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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10화 (110/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10화

22. G.B.T.B.(6)

‘이렇게 남을 이용하는 게 양심에 아주 안 찔리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에게 심각하리만큼 미안하거나, 이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언젠가 밝혀질 문제기도 하고, 더 두면 피해자가 더 생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오송민은 KMC에서 작년에 주최한 남성 대상 트로트 오디션 서바이벌에서 좋은 성적을 내 준결승까지 진출한 인물이다.

‘그 무렵에도 KMC가 성적 좋은 참가자를 K14엔터테인먼트로 옮겨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겠지.’

결승 진출자도 아니고 준결승 진출자까지 K14엔터가 다 데려간 꼴을 보면, 타당한 추측이었다.

〈데프아〉에서 이루어진 일이 그전이라고 해서 발생하지 않았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잠시 개인 연습생 신분으로 데뷔하게 된 송수민과 녀석의 미래에 관해 생각을 하다가 멈추었다.

‘이건 겨를이 생기면 다음 단계에서 따지기로 하고, 먼저 이 일부터.’

아무튼 오송민은 원래 방문 학습지 교사를 하던 일반인이었다.

그 경력을 살려 어린 참가자들과 방송 내내 좋은 케미를 보여주며 호인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는데…….

‘그런 놈이 마약에 강제 추행…….’

좋은 인상 덕분에 처음에는 뉴스 기사가 오보이리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후 소속사 사실을 확인했다는 오피셜 공지가 올라오고 –죄 없는 K14엔터 실무진만 바쁘게 살던 시기다– 후속 기사까지 보도되자 다들 얼마나 충격에 빠졌던가.

그 뒤로는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하여튼 그전까지 오송민은 그린 듯한 ‘좋은 사람’이었다.

범죄 이슈가 대중 입에 오르내리게 된 뒤로도 뒤늦은 인성 논란이나 갑질 폭로 따위는 딱히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그저 반전이라는 사람들만 있었고, 더러는 오송민이 자숙하다가 몇 년 뒤 연예계에 복귀하리라고 점치기도 했다.

‘뭘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실제로 복귀하지도 않았으니까 됐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데, 오송민이 싱글벙글 미소 지으며 대화를 더 시도해 왔다.

“퇴근하면 의헌 씨는 숙소로 가는 건가? 걸어서?”

“네, 저는 걸어서. 어차피 이 근처예요.”

웃으며 대꾸하기는 했지만, 실은 속으로는 약간 불편하기도 했다.

나는 인성에 살짝 하자가 있거나 성격이 삐뚤어졌으나 범죄 이력이 없는 사람과 대화하고 어울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예컨대 〈데프아〉에서만 해도, 과거를 몰랐을 때의 김병석 혹은 주태훈, 함경우, 나아가 나를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하던 시절의 채호원이나 류희재까지……. 이런 라인업과는 안 맞는 점이 있어도 그럭저럭 어울리며 지낼 수 있었는데…….

반대로 이렇게 성격은 둥근데 범죄자라면 어떠한 자세로 대응해야 할지 꽤나 헷갈렸다.

“선배님은 댁으로 가세요?”

연차로 계산하면 딱히 선배님도 아니다만, 나이 차가 있어서 그냥 그렇게 부르고는 했다.

“으음, 뭐……. 나는 약속이 있어서. 그게, 차를 불렀는데 안 오네.”

“오늘도 술 약속?”

나는 나가려던, 정확히는 나가는 척하려던 발을 멈추고 질문했다.

“그렇지. 의헌 씨랑도 언제 같이 한잔해야 되는데~”

“저는 그런 가게는 못 다니죠……. 요즘은 가고 싶어도 못 가요.”

일부러 억울한 투로 말했지만, 가고 싶은 마음이 있을 리가 없다.

“하긴 의헌 씨는 주변에 따라다니고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다.”

넉살 좋은 대화는 이 사람이 특별히 성격이 좋아서나 경계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내가 K14엔터에 들어오고 나서 열심히 여기 소속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둔 결과였다.

그 대상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든 적은 사람이든, 아티스트 계약을 맺은 사람이든 직원이든 무작위였다.

인사 잘하고, 가끔 커피나 간식을 사고, 이야기 잘 들어주고, 힘든 이야기를 하면 편들어주고, 작은 일에도 많이 칭찬하고 취향을 잘 기억해 두며 아는 티를 내면……. 타인과 친근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저 기준이면 어른들이 애들보다 덜 까다롭지.’

나는 그런 식으로 과거 이런저런 범죄 혐의가 있던 K14엔터 가수나 배우, 직원들에게 접근했고(당연히 무고한 사람들에게도 성실히 대했다!), 어떻게 잘 구워삶다 보니 몇몇 사람들과는 금방 사적인 대화까지 터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좋은 말과 행동을 여기저기 보이는 대로 마구 뿌려댄 결과, 그중 몇은 벌써 내게 자신이 유흥을 즐긴다는 진실까지도 오픈했다.

‘물론 어느 클럽, 어느 유흥업소를 출입하는지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 정도는 오늘 알아내면 되니까 상관없었다.

나는 로비에 설치된 나무 의자에, 오송민이 앉은 자리 근처에 걸터앉으며 물음을 이어갔다.

“그러면 픽업 차 기다리시는 거예요?”

“응, 그렇지. 의헌 씨는 왜 안 가고?”

“일찍 가서 할 일도 없고 선배님 혼자 계시면 심심할까 봐요.”

나와 오송민은 그렇게 나란히 앉아서 몇 분쯤 시답잖은 내용으로 노가리를 깠는데, 그 시간이 왠지 길어진다고 느낄 때쯤.

오송민이 자기 핸드폰을 들어 막 도착한 문자 메시지를 읽더니 혀를 쯧 찼다.

“하, 이런……. 잠시만.”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차가 오는 길에 접촉사고가 났다네. 나 참.”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대략 세워두었던 복잡하고 허술한 계획을 모두 때려치웠다.

운이 좋았다. 나는 즉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잽싸게 제안했다.

“택시 불러드릴까요?”

“어? 택시……. 하긴 택시가 좋겠다. 그런데 뭐, 의헌 씨가 불러줄 것까지야 있나.”

“에이~ 아니에요. 전에 커피 사주셨잖아요. 그때 감사해서 저도 한 번은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요~”

오송민은 쑥스러운 듯 웃음을 지으며 ‘그러면 이번에는 받아보겠다’는 둥 대답했다.

택시 어플에 입력하게 목적지를 알려달라고 하니 오송민은 가게가 아니라 어느 골목 이름을 불렀다.

당연하지만 유흥업소 바로 앞은 아니었다.

‘그래……. 이만큼은 조심해 줘야 재미있지.’

택시가 도착했다는 알림을 받고 로비를 나서는데, 전날 내린 눈이 얼어 바닥이 미끄러웠다.

회사 앞에는 익숙한 얼굴 대여섯 명이 옹기종기 앉아서 떠들어대고 있었는데, 내가 오송민과 함께 나오자 모두 조용해졌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이 사람들이 나서줄지는 모르겠지만…….’

목격자인 셈 치자.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오송민을 택시 태워 보내준 뒤 숙소 방향으로 걸음을 돌렸다.

이러나저러나 오송민에게는 끝까지 예의바르게 웃으며 인사했으니까……. 분위기는 좋았다.

그리고 십오 분쯤 지났을까.

숙소에 도착해 코트를 옷장에 벗어 걸어둔 다음.

나는 오송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님~ 혹시 도착하셨어요?”

“아직, 요 앞이긴 한데. 무슨 일로?”

“다른 건 아니고요. 혹시 선배님이 제 이어폰 보셨을까 해서요…….”

택시에서 내리는 듯한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고, 나는 내 방 책상에 앉았다.

룸메이트 두 명은 이어폰을 꽂고 자기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느라 내게 관심 한 톨 주지 않았다.

“그때 부딪혔다가 섞였나 싶어서요.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이네요…….”

정확히 표현하면 오송민이 회사 앞 빙판길에서 미끄러질 뻔한 것을 내가 잡아준 거지만…….

덕분에 무선 이어폰을 충전 케이스와 통으로 오송민의 겉옷 주머니에 슬쩍 집어넣을 수 있었다.

“어? 이거…….”

“하늘색 케이스에 당근 스티커 붙어 있어요.”

“어, 맞네. 이게 왜 내 주머니에 들어 있지?”

나는 그래도 찾아서 다행이라고 반색하며, 노트북 전원을 켜고 지도를 검색해 화면에 띄웠다.

그리고 택시가 내린 위치를 찾아본 후 오송민이 몇 분째 걷고 있는지를 셈해보았다.

장난스러운 말투로 멋쩍게 감사 인사를 건네며 짧게 대화를 더 이어나가는 상황.

실내에 다다랐는지 오송민의 목소리가 웅웅 울리기 시작하고, 숨소리가 대화 사이사이에 거칠게 섞였다.

그래서 모르는 척 질문했다.

“어, 도착하셨어요?”

“아니야, 계단 오르는 중이라. 거의 다 왔다.”

오송민은 회사에 가면 직원에게 내 이어폰을 맡겨두겠다고 약속하며 금방 전화를 끊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흠…….’

핸드폰을 내려놓고, 나는 노트북 화면 속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내가 직접 그쪽으로 가서 유흥업소를 찾아볼 수는 없었으니까. 보는 눈 많다는 말만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러나 요즘 현대 문물의 발전은 집구석에서도 어려운 일을 가능하게 했으므로…….

‘택시가 내린 위치에서부터 걸어서 오 분 거리.’

열네 곳 정도가 검색 결과에 걸렸다.

‘이런 손바닥만 한 범위에 유흥업소가 왜 이렇게 많아?’

당황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나는 가게 리스트를 한번 정리하고, 다시 찾아보았다.

지하나 일 층이 아니라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 업소가 있는지.

그렇게 되면, 의심스러운 장소는 순식간에 두 곳만 남았다.

‘여기까지만 하면 충분하지.’

역삼역 근처, 화이트가라오케, 게토뮤직아지트……. ‘게토’는 ‘게으른 토끼’ 줄임말이라고 한다.

두 장소를 다시 검색해 정확한 주소와 전화번호를 찾아낸 뒤 이번에는 메일함을 열었다.

메일을 받는 이는……. 전에 김병석의 학교폭력 관련 기사를 작성했던, 데일리엔터테인뉴스 손진형 기자.

이메일 아이디는 일부러 전에 썼던 아이디에서 한두 글자 정도만 묘하게 바꾸어서 새로 생성했다.

전에 익명 제보를 믿고 보도했을 때 이득을 본 입장에서는, ‘설마’ 하는 마음은 들 수 있도록.

‘화이트가라오케 혹은 게토뮤직아지트.’

메일에는 저 둘 중 한 곳에 K14엔터 소속 가수 오송민이 출입하고 있으며, 불법 접대나 마약 유통이 이루어진다고 기재했다.

증거는 부족했지만, 요즘 기자 및 경찰이 제일 열심히 찾아다니는 것이 KMC의 접대 장소 정보라서 말이다.

‘나라면 못 믿어도 취재하러 가 본다.’

헤드라이너 확실하고, 소재 자극적이고, 심지어 요즘 대중이 원하는 정보기까지 하다.

강제추행죄는……. 아마도 혐의가 거기까지 번지지는 않을 테다. 이건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건이기에.

그 일은 새해가 되고 나서 벌어졌고,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해서 크게 번졌으니까…….

‘……그래도 지금 잡아넣어서 피해자 안 생기는 게 낫지.’

어차피 더 범죄 저지르고 다니라고 기다려 줄 시간도 없었다.

우선 메일부터 다 적어 전송한 다음, 나는 노트북 뚜껑을 닫았다.

‘후우…….’

긴급하게 일을 정리하고, 잠시 숨을 돌렸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새벽에 눈이 또 내린다는 것 같았다.

혼란스럽게 하지만 차근차근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순조롭게.

‘노래 진짜 괜찮게 나왔던데…….’

나는 며칠 전 강주찬이 들려주었던 타이틀 곡 〈나에게(Honestly)〉의 탑라인 멜로디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역시 그 노래로 무대에 서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곡을 내 노래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곧이다……. 정말로.’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전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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