어울리게, 팬이 우편으로 보내준 손편지에 멤버들이 손편지로 답장을 보내주는 프로모션 콘텐츠라든가.

이런 건 참여하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멤버들도 오랜만에 국내 팬들을 만나서 신난 것 같았고.’

컴백 주 토요일에는 이영하 생일이었는데, 미니 팬미팅으로 팬들 앞에서 팬미팅을 잘랐다고 한다.

나는 그때 팬이 영하를 찍어준 사진 중 마음에 드는 게 있어서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 두었다.

“아무튼, 요즘 방송국에서 마주치니까 반갑더라고요.”

“멤버들 다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잘 봐주시면 감사하죠.”

특별할 것 없는 스몰 토크였지만, 한편으로는 김미진 PD가 나를 떠보려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그룹을 긍정적으로 여기는지 아닌지 알고 싶어 하는 느낌.

지금은 숨기는 것보다 드러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나는 아끼지 않고, 불편해하지 않고 기꺼이 자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분위기 파악이 끝나면 곧 본론이었다.

“우선……. 데뷔가 무산된 건 유감이에요.”

“뭐, 전부터 불안불안했잖아요. 그냥 이렇게 될 일이었나 봐요.”

“좋게 말해주네요. 고마워요.”

내 말은 PD님의 잘못이 아니라는 의미였고, PD님도 적당히 이해한 것 같았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서 나쁠 게 없는 사람이기도 했고, 한번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김미진 PD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싶더니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내게 말했다.

“제가 의헌 씨 소식을 좀 들었어요.”

“어떤 소식을요?”

“음……. 그룹 복귀를 준비 중이시라는.”

사실 아직 소속사 간 합의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모두가 합의가 안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편견일지 합리적 추리일지 모를 말이 우스워서, 작게 웃으며 물었다.

“소문이 났나요?”

“그건 아니고, 제가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은 긍정.

당연히 스포일러였지만, 대중 상대도 아니고 결정이 안 된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PD님이 내게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려는 상황이면 오픈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오피셜한 말은 아니에요. 정말, 정말, 비공식적인 이야기인데요. 다른 관계자가 아니라 의헌 씨에게 연락을 한 이유도 그래서예요……. 제가 조금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라서요. 물론 편하다는 게 막대한다는 말은 아니고, 무슨 말인지 알죠?”

“아, 알죠, 알죠. 그리고 막 말씀하셔도 돼요.”

“그, 아무튼. 제가 준비해 온 게 있는데…….”

김미진 PD가 내게 파일을 하나 건네주었다.

방송 기획안이었다.

아마 원본까지는 아닌 것 같고, 필요한 정보만 담아 편집한 버전 같았다.

프로그램 제목은 예상했듯 〈밀리어네어 Z 트랙〉, 줄여서 〈밀제트〉.

원래 OTV 공식에서는 〈엠제트〉라고 약칭해 홍보했는데, 말 안 듣는 한국인들은 그저 마음대로 〈밀제트〉 아니면 〈밀젵〉이라고 부르고는 했다.

내가 눈으로 자료를 훑어보자 –기억하는 내용과 차이점이 있는지 대조하기 위해서였다– PD님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게……. 경연 프로그램인데요.”

“서바이벌이고요…….”

“……그렇지만 〈데프아〉 같은 느낌은 아니니까요.”

PD님이 황급히 말씀하셨는데, 그 말대로 〈밀제트〉와 〈데프아〉는 서로 다른 프로그램이었다.

공통점은 무대를 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케이팝 계열 무대.

그리고 차이점은 아마도 그 외 전부였다.

‘하나, 기성 가수 대상이다.’

기획안에는 누가 섭외되었는지 적혀 있지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참가자는 유명한 보이그룹, 걸그룹, 싱어송라이터, 보컬리스트, 인디밴드, 래퍼, 댄서, 커버송 이튜버 등.

반드시 데뷔를 해서 본인의 노래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아니었다.

〈밀제트〉는 그보다 더 확실하고 눈에 보이는 증거를 요구했다.

‘둘, 참가자가 아주 유명할 것.’

프로그램 제목 속 ‘밀리어네어’라는 이름에 걸맞게, 출연자는 ‘백만’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앨범 백만 장 판매…… 는 아직 국내에서 아무도 세우지 못한 기록이라서 일단 차치하고.

구독자 백만 명, 좋아요 백만 개, SNS 팔로워 백만 명, 백만 뷰를 기록한 영상… 어떤 것이든 제한은 없었다.

그러나 백만이면 절대 쉬운 조건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기존 팬층이 어마어마하게 두터워야 출연이 가능하다는 말.

세상에 얼굴을 알린 적 없던 연습생이 절반 이상이었던 〈데프아〉와 비교하면 정반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가지 조건을 우선 요약하자면……. 참가자 풀이 매우 좋다.’

케이팝 팬덤만을 지엽적으로 노렸다가 흥행 성공으로 인해 시청자가 그 너머로까지 확대된 것이 〈데프아〉였다면, 〈밀제트〉는 처음부터 타깃층을 케이팝 팬덤 이상으로 잡았다.

음악 관련 콘텐츠 소비를 좋아하는 10대와 20대, 젊은 사람들로.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았는지 감탄이 나올 만큼 〈밀제트〉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다.

예컨대 보이그룹의 경우 군대로 인한 공백기를 막 끝낸 2세대 그룹이, 걸그룹이라면 십여 년 전 후크송으로 온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멤버 탈퇴 및 교체 끝에 정규 앨범을 막 발매한 2세대 그룹이나 데뷔곡부터 음원 차트 상위권을 기록한 신인 그룹 등이 출연자였다.

‘사실 스테리나인도 이 라인업에 낄 정도는 아닌데…….’

보이그룹 ‘러키세븐’ 선배님들이 결국 출연을 고사한 모양이었다.

왜, 오송민 같은 K14엔터 가수들이 마약 투약 문제로 한번 쓸려나가며 러키세븐 멤버 한 명의 범죄를 물 위에 올리지 않았는가.

그때 그 멤버가 결국 구속되고 그룹에서 탈퇴하며 러키세븐도 일종의 재정비 및 자숙 시간을 가지려는 것 같았다.

‘범죄자 하나 때문에 안타깝다…….’

하지만 우리에게 기회가 돌아온 까닭은 그 공석이 아니라면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 부분을 한번 지적해 보았다.

“첫 방영 날짜가 얼마 안 남았네요.”

“미안해요. 사실 갑자기 생긴 공석이에요.”

……이렇게 바로 실토할 줄이야.

“그런데 너무 막, 땜빵이다 뭐다 생각하지는 말고요. 저희도 많이 고민을 하고, 여러 후보 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말씀을 드리는 거거든요. 다른 출연자들과 컬러나 콘셉트 같은 게 어울리는지, 또 대조되는지. 뭐 그런 기준으로?”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과연 땜빵이 땜빵이 아닌 게 되나 싶기도 했지만, 순순히 들었다.

왜냐하면……. 〈밀제트〉는 스테리나인에게 정말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룹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

원래부터 〈데프아〉 이후 그룹 활동을 한다면 방송이나 단체 콘텐츠 위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

〈밀제트〉는 공중파까지는 아니었지만, KMC와 투톱을 달리는 음악 콘텐츠 위주 케이블 OTV의 방송.

그리고 OTV가 창사 25주년을 맞이해 대대적으로 제작비를 들여 만든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시즌제 방송이 아니다.’

원래 KMC에서 하던 〈라이브 뮤직 채널〉이나 OTV의 음악방송 〈오 마이 트랙 리스트〉처럼…….

매주 새로운 기획이나 출연자로 방영할 뿐만 아니라 시즌 없이 몇십 회는 이어갈 각오로 제작한 방송이라는 거다.

같은 맥락에서 프로그램의 목표도 달랐다.

〈데프아〉 같은 경우는 출연진을 모아 생방송에서 데뷔 그룹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밀제트〉는 경연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콘텐츠지.’

무대를 방송한 뒤 시청자 투표를 받아 하위 팀은 탈락하고, 빈자리는 새 참가자가 채운다.

서바이벌이라고는 해도……. 사실은 꼴찌만 하지 않으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평균 출연자 수명은 두 달 정도지만.’

그러나 그것만 해도 무대를 세 개에서 네 개는 보여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게다가 출연자들이 이미 스타라는 점과 그들의 탄탄한 팬덤이 주는 장점 하나 더.

적어도 〈데프아〉 같은 ‘악편’ 문제는 〈밀제트〉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자극은 오로지 서바이벌의 자극, 그리고 쟁쟁한 출연자가 주는 긴장감 정도.

그렇게 〈밀제트〉는 포맷을 유지하며 몇 년을 방영했고, 후일 OTV의 간판 프로그램으로까지 자리 잡게 된다.

‘이렇게 이를 갈고 만든 방송이라서, 스나도 완전체가 아니면 출연할 수 없을 거야.’

개인이나 세 명 유닛으로 출연하기에는 이름값만 있고 커리어가 없으며, 여섯 명으로 출연하는 것은 방송국에서 바라지 않을 듯하다…….

물론 나도 그건 바라지 않고 말이다.

“……아무튼 이런 기획인데요, 9인 활동으로 출연을 할 수 있는 상황인지가 궁금했어요. 괜찮다면 공식 섭외를 보내고 싶어서요.”

김미진 PD가 내가 아는 내용 및 방송의 장점을 설명하다가 말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내가 대답하기 전에, 선수를 쳐서 한마디 덧붙이기를.

“아, 그런데……. 하나 단점이 있긴 하거든요.”

“……단점이요?”

“저희가 이 방송 참가자들을 〈오렌지 디스크 뮤직 어워드〉, 그러니까 〈오디뮤〉에 특별 무대를 세울 예정이거든요. 물론 영 불가능하면 참여하지 않아도 되지만, 웬만하면 참여하는 쪽이 좋잖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까…….”

이제야 나왔다, 〈오디뮤〉 이야기.

그 말을 듣고 나는 잠시 속으로 날짜를 계산해 보았다.

2주 조금 넘게 남은 기한.

물론 짧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저희 회사로 공문 한번 보내주세요.”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멤버나 회사랑 이야기 빨리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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