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03화 (103/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03화

21. Too Bad(5)

이사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이사님이 파악하시기로는, 에이레 멤버들은 차기 그룹이 확정된 경우가 꽤 많다는 것 같았다.

웬만한 소속사에서도 K14엔터의 불안정을 꿰뚫어 보고 있으며, 차기 그룹이나 솔로 활동 준비를 위해 여기저기서 전문가나 앨범에 필요한 음악을 수소문하고 있는 중이라나 뭐라나.

심지어는 데뷔한 지 1년이 되지 않은 신인 그룹에 추가 멤버로 넣어버리려고 하는 소속사도 있다는 소문이 돈단다.

‘그 신인 그룹으로 못 데뷔해서 〈데프아〉에 나온 거 아닌가. 뻔뻔하기도 하군…….’

솔직히 협의가 잘 안 되는 미래라든가, 에이레 멤버들의 장래 활동 정도는 내가 겪어온 시간 덕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딱히 충격을 받은 것도 없었고, 나는 무난하게 이사님이 잘못 생각하시는 지점부터 찾아가 사실 정정을 했다.

“저……. 멤버들과 대화를 해봐야 알겠지만, 저는 가능만 하다면 그룹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어요.”

“……그래요?”

이사님은 믿기 어렵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떴으나, 나는 꿋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솔로는 지금은 자신이 없기도 하고, 유닛 활동도 길게 봤을 때에는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요.”

“길게 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일단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의헌아.”

“어……. 말 그대로 정말 길게요. 앞으로 몇 년, 십 년 넘게, 몇십 년. 정말 그렇게 길게요.”

조금 더 생각해 본 뒤에 부연했다.

“저는 그만큼 오래 활동하고 싶거든요.”

아이돌은 본래 직업 수명이 짧다.

당연히 알고 있다.

왜, ‘아이돌 마의 7년’, ‘7년 징크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게 무슨 계약 기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 같은데…….’

아이돌이 데뷔할 때 연예기획사와 맺는 계약 기간은 7년이 업계 표준이다.

7년이 지나면 재계약 기간이 오고, 그때 대개 그룹의 존속이나 멤버 개개인의 퇴사, 탈퇴까지 결정된다.

물론 그룹이 흩어지는 경우의 수도 존속하는 경우의 수도 숱하게 많다.

멤버들은 활동 의사가 있는데 회사가 일방적으로 그룹 계약을 종료해 버리기도 하고, 그룹 멤버 전원이 다른 소속사로 흩어져도 그룹 활동은 기존 소속사에서 하는 경우도 있고, 다 함께 퇴사해서 새 둥지를 찾는 그룹도 있었던 것 같고.

아무튼 멤버들 사이의 불화도, 회사와의 마찰도 많이 생기는 시기라고는 주워들어 알고 있다.

‘스테리나인은 오히려 재계약은 문제없이 금방 넘어갔지만.’

7년 계약 기간도 채우지 않고 위약금을 물고 탈퇴한 김지상, 천진섭이나 일 년 넘게 활동을 중단했던 서드림, 개인 활동 때문에 계약서를 갱신해서 혼자 이것저것 조건이 달랐던 안승준 등 케이스가 들쭉날쭉하기는 했지만, 남은 멤버들의 재계약은 또 어떻게 뜻이 하나로 잘 모였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애썼기 때문이었다.

어찌 됐든 그때의 그 노력이 스테리나인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이 되기는 했다.

이후 활동에서 아쉬움이 남겼느냐 아니냐와는 별개로 말이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은 아이돌의 수명을 7년 정도로 생각한다는 거야.’

점점 갈수록 재결합이나 오래 활동하는 아이돌도 늘어난다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소수에 불과했다.

진실을 따지자면 7년이 되기도 전에 멤버 변동을 겪거나 해체하는 그룹 수도 상당했다.

‘하지만 데뷔 후 7년에 재계약이면……. 이제 몇 년 안 남았잖아.’

이제 겨우 한 달만 지나 해가 바뀌면, 스테리나인은 4년 차 아이돌이 된다.

할 수만 있다면 더 오래…….

더욱 정진해서.

스테리나인 정의헌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싶었다, 나는.

물론 애증의 우리 어나더뮤직도 폐업 안 했으면 좋겠고.

“그러면 의헌이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원하는 게 있어?”

매니저팀의 임정인 팀장님이 질문했다.

저번 주말 강주찬이 내게 했던 물음과 비슷했고, 그래서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

“스나 컴백 플랜을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컴백 시기가 두루뭉술하게 잡혀 있다는 것은 저번 분기별 회의 때 이미 지나가듯 들었다.

게다가 우리 위 선배 보이그룹 멤버의 연말 솔로 발라드 싱글 음원 활동도 이제 막 끝났고……. 지금 컴백하거나 컴백을 준비하는 가수가 없다는 건 모를 수가 없으니까 딱히 이상한 선무당 발언은 아니었다.

나는 강주찬 앞에서 했던 말을 TPO에 어울리도록 공손하게 표현을 바꾸어 두 분께 올렸다.

“저는 지금 이때가 오히려 스테리나인이 활동해야 하는 시기라고 봐요. 지금이 아니면 공백기가 더 길어질 테고, 그렇게 되면 좋지 않을 것 같아서요.”

한이주가 공연을 보러 와서 다쳤다거나, 내가 어떤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거나,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 나는 나나 김지상, 안승준의 동향과 희망 사항을 살피느라 스테리나인 멤버들을 소홀히 대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원래 어나더뮤직은 하나에 신경을 쏟으면 다른 것들은 방치하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하는 말이었다.

물론 그 원인은 근본적이고 고질적인 –그리고 멤버들과 경영진과 팬들 그리고 팬 아닌 사람까지 모두가 알고 있는– 인력 부족 때문이었기에 이사님과 팀장님도 흔쾌히 ‘YES’ 대답을 돌려주지는 않았다.

“사실 그건……. 어려워요.”

즉 첫 대답은 거절이었다.

“에이레 데뷔가 정말 무산된다면……. 분명 회사 단위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질 거거든요. 그러면 현실적으로 그런 일 처리와 컴백 준비를 같이 하기가 힘들 거예요, 응. 앨범 한 장 제작도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의헌이도 알고 있을 거고. 마케팅이나 제작이나 A&R이나 한 번에 움직여야 되거든요.”

이사님의 말씀은 결국 실무와 경영의 병행이 힘들다는 의미였다.

이런 대답이 돌아오리라는 것은 당연히 예측했다.

그래서 나는 드디어, 처음부터 말하고자 했던 진정한 본론을 꺼내놓았다.

제안이었다.

“저, 혹시. 멤버들이 기획을 준비해 보면 어떨까요.”

“프로듀싱 이야기니?”

팀장님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꼭 작곡하고 기술적으로 전부 프로듀싱하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앨범 콘셉트나 전체적인 기획 이야기를 하려는 거죠. 퍼포먼스를 하는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요소도 분명 있을 테고……. 그런 것을 좀 이용해 보고 싶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말하려고 미리 준비해 온 건 맞지만, 말이 생각보다 술술 나와서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최근에 스테리나인 외부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으니까, 그만큼 안에서도 변화가 필요할 거예요. 저는 자체 프로듀싱이 또 그런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안팎으로 신선한 바람을 불게 하는 거죠.”

작곡을 공부하기 시작하거나 전부터 해온 멤버도 많고, 나도 프로그램은 조금 다룰 줄 알고.

아이디어를 가지고 외주나 의뢰를 맡긴다거나 다른 프로듀서와 협업을 할 수도 있는 거니까.

나는 우선 계획한 멘트를 두 분 앞에 원 없이 털어놓았다.

‘애초에 어나더뮤직 경영을 맡고 계시는 분들이 A&R이나 프로듀싱 파트를 많이 겸하시잖아.’

당장 이사님만 하더라도 프로듀싱 사업 팀에서 올라가신 분이었다.

다시 말해 ‘회사 단위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경영진(=프로듀서)들이 바빠지는 게 문제였다.

즉 안무라든가 외주 및 협업 연락이라든가 홍보, 마케팅 파트에서는 인력이 비지 않고 오히려 놀았다.

그냥 내가 생각하기에 자체 프로듀싱이야말로 인력 공백을 충당할 수 있는 정답이었다.

그렇게 주장을 다 하고 슬쩍 눈치를 살피는데, 테이블 너머 두 분에게서 당혹감이 살살 느껴졌다.

곤란해 보이는 것까지는 아닌데,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줄은 모르셨던 걸까.

“……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정적 끝에 이사님이 입을 열었다.

“퀄리티가 제일 중요해요.”

그리고 말씀하셨다.

“우리 멤버들은 아티스트지만, 나나 정인 팀장이나 다른 직원들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판매를 할 수 있는, 일정 퀄리티가 되는 음악을 취급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흠.”

“이사님. 그쯤 하셔도 알아들어요, 의헌이는.”

이사님이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 말을 골라서 열심히 쌓은 서론을 팀장님이 베어냈다.

“그러니까, 자체 프로듀싱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커버할 수는 없다는 말이야. 무엇보다 결과물이 제일 잘 나와야 되고, 만약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회사에서는 ‘이렇게는 앨범을 내지 못하겠다’고 리턴을 할 수도 있어. 의헌이는 그 점은 혹시 어떻게 생각하니?”

겁을 주는 말이 한가득이었지만, 결국 요점은 ‘잘하지 않으면 빠꾸 먹이겠다’는 공지였다.

팀장님의 그 말씀은 거두절미하면 앨범에 쓰일지 아닐지도 모르는 것을 시도해 보겠냐는 의미였다.

두 분은 오히려 사업을 하는 직원들이라서 미처 모르시는 듯했지만.

사실 아티스트 본인도 퀄리티 낮은 작업물은 세상에 내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당연히 최선을 다한다.

“알아요, 쌤. 기회만 주시면 저희가 최대한으로 퀄리티 내볼게요.”

나는 기꺼이 대답했다. 그래도 기회를 달라고.

멤버들이 스테리나인 앨범을 자체 프로듀싱한다, 일정 퀄리티에 미쳐야만 앨범이 나올 수 있다.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괜찮은 조건이었다.

* * *

정의헌이 꾸벅 인사하고 먼저 회의실을 나선 뒤.

방 안에는 매니저팀 임정인 팀장과 최 이사 둘만 남았다.

원만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대화였으나, 최 이사는 왠지 자리가 정리되자 긴장이 풀어짐을 느꼈다.

“휴우……. 정말 요즘은 쉬운 일이 하나도 없네요.”

“애가 좀 그렇죠. 말을 참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최 이사는 나름대로 어나더뮤직 대표가 회사를 차릴 때부터 동업한 원년 임원으로, 이십 년 가까이 대중가요 및 매니지먼트 업계에 몸을 담은 인물이었다.

그 시간 동안 별의별 사람을 다 봤다.

어나더뮤직에서도 그랬고 창사 전 여기저기 다른 곳에서 일을 할 때에도……. 존경스러운 사람도, 도저히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이 접했다. 아티스트든 관계자든.

또한 그가 아티스트를 나름대로 인격적으로 잘 대우하는 만큼, 그는 아이돌과 터놓고 의견 교환을 하는 일도 많았다.

그렇지만 카메라 앞도 아닌데 몇십 년 후에 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가수는……. 아니, 아이돌은. 처음이었다.

“뭔가 스스로 확신이 있는 것 같아요, 의헌이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임 팀장이 말했다.

매니저인 만큼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왔을 텐데도, 어쩐지 먼 것에 관해 말하는 듯한 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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