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08화
22. G.B.T.B.(4)
부리더인 정의헌이 류희재의 말을 받아서 공지를 이어나갔다.
- 저희가 아무래도 혼자 방송하는 건 아직 어색하기도 하고, 보통은 두세 명이 함께 나오게 될 것 같아요. 순서는 저희가 미리 정해서 전날이나 최소한 당일 낮에는 위커 채널이나 툿투 멤버 게정에 써둘 테니까, 그거 봐주시면 되고요. 시간 변동이나, 정말 우리가 다 나와야 하는 스케줄이 생겨서 그날 방송을 아무도 못 하게 된다, 이러면 그것도 공지를 미리 하도록 할게요. 약속.
어떻게든 팬의 편의를 봐주려고 하는 면에서 팬 사랑 이상이 느껴졌다.
예컨대 모든 잔소리와 각종 팬의 의견을 다 들어본 경력직 느낌이라든가…….
이어서 에이레 멤버들은 방송 시각을 팬들과 같이 정하고 싶다고 의견을 물어왔다.
- 후보는 오후 6시, 7시, 8시, 9시, 10시, 11시! 이렇게 할게요. 몇 시 좋은지 숫자로 댓글 적어주세요.
정의헌이 손가락으로 댓글창이 있는 아래를 가리키면서 말하자, 순식간에 댓글이 숫자로 가득찼다.
- 아, 저 방금 너무 웃긴 댓글 봤는데…….
- 뭐 봤어요?
- 아, 나도 봐버렸어…….
- 드라마 봐야 된다고 열 시 전에만 끝내달라고 하시는데요?
사람이 많아서인지 걱정했던 것보다는 오디오가 잘 찼다.
- 드라마 안 보면 안 돼? 어쨌든 거기 다른 남자도 있잖아.
- 얘 또 인터넷 보고 이상한 말 배워왔어~ 아니, 그, 유어! 얘가 진짜 밈으로 말하는 거 엄청 심해요.
- 숙소에서도 맨날 ‘어쩌라고 진짜 붕어빵이야’ 이러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 아무도 못 알아들어.
- 아냐, 수민이는 안다고 했어요. 그치, 수민아? 무슨 이튜브 예능에 나온 짤이래요.
- 유어는 ‘진짜 붕어빵’ 저거 무슨 말인지 아세요?
- 아니, 다 아시네……. 어떻게 아시는 거지? 저희가 그냥 유행을 못 따라가는 건가요?
- 아……. 팬분들이 유행을 너무 잘 따라가는 쪽인 거라고 하시네요…….
강주찬의 팬도 무슨 이 대화에서 나오는 밈이 무슨 말인지 전부 알 것 같았다…….
하여간 그런 시답지도 않은 잡담으로 흐름이 넘어가다가, 겨우 시간이 정해졌다.
‘다들 은근슬쩍 넘어가고 있지만, 스나 애들 팬덤 이름 입에 안 붙는 것 같은데…….’
그들이 부디 큰 실수는 저지르지 않기를 기도하며 강주찬의 팬은 결론을 확인했다.
확정된 시각은 주중과 주말 모두 오후 8시.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인사하고 라이브가 종료되려고 하는 그때, 팬의 핸드폰으로 알림이 하나 팝업되었다.
[STARRYNINE 채널 새 알림 - ????LIVE: 모해 ????]
스테리나인 채널의 라이브 방송 시작 알림이었다.
‘저 이모티콘은……?!’
최애……!
한 시간 넘는 방송을 보고 쌓인 피로는 어느새 사르르 풀리고, 그녀는 곧바로 새 창을 열어 강주찬의 라이브 방송에 접속했다.
어차피 스나 멤버들은 이미 다 인사했으니 에이레 방송은 대충 소리를 줄여두고, 종료되면 끌 셈이었다.
- 어……. 망했다…….
화면에 얼굴이 수직으로 나왔다.
- 설정을 잘못했네……. 다시 켤게요…….
방송은 그렇게 이십 초만에 종료되었다.
강주찬의 팬은 어떻게든 이십 초 동안 자신이 본 것을 기억해 내려고 정신을 집중했다.
낮은 목소리, 피부결 정리와 입술에 립밤만 바른 듯 보이는 옅은 메이크업, 까만 후드 집업, 야구모자.
장소는 아마도 강주찬의 개인 작업실.
방제나 분위기만 보아도 특별한 목적이 없는 소통 방송인 것 같았다.
[STARRYNINE 채널 새 알림 - ????LIVE: 모해 ????????]
알림을 클릭해서 다시 방송에 입장하니, 겨우 제자리를 찾은 강주찬의 얼굴이 보였다.
- 아니, 이게 설정을 잘못하고 방송 시작하면 중간에 방향을 바꿀 수가 없어요. 맨날 실수해, 진짜.
초장부터 투덜거리면서 시작하는데, 조금 전 에이레 방송과는 그야말로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아무튼 좋았다는 뜻이다.
여기 강주찬의 팬으로서는 처음 실시간으로 보는, 최애의 단독 라이브 방송.
웃긴 점이 하나 있다면, 아까 에이레 채널에서 본 댓글 작성자 닉네임이 여기에도 몇 보였다.
어그로 댓글로 도배하는 사람 말고 진짜 팬으로 보이는 사람들만 따져도 그랬다.
- 개인 방송은 좀 오랜만이죠. 그래도 투어 끝나고 한국 와서 한 번은 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쓸데없는 내용으로 본인의 국적을 어필하는 외국인, 스테리나인과 전혀 관련 없는 색 하트로 댓글창을 도배하는 사람, 지금 공부 중이라느니 커버 댄스 연습 중이라느니 안 궁금한 이야기를 하는 학생 등이 뒤섞인 꼴은 여기든 저기든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시청자 수가 에이레 단체 방송보다는 훨씬 적어서인지, 방송 느낌이 한결 차분하고 오순도순했다.
작업실 조명도 조금 어두운 편에, 잔잔한 팝송을 배경음악으로 틀어놓아서 심지어 약간 나른하기까지 했으니.
- 알았어, 미안해요. 더 자주 할게요. 그런데 당분간은 더 바빠질 것 같아서…….
강주찬이 중얼거리자 댓글창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빠르게 올라갔다.
그녀까지도 ‘바쁜 일 있어??’ 하고 반사적으로 댓글을 달았으니까 당연했다.
- 아, 응. 조금? 그런데 뭐 저만 바빠지는 건 아니고…….
강주찬이 카메라를 보면서 씨익 짓궂게 웃었다.
- 여기까지만~ 저 더 얘기하면 진짜 혼나요.
강주찬은 하던 말을 강제로 마무리하고, 난데없이 밥을 먹었냐고 댓글을 보며 물었다.
폭탄발언에 다들 혼란에 빠져 아무도 밥 이야기로 주제를 돌려주지는 않았다.
그때 강주찬 팬의 눈길을 잡아끄는 댓글이 있었으니…….
‘헐 설마 컴백?’이었다.
라이브 방송 주인은 다소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했지만, 그 비슷한 내용의 댓글이 계속 뒤를 이었다.
‘진짜 컴백?’
여기 강주찬 팬의 머릿속에도 물음표가 가득 차, 최애의 목소리조차도 잘 들리지 않았다.
정말 기대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야 스테리나인도 남은 멤버들이 있으니까, 언젠가는 결원을 두고도 컴백을 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빨리 소식이 들려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차라리 에이레 어떻게 될지 좀 더 기다려서 완전체를……. 아, 완전체는 안 되려나. 활동 쉬는 멤버가 있으니까.’
그는 그 생각을 하는 동시에 호들갑을 가라앉히려는 시도도 했다.
‘……컴백 아닐 수도 있지. 무슨 행사나 스케줄이거나, 무대 서거나 할 수도 있잖아. 김칫국 마시지 말자.’
그렇게 열심히 마인드 컨트롤 회로를 돌리는데, 불현듯 강주찬의 라이브 방송이 멈췄다.
일시정지한 영상으로 2분 정도.
정지가 길어져 그녀는 인터넷 연결을 확인하고, 라이브 방을 나갔다가 들어오고, 또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 영상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뒤 강주찬이 남긴 말은 그리고, 상상 이상이었다.
- 미안해요, 아까 멈췄죠? 전화 때문에……. 네트워크 이런 문제는 아니고.
카메라가 놓인 자리를 바꾸면서 강주찬이 혼자 조용히 웃었다.
- 아니, 방금 매니저님이 방송 보시다가 전화하셔서……. 저 진짜 여기서 더 말하면 큰일 나요. 진짜 미안. 아무튼 좋은 소식이니까요~
그렇게 강주찬은 하던 이야기를 중단했지만…….
강주찬의 팬은 조용히 라이브 방송 화면을 옆에 띄워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이슈 게시판에 적고 있던 어나더즈 관계성 영업글의 후속 게시물, 스테리나인 관계성 영업글을 임시 저장해 두고…….
그는 스테리나인 단독 게시판으로 들어가 저와 같은 팬들의 반응을 살폈다.
– 얘들아 큰거오나봐 주짱이가 좋은 소식이래...
– 근데 오늘 주찬이 오늘 저녁에 신곡 들고 무대 서도 될 미모인데???
– 매니저님이 말렸다는거 보면 진짜 컴백인가봐ㅋㅋㅋㅋ
– 뭐가 됐든 어떻게 나오든 너무 기대된다 ㅠㅠㅠㅠㅠ
언젠가 레디 팬덤은 전체적으로 사납다고 소문이 돌 정도였다고 하는데, 강주찬의 팬은 그게 참 신기한 헛소문 같았다.
지금 남거나 새로 입덕한 사람들이 꾸리는 팬덤 정서만 보면, 전혀 그 말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일부러 심연의 소리까지는 찾아보지 않으려고 한 것도 있지만.
아무튼 겉으로는 다들 사이좋게 지내려고 애쓰는 것이 보였다. 익명이든 툿투 네임드들이든.
〈데프아〉로 생긴 개인 팬덤과의 마찰은 잦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쪽이야 없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아니, 됐고. 그냥……. 좋은데?’
입덕하고 나서 스테리나인 이야기를 처음 찾아봤을 때, 그는 이대로 회전문처럼 돌아 나갈까 생각도 했었다.
– 아니 ㅋㅋ 불쌍하다는 말은 왜 하는 거임 애들이 억지로 끌려나간 것도 아닌데 뭐가 불쌍해 스나인게 불쌍해? 그 일들 다 당하고도 아이돌 계속하고 무대 계속 하고싶어하는게 불쌍하냐고 그냥 열심히 하는 애들 응원하기나 해
– 이게 다 니네가 스나 노래 안 듣고 루머에 악플써서 그런거잖아 이렇게 된 거 다 잘 돼서 성공하면 좋겠다 한명이라도
– 근데 팀 때려치운 거 아니잖아 아직 모르는거 아냐? 스나 억까는 진짜 아직도 많구나
– 서바나오는 멤이 방송에서 그룹 언급을 뭐 얼마나 긍정적으로 하겠냐... 좋게 하면 그게 미친놈이고
– 어떻게 생각해도 ㅅㅌㄹㄴㅇ한테 좋은 방향일수가 없음 난 멤들보다는 회사가 그룹 버렸다고 봄
강주찬의 팬은 캔 바닥에 아주 약간 남은 맥주를 탈탈 털어 마시며 그때 보았던 댓글을 하나하나 회상해 보았다.
다른 것은 솔직히 실시간으로 겪은 것도 아니고, 세 멤버가 악플러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줄 만큼 화제성을 얻고 잘해서 머리나 벅벅 긁으며 무덤덤하게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사실 그도 한 가지 지점에서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회사가 그룹을 버렸을까 봐.
심지어 〈데프아〉에 출연한 다른 그룹 소속 출연자들은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는가.
- 회사가 그러더라고요. 너희 그룹은 이제 활동을 안 할 거라고……. 저한테는 〈데프아〉가 마지막 기회예요.
채호원이라고, 최종 11위까지 올라간 멤버까지도 그런 식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래서 스테리나인도 해체하거나 방치되고, 입덕한 의미가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편으로는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런데 컴백을 진짜 한다면.’
회사가 그룹을 버렸다는 말만은 일단 부정할 수 있다!
강주찬의 팬은 빈 맥주캔을 구기며 전율에 몸을 떨었다.
‘얘들아……. 2년 안에 돌아오기만 해, 제발……!’
2년쯤은 그거 기다리면서 스테리나인 좋아하면 될 것 같으니까.
지금이라면 컴백 곡이 저예산에 최악으로 구려도 사랑할 수 있을 것처럼,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 * *
‘시간이 정말 얼마 안 남았는데.’
에이레 단체 라이브 방송을 종료하고 연습실로 내려가는 길, 나는 핸드폰 달력을 보며 생각했다.
앞으로 2개월……. 아니, 2개월도 아니다.
한 달 안에는 그룹으로 돌아갈 준비를 다 마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