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05화
22. G.B.T.B.(1)
“아, 들어봐! 오늘 대망의 4부 플랜이니까.”
인내심 없는 사회자 안승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1부는 의헌이 형의 전달사항을 듣고 앨범 회의를 할 거고요, 2부에서는 영하 형의 잔소리 타임, 그리고 3부에서는 자유 발표 시간 가집니다. 마지막으로 4부는 저녁 먹는 시간입니다. 메뉴 통일 안 해도 되니까 밥 안 먹고 혼자 탈주하기 없기입니다. 특히 강주찬, 서드림.”
원래 가족회의는 3부 구성이다. 오늘은 맨 앞에 특별 코너가 있을 뿐…….
1부는 지원자를 받아서 그동안 가장 할 말이 많았던 사람이 모두에게 서운했던 점이나 개선해야 할 점을 발표한다.
2부는 특별한 진행자 없이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개인적으로 쌓아둔 원한을 푼다. 덧붙이자면 늘 나오는 말 톱쓰리는 ‘왜 밥 같이 먹자고 해놓고 먼저 갔냐’, ‘왜 팬들 앞에서 내 뒷담하냐’, ‘왜 내가 쓰지 말라고 써둔 물건 쓰냐’다.
그리고 3부에서는 다 같이 하면서 떨어진 체력과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액티비티를 한다. 같이 밥을 먹는다거나 마피아 게임을 한다거나 PC방이나 한강에 간다거나. 주로 밥을 먹는다.
아무튼 이 인원이 다 모인 것도 가족회의 자체도 정말로 오랜만이라 감회가 새롭다.
숙소 생활을 정리하면 아무래도 이렇게까지 단체로 대화할 필요가 조금 없어지므로……. 가족회의도 내게는 옛 문화였다.
“그러면 1부부터 갈게요~ 정의헌 나와랏.”
하여간 나는 순서를 넘겨받아, 바닥에 둥글게 –수건돌리기 대형으로– 빙 둘러앉은 애들 사이에 무릎걸음으로 나섰다.
나도 핸드폰 메모장에 할 말을 다 적어왔으므로, 보면서 말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잠깐, 톡으로 한 얘기는 생략할게. 김지상, 서드림! 너희는 3분 줄 테니까 지금 읽어!!”
두 사람을 콕 짚어 말하자 영하가 덧붙였다.
“톡방에 해시태그 ‘별다섯개_지상밥상’ 검색해 봐. 내가 써뒀어.”
“왜 지상이 형만…….”
“넌 중간까지는 읽었잖아. 갑자기 사라져서 그렇지…….”
여기서 말하는 ‘#별다섯개_지상밥상’은 팬들이 만들어준 지상이에게 맛집 추천해 주는 해시태그다…….
김지상과 서드림이 단톡방을 읽는 동안에도 우리는 영양가 없는 잡담이나 나누다가, 두 사람이 핸드폰을 내려놓자 본격 회의가 시작되었다.
톡으로 보내둔 내용은 그저께 이사님과 대화해 얻어낸 기회 이야기였다. 그전에는 이주가 다쳤다는 말도 했고…….
웬만해서는 비밀이 없는 사이가 이럴 때는 좋다. 두 번 세 번 말할 필요 없이 모두에게 한 번만 말해도 되니까.
“진짜 1부 스타트. 우리 앨범 회의하려고 하거든.”
그렇게 말하며 나는 일단 강주찬에게 가운데로 나오라고 손짓했다.
이 멤버로 앨범 기획 회의는 처음이었지만, 이런 일을 한다면 말하지 않아도 각자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우선 강주찬은 우리 중 가장 작곡 작사 편곡 등의 제작 숙련도가 높기 때문에 회의 부의장 역할로 호명된 것이다.
“본론 들어가기 전에 개요부터. 지금 나랑 지상이랑 승준이는 빠진 상태로 제작하는 앨범이고, 수록곡 모이면 일곱 번째 미니 앨범이 되고 수록곡이 제대로 못 모이면 피지컬 앨범과 포토북, 포토카드가 들어가는 스페셜 싱글이 될 것 같습니다. 이건 뮤직팀 쌤들이랑 주짱이랑 우리 멤버들이 얼마나 열일을 하느냐에 미래가 달려 있을 것 같고요.”
그리고 개요 단계에서는 확정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우리 그전에 멤버가 몇 명이 될지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 명씩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가 진행되었다.
나는 내 자리에서 보이는 순서대로 지목했다. 안승준, 김지상, 그리고 서드림까지.
“나야 뭐, 원래 그룹에 도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으니까……. 의헌이 형도 그룹 활동 하겠다는데 내가 빠지기도 좀 그렇고. 아무튼 그냥 그래.”
“난 생각을 좀 해봤는데…….”
승준이는 깔끔하게 입장을 정리했고, 김지상은 내가 가리키자 말끝을 흐렸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조금 되었다. 나쁜 예감이 들지 않았음에도.
‘어쩌면 당연한가?’
반년이라는 시간을 들였으니까. 김지상과 스테리나인으로서 활동하려고.
드디어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 왔다.
김지상은 조금 머쓱한 듯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중얼거렸다.
“……이대로 지낼 수 있다면 그룹 활동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리고 민망한지 바로 다음 타자에게로 순서를 넘겼다.
“드림이는?”
“나……?”
모두의 고개가 비슷한 박자로 위아래로 끄덕거렸다.
“몰라, 뭔가……. 오기는 했는데……. 아직 잘할 수 있을지 아닐지…….”
“많이 힘들어? 네 건강이 제일 중요해. 우린 드림이가 무리 안 했으면 좋겠어.”
“평소에 약 먹고 하면 괜찮은데, 차 타고 다니는 게 좀……. 단체 생활에 민폐 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이영하가 꽤나 맏형다운 멘트로 서드림을 달랬지만, 드림이는 자신감 없는 태도였다.
짐을 캐리어 여러 개에 담아온 것을 보면 애도 사실 처음에는 여기 있을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부산에서 고속도로로 올라오면서 그 과정이 너무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드림이 목소리가 웅얼웅얼 작게 기어들어 가는데, 그때 한이주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 그래도 잠깐이어도……. 있어 주면 안 돼?”
듣는 제삼자 입장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진심으로 부딪히는 말이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는지, 이주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우리에게 해명하기 시작했다.
“그, 그, 그! 짐도 챙겨오고 그랬잖아. 형들, 의헌이 형이나 승준이 형이나 지상이 형이나 지금 밖에 우리 숙소도 방 좀 남거든? 그러니까 서울에 잠깐 있으면서 결정할 수도 있는 거잖아. 바로 내려가지 말고……. 그리고 나는 막 네가 문제 만들고 그런다고 생각 안 해……!”
한이주는 횡설수설한 말을 멈추지 않고 이어갔다.
“네가, 네가 너 자신이 민폐라고 생각해도, 어, 그럴 수는 있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 안 할 수도 있는 거잖아. 물론 우리가 차 타고 다니는 스케줄이 많기는 한데…….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아깝기도 하고…….”
모두의 시선이 한이주에게로 몰렸다.
단순 흥분 때문인 건지 말하면서도 민망한 건지 얼굴이 새빨갰다.
사실 그룹 내에 하나뿐인 친구가 활동을 중단했다고 해도, 한이주는 초반 몇 달 힘들어하다가 말고 서서히 잘 회복해서 〈Run and Run〉 앨범이 릴리즈될 때부터는 평소 텐션을 거의 다 되찾은 편이었다.
그런 식으로 이주는 몹시 일차원적이면서도 사람을 좋아하고, 금방 처지는 만큼 금방 회복하고, 에너지가 남아도는, 하여간 옆에 두면 좋은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동생인데…….
어느 정도 에너지를 채웠다고 해도, 오랜만에 친구 얼굴을 보니까 진짜 좋기는 좋은 모양이었다.
저렇게……. 조금은 막무가내 같기도 한 자세로 같이 있자고 밀어붙이는 것을 보면.
‘쟤는 저거 진짜 사랑이다…….’
뭔가 열렬한 어필에 정신을 빼놓고 구경하고 있는데, 서드림은 부루퉁했다.
“한이주 또 말 이상하게 해.”
말만 들으면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냥 이주의 짝사랑인 것 같기도 하고.
갈 길이 멀어 보이는 것만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면 드림아, 이주 말대로 서울에서 좀 지내보는 게 어때. 코디 쌤들이 의상 준비 들어가거나 앨범 사진 찍기 전까지만 결정하면 되는 거니까.”
내가 한이주 말을 대신 정리해 주었다.
“안무나 파트 분배 같은 건 자잘하게 수정할 수 있기도 하고, 나도 이주랑 비슷한 생각이기는 하거든. 기왕 오게 된 거 좀 더 지내고 갔으면 좋겠어.”
눈을 보고 말하면 서드림은 마지 못하는 척 수긍했다.
“알았어…….”
이주도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다시 제자리에 앉았고, 긴 서론이 끝이 났다.
요약하면 에이레 멤버들인 나, 김지상, 안승준은 에이레 활동이 끝나거나 중단되면 함께 복귀하고, 서드림은 건강 상태를 봐서 호전이 되면 앨범에 참여하기로.
‘사실 얼마나 릴리즈까지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이때가 딱 여러 가수 컴백이 많았던 시기 같은데.
기획이 통과된다면 일정이 며칠 정도 기간을 두고 잡힐지 아직은 불분명했다.
‘흠, 활동 시작한 직후라면 〈오디뮤〉 출연도 쉽지 않을 텐데.’
모쪼록 지금이 절대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서론에서 맺은 결론을 말로도 한번 정리해 준 뒤에 본격적으로 앨범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그리고 이번 앨범은……. 추후에 인원 조정된 버전으로 퍼포먼스를 하게 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기획 자체는 다섯 명이나 여섯 명의 앨범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멤버는 나이 및 생일 순으로 이영하, 강주찬, 서난영, 천진섭, 한이주……. 그리고 어쩌면 서드림이었다.
전체적인 컬러를 따지면, 힘이 있다기보다는 온순한 느낌에, 각자 개인의 이미지와 별개로 사람을 모아두면 어쩐지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한이주는 장난꾸러기여도 순하고 착했고, 천진섭은 날카로운 성격과 달리 얼굴이나 몸 선이 얇았으며, 강주찬은 선도 굵은 편에 덩치가 있었지만 이상하게 저 네다섯 명 사이에 끼어 있으면 묘하게 색을 잃고 잘 섞여들었다.
‘성격이 과묵한 편이라서, 뭔가 조용함이 공통점이 되는 거 아닐까.’
그리고 이영하나 서난영, 천진섭은 말할 필요도 없이 부들부들 나긋나긋 얌전얌전했다.
‘그러니까 기존 스테리나인과는 느낌이 또 다르지.’
사실 이제까지 스테리나인의 그룹 색은……. ‘내달리는 것’ 위주였다.
있는 힘껏 부딪히고 고음을 높이 뻗고, 퍼포먼스는 칼각 잘 맞는 군무를 고집했다.
‘다인원의 장점을 잘 살리는 프로듀싱이었지, 늘.’
댄서를 사용하지 않고 아홉 명의 멤버들이 서로를 받치고 뛰어넘으며 구성하는 무대.
에너지는 폭발적이었다.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보컬도 상당히 탄탄했으므로.
그렇지만 이렇게 남은 멤버로는 스나 특유의 ‘가득 채우는 무대’를 기대할 수 없었다.
능력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삼 분의 일이나 빠지기 때문에 그 빈자리가 크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해오던 것만 좇아가도 곤란했다.
‘이 멤버들로 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돼.’
이때 이 인원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장점은 무엇인가.
명백했다.
“나는 우리 보컬을 더 쓰는 쪽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싶어.”
스테리나인의 대들보 같은 두 명의 메인보컬이 그룹에 남아 있다.
테크니컬한 고음 담당 이영하와 성량과 호소력으로 승부하는 파워 보컬 한이주.
그렇다면 그렇게 잘 벼린 무기가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방향은.
“그러니까……. 감성적인 코드의, 멜로디 위주 댄스곡도 괜찮을 것 같아.”
……정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