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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101화 (101/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01화

21. Too Bad(3)

조금 전 호텔 로비에서 만나 같이 올라올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걸음걸이가 묘하게 부자연스러운 느낌.

의혹은 타코야끼를 들고 같이 방을 나오면서 더욱이 짙어졌다.

한이주는 실내에서도 양말을 신고 겉옷으로 저지를 입고 있었는데,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하필 신고 있는 양말이 희고 얇아서 가려지지 않은 것이다.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볼 수 있었다.

한이주의 발등에 얼룩덜룩하게 멍이 들어 있었다.

“어? 별거 아니야, 왔다 갔다 하다가 좀 부딪혀서.”

“그래?”

“뭐, 알잖아? 나 잘 넘어지고 그러는 거. 대체 어떻게 봤대. 시력 사기네…….”

한이주가 얼버무리고 농담까지 건넸지만, 나는 그냥 적당히 흘리며 무릎을 꿇어앉아 자세를 낮추었다.

“너 양말 벗어봐.”

“아! 왜 그래, 그 정도 아니야. 사람을 막 벗기네?!”

내가 아무리 인생 대충 소모해도 한이주 거짓말조차 구분 못 할 정도로 안일하게 살아가지는 않는다…….

내 태도가 진지하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이주도 곧 억지웃음과 괜한 농담을 거두고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방 가서 얘기하자. 진짜 막 심각한 부상은 아니야.”

“너 팔도 어떻게 된 건지 얘기해.”

“으윽…….”

내가 몸을 일으키며 약하게 을러메자 한이주가 꿍얼꿍얼 앓는 소리를 냈다.

전자레인지에서 타코야끼를 꺼내 들고 돌아가는 복도, 이주가 조용히 내게 물었다.

“형 화난 거 아니지……?”

“안 났어. 그냥 무슨 일이었을까 생각 중.”

“그게 더 무서운데!”

한이주는 엄살을 부리다가도 방에 들어서자 곧바로 겉옷을 벗어젖혔다.

이주가 옷을 테이블 의자 등받이에 대충 걸어놓는 모습을 보며, 천진섭이 마치 배신당한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한이주 너어!”

“난 최선을 다했어! 최선을 다했는데 이 형이 상상 이상이었던 거야. 제발 봐줘.”

이 친구들이 나 몰래 뒤에서 첩보 영화라도 찍으려고 했나 보다.

하지만 한이주의 맨발등과 팔뚝을 보면 숨기고 싶어 한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다치고 말을 안 하려고 해?’

상태가 심각했다.

어디 부딪히거나 조금 넘어진 수준이 아니었다.

발도 팔도 마치 누구에게 맞거나 패싸움이라도 한 것처럼 멍들고 부어올라 있었다.

이주의 상태를 빠르게 눈으로 훑고 나는 시선을 돌려 동행인이었던 천진섭과 강주찬을 살폈다.

두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옷으로 가려지지 않는 부위에는 별달리 상처가 남아 있지 않았다.

“…….”

“아니, 이 형 생각하잖아. 좀 못하게 해봐.”

“네…….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하겠습니다. 스톱, 스톱.”

‘이주만 다치고, 셋은 아는 사건에, 숨기려고 한 이유가 뭘까’부터 추론을 시작하는데, 안승준이 과장해서 말하고 한이주가 날 저지했다.

나는 이렇듯 생각이 없어도 잔소리를 듣고 생각을 해도 잔소리를 듣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 말하면 걱정할 것 같아서 나중에 좀 나으면 그때 썰 풀려고 했지…….”

“그 걱정 좀 지금 해보게 빨리 말해.”

내가 재촉하자 한이주는 입술을 비죽이더니 사연을 읊기 시작했다.

사건 장소는 콘서트가 열린 극장, 세 사람이 공연을 관람한 2층 좌석.

때는 공연이 끝난 직후.

그 이상은 요약하기 힘들 만큼 횡설수설 말하는 한이주 덕분에 나는 아주 간단한 사실관계만 파악할 수 있었다.

요점은 거기서 이주가 사람들이나 난간 등에 부딪히다 보니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뭔가 부딪혔다는 말이 거짓말 같은데.”

“공연이니까 좀 밟히고 밀리고 할 수도 있지?”

“좌석에 앉아 있었으면서 어떻게 발을 밟혀.”

김지상까지도 끼어들어서 태클을 걸었다.

그만큼 논리에 구멍이 많은 진술이었으므로.

그때 강주찬이 한숨을 푹 쉬고는 얌전히 거수했다.

“설명 그냥 내가 할게.”

주찬이는 그렇게 전원 동의로 발언권을 넘겨받았다.

이 자리에 모인 오합지졸 여섯 중에서는 그래도 강주찬이 가장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말하는 타입이었다…….

“다들 의심을 하든 추측을 했든, 그게 맞아. 맞고 밟힌 거.”

녀석은 한이주와 정반대로, 말의 머리와 꼬리를 다 잘라내고 알맹이부터 꺼내놓았다.

“누가 그랬는지 얼굴도 봤어. 뭐, 반격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건 안 했고.”

“왜?”

안승준이 물었다.

“왜일 것 같아. 왜 이제까지 말을 못 했을 것 같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번에도 대꾸는 안승준이 했다.

“……관객이었구나.”

“관객? 팬이었지.”

강주찬의 대답은 단호하고 조금은 까칠했다.

지금까지 이야기가 빙빙 돈 것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범인이 우리 셋 중 하나의 팬인지, 다른 출연자 팬인지 여기까지 듣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콘서트를 보러 온 사람이었고 조금 혹은 많이 한이주에게 적의가 있었다.

일부러 폭력적으로 접촉했을 만큼.

가해자면서 누군가의 팬.

〈데프아〉는 좋아하지만, 그 외의 것은 싫어하는 사람.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김지상은 인상을 찡그리고 물었다.

“일본인이었어?”

“아니, 한국인.”

공연을 보러 해외까지 올 정도로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면서 악의가 쉬운 누군가.

그 모습을 상상하려다가 멈추었을 때쯤 강주찬이 말을 이었다.

“국적 같은 건 안 중요하지 않아? 특정할 필요도 없고.”

맞는 말이었다.

그가 팬이고 우리가 연예인이라면, 이런 해프닝에는 대응책이 많지 않았다.

한다면 할 수 있었지만 그 결정에 따라올 여러 소동이……. 상상만 해도 피곤했다.

– 걍 좀 부딪힌걸로 뭐 이정도까지 함 빠혐 ㄹㅈㄷ

– 아이돌이 빠수니랑 기싸움하면 그게 빠혐이지 뭔 이건 아니래...

– 공지만 보면 누가 묶어놓고 빠따로 팬줄 키 187짜리를 잘도 폭행했겠다 유난도 망신살이야 ????????ㅔ

– 아 지금 얘기 나오는 남돌 누군가 했더니 웁쓰... ㅋㅋㅋ

……물론 그 정도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어렵지 않게 들 정도로, 대응하기 난처한 일이라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주찬이 형이 말을 이렇게 해서 그렇지, 난 우연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막 심각하게 생각 안 해도 돼. 사과도 들었고, 응?”

“야. ‘아 죄송해요~ 이에, 고멘!’ 하는 게 어떻게 사과야?!”

한이주가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말했지만, 천진섭의 격추가 더 힘이 있었다.

“두 명이 일행이었고 둘 다 한국인이었어. 그 사람들이 우리 알아본 거 맞고 일부러 그랬어. 한 명은 의헌이 형 팬이고 다른 한 명은 지상이 형 팬이었거든. 두 사람 나올 때만 집중하고 다른 사람들 무대 할 때면 핸드폰 보면서 둘이 떠들고, 형들 무대 할 때도 호응 안 하고 영상만 찍으면서 솔직히 관람 매너도 되게 안 좋았거든?”

한번 말하기 시작한 천진섭은 거리낌 없이 자신이 본 것을 모두 폭로했다.

점점 명백해졌다.

이 일은 에이레 팬, 아니, 그보다도 나나 지상이의 개인 팬이 스테리나인 멤버를 직접 해친 사건이었다.

물론 원한과 증오가 뒤섞인 계획범죄를 꿈꿨다기보다는, 자기들끼리 장난처럼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도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의가 없는 것이 되나?’

스나 멤버들이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가해했을 것이다.

실제로 세 명 다 없던 일인 척 대기실에 놀러 왔고 내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당분간 숨겼을 기색이었으니까.

우리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목소리 내서 싸워줄 사람까지는 솔직히 많지 않을 테다.

어떤 아슬아슬한……. 보이지 않는 불균형 내지 불공평함이 문득 피부로 체감되었다.

‘아…….’

여러 감정이 한 번에 급작스레 들끓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침묵이 감돌자 한이주는 안절부절못하며, 거침없이 발언하는 천진섭을 말렸다.

“형아아……. 말을 왜 그렇게 해, 자꾸. 내가 좀 거슬리거나 했겠지. 시야를 방해했을 수도 있고, 응?”

“너야말로 왜 그렇게까지 자신이 없어? 너 뭐 잘못했어?”

“아니, 형들 곤란하잖아…….”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속을 가라앉히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주야, 아니야. 괜찮아. 나는 조금 얘기……. 더 들어보고 싶은데. 진섭아, 좀 부탁해도 될까.”

말하면서 김지상과 안승준에게도 눈짓으로 허락을 구하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진섭은 한숨 같은 날숨을 쉬더니 천천히 본인의 시점에서 사건을 서술했다.

그 사람들은 거의 처음부터 알아보는 티를 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테리나인에 남은 멤버들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고.

그리고 역시 왜 한이주를 고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부러 나갈 때 발을 밟고, 넘어지는 척 팔꿈치로 내려찍었단다.

게임을 하는 것처럼 유쾌하게.

진섭이는 그 모습을 보고 즉시 쫓아가 항의하려고 했는데, 한이주가 막아섰다고 한다.

‘……이주를 탓할 수는 없지. 나라도 거기서 진섭이를 말렸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당연히, 따지고 싶어 하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즐기러 와서 봉변을 당한 꼴이니까 불쾌함을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나 형들 보려고 비행기 표 끊어서 여기까지 왔어.”

천진섭이 울컥 화를 냈다.

“내가 그 사람들이 형들 팬인 거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 나도 형들 나올 때만 집중했어서 그래. 진짜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서울에서 할 때 보러 갔을 거야. 그런데 그때도 얘가, 한이주가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단 말이야. 나 솔직히 그때도 이해 안 됐고 지금도 안 돼.”

진섭이가 씩씩거리고, 한이주는 어떻게든 진정시키고 싶어 하며 울상이었다.

그 시점에는 모두가 나의 말을 기다리는 것 같기도 했기에……. 나는 차근차근 정리했다.

“일단 나는 두 사람 입장 다 이해하고 알겠는데, 내가 만약 이주 자리에 있었으면 싸우기보다는 이주가 했던 대로 대처했을 것 같아. 솔직히 이주가 속 깊게 잘 대응했다고도 생각하고. 이주야, 쉽지 않았을 텐데 진짜 고생 많았어. 너도 네가 ‘억울하지 않다’, ‘당할 만해서 당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한 거 아니잖아. 그렇지?”

“아……. 응? 그건 그렇지…….”

한이주가 살짝 머쓱하게 대답했다.

나는 왜 서울에서 공연할 때 보러 오지는 않았냐고 묻지는 않았다.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선택한 방법이었을 테니까.

일부러 사람이 없고 조용히 보고 갈 수 있는 공연을 골랐을 게 분명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생겨 버렸지만 말이다.

‘사실 대기실도 우리가 불러서 온 거지, 안 불렀으면 그대로 갔을지도 몰라.’

지금은 우리가 인연이 있고 유대감을 느낀다는 것을 강조하면 좋아할 사람보다 싫어할 사람이 더 많은 시기였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도덕적이고 비도덕적인지를 떠나 호와 불호 의견의 쪽수 차가 너무 심했다.

사람들에게 친분을 알려봤자 결국 스테리나인 멤버들만 공격을 받게 될 거다. 오늘 이주가 당한 일처럼.

실제로 아마 이 시기쯤에는 멤버들끼리 서로 언급을 자제하라며 매니저팀에서 권고가 내려오기도 했으니까.

‘아……. 화 안 났다고 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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