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09화 (109/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09화

22. G.B.T.B.(5)

내가 서두르는, 그리고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있었다.

‘리스트업하면 세 가지 정도?’

일단 첫째로 제13회 〈오렌지 디스크 뮤직 어워드〉 일정이 확정되었다.

2017년 2월 둘째 주 토요일 마카오에서 개최 예정.

출연진은 이미 확정된 가수도 있고, 아직 빈 자리도 있다는 것 같았다.

이 경우 우리는……. 출연 제의가 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지만, 앨범이 나오면 들고 가서 PR을 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PR을 하려면 당연히 앨범이 있어야 할 테고 말이다.

‘그래도 하나 다행인 점이 있다면…….’

둘째, 스테리나인 앨범 프로모션 및 발매 일정이 확정되었다.

프로모션은 하루이틀 뒤면 바로 시작하고, 컴백 자체는 1월 중순에서 말 사이.

회사 분들에게 듣기로는 2월에 컴백 일정을 잡아놓은 가수가 많아서 음악방송이나 라디오, 콘텐츠 등 스케줄을 잡으려면 1월이 낫단다.

그렇다고 여기서 더 기다려서 3월로 발매일을 넘겨 버리면 계획이 모두 어그러지니, 회사에서도 일정을 당겨 잡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오디뮤〉를 생각하면, 늦어지는 것보다는 훨씬 좋긴 하지만…….’

너무 타이트하지 않은가 물었더니 중단된 플랜을 이어나가는 셈이라 이미 받아놓은 곡들이 좀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콘셉트와 인원 변동에 맞추어 적당히 추려내고 편곡하고, 한두 곡은 또 새로 받아올 예정이라나 뭐라나.

타이틀이 덜 나온 것은 문제였으나, 원래 지금까지도 미래에도 프로모션 들어간 뒤에도 수정하고 새로 만들고 촬영하는 경우는 많았다.

사실 그러면 안 되는 게 맞지만 회사가 워낙 주먹구구식으로 인력을 갈아넣어서 돌아가다 보니…….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아무튼 기획이 통과되고 엉겁결에 타이틀곡 프로듀싱까지 참여하게 된 강주찬은 덕분에 매일매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살았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점을 하나 고르자면.

주찬이가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중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멀리서 보기에는.

‘회의 끝나고 저번주까지는 계속 가사 만들기 어렵다고 징징대기는 했지.’

그런데 어제인가 그저께인가, 〈데프아〉 앵콜 콘서트 끝나고 나오는데 갑자기 강주찬에게서 전화가 오는 것 아닌가.

심지어 영상 통화였다.

‘야, 정의헌~’

‘뭔데 영통이야? 너 어디야?’

‘나 지금 영하 형이랑 걷는 중.’

강주찬은 나한테는 말을 편하게도 하면서, 이영하를 상대로는 딱히 그러지도 않는다.

영상 배경은 말마따나 밤거리였다.

도심의 큰길, 연인이나 친구들과 함께 걷는 사람들, 가로등과 간판, 찻길을 달리는 버스와 택시, 자동차들.

주찬이가 화면을 옆으로 살짝 틀어 영하가 손 흔들어 인사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주었다.

‘둘이만 있어? 왜?’

‘왜냐니? 우리 친하거든?’

강주찬은 그렇게 말하며 웃는데, 평소보다 다섯 배 이상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주찬이가 근래 들어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영하가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를 같이 가자고 예매해 줬단다.

여성 솔로 보컬리스트 ‘문차미지’의 크리스마스 겸 연말 콘서트.

아이돌 가수나 아이돌 음악을 한 사람은 아니고,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영하가 자주 듣고 존경하는 분이시다.

두 사람이 줄줄 풀어주는 후기를 들으면, 둘 다 재미있게 관람하고 좋은 자극을 받고 나온 것 같았다.

‘그래서 나한테 전화는 왜 한 건데.’

내가 묻자, 이영하가 강주찬 대신 대답해 주었다.

‘오늘 그렇게 리프레시하고 생각난 아이디어가 있다나 봐.’

‘응, 있었지.’

‘그래서 그게 괜찮게 들리는지 코멘트 좀 해달래.’

‘뭔데 그래? 말해봐.’

강주찬이 대답했다.

‘아니, 오늘 갔는데. 미지 선배님이 토크 시간에 〈데프아〉 얘기를 하시는 거야. 되게 재미있게 보셨다면서 파이널 때 형이 했던 이야기를 인용하시더라고. 끝이 나는 거랑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그런 말을 하시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나셨대. 희망 같은 것을 많이 느끼셨다고 하면서 다음 곡 소개를 하시더라고?’

그때 들은 말은 다시 생각해도 민망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건데, 그……. 위로하는 거 이상으로 조금 더 에너지를……. 응원? 응원한다고 해야 되나. 그게 우리 색깔인 것도 같아. 이번 곡이 기존 스타일하고 다르기는 하지만, 그런 힘을 전달하는 건 그대로 가도 좋을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주찬이는 손이 시렸는지 핸드폰을 든 손을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바꾸었다.

배경이 휙 돌아가며 밤거리가 잠깐 비쳤다.

건물 외벽에 붙은 크리스마스 장식과 전구, 길거리에 선 트리가 보였다.

저화질에 딜레이가 많은 영상을 뚫는 노랗고 하얀 빛에, 나는 문득 중얼거렸다.

‘괜찮겠네, 그런 시작…… 이라는 거. 연말이고 새해니까.’

‘우리 앨범 나올 때면 새해는 아니겠지만, 뭐.’

밖에 듣는 사람 없는지 확인하고 말하는 게 맞는지 눈치가 보일 때쯤, 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그런 것도 많지 않아? 새해에 그?’

‘어……?!’

강주찬이 잘 걷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꽤나 급작스레.

‘왜 그래?’

‘아니, 새해 첫 곡이라고 새해에 제일 먼저 듣는 노래 가사가 앞으로 1년 운세를 결정한다는 말이 있어. 그래서 사람들이 요즘 1월 1일 12시 땡 치면 들을 노래 막 미리 찾아본다고 그러더라고.’

‘아, 새해 첫 곡이라고. 나 잘못 들었어.’

그렇게 화면 프레임에 아슬아슬 걸친 이영하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강주찬이 갑자기 화면 안으로 쑥 들어왔다.

‘나 방금 좋은 생각 났어. 끊는다!’

‘야, 뭔데! 영아 메리 크리스마스, 주찬아 화이팅! 잘 자고 안전히 들어가!’

없는 랩 스킬을 끌어올려 순식간에 인사를 하자마자 통화가 종료되었다.

하여튼 그 일이 두 번째에 포함되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채호원.’

강주찬과 통화한 다음 날은 앵콜 콘서트 마지막 날이었다.

이 콘서트라는 거, 에이레 단독 콘서트가 아니라 〈데프아〉 콘서트라서 참여 정원이 36명이나 되었다.

채호원은 최종 11위였고, 다시 말해 나는 콘서트 준비 기간 및 콘서트 기간 동안 녀석을 계속 만났다.

채호원은 스케줄 문제로 일본 콘서트에는 참여하지 않아서, 앵콜 콘서트 때 거의 한 달 만에 보게 되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차이는 머리 염색이었다.

머리 길이는 여전히 어깨까지 닿는 장발이었는데, 정수리는 흑발에 귀 아래부터는 실버그레이로 물들인 채였다.

그래서 어쩌다가 염색을 하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더니…….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채호원 솔로 데뷔와 스테리나인 앨범 동시 발매.’

날짜는 채호원이 이틀 정도 빨랐는데, 같은 주라서 사실상 동시 발매였다.

일본 콘서트 불참 사유도 심지어 방송 촬영과 앨범 준비 때문이었단다.

‘그렇게 빨리 일을 처리할 줄은 몰랐는데.’

노선을 솔로 데뷔로 기민하고 단호하게 확정할 줄도 몰랐고 말이다.

그러나 채호원은 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며, 꽤나 후련해 보였다.

심지어 〈데프아〉 종영 직후부터 미팅하고 준비하기 시작해 뮤직비디오도 곧 촬영하고 활발하게 준비 중이란다.

‘소속사 넥스트레코드에서도 이번 일에 사활을 걸고 있겠지.’

가타부타 따질 것도 없이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니까 말이다.

아무튼 채호원은 내게 촬영한 컨셉 포토 B안을 슬쩍 보여주면서 스포일러도 해주었는데…….

‘야!! 아니…….’

‘왜 이런 반응이지.’

‘하늘 아래 유교의 법도가 지엄하거늘…….’

좋게 말하면 섹시하고 못되게 말하면 아주 과감했다.

몸선에 딱 달라붙는 터틀넥 민소매 티셔츠에, 핏이 약간은 넉넉해 보이는 화려한 패턴의 바지.

노출도 많고 하네스나 반지와 같은 번쩍번쩍한 액세서리도 많아서 ‘스픽스’나 〈데프아〉 속 채호원 이미지와는 꽤 딴판이었다.

나는 사진 속, 천과 천 사이 옆구리 근처에 드러난 까만 타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 이건……. 스티커 붙인 건가?’

‘아니? 원래 있던 건데.’

‘…….’

‘한 이쯤에?’

2차 충격…….

내가 너무 놀라자 채호원은 나를 두고 ‘할아버지는 예술을 모른다’고 장난스레 비난했다.

그렇지만 마치 사촌 동생이 바디프로필 사진 찍어서 톡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은 기분이라서 말문이 막혔을 뿐…….

한 번도 상상해 본 그림은 아니었지만, 사진을 놓고 보니 채호원은 꽤 그런 중성적인 콘셉트도 잘 소화해 냈다.

‘채호원은……. 견제할 대상은 맞아.’

저 일정이면 결국 채호원이 〈데프아〉 출신 중에서는 가장 먼저 –싱글이든 앨범이든– 신곡을 릴리즈하는 사람이 된다.

스테리나인도 〈데프아〉의 후광을 받고 컴백하는 셈이지만, 직접 참여한 채호원만큼 주목받지는 못할 테고.

아무리 내가 둘 다 아낀다고 하더라도 역시 내 팀이 내 친구한테 밀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빨리 그룹 무대를 선보여서, 스포트라이트를 이쪽으로 끌어와야 한다.’

채호원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렇게까지 겹친다면 경쟁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여기까지가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이고.’

며칠 사이 나는 어떻게 낭비되는 시간을 줄어야 할지 그 계획을 새로 조금 세워보았다.

몇 주 동안 저녁 시간에 에이레 멤버들과 하게 될 라이브 방송은 계책의 일부였다.

‘의외로 좋은 증거가 되겠지. 목격자를 만드는 일이니까.’

그 시각에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충분했다.

물론 소통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하고, 에이레 멤버들도 가만히 있는 것은 답답하다고 해서…….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이라고 해두자. 방송을 꾸준히 할 명분이 만들어졌으니까.

그래서 왜 우리가 매일 저녁 시간에 무엇을 하고 사는지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줘야 하냐면…….

‘K14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라고 의심의 시선이 여기까지 날아오면 곤란하거든.’

〈데프아〉 데뷔 무산 사태가 후일 ‘KMC 게이트’라고까지 이름 붙여진 까닭은 단순하다.

그 사건으로부터 줄줄이 꿴 구슬처럼 방송가 및 연예계의 폐단이 하나둘씩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에.

비리와 유착, 뇌물 주고받기, 접대 문화, 그리고……. 마약 유통 및 투약 의혹까지.

‘검거된 연예인, K14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다수.’

사실 이 혐의는 에이레가 해체되고 한참 후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지지만…….

‘그냥 빨리 털어버리고 끝내자.’

라이브 방송은 에이레까지 한통속이라는 의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파제 역할이었다.

설마 입사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에이레까지 의심할까 싶지만, 너무 많은 K14엔터 가수들이 잡혀가다 보니까……. 루머는 생길 거다.

‘그야 수사하면 다 밝혀지겠지만, 그때 가면 시간도 없는데 귀찮잖아…….’

그리고 안전망은 여럿일수록 좋으니까 수고를 미리 조금 들여놓기로 했다.

‘그리고 소통이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나는 그쯤 정리하고 다른 에이레 멤버들이 다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연습실을 나섰다.

연습실 앞 사물함에서 코트를 꺼내 입고, 카드 지갑과 무선 이어폰 따위를 챙겨 계단을 오르면…….

대충 퇴근하는 타이밍이 맞았다.

“어? 선배님, 안녕하세요.”

“오. 안녕, 의헌 씨. 이 시간에 퇴근해?”

밖으로 이어지는 로비에서 K14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 오송민이 내게 인사했다.

내년부터는 연예계에서 얼굴 못 볼 사람이라 처음 이 회사에서 만났을 때에는 낯설기도 했다.

혐의는 마약 투약에 불법 유흥업소 출입, 그리고 강제 추행.

……뭐, 이런 사람이니까 내가 이용을 살짝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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