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04화 (104/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04화

21. Too Bad(6)

임 팀장이 문 방향을 물끄러미 보며 중얼거렸다.

“좀…… 제가 저 상태면 솔로 활동을 시도라도 해볼 텐데.”

“팀으로 활동한다고 하면 저희야 편하겠지만요.”

최 이사가 웃음과 함께 농담을 던지며, 피로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멤버가 그룹 활동을 하면 솔로 병행보다 품이 덜 들고, 여러모로 익숙한 방식이기도 했고, 정의헌의 말마따나 길게 본다면 지금은 팀인 쪽이 당연히 나았다.

당장 솔로 앨범이든 연기든 혼자 활동을 시작한다면 몇 년은 폭발적인 수익을 낼 수 있을 테지만, 팀에 정착한 뒤 연차를 쌓아 솔로 활동을 하는 것이 나름대로 더 안정성은 있었다.

사실 〈데프아〉 같은 일은 전에 없던 케이스였기 때문에 최 이사도 무엇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룹 인지도를 웃도는 개인이 생기는 일은 종종 있지만…….’

그룹에서 몇 명만 성공했는데, 성공한 이들의 팬이 그룹 멤버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주 정서라니.

〈데프아〉 같은 프로그램이 그동안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그에 따른 폐단도 새로 생긴 것이다.

그렇지만 정의헌은 분명히도 솔로 활동 의지가 없어 보였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가끔 보면 참 아깝다 싶었거든요, 의헌이는.”

“그래요?”

“물론 저한테는 아홉 명 다 아픈 손가락이나 다름없지만, 의헌이에게는 괜히 옆에서 보면 더……. 보는 사람이 더 조급해지는 그런 느낌이 있었잖아요.”

임 팀장은 과거형으로 말했으나, 최 이사는 과거형이 타당한 표현 같지는 않았다.

최 이사는 힐끔, 어딘가 저 멀리에 초점을 두고 있는 임 팀장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가 기억하기에 정의헌의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 출연은 임 팀장이 열심히 밀어붙인 감이 없지 않았다.

처음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경영진 내에서도 찬성과 반대 입장이 뒤섞였고, 사실 최 이사는 따지자면 반대 입장에 서 있었다.

KMC와 화해고 나발이고 차라리 그룹을 한 번이라도 더 컴백시켜야 한다는 게 그때 최 이사의 주장이었다.

자칫 치열해질 뻔했던 대립은 임 팀장의 한마디로 사그라들었다.

‘분명히 하고 싶은 게 많은 애예요.’

그 말이 끝내 최 이사를 설득했다.

‘그리고 우리가……. 의헌이가 욕심낼 수 있는 환경을 못 만들어주었죠.’

‘…….’

‘이사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동의를 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으므로.

‘스테리나인은…….’

스테리나인은, 2014년 어나더뮤직이 야심 차게 준비해 런칭한 보이그룹이었다.

다인조였으나 실력이나 비주얼에 구멍이 없게 오랜 시간을 들여 멤버를 선정했고, 일정이 밀리는 한이 있어도 트레이닝을 더하고 더해 개개인 실력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 모두가 달라붙어 노하우를 모두 동원해 신인을 홍보하려고 애썼기에, 멤버가 한 명씩 공개될 때 케이팝 팬덤 반응은 그야말로 최고조였다.

데뷔곡은 최고의 프로듀서에게 제작을 맡겨 안무와 녹음, 뮤직비디오 촬영, 연습까지 몇 개월은 걸렸고, 데뷔하기도 전에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이 나와 있었다.

신인 개발, 뮤직비디오, 프로모션, 컨셉 포토, 컨셉 필름, 데뷔곡 프로듀싱, 앨범 제작, 데뷔 전 콘텐츠, 홍보와 마케팅에는 전에 없던 막대한 자본이 소모되었다.

그 정도면 대형 소속사의 아웃풋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겠다고 최 이사는 자만하기도 했다.

시국과 국제 사회적인 여러 파동으로 일정이 밀리고 몇몇 프로모션은 아예 취소되거나 한참 뒤로 밀리거나 규모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최 이사는 좌절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멤버들에게 신인상 하나는 안겨줘야 한다는 야망이 있었으므로.

‘실제로 상을 안 받은 건 아니지만…….’

일정이 밀려 하반기 가까이 데뷔해 버린 탓에 큰 시상식에서는 어쩔 수 없이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스테리나인은 소속사 내리사랑과 자체 데뷔 리얼리티 덕분에 데뷔할 때부터 팬이 어느 정도 붙어 있었고, 해외에서 개최하거나 규모가 작은 시상식에서는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성공의 오르막길에 발을 내디디려고 하는 그때.

차마 수습할 수 없는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너무 많이 발생하였다.

음악방송 1위 후보에 올랐을 때에는 음반 사재기 의심을 받았고(아니었다), 유명한 악플러이자 사이버 렉카 이튜버가 달라붙어 멤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일 년 넘는 시간 동안 누가 죽어야 끝날 듯이 물어뜯었고, 사생활 침해는 들끓었으며, 흉흉하다고 소문이 난 팬덤 분위기에, 앨범 수록곡이 어떤 무명 가수의 팝송 표절 같다고 몰아가거나(증거로 돌던 것은 비슷하게 들리라고 조작한 음원이었다), 합동 콘서트 무대에서 립싱크 논란도 생겼고(라이브였다), 그러다가 발생한 ‘사생팬 택시 사고’까지.

하늘이 억지로 불행에 처넣는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사건 사고가 만 2년간 쉴 새 없이 잇따랐다.

그래도 멤버들은 정말로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하고 싶어 했다.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최 이사도 그들에게 휴식을 종용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때 조금 쉬어가면서 하라고 말을 해줄 걸 그랬지.’

다들 정말로 열심히 하고 싶어 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돌아오는 보상이 없다면 사람은 쉽게 고갈되고는 한다.

높이 오르고 올라 별에라도 가 닿을 것처럼 야망으로 부글거리던 소년들은 어느 순간부터인지 차분해졌다.

그리고 정의헌은 그 그룹의 리더였고, 핵심 인물이었다.

게다가 리더로서 최 이사와 가장 소통이 많은 멤버였기에, 최 이사는 그에게 눈길이 한 번씩 더 가고는 했다.

따라서 최 이사는 아홉 멤버 중에서는 정의헌의 변화를 가장 잘 기억했다.

그는 그 당시의 정의헌을 보고, 가진 것을 전부 불사르고 만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타고 남은 것. 잿더미처럼.

반년 전 임 팀장은, 최 이사의 그 판단을 착각이라고 꾸짖은 셈이었다.

정의헌은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 말을 들은 날 밤, 최 이사는 소속 아이돌이나 연습생들이 이용하는 연습실에 내려가 보았다.

연습생들은 더러 암실이라고도 부른다는, 까만 흡음재가 모든 벽에 붙은 지하 연습실이었다.

그날은 스테리나인의 〈Run and Run〉 활동 마지막 날이라서…….

최 이사는 멤버들이 모두 일찍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의헌은 혼자 그곳 빈 연습실에, 활동이 막 끝난 음악을 스피커로 틀어놓고 앉아 있었다.

연습을 하고 있던 것도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등받이가 없는 낮은 의자를 끌고 와서, 빈 공간 한가운데에서.

쓸쓸하게 그러나 즐거운 듯이 거울을 보거나 벽을 보면서 음악을 들었다.

앨범을 전곡 재생해 주었는지 〈Run and Run〉 노래가 끝나면 다음 순서인 수록곡이 흘러나왔다.

묘했다.

그 광경이.

그저 노래를 감상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는 청년의 모습이.

최 이사는 스피커에서 다음 노래가 시작될 때쯤 자신의 착각을 인정했다.

정의헌은 타다 남은 나무토막 따위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채 터지지 않은 불꽃을 삼켜 체화한 사람 같았다.

‘하고 싶은 것이 점점 생기고 있구나.’

언젠가 숨을 들이켜면 몸속에 산소가 돌고 불씨는 다시 타오를 것이다.

최 이사는 오늘 정의헌의 주장을 듣고 변화를 깨달았다.

욕심이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더러는 그룹 활동이 안일하고 위기감 없다고 평할 테지만, 최 이사가 생각하기에는 느낌이 달랐다.

〈데프아〉를 최고 성적으로 마무리한 지금의 정의헌이라면 분명히……. 솔로로 성공하는 것이 더 쉬웠다.

어떤 선택을 해도 지지층이 단단할 테지만, 정의헌 이름 석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그룹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 수보다 많은 현실일 테니.

하지만 정의헌은 더 어렵고, 그런데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택했다.

비효율적인 일에 몸을 밀어 넣는 것이라면 그 자체로 욕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최 이사는, 정의헌과 멤버들이 퀄리티 낮거나 생뚱맞은 기획을 가져오면 절대 통과시키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의헌이라면……. 왠지 기획도 잘해올 것 같네요.”

정의헌이라면, 이번에도 또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결과를 낼 테니까.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최 이사로서는 기대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 + +

서드림이 상경했다.

매니저 형이 부산까지 내려가서 직접 픽업해 왔는데, 올라오는 길에 차를 세 번 멈추고 한 번은 두 시간 넘게 다시 출발을 못 했다고 들었다.

그때 휴게소에서 애가 계속 헛구역질을 하며 끙끙 앓는 것을 지켜보느라 매니저 형도 꽤나 마음이 힘들었단다.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올라올 일은 아니었는데, 한이주가 일본 가서 다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분한 마음에 짐을 쌌단다.

우리는 첫 번째로 차가 멈추었을 때부터 입을 모아 충분히 쉬고 와도 된다고 말렸지만, 기어이 회사에 도착해서 ‘나 잘했지’라고 뿌듯해하는 막내를 보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튼 서울에 도착한 첫날에는 친구끼리 놀게 두고, 그다음 날인 금요일.

우리는 회사 연습실에 모여 앉았다.

“우선 박수!!”

안승준의 사회에 우리는 일단 시키는 대로 짝짝짝 자축의 손뼉을 쳤다.

전원 참석하는 가족회의가 거의 일 년만…… 이었다. 달력상으로는…….

‘……난 얼마만이지?’

칠 년 반……. 그리고 일 년……?

계산하면서도 믿을 수 없는 숫자에 왠지 머리가 멍해졌다.

“무사히 모인 것을 축하하며 2016년의 마지막 가족회의를 실시하겠습니다~”

대본까지 준비해 온 건지 안승준이 제 핸드폰 메모장을 곁눈질로 읽어 내려가며 말했다.

“시작하기 전에, 우리 드림이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갑고 오느라 수고했고, 귀엽고 멋지고 다 잘하는 우리 스뎅이들도 바쁘게 보낸 일 년 고생 많았습니다.”

“이거 개회사야? 길어.”

“우리 인간적으로 톡으로 이미 한 얘기는 뺍시다! 너무 깁니다. 우리 한 사람이 일 분만 말해도 십 분이 사라집니다.”

안승준이 인사말을 남기자마자 바로 비난이 쏟아졌다.

승준이는 사족을 붙이는 천진섭과 서난영에게 꿀밤 놓는 시늉을 했고, 잡담꾼들은 그사이도 놓치지 않았다.

“승준이가 MC에 재미 들렸나 봐, 요즘.”

“난 남이 이거 다 해주니까 편해서 좋아.”

“그런데 우리 설마 오늘 4부 하나요? 제발 뭐든 한 단계만 줄여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이영하가 내가 구석에서 떠들고, 한이주가 손 들고 불평하고, 서드림은 옆에 있는 멤버 무릎 베고 눕고…….

……이런 게 오랜만이라서 그렇지, 원래 이렇게 미친 듯이 산만한 게 스테리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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