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12화 (112/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12화

23. ONE(2)

* * *

다음 날, 어나더뮤직 사옥 회의실.

오랜만은 아니고……. 여느 때처럼,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 중이었다.

오늘은 대표나 부대표, 이사, 본부장, 팀장급 직원들이 모여 간단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심지어 팀도 전부를 부른 것이 아니라 매니저팀, 마케팅팀, 뮤직팀, 콘텐츠팀, 관리팀 정도.

사람 수만 따지면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도 팀이 제대로 나뉘고 업무 구분이 역시 나름대로 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회사가 그래도 안정기에 접어든 셈이라고 최 이사는 생각했다.

창사 당시 최 이사가 가수 녹음 지도하다가 매니저 일도 하고, 부대표가 안무가를 직접 차 태워서 회사에 데려오던 것을 회상하면 정말이지 장족의 발전이었다.

하여간.

오늘 회의의 주제는 스테리나인의 일곱 번째 미니앨범 및 기타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에 관한 잡담이었다.

“정인 팀장님은 그러면 끝나고 다시 촬영장으로 가시는 거예요?”

“그렇죠. 애들 점심시간 되면 급식차 제대로 돌아가는지 보러 가야 돼요.”

이미 새벽에도 –최 이사와 함께– 뮤직비디오 촬영장을 다녀온 임정인 매니저팀 팀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촬영장이 한 시간이면 오가는 경기도 인근이기는 했지만, 보통 수고가 아니었다.

‘다들 노력하고 있는 거야.’

최 이사는 마음을 다잡으며 회의를 이끌어갔다.

전체적인 발표를 먼저 한번 하고, 미처 몰랐던 사실에 관해서도 안내를 받았다.

우선 스테리나인.

앨범 제목은 《Letters to》에 타이틀곡 제목은 〈나에게(Honestly)〉로 최종 확정되었다.

“주제를 잘 잡았다고 생각해요. 멤버들도 다 같이 모여서 대화를 되게 많이 하더라고요.”

“자체 프로듀싱이라는 거, 저는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잘하더라고요?”

“이런 스타일은 아무래도 또 남에게 다 맡기기도 애매해서 그런 것 같아요. 진솔함? 이런 게 포인트니까.”

“주찬이가 그래도 아는 프로듀서들이 조금 있나 봐요. 크레딧에 올리겠다는 이름이 많더라고.”

맨 처음에는 타이틀곡 감상이 칭찬으로 한번 깔렸다.

“그래도 고쳐야 할 부분이 더 있는 것 같은데…….”

“완성도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좀 그렇죠?”

“실제로 계속 고치고 있으니까요. 주찬이가 걱정이죠. 혼자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서.”

“그래도 의헌이 빈자리가 좀 커, 그치? 아무리 애들끼리 연락을 자주 해도.”

물론 걱정도 존재했다. 각자 한마디씩 말하면 적지는 않은 수준이었다.

“아홉이 다섯이 되니까 확 줄었다는 느낌이 바로 오지. 그건 어쩔 수가 없어.”

“해외 나갔을 때는 어땠어요?”

“일부러 일정 넉넉하게 잡아서 간 건데, 다들 많이 힘들어하더라.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터놓고 말하면……. 결원 있는 채로 투어는 두 번 다시 진행하고 싶지 않습니다…….”

해외 투어 현장을 다녀온 이들의 반성 또한 이어졌다.

“드림이 상태는 어때요?”

“걱정에 비해서는 잘 참여하고 있어요. 본인도 많이 노력하고……. 멤버들이나 매니저들도 신경 많이 쓰고요.”

“참 드림이도 너무 애기 때부터 봐서 그런지 안쓰러워.”

“그러니까요, 괜히 억지로 무리하는 거 아닌가…….”

서드림은 결국 회사 및 멤버들과의 기나긴 논의 끝에 앨범 활동 참여를 결정지었다.

건강에 이상신호가 오면 바로 휴식하고, 형편이 곤란하면 아무쪼록 쉬어가기로.

손가락 걸어 약속하고 도장까지 꼭꼭 찍을 기세로 진솔한 합의를 한 뒤, 서드림은 마침내 고향집에서 챙겨온 캐리어의 봉인을 전부 풀었다.

그렇게 활동 중단 종료를 공지하자 기뻐하는 사람이 많았다. 다행히도.

“본인 의지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죠. 할 수 있다는데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저희 욕받이 되는 건 상관없다지만……. 아휴, 피곤한 일 좀 그만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욕 엄청 먹을 거야, 우리.”

마지막 순서에, 확신에 차 말한 것은 어나더뮤직 대표였다.

아까부터 대화에 끼어들고는 있었지만, 그전까지는 분명 편안한 분위기였는데…….

난데없는 단호한 어조에 모두의 시선이 대표에게로 모였다.

“진짜로. 각오하고 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 모두 다.”

“역시 그룹 합류 반대가……. 심할까요?”

“프로젝트 그룹이 기간 채워서 좋게 마무리된 게 아니니까……. 당연히 그렇겠지.”

최근 어나더뮤직 대표나 부대표, 이사는 몇 번이고 ‘에이레’ 멤버 개인 소속사 사이의 대책 회의에 참여했다.

원래는 K14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까지 다 불러모아서 앞으로의 계획을 들으려고 자리를 마련했는데, K14엔터 관계자가 무통보로 다들 결석해버려서 말이다.

하릴없이 목적을 잃고 마치 끈 떨어진 뒤웅박처럼 방황하던 그들은 결국 저들끼리 대화에 나섰다.

정말 이렇게 K14엔터테인먼트가 매니지먼트 업무에서 손을 떼어버린다면, 그 대응책에 관해서.

그러나 의견은 좀처럼 한 점으로 결론을 맺지 못했다.

‘저희 애들을 빼 오려면 저희가 위약금을 내야 한다고요?’

‘아니, 위약금을 먼저 지불하고 그다음에 소송을 걸자는 거죠. 시간을 막 보낼 수 없으니까.’

‘우리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위약금을 내야 돼요?’

그 회의는……. 그냥 처음부터 모든 대화가 손발이 맞지 않았다.

이런 논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나더뮤직은 나름대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멤버들에게 이미 돌아가서 활동할 그룹이 있고, 그룹 팬이 있으며, 세 명이나 순위권 성적을 기록했으니까.

하지만 너무 일방적으로 좋은 입장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눈치를 보며 움츠러들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최 이사는 어나더뮤직을 견제하며 서로 아비규환이 되어 싸우던 사람들의 기억이 선명했다.

‘그리고 그룹 이름이나 팬덤 이름까지 저쪽에서 상표권을 쥐고 있거든요. 이것도 결국 소송을 하거나 어떻게 합의를 해서 사용할 권리를 받아오거나 해야 하는데…….’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저희는 사실 그렇게까지 열 명 활동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나더뮤직이 법을 잘 아는 편이고 이런저런 일을 처리해본 경험도 많으니까 그런 귀찮은 일은 너희가 해라, 그런 의미였다.

‘아니, 그렇게 따지면 저희도 솔로로 데뷔시키면 되는 건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그런데 저희 쪽도 여름에 보이그룹 런칭 계획이 있어서요. 활동 병행이 불가능하면……. 흠흠, 빠지고 싶어요.’

‘그냥 상표 소송을 포기하고 에이레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활동을 지속할 수는 없는 겁니까?’

그 말을 반박하고 이상하게 꼬리를 물어나간 것은 최 이사가 아닌 다른 소속사 관계자들이었다.

자신이 가진 상품이 가장 아름답고 값비싸고 누구보다 가치 있다고 쩌렁쩌렁 소리치는 시장통 같은 광경.

최 이사는 곧 싸움으로까지 번져갈 것 같은 대화를 귀로 들으며,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저 혹시 어느 소속사에서 오셨는지…….’

‘아, 저희는 송수민이라고……. 개인 연습생 부모인데…….’

심지어 아예 소속사가 없는 멤버까지.

그야말로 갈 길이 첩첩산중인 데다가.

‘혹시 대표님, 법 같은 걸 조금 아시는지 괜찮으시면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제가 대표는 아니지만……. 어떤 이야기인가요?’

‘저희가 그룹 계약과 동시에 K14엔터와 솔로 전속 계약을 맺게 되었단 말이죠…….’

심지어 모든 사람에게 각양각색의 서로 다른 불행이 존재했다.

결국 그날은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하고 자리를 정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어나더뮤직 관계자들이 모두, 에이레의 지속 가능성을 0.1% 이하로 점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는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직원들에게 그 대책 회의 때 발생한 일들을 설명한 뒤 말을 이어갔다.

“우리야, 뭐. 솔로나 유닛이나 방법이 많기는 해. 다른 소속사랑 교류할 기회라고 치고 다른 활동을 해도 나쁘지는 않고. 사실 이론적으로 따지면 그렇잖아.”

“그렇죠. 그리고 그걸 사람들도 다 알고 있겠죠…….”

〈데프아〉에서 ‘어나더즈’의 팬이 된 사람이라면 스테리나인에게 무작정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스테리나인을 대놓고 ‘싫어한다’, ‘지뢰’라고 말하는 사람도 수가 꽤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들은 스테리나인 완전체가 활동을 시작하면, 억지로 그룹 활동을 요구한 소속사에 분명 반감을 가지고 분노할 테다.

멤버들이 그룹 활동을 원했든 아니든……. 소속사의 강요였으리라고 그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할 테니까.

“진실이 어느 쪽이든 중요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어쩌겠나요…….”

“맞아. 아티스트 이미지 깎이는 것보다야 회사가 욕먹는 게 당연히 낫지.”

최 이사가 중얼거리고 대표가 긍정했다.

어차피 여기서부터는, 팬덤을 관리하고 뉴비와 올드비가 잘 섞일 수 있게 마케팅을 펼치는 건, 회사의 역할이었다.

“아무튼 고생 좀 해봅시다. 이번 분기는 그래서……. 스나 앨범 잘 끝내고, 애들 돌아오면 잘 케어해 주는 것을 목표로.”

그렇다.

여기 있는 아무도 세 사람이 스테리나인에 바로 합류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에이레 활동을 그만둔다면 광고도 찍고, 방송 나가고, 개인 팬미팅 같은 것도 하고, 포토북을 찍는다든가 자잘한 개인 활동은 필요했다.

이번 앨범 《Letters to》 활동은 그래 봤자 6명 버전이다.

그냥 모두가 그렇게 여기고 있었고, 그것이 타당한 추측이었다.

‘그 셋이 그런 여유를 갖고 싶어 할까 모르겠네…….’

최 이사는 의혹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회의는 ‘11위인 채호원 솔로 데뷔가 스나 컴백이랑 같은 주로 겹치더라’라든가, ‘에이레가 숙소도 곧 뺀다는 얘기가 있대요’, ‘그러면 결국 안무 그 시안에서 의헌이가 고친 버전으로 픽스된 거야?’, ‘그래서 이번 스나 활동 스케줄 표 임시로 나왔는데요’ 등 잡담이 오가다가 잠시 후에 마무리되었다.

다른 소속 가수 이야기도 나왔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올해는 스테리나인 멤버들에게 선택과 집중할 때였으므로.

“그래, 그래. 이번 분기 끝나면 건강검진에 심리상담 지원할 테니까. 고생 많았어요.”

최 이사는 이렇게 무사히 끝나는 회의 분위기가 낯설면서도 감격스러웠다. 그런데…….

‘왜 안 가시지?’

보통은 이 흐름이면 대표가 먼저 나가주는데, 이상하게 오늘 그는 앉아만 있었다.

그때 부대표가 대표에게, 최 이사가 궁금해한 부분을 대신 질문해 주었다.

“들어가시지 않고요.”

“다음 미팅이 있어서. 먼저 나가들 봐.”

“누가……?”

“의헌이. 실은 미팅까지도 아니고 면담 느낌이겠지만.”

또 무슨 새로운 소식을 들고 왔을까, 궁금한 건 최 이사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자리의 몇 명이……. 심지어 나가다가도 흥미를 가지고 뒤를 돌아보았다.

축객령으로 회의실에서 쫓겨나면서 최 이사는 매니저팀 임 팀장과 쑥덕거렸다.

“무슨 일일까요?”

“글쎄요……. 나쁜 일은 아니겠죠.”

그래도…… 큰 걱정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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