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15화
23. ONE(5)
새가 날아오르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아마도 드론을 날려 촬영했을 버즈 아이 뷰의 전경.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철길 근처에는 승객도 기차역도 없었다.
오로지 그 길을 따라서, 철길과 나란히 걷는 사람 한 명.
인물을 가까이 잡으며 바람 부는 소리가 멎고, 노래가 사운드를 채우기 시작했다.
짧은 전주 후 도입 파트를 맡은 주인공은 일 년만에 앨범 활동에 참여하게 된 서드림이었다.
좋은 일이 생길 거야
혼자 되뇌어 보면
변한 건 없고 똑같은 날도
뭔가 달라진 기분
찬 바람을 맞아 발갛게 물든 두 뺨과 얌전하고 작게 움직이는 입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음률과 특유의 단정한 목소리가 만나 훌륭히 곡의 분위기를 소개했다.
본래 스테리나인의 노래는 전력으로 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자극적인 비트에 힘이 넘치는 퍼포먼스, 보통은 도입 역시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고는 했다.
그래서 보통 도입 담당 멤버는 파워풀한 음색과 가창력을 지닌 한이주나, 비주얼로 손꼽히는 김지상이었다.
하지만 이번 노래의 만듦새는 전과 비교해 상당히 조용하고 섬세했다.
따라서 그들보다 힘이 약한 서드림이 시작을 맡아도 어울렸고, 어울리다 못해 흥미를 이끌어냈다.
어제보다 불안하고
많이 속상했어도
어차피 다 지난 일이야
이제 내일이 오잖아
이어서 천진섭의 가창. 에너지를 차근차근 쌓아가는 전개였다.
그렇게 서드림이 길을 걸어 도착한 장소는 지붕에 눈이 덮인 별장이었다.
먼저 도착한 다섯 명이 서드림을 반기고, 첫 번째 후렴까지는 서로 노는 장면이 이어졌다.
Honestly 더 솔직하게
내 마음을 내게 다 보여줄래
후렴은 군무.
장소는 건물 옥상 같았는데, 바닥에는 눈이 얕게 쌓여 있었다.
지금까지는 후드나 니트 등 캐주얼하게 입고 있던 의상도, 장소와 함께 변했다.
아련 콘셉트의 필수 착장이라고 할 수 있는 흰 루즈핏 셔츠 및 청바지로.
비트 자체가 빠르지 않아서인지, 퍼포먼스도 느릿하고 우아하게 춤선을 살리는 방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보기보다는 난이도가 높은 춤이었다.
몸을 곧게 세워 손발을 뻗거나, 허리를 숙였다가 일으키는 동작 등을 소화하려면 힘이 많이 필요했으므로.
Honestly 나에게 말해
나보다 나를 더 믿을 순 없다고
이번 곡의 후렴은 특이하게도 이영하가 뻗어나가고 한이주가 받쳐주는 형태였다.
메인보컬이 둘이라도 느낌을 조금 더 잘 살리는 것은 한이주라서 –밀월의 개인 의견이다– 주로 그 반대였는데.
군무 신이 지나가면, 짧은 복도를 지나 거실로 카메라가 향했다.
거실 TV가 켜지고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며 영상 속의 영상이 재생되는 연출.
‘음?’
아이돌 사진과 영상을 찍다가 촬영 기법 따위도 공부하게 된 밀월은, 곧바로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화면 양옆으로 까만 레터박스가 생기며, 화면 비율이 달라졌다!
정확한 비율을 육안으로 계산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가로가 긴 직사각형에서 정사각형에 가깝게 변했다는 것쯤은 밀월도 보자마자 알았다.
또한 외국 영화 같은 영상에서 홈비디오 느낌으로, 색을 보정한 분위기에도 차이가 생겼다.
눈을 꼭 감아 봐
까만 빈 종이 밑에
펜 끝을 긁어내면 그 아래 무지개
그려내 봐 이제 로맨틱한 미래
강주찬의 랩 파트가 삽입되고, 영상에는 멤버들의 개인 촬영 컷이 등장했다.
장소 배경은 극장, 길거리, 부엌, 책상이 있는 교실 내지 강의실 같은 공간, 침실, 피아노가 있는 빈 방 등……. 개인마다 콘셉트가 서로 다른지 다른 멤버 없이 각자 혼자 시간을 보내는 화면이 지나갔다.
실제로는 길거리를 제외하면 스튜디오 하나를 대관해 열심히 분할해서 찍었지만 말이다.
2절 벌스와 함께 스테리나인 멤버들이 홀로 걷거나, 공부를 하거나, 피아노를 연주하는 등의 장면이 흘렀다.
문제의 사백만 원 추가 예산에는 천진섭이 연주하게 될 피아노 대여비가 포함되었다.
Honestly 더 솔직하게
내 마음을 내게 다 보여줄래
한 번 더 후렴, 멤버들은 여전히 그 장소에 있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캠코더를 들고 옆에서 그 모습을 촬영하는 다른 멤버가 등장하며.
앞에서 뒤를 보며 걸어주거나, 계단 위에서 지켜보거나, 침대 옆, 냉장고 근처, 책상 위 등에 앉아 있거나, 피아노 연주를 들어주며.
‘이때 촬영된 영상이 하이라이트 메들리구나!’
밀월의 깨달음이 순간을 스쳐 지나갔다.
구도를 보아하니 멤버들이 캠코더로 찍은 영상이 하이라이트 메들리에 그대로 쓰인 듯싶었다.
그렇게 거리를 두고 타인과 함께하는 영상이 군무 신과 교차되며 후렴을 채워 나갔다.
실수에 연연하고 성공은 잊지
아쉬움은 오래 가고 기쁨은 짧아
우리 이제 손을 걸고 약속해
Believe me and Let’s go high
프리코러스 대신 들어가는 서난영의 래핑, 그리고 사운드를 풍부하게 채우는…….
고개 들어 날 봐 이제 슬퍼하지 마
언제든 기억해 여기 내가 있어
두 메인보컬의 역량을 한계까지 활용한 고음 애드리브 화음.
밀월로서는 짜릿하면서도, 라이브가 가능할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Honestly 나에게 말해
아무도 나를 흔들 수는 없다고
마지막으로 코러스가 반복되고.
또 새로운 장소, 별장 근처인 듯한 실내에서의 군무 및 얼굴 클로즈업 쇼트가 이어졌다.
아련함에 감동 코드까지 적절히 섞어 음악은 마무리되어 갔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정한 웃음, 따스한 분위기로.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여섯 멤버의 뒷모습.
그대로 카메라가 점점 멀어져 가며 영상이 끝났다.
‘워어어…….’
밀월은 악기나 작곡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그다지 없었으므로 즉각 받은 느낌으로 곡을 판단했다.
정말로, 진심을 담아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그녀도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야 멤버들은 언제나 예쁘고 잘할 테지만, 온갖 불한당들이 스테리나인을 욕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황이라서 말이다.
그런데…….
‘깔끔하다!!’
밀월은 손으로는 빠르게 툿투 ‘음원총공팀’ 계정이 만들어준 원클릭 플레이리스트를 스마트폰 공기계에 스트리밍 어플마다 저장하며 생각했다.
멤버들의 공석을 구질구질하게 그리워하지 않으나, 묘하게 단단하며 힘이 넘치는 기존 음악 스타일은 충실하게 이어오고 있고…….
굉장히 트렌디한 소재를 가져왔지만, 누군가의 아류작이라든가 흔하다는 느낌은 또 들지 않는 데다가.
솔직하며 공감 되는 가사에 겨울 내내 들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보컬 위주 음악.
강렬한 춤이나 빠른 래핑을 곡에서 제외하는 등, 빠진 멤버들의 특기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면까지.
최대한 빈자리를 가리려고 하되 그들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지는 않는 셈이었다.
밀월은 어디 가서는 말하지 못할 요소를 하나하나 분석해 보려다가 대충 중단했다.
이 노래가 취향을 저격한 까닭은, 깊게 들어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노래가 너무 좋았으니까!
만다륜은 역시 만다륜이었고, 강주찬의 프로듀싱 실력도 상상 그 이상이었다.
며칠 전에 첫 싱글 앨범을 발매한 〈데프아〉 출신 채호원도 중소기업 출신 치고는 엄청 돈을 부은 티가 나는 곡을 들고 나와서, 밀월은 최애와의 친분이고 뭐고 속으로 살짝 견제하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래, 〈Clearance〉는 나중에 음방에서 만나서 챌린지나 해다오……. 춤 섹시하니까.’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 채호원 솔로 데뷔곡 멜로디를 잠시 상기해 보다가, 밀월은 다시 〈나에게〉에 집중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떠오르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있었다.
‘……이거 이지리스닝 아니야?’
스스로도 다소 헛소리 같다고 느끼며, 밀월은 수록곡 재생을 시작했다.
그렇게 십 분쯤 지났을 때.
‘아…….’
기분이 너무 고조되다 못해 고점을 찍어서 그는 불현듯 침착해졌다.
생각이 다다르면 안 될 곳까지 다다르고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다.
‘어떡해? 정의헌 보고 싶어…….’
며칠째 연락이 없는, 그러나 이 며칠의 부재는 이제 시작일 게 분명한 최애 생각이 문득 그의 마음을 쥐어짰다.
그는 정의헌이 돌아오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았고, 어떻게 사는지 소식이나 듣고 싶었다.
〈데프아〉 때문에 SNS 사용 등이 금지되었다가 다시 풀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소식이 없는지…….
지난 두 달 동안 소통 허용으로 신나서 매일매일 놀러오던 것에 길들어버린 탓에, 지금은 지나치게 허전했다.
‘언제쯤 볼 수 있을까…….’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새벽이었다.
* * *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 최종 승자 데뷔 그룹인 에이레가 해체 절차를 밟았다.
종영 후 약 세 달만에 결정된 일이었다.
‘빨랐지만 길었다…….’
공중파 뉴스에서도 이 일을 연일 보도했고, 더러 에이레를 두고 접대로 만들어진 그룹이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에이레가 차세대 보이그룹으로 떠오르리라고 여기고 견제하는 사람과 에이레 팬덤 유어와 그냥 남자아이돌은 다 싫어하는 사람들 및 주식 하는 아저씨들,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슈라니까 말 얹는 사람들까지 뒤섞여서 요 며칠 대한민국 온라인 커뮤니티는 어디를 가도 구정물 용광로 같았다.
‘뭐, 그것도 해체했으니까 다 의미가 없지…….’
게다가 우리 ‘어나더즈’ 셋의 경우, 예전에 KMC에서 어나더뮤직을 접대 거부를 사유로 출연 정지시켰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서 말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는 악편 이슈와 KMC 내부 고발에까지 얽혀 ‘원래 KMC에서는 어나더뮤직 연습생들을 미워했는데, 내부 고발자들이 후반에 힘을 써서 겨우 이미지 수복한 것’이라는 인식을 얻었다.
‘제법 예리해?’
하여튼.
에이레는 끝났고, 소속사들은 논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스테리나인은 새 앨범 활동을 시작했고…….
나는 어나더뮤직으로 돌아왔다.
아직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SNS 및 소통 어플 사용은 금지 상태.
나중에 한 번에 올리려고 셀카나 찍으면서 며칠이나 기다렸을까.
간만에 김미진 PD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니 시간을 내줄 수 있냐는 내용이었는데…….
“장소 알려주셨을 때 저 깜짝놀랐어요.”
“아, 미안해요. 역시 제가 찾아갔어야 했는데.”
“아뇨, 위치는 괜찮은데, 바깥보다는 편한데요. 그것보다는…….”
나의 현위치.
OTV 본사 사무실……. 옆에 딸린 회의실.
“……PD님 OTV로 이적하셨어요?”
“정확히는 외주 제작사로 옮겼는데요, 이번에는 연결이 어떻게 그렇게 됐네요.”
설마설마했는데 여기 도착해서 사람들이 하는 일을 슬쩍 보니까 감이 왔다.
방송 출연 이야기일 거다.
〈밀리어네어 Z 트랙〉.
그리고 〈오렌지 디스크 뮤직 어워드〉.
‘일단……. 들어보기부터 할까.’
대체 왜 회사에 연락하지 않고 나 개인을 불러낸 건지도 아직은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왔다면, 거의 다 온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