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07화 (107/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07화

22. G.B.T.B.(3)

* * *

사랑은 정말, 언제나.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온다.

그녀가 그 사실을 언제 느꼈냐고 하면……. 〈데프아〉를 보고 스테리나인에 입덕해 버린 최근이었다.

〈데프아〉는 정말 재미있게 본 방송이고 과몰입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후원 투표도 초반부터 한 명 최애 잡아서 매일매일 했고, 그 최애를 최종 2위로 데뷔까지 시켰지만 입덕은 스테리나인에게 해버렸다.

남들은 다 방송을 너무 사랑하게 되어 에이레 데뷔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던데…….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해야 했다.

그녀는 에이레보다 스테리나인이 더 재미있었다.

‘……애들 완전체 무대 하는 거 한 번만 보고 탈덕해야지.’

입덕 부정을 끝내며 큰 마음 먹고 미래를 향한 목표까지도 세웠다.

아무리 세상 소문이 흉흉하다고 하더라도, 설마 에이레가 해체하거나 데뷔를 못 하겠는가.

누가 봐도 에이레는 거대한 캐시카우였고 투자한 돈에 비해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가 판단하기에 에이레 소속사 대표는 최대한 빨리, 발퀄리티로라도 데뷔하게 해서 데뷔 앨범을 팔아먹고 팬사인회 수십 번 돌리고, 팬덤 이름도 정했으니까 팬클럽 유료 가입 받아서 키트도 팔고, 조금 더 자본을 투자하고 싶다면 콘서트나 팬미팅을 열어 표 팔고 MD 팔고, 그 돈을 은행 예금에 넣어두고 깜빵 갔다가 출소하는 게 답이었다.

그렇게 되면 남은 평생을 백수로 살아도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2년……? 덕질하면 되겠지?’

2년쯤 지나면 에이레로 데뷔한 멤버들이 돌아오겠지, 그는 생각했다.

에이레가 5년 활동한다는 루머는 솔직히 쌉소리 같았고…….

‘어나더즈’ 멤버들이 기존 그룹 활동 제한 풀릴 때부터 스테리나인을 병행한다고 하면 1년.

그게 아니라면 2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그의 계산이었다.

물론 그룹을 떠나거나 탈퇴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면 개인 활동 혹은 세 명만 유닛 활동을 한다거나.

그러나 그렇게 추측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다.

‘모르겠다. 〈Express〉 직캠이나 봐야지.’

스테리나인의 〈Express〉 음악방송 가로 4K 직캠 영상을 이튜브로 틀어놓고 그는 맥주 캔을 경쾌하게 열었다.

딸깍 소리와 함께 탄산 기운이 튀어올랐다.

무엇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세상에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으며, 아이돌의 미래는 물론 자신의 한 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는 세상이었기에……. 그는 됐고 맥주나 마시기로 했다.

‘이거 노래 진짜 개 좋은데…….’

그는 스테리나인을 두고 ‘왜 못 떴는지 모르겠다’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남들 다 아이돌 좋아하는 중고등학생 때 친구 따라 그닥 좋은지도 모를 남자들 이름 외우던 시절을 제외하면 아이돌 덕질 따위 해본 적 없는 그녀였다.

음원 사이트 TOP100에서 스테리나인이 한 달을 말뚝박고 고스톱 치지 않았다면 어차피 그들을 절대 몰랐으리라는 의미다.

그렇지만 지금, 지금처럼 정말 취향인 음악과 퍼포먼스를 볼 때마다 그는 이제라도 스테리나인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노래도 마음에 들었고, 멤버들도 마음에 들었고, 멤버들이 서로 친한 게 콘텐츠에서 잘 드러나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얼굴, 성격, 주변 취급 삼박자가 취향 스트라이크 존을 때리고 가는 멤버가 있었다.

강주찬…….

‘정말 나도 이 현실을 믿을 수가 없네…….’

〈데프아〉에 출연한 멤버도 아니고……. 그 외 그룹 내에서 인기 멤버인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수준이니까 패스.

하지만 정말 가끔 생각해 보면 억울했다.

물론 그 남자를 알게된 그 날과 이튿날 이틀 동안 이튜브로 18시간이나 영상을 찾아봤으니까, 이건 빼도박도 못할 사랑이 맞았다.

그룹 안에 친구가 세 명이나 더 있는데 생일 순서로 멤버를 세 명씩 세 그룹으로 나누면 억울하게 맏형라인이 되는 것도 좋았고, 안 그럴 것 같아서 요리를 잘하는 것도 좋았고, 그런데 할 줄 아는 요리가 한식과 중식과 스파게티와 라면뿐이라는 것도 웃겼고, 눈썹이 짙고 살짝 삼백안인 냉미남이면서 웃으면 눈이 고양이처럼 접히는 것마저 귀여웠다.

그리고 입덕 문을 열어준 차애 김지상도 그녀에게는 당연히 몹시 소중한 존재였다.

당분간 최애와 차애의 투 샷을 볼 수 없다는 건 안타까웠지만, 당장은 따로 또 같이 좋아해도 힘들지 않았다.

그때 그녀의 핸드폰에 알림이 도착했다.

[A:Re 채널 알림 - ????LIVE: 중요 공지 있음! 안 들어오면 후회한다앙 ????]

그가 위커넥션 어플에 가입해 둔 스테리나인 채널과 에이레 채널 중 후자에서 온…….

라이브 방송 알림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인가 오늘 낮에 이 시간쯤 단체 라이브 방송을 하겠다고 리더인 류희재가 채널 커뮤니티에 글을 적어두었던 것 같다.

‘적어둔다는 걸 깜빡했네. 봐야지…….’

아무튼 그녀는 핸드폰 알림을 보고 컴퓨터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인터넷 창에는 몇 분 전부터 눈팅하고 있던, 정의헌 네임드 팬의 익명 질문 사이트가 로드되어 있었다.

「질문」 밀쌤 의헌이랑 영하는 왜 서로 부르는 호칭이 영아 헌아 이런건가욧??

「답변」 이 질문도 정말 꾸준한 질문이네여 한줄요약: 그거 영하가 지방출신이라 원래 멤버동생들 부를때 다 그렇게 부르는데 헌이가 그냥 따라하는 거예요 ㅋㅋㅋ 그래서 영하는 딴멤버들 부를때마다 찬아 준아 섭아 이러기도 해요 의헌이는 걍 영하한테만 그럽디다

「질문」 의헌이 동물화 곰인거 원래 스나 때부터 그랬던 거예요? 곰이라니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요 호랑이나 강아지일줄

「답변」 넴 호랑이: 팀에 너무 호랑이 계심 강아지: 팀에 너무 강아지 계심 사유로 곰이 되었습니다 (본인은 마음에들어하는 것 같아요 고개를 들어 블베곰을 보라...) 그런데 곰도 귀엽지 않나요 행동도 뭔가 곰이고?? 한번 곰돌이라고 생각하면 돌이킬 수 업슴 걸어다닐때도 곰벅곰벅 밥먹을때도 곰냠곰냠 뭐 일할때도 곰치기박치기

「질문」 밀월님 유사도 하세요?

「답변」 지금 저 숨쉬냐고 물어보신 건가요?

「질문」 블베곰은 뭔가요?>??

「답변」 블루베리곰이라고 데뷔초에 뛰어들어 활동할때 헌이가 자체적으로 밀었던 별명인데요 머리 블루베리색이라 ㅋㅋㅋ 진짜 엄청나게 바보곰이었죠... 물론 지금도 바보곰임 : )

정의헌도 호감 멤버 중 하나였고, 저 네임드가 아는 것도 많고 답변도 성실하게 잘해주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전에 그녀도 강주찬과 정의헌이 같이 나오는 영상을 하나 찾아달라고 익명 질문을 남겼는데, 5분 만에 답변을 받았으니까.

덧붙여 아마도 팀에 계시는 ‘너무 호랑이’는 강주찬이고, ‘너무 강아지’는 한이주인 듯싶었다.

‘주찬이는 호랑이라고 하기에는 순한데…….’

그런 생각을 하며, 익명의 강주찬 팬은 후다닥 페이지를 닫고 위커넥션 어플의 PC 페이지에 접속했다.

알림을 누르자 에이레 멤버들의 라이브 방송 페이지로 바로 이동되었다.

열 명의 멤버들이 K14엔터테인먼트 사옥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단체로 모여 앉아 있었다.

바로 페이지를 열었다고 생각했는데 딜레이가 있었는지, 방송은 조금 전 이미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 이거 오늘 라이브 제목 누가 정한 거냐고 물어봐 주시는데, 정한 사람이 얘기해 볼까요.

- 앗, 제가 정했어요. 네! 승준이입니다. 저 에이레 공식 서기거든요.

- 막 팬분들한테 후회할 거라고 하면 어떡하냐고 그러시는데, 승준 씨. 어떻게 생각하세요.

- 그런 댓글 없었는데요?!

- 제가 방금 지어낸 말입니다.

리더 류희재와 서기 안승준, 부리더 정의헌의 티키타카가 바르게 흘러가고…….

먼저 주말에 끝난 〈데프아〉 서울 앵콜 콘서트 후기를 짧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숫기 없고 조용해서 잘 나서지 못하는 멤버들도 ‘리더즈’인 류희재나 정의헌, 가끔 안승준까지 나서서 잘 챙겨주고 질문을 넘겨주어서 나름대로 방송 분위기가 꽤나 괜찮았다.

에이레 멤버들은 같이 혹은 따로 알고 지낸 시간이 짧은 만큼 아주 끈끈하고 친밀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서로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영상을 보면 잘 느껴졌다. 즉 조금 자극이 덜해도 보기 불편한 것은 없었다.

그런 식으로 떠들다가, 주제는 곧 제목에 나온 공지 이야기로 다시 흘러갔다.

- 어, 그리고……. 맞다. 멤버들이랑 회사 직원분들이랑 같이 이야기하고 결정하게 된 일인데요.

화면 너머에서 보고 있는 익명의 강주찬 최애는 류희재가 운을 떼자 ‘설마 해체……?’ 하고 생각했다.

물론 해체 같은 소식을 이런 라이브 방송에서 밝히지는 않겠지만, 류희재는 오해를 살 만큼 무척 비장하게 말하고 있었다.

- 저희가 이제 리얼리티 방영도 끝났고, 〈데프아〉 콘서트도 끝났다 보니까, 그……. 팬분들, 그러니까 ‘유어’ 분들이 저희 근황이나 일상 같은 것을 궁금해하실 수 있겠다고 저희끼리 며칠 전에 이야기가 나왔어요.

류희재는 다른 아홉 멤버가 지켜보는 와중에 천천히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강주찬의 팬은 이제까지 류희재가 왜 〈데프아〉에서 3위나 했는지 잘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오늘 보니까 저렇게 하나하나 신중하고 묵묵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기를 끈 것도 같았다.

아무튼, 용건은 간단했다.

- 그래서 저희가 2주 정도 정해진 시간에, 돌아가면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강주찬의 팬은 ‘대박인데’ 하고 감탄했다.

지금 에이레 팬덤 유어는 글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리얼리티와 콘서트로는 개인 팬들이 그룹에 유대감을 느끼기에 부족했던 것이다.

게다가 안팎으로 그들을 불안하고 예민하게 만들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일단 데뷔 무산 관련해서 루머가 지나치게 다양했고, K14엔터테인먼트에서 내려온 공지는 하나도 없었다.

루머라면 루머 유포자를 고소하거나, 사실에 관한 해명문을 공지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컴백 기사를 내야 하는데…….

공식 새 소식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콘서트 안내를 제외하면 가끔 멤버들이 셀카를 올리거나 위커넥션 커뮤니티에 글을 남기는 게 전부였다.

무슨 연습을 하고 있는지, 데뷔곡은 나왔는지, 녹음은 했는지, 멤버들을 놓아주기는 할 건지…….

멤버들은 말을 삼갔고, ‘오피셜’이라고 할 만한 것은 전무했다.

‘이건 진짜 아무것도 진행이 안 되고 있다는 얘기 같은데…….’

멤버들의 콘텐츠 창출 이야기를 들으니 가장 먼저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도 별개로 기특한 마음도 차올랐지만.

라이브 콘텐츠 공지는 번역하면 ‘당분간 아무 콘텐츠도 없을 테니까 우리 힘으로 소통이라도 할게요’라는 의미였다.

게다가 2주면 아무리 사람이 열 명이라고 해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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