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13화
23. ON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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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웃음만 나오는 민망한 일이 있었다.
대표님께 대화를 요청하고 직원분들 회의 끝나는 것을 기다리는데, 밖에서 대화 소리가 다 들리는 것 아닌가.
‘맞다, 이번에 뮤직비디오 제작부에서 예산 조금 오버될 수 있다고 연락이 왔어요. 추가 내역서가 들어왔는데, 문제는 한두 푼이 아닌 것 같아서요. 이 부분 저희가 승인해도 될까요?’
‘얼마나 더 필요하다는데?’
‘지금 촬영에 들어간 상태라 아주 심각하게 많은 건 아니고요, 삼백에서 사백 정도요. 3일 차에 촬영 오브제 두 개 추가하고 후반 작업할 때 편집 인력을 확충하는 게 목적이라고 하더라고요. 거기 내역서 보시면 다음 페이지에요, 네, 거기. 나와 있어요.’
‘아, 사백 정도면 그냥 진행시켜. 난 또 갑자기 몇천 필요하다는 줄 알았네.’
‘대표님……. 요즘 좀 버신다고 너무 자만하십니다.’
그런 식으로 노골적인 돈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상황, 나는 그 희미한 대화 소리를 BGM 삼아 휴게실에서 밥을 먹는 중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와서 간단하게 커피에 샌드위치로 해결하는 점심.
그런데 회의실에서 들려오는 내용이 너무 흥미진진해서, 나도 모르게 점점 집중하게 되었다.
‘확실히 요즘은 예산에 여유가 있어서 숨이 좀 트이네요…….’
‘그러니까요, 물론 시간은 요즘도 너무 없지만…….’
그러면서 나온 이야기는, 이번네 우리가 〈데프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덕분에 소속사 이름값이 높아져 투자나 대출을 받는 것이 무척 쉬워졌다는 말이었다.
‘그렇구나’ 싶으면서도 흥미로웠다.
나나 김지상, 안승준 모두 개인 활동으로 인한 수익은 아직 한 푼도 없었다.
‘그런데 〈데프아〉 출연 및 마무리 자체가 회삿돈 움직임에 도움이 되었다니……..’
참 신기한 비즈니스의 세계다.
‘그런데 우리 예약 구매 현황 보면 스타트가 좀 좋아요.’
‘그러게 말이야. 나름 스나도 주목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사람들이.’
‘긍정적인 반응도 있고 부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사실 걱정하던 것보다는 덜해요.’
듣기 쑥스러울 때마다 포크를 갉작이다가 정신을 차리니까 샌드위치가 다 조각나서 빵 샐러드가 되어 있었다.
물론 원래부터 좋은 게 좋은 거라고는 하지만, 내가 없는 데서까지 좋게 말해주니까 처음에는 나 몰래 무슨 촬영이라도 하고 있나 의심했을 정도다.
‘부정적인 반응 쪽은 어떤가요?’
‘〈데프아〉 이슈 해결할 때지 무슨 아이돌을 컴백시키냐는 반응부터, 차라리 기다려서 다 같이 나오라는 반응도 있고요, 왜 물은 이쪽에서 들어오는데 저쪽에서 노를 젓고 있냐는 의견……. 전체적으로 흐름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서로 부딪히는 경향이 강합니다.’
‘기존 팬덤 모니터링 결과는요?’
‘일단 드림이 활동 복귀 반응이 제일 좋고요, 지금까지 공개된 아트워크 반응도 좋은 편이에요.’
뭐라고 해야 하나……. 에너지가 넘치는 회의였다.
그냥 좋은 말을 하는 게 다가 아니라, 분위기 자체가 좋은 느낌. 사실 꽤 오랜만이고 낯설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나더뮤직 직원분들은 –지금 모인 임원급 선생님들이든 아니든– 지금까지 이런 분위기였던 적이 딱히 많지 않았다.
사고를 수습하느라 한밤중까지 야근하시거나, 늘 눈 밑에 다크서클을 달고, 오후가 되면 휴게실에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 계시거나, 갑자기 며칠 후에 퇴사한다고 내게 알려주시거나, 아니면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퇴사하시는 등……. 그런 식으로 매우 힘들게 일하는 모습만 봐왔는데…….
‘아트워크 반응 조금 더 알려줄 수 있어?’
‘대기업 아이돌만 좋아하다가 처음 중소기업 아이돌 좋아하니까 퀄리티 차이가 실망스럽다, 왜 이렇게 서둘러 준비해서 나오는 느낌이냐……. 이런 말도 있었네요. 반대로 오랜만에 역대급 퀄리티가 나왔다는 의견도 있어요.’
‘역시 티저랑 뮤직비디오가 제일 중요하겠네. 오늘 촬영이 잘되어야 하는데…….’
‘애들 얼굴이야 늘 열일하니까요, 저희 아직 공개 안 된 콘텐츠도 많고. 솔직히 전망은 좋습니다!’
다들 기분도 좋아 보이고 훔쳐 듣기에 재미있는 말이 많아서, 나중에는 얌전히 집중해서 경청했다.
내 칭찬이든 멤버들 칭찬이든, 말씀 한마디씩 한마디씩 어깨가 점점 으쓱으쓱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그렇게 직원 회의 자리가 적당히 마무리되고 난 뒤.
나는 그제야 대표님만이 남은 회의실에 입장할 수 있었다.
‘조금 긴장되는데…….’
사실 내가 이렇게 대표님께 직접 상담을 요청한 적은 손에 꼽았다.
그것도 큰 사건 따위가 발생했을 때나 긴급하게 말씀드렸던 거지, 이렇게 한낮에 여유롭게 대표님과 대화하는 일은 거의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최근 대표님과 말을 섞은 것도 지상이가 〈데프아〉 3차 경연 때 쓰러진 직후였으니까……. 그렇다.
노크부터 하고 들어서며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 나는 대표님 맞은편에 앉았다.
간단히 서로 안부를 묻고 격려도 좀 들은 다음에 우리 대화는 곧 본론으로 향했다.
“괜찮으시다면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어서요.”
“……부탁을?”
“예, 음……. 다른 일은 아니고, 제가 요즘 주찬이를 도와서 작업 중인 타이틀을 듣고 피드백도 해주고 있거든요.”
그렇게 나는 먼저 어제 전화로 주찬이와 나누었던 대화를 대충 요약해서 대표님께 말씀드렸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생략하고, 주찬이가 준 레퍼런스를 살펴보니까 CK미디어 소속 프로듀서 ‘만다륜’이 우리 타이틀 곡과 색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 위주였다.
“후반 작업에 약간만이라도 그분께 검수를 받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흠, 만다륜 씨……. 주찬이가 무슨 의미로 지목했는지는 알겠네.”
“그렇죠, 저도 꽤 스타일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을 어떻게 데려오느냐가……. 흐음.”
대표님이 곤란한 낯으로 생각에 빠졌다.
이게 바로 내가 혼자 해결책을 찾아보지 않고 대표님을 찾아온 까닭이었다.
만다륜은 CK미디어 대표와 오랜 친구고, CK미디어의 신인 걸그룹 총괄 프로듀싱을 맡아서 다른 아이돌 곡은 이제 사실상 작업하지 않는다.
외주로 프로듀싱을 하더라도 친분이 있는 래퍼에게 힙합 비트를 만들어주는 정도일 뿐, (오피셜은 없었지만) 누가 봐도 당분간 보이그룹 작업은 요원한 프로듀서였다.
‘즉, 웬만한 카드가 없다면 그 사람을 이쪽으로 끌어올 수는 없다는 의미야.’
그만큼 희소성은 있었지만 말이다.
하여튼, 그래서 내가 생각한 방법.
CK미디어 대표의 요청으로 보이그룹 작업을 중단했다면, 같은 방법으로 재개하도록 만들면 된다.
“……여기 보시면요.”
나는 가방에서 클리어파일을 하나 꺼냈다.
열심히 만든 자료는 아니고, 채호원-정리법을 사용한 관계도표였다.
대표님은 조금 놀라신 듯도 했지만, 내가 건넨 종이를 보고 금방 집중하기 시작했다.
“에이레 멤버 중에 송수민이라고 개인 연습생이 한 명 있어요.”
여기서부터는 내가 K14엔터테인먼트에 잠입해 소속 연예인이나 직원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탐문해 얻은 정보였다.
송수민은 개인 연습생이었으므로 에이레 계약을 맺으며 K14엔터와 개인 전속 계약을 하나 더 맺었다.
그리고 이는 데뷔하면서 한 것이 아니라 파이널에 진출하면서, 즉 20위 안에 들어서 하게 된 계약이었다.
‘연습생 계약이 아니라 아티스트 계약.’
듣자 하니 이런 계약 행태는 비단 〈데프아〉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고, 그전에 KMC에서 주최한 서바이벌 전반에서 발생한 일이란다.
예컨대 오송민이 참여했던 〈나는트롯맨〉이라든가 그 두 번째 시즌 〈나는트롯우먼〉에서도 파이널 진출자들은 K14엔터테인먼트와 아티스트 계약을 체결했다.
그렇지만 K14엔터는 계약을 해놓고 활동을 시켜주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기약 없이 시간만 보내게 했고.
‘다른 회사로 이적도 못 하게 하고, 그렇다고 해서 데뷔 일정을 잡아주지도 않았다더군.’
게다가 나도 그 ‘아티스트’들을 한 달 넘게 K14엔터 사옥 출근하며 코빼기도 본 적 없으니까…….
글자 그대로 방치된 셈이다.
또한 막대한 위약금을 지불하고 이미 회사를 나갔다는 사람도 여러 명 있다고 들었다.
어쩌면 K14엔터는 처음부터 그 위약금을 받아먹기 위해 탈락자들과 계약을 한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수민이랑 이야기해 보니까 그게 부당 계약일 가능성도 있는 것 같아서요.”
계약서 내용까지 직접 살핀 건 아니지만, 송수민과 대화를 나누며 대충 대조해 보기는 했다.
녀석이 한 계약은 내가 어나더뮤직과 맺은 아티스트 계약과 내용 차이가 크고, 대강 들어도 이상한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어나더뮤직 계약은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전속계약서와 거의 동일하므로…….
송수민의 아티스트 전속계약은 부당계약일 가능성이 몹시 높았다.
노하우만 있다면 소송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
어나더뮤직은, 아니……. 정확히 말해 어나더뮤직의 법적 문제를 늘 도맡아 해결하는 ‘법무법인 바름’은 그 노하우가 있고 말이다.
또한 법무법인 바름의 대표는 어나더뮤직 대표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CK미디어에서는 이 연습생을 영입하고 싶어 하는 상황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나 송수민의 계약 트러블까지 해결하기에는 CK미디어도 참 바쁘고 겨를이 없을 테다.
CK미디어는 〈데프아〉 기간 내내 잠잠했을 만큼 고소 공지도 잘 올리지 않는 소속사니까.
“물론 수민이도 다른 소속사보다는 CK미디어로의 이적을 원하는 상황이고요.”
결론은 그거다.
송수민의 계약 트러블을 해결해 주는 식으로 CK미디어를 지금 한번 도와주고, 소속 프로듀서 만다륜의 프로듀싱을 받아오는 것.
지금 CK미디어 걸그룹이 막 컴백해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아마 프로듀서 입장에서는 조금 여유가 있을 테다.
나는 조사 내역과 상황에 관해 질문하는 대표님의 말씀에 대답하는 식으로 대화를 더 이어간 뒤(대표님은 이 일을 돕는 대가로 만다륜의 프로듀싱 조언 이상의 이득을 얻고 싶은 듯했다), 긍정의 답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거 시간 별로 없지 않아?”
“예, 그건 그렇죠.”
“하지만 계약 일은 차근차근 처리하고, 프로듀싱 조언부터 받아올 수는 있으니까……. 그래.”
대표님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 논의 한번 하고 연락해 볼게. 당장 진행해도 하루 이틀은 걸릴 거야. 주찬이 의견도 따로 들어야 하고.”
“……네, 감사합니다.”
“아, 의헌아.”
그렇게 대화를 정리하고 일어서려는데 대표님이 문득 나를 불러세웠다.
“이번에 광고나 화보 요청이, K14엔터에서 응답 없다고 우리 쪽으로 계속 들어오거든. 그쪽 일 끝나면 자료 넘길게.”
“앗, 네.”
“그리고 팬미팅도 한번 해야지.”
음?
이 제안에는 이해하기 위한 로딩 시간이 필요했다.
“……개인으로요?”
“대관처 사정 봐서 세 명으로 잡힐 수도 있고.”
……어.
나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가.
생각해 보니까 언제 돌아가고 싶다고 언급을 따로 안 했던 것……. 같다?
그야 활동을 병행하면서 팬미팅도 할 수는 있겠지만, 대표님은 그걸 생각하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입을 애써 열었다.
“대표님, 저…….”
“응?”
“……잘되면 이번 활동 중도 합류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은 말을 잃었고, 나는 대답을 기다렸다.
회의실에 침묵이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