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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14화 (114/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14화

23. ONE(4)

길다면 긴 정적 겸 미묘한 눈싸움 끝에 어나더뮤직 대표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구나.”

“불가능할 수도 있겠죠, 에이레 활동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에이레 공식 해체와 논의 종료까지 남은 기한은 정말 몇 주 남짓이며, 그에 따라 스테리나인 활동 시기와 에이레 멤버들의 소속사 복귀 시기가 겹칠 수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대표님도 알았다.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회사의 거의 모두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도.

우리는 인지하고 있었다.

대표님은 내게 즉시 단호하게 거절을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안 된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표정으로 이유를 물을 뿐이었다.

“혹시…….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아…….”

잠시 고민했다.

이유가 있다. 있긴 했다.

상태창이 알려준 정보라서, 〈오디뮤〉에 참여해야 한다거나.

이 시기를 일 없이 넘긴 기억이 꽤나 뼈아파 이번 삶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다거나.

결국 합류해야 한다면 나나 스테리나인 화제성이 가장 높을 때 이슈를 몰이하고 싶다거나.

내 그룹을 무시하는 사람에게 내가 스테리나인을 아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프다거나.

하지만 지금은 그런 비밀이나 들끓는 마음이나, 계산이나 오기까지는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TPO에 맞는 발언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보다 단순한 것.

무엇보다 와닿기 쉬운 마음을…….

“저는…….”

고르고 골라서 표현해야 했다.

“……무대에 서고 싶어요. 빨리, 사람들 앞에서.”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것 이야기를 하자.

어차피 대표님도 다른 계산을 하지 못하는 분이 아니었다.

나는 몇 번이나 길게 보고 싶다고 말했고, 장기적으로 생각했을 때 빠른 복귀만큼 좋은 게 없었으므로.

이러나저러나 대표님이 질문한 내용은 내가 이렇게까지 속도를 고집하는 까닭이었다.

그렇기에 솔직한 고백만큼 명확한 대답은 없었다.

“…….”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입을 다물었고, 그 후 조용함은 몇 초 정도 이어졌다.

“……그렇구나.”

그 이상 말은 없었다.

사실 괘씸하게 혹은 어리광처럼 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표님은 의외로 순순히 경청해 주었다.

오히려 내 말을 듣고 너무 깊게 생각하는 태도여서, 잘못 말하거나 너무 건방졌는지 반성이 되기까지 했다.

“알았어, 그래. 정리는 내가 할 테니까 먼저 나가 봐.”

“아, 정리라면 제가…….”

“아냐, 아니야. 내가 할게.”

반사적으로 나섰다가 거절이나 당했다.

그래서 인사하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 대표님이 손짓과 함께 나를 불렀다.

“야, 의헌아.”

“예.”

“아니……. 그, 힘내라고.”

왜 요즘 이런 말을 이렇게 자주 듣는지 모르겠다.

평소처럼 멀쩡하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좋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이런 말도 해주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간주하며, 나는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다시 감사합니다.

이 인사말이 주는 딱딱한 느낌이……. 내게 미묘하게 신인 때로 돌아간 기분을 들게 했다.

그대로인 것 같았던 많은 것이, 끊김 없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 * *

스테리나인이 컴백했다.

자정, 이튜브에 뮤직비디오 공개 및 스트리밍 사이트에 음원 릴리즈.

앞으로 한 달만 지나면 오후 여섯 시에 컴백하는 시대가 올 테지만, 미래는 그 미래까지는 몰랐다.

‘너무 늦어! 하지만 난 생활 패턴이 망했으니까 상관없다.’

방학을 맞은 대학생은 나태하기 짝이 없었다.

새벽 세 시까지 즐기고 잘 각오를 마치며, 밀월은 컴퓨터를 틀어놓고 대기했다.

그녀는 그럭저럭 잘 지냈다.

숨 쉴 때마다 퀴즈폼 사이트를 통해 악성 익명 질문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알 바인가.

– 의헌이 소식 보려고 구독한 사람들 배려 좀 해주세요 스나멤들 사진 계속 보는 거 너무 힘들어요

– ㅜㅜ 밀월님 차라리 걍 다른 아이돌 입덕하고 새 계정 파시면 안돼요?

– 님 최애는 지금 에이레 소속 아닌가요 왜 ㅅㅌㄹㄴㅇ 얘기만 자꾸 하시는지,,

팔로워도 몇 주 사이에 오백 명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봤자 팔만 명이었다.

그는 가끔 비공개 계정에 한탄할 뿐 본계정에서는 하급 어그로들에게 질문 답변조차 해주지 않았다.

웃음꽃피자 : ) ???? @juhbapmura

내가 무려 “레디공식1기”라는것을 알게되면 놀라자빠질사람이 너무많다

웃음꽃피자 : ) ???? @juhbapmura

에휴 지들갠팬이라고 남도 다 개인팬인줄 아나봐

이보세요 저 스테리나인,팬,레디,의헌최애,라고요

또한 그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스테리나인의 컴백 소식을 이 악물고 기다리고 있었다.

느낌이 좋았다.

멤버가 삼 분의 일이나 빠져서 허전하기는 했지만, 퀄리티 면에서는 기대 이상.

수수한 콘셉트에 비해 화려한 컨셉 포토가 첫 등장한 그 순간부터 밀월은 컴백을 기대했다.

컨셉 포토는 소품을 많이 쓰고, 장소도 여러 개에 의상까지 아낌없이 쓴 데다가 사진도 밝고 예쁘게, 과한 보정이 없었다.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준비 과정 비하인드를 담은 자체 콘텐츠가 이튜브에 올라왔다.

하이라이트 메들리와 티저도 감탄만 나왔다.

트랙 리스트가 공개되었을 때부터 타이틀 곡이 강주찬과 만다륜(외 여러 프로듀서들)의 공동 작업이라고 해서 흥분으로 기절할 것 같았는데, 비트 뽑아놓은 것을 들으니까 전에 없던 ‘부내’라는 것이 느껴졌다.

‘돈 많이 썼나 봐, 이번에…….’

앨범에 수록된 전곡의 일부분씩을 모아 메들리 영상으로 만들어놓은 콘텐츠, 하이라이트 메들리는 심지어 앨범 포토북 내지를 이어붙인 영상이 아니라……. 무려 따로 촬영해 제작한 영상과 함께였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찍은 핸디캠 영상이었는데,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의 멤버들 모습이 담겨 있었다.

영상 보정도 화사하게 잘 되어서, 곧잘 흔들리거나 초점이 엇나간 순간까지도 어떤 영상 기법처럼 와닿았다.

당연히 밀월은 티저 이미지와 영상이 하나하나 공개될 때마다 온 타임라인에 꽹과리를 치며 좋아했고, 그것은 진실로 수십 개의 익명 질문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난리법석이었다…….

‘진짜 명곡일 것 같다는 감이 온다.’

밀월은 원래 스테리나인에게 노래로 실망해 본 적 따위 없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더 심장이 두근거렸다.

최애가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좋아한다는 게 약간 죄책감이 들 만큼, 지금까지는 마음에 쏙 들었다.

‘……정의헌…….’

이쪽은 반면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미쳐 버릴 것 같아서 생각을 일부러 차단한 감이 있었다.

에이레의 데일리 라이브 방송은 2주를 꽉 채우고, 멤버들 자체적으로 사흘을 더 추가해 끝이 났다.

그리고 에이레 공식 계정은 이후로 아무런 게시물도 올리지 않았고, 멤버들도 소통을 금지당했는지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

들리는 말이라면야 많았다.

아예 에이레 숙소 계약을 해지했다고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말, 에이레 데뷔곡으로 작업하기로 예약한 노래를 작곡가가 다시 돌려받았다는 말, 도망다니던 K14엔터 대표가 드디어 잡혀서 법정 서기 직전이라는 말, 요즘 K14엔터에 출근하는 직원이 없다는 말, 연습생들도 다 쫓겨났다는 말…….

KMC의 〈데프아〉 총괄 PD는 유죄 판결이 이미 나왔다고도 하고, 두 회사 다 주가가 폭락해서 주주들이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느니…….

‘5년 활동 루머는 정말 해프닝이 되어버렸네. 하긴 이제 데뷔도 못 하게 생겼으니…….’

그 외에 연습생들 소속사끼리 합의가 어려울 것 같다는 루머도 있었다.

‘재결합은……. 어나더뮤직이 합의를 안 해준 건가?’

지금까지 일 처리를 보면 오히려 저 회사는 눈치 봐서 합의해 주려고 할 것 같은데, 밀월이 생각했고 정답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반대로 생각하겠지만…….’

밀월로서는 ‘이미지에 손상 입으면 어나더뮤직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싶기도 했다.

아무튼 확실하지 않은 정보 확실하지만 흉흉한 정보가 요사이에는 지나치게 많았다.

‘사생이 뿌리는 정보도 자꾸 퀴즈폼으로 들어온다고!!’

그런 정보는 사람들에게 공유하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질문함 주인인 밀월은 볼 수 있었다.

정의헌이 요즘 어나더뮤직 사옥을 오간다는 이야기, 그가 에이레 멤버들과 밥 먹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 쇼핑하러 백화점에 가면 그 백화점 간 사진…….

‘온 세상 사람들이 주시하는 것과 별개로 사생도 늘었어.’

새해가 밝기 직전 온갖 포털에서 정의헌을 두고 무슨 ‘올해를 빛낸 라이징 스타’라고 불러주어서, 밀월이 좋아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일거수일투족 다 남들에게 보여지고 그 소식이 직접 들어오니 접하는 이가 다 피곤해질 지경이었다.

〈데프아〉로 최애가 유명해진 처음에는 마냥 좋아서 밀월도 이 소식 저 소식 퍼 날랐지만, 슬슬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니, 저 사생들 심지어 최근에 너무 의기양양해졌어.’

K14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와 직원들이 접대에 마약 투약 혐의로 하나씩 걸려 나오고 있을 때 일이다.

툿투에 익명으로 계정을 만든 어떤 사생이, 자신이 본 일이라며 업로드한 사진이 몇 장 있었다.

바로 늦은 밤 정의헌이 트로트 가수 오송민을 택시 태워서 보내고 자신은 숙소로 가는 모습을 담은 도촬 샷.

그 계정 주인은 ‘자신은 사생이 아니고 그날 마침 근처에 에이레 멤버 생일 카페 열려서 그냥 지나가다가 본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그건 누가 봐도 허울만 그럴싸한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그 사진이 하필 정의헌 및 에이레 멤버들의 무죄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 자료 중 하나가 되어버린 거다.

사진은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 이리저리 유통되고 소비되어, 사생은 이상하게 정당성을 얻어버렸고.

‘……이게 다 서방님이 위기의식 없이 사생들한테도 젠틀한 게 문제다.’

물론 대화하고 친목하는 수준은 아니고, 숙소 앞이나 회사 앞까지 오는 사람에게도 험하게 굴지 않는다는 의미다.

별개로 공항에 주차장까지 따라오는 팬들은 사생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지만……. 스나 멤버들 전부.

그들이 빠혐의 쌍비읍은 물론 비읍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부작용이었다…….

‘음~ 몰라~’

밀월은 ‘정의헌 보고 싶다’로 넘어갈 것 같은 사고의 흐름을 가까스로 끊어냈다.

아무튼 자정 종이 치는 그 순간이면, 스테리나인 컴백 활동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바로 지금.

【스테리나인(STARRYNINE) - ‘나에게(Honestly)’ M/V】

썸네일은 언제나처럼 어나더뮤직의 자부심을 가득 담은 멤버 얼빡샷이었다.

이번에 클로즈업 컷을 맡은 멤버는 의자에 상체를 기대고 웃고 있는 서난영.

생각이 뛰어오르는 동시에 손이 움직였다.

‘떴다!’

밀월이 마우스를 쥔 손을 움직여, 빠른 속도로 뮤직비디오를 클릭했다.

그리고, 눈이 하얗게 덮인 철길이 화면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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