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100화
21. Too Bad(2)
사실 표정이나 생김새 등이 아주 자세히 보이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분위기로 인물의 정체를 알아챘고, 내가 기억하는 표정을 희미한 얼굴 위에 덧그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웃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웃는 얼굴이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생각했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와줬네, 어떻게 여기까지.’
세 명이었다. 전부는 아니고.
스테리나인 멤버들.
가장 키가 큰 쪽이 한이주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스피커에서 부드러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일단은 무대부터. 최고의 컨디션으로 해내야 했다.
그 애들에게 내가,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 * *
“어떻게 알았어?!”
“넌 솔직히 너무 눈에 띄니까.”
대기실 안, 한이주가 호들갑을 떨며 묻고 김지상이 대답했다.
오사카까지 찾아온 개인 손님 혹은 초대객은 많아봐야 한두 명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곳만 시끌벅적했다.
하나 놀라운 점이 있다면, 멤버들의 방문을 우리 세 사람이 모두 무대 중에 눈치챘다는 것이다.
“나는 의헌이 형이 마지막에 노래하면서 자꾸 힐끔힐끔 보길래…….”
“……그거 티가 났나?”
“아닐걸? 난 옆에 있으면서도 몰랐는데.”
굉장히 오랜만인 듯한 기분이 드는, 스테리나인(⅔) 모임이었다. 그것도 외지에서.
실제로 해외투어 이후로는 다 함께 모여 대화할 자리가 없었으므로 정말로 몇 달만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서 가수도 관객도 도파민이 도는 상태에, 반가움까지 더해져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이 모두 흥분한 채였다.
“공연 팀은 끝나고 바로 출국하나?”
주찬이가 질문했다.
오늘 공연을 보러 온 멤버는 강주찬과 한이주, 그리고 천진섭.
강주찬은 김지상, 안승준과 동갑인 메인래퍼고 한이주는 막내라인인 메인보컬……. 진섭이는 그 사이에 혼자 96년생인 멤버다.
묘한 조합이라서 어떻게 이렇게 모였냐고 만나자마자 물어보니까 한이주는 목소리를 낮추어, 그러나 여전히 큰 소리로 설명했다.
천진섭이 갑자기 일본에 가고 싶다면서 생떼를 써서 한이주는 짐꾼으로, 강주찬은 통역사로 고용되었다고…….
강주찬이 딱히 멤버들 중에서 일본어를 제일 잘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데려온 것을 보면 그냥 보호자 역할 같기도 했다.
……하여튼 질문에는 내가 대답했다.
“내일 낮 출국이라 지금부터는 자유시간이긴 해.”
“뭐 하는 거 따로 없고?”
“아까 몇 명이 라멘 먹으러 가자고는 하던데, 끝나니까 다 피곤하다고 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나는 옷을 갈아입거나 사진을 찍거나 핸드폰을 보느라 바쁜 친구들을 슬쩍 보고는 말을 이었다.
“밤에 너희 일정 없으면 이자카야 같은 데 같이 가든가.”
“그러지 말고 세 사람이 우리 숙소로 오지?”
말하면서도 천진섭이나 한이주가 일본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지 가늠이 안 되었는데, 천진섭이 좋은 수정안을 냈다.
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활동기가 아님에도 탈색을 몇 번 하여 만든 아이보리색 머리카락에 셀프 헤어 스타일링 및 메이크업, 갈색 컬러 렌즈.
무스탕과 통이 좁은 블랙진, 찰랑거리는 목걸이,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면 느껴지는 은근한 바닐라 향 향수 냄새.
그리고 그 스타일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상당한 고가라는 사실까지……. 천진섭을 소개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우리 숙소 넓어.”
“어, 맞아. 호텔인데 온천도 있어.”
“남의 숙소 가서 온천 쓰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천진섭의 숙소 자랑에 한이주가 한마디 얹었다가 안승준의 핀잔을 들었다.
이주는 진섭이와 십 센티미터 넘게 키 차이가 날 정도로 장신이었고, 평소에는 후드나 니트에 벙거지 모자나 쓰고 다니는 녀석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강주찬과 세트로 멋들어지게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천진섭이 자기 취향대로 두 사람을 코디한 것 같았다.
‘설마 사준 건가…….’
가능성 높은 의혹을 미뤄두고, 나는 세 사람이 묵는 숙소 위치가 우리 단체 숙소와 멀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걸어서는 삼십 분이지만 택시를 타면 오 분도 안 걸리는 거리. 그쯤이면 기분 따라 걸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 우리가 그쪽으로 갈게.”
우리는 그렇게 합의하고 기념 삼아 –당장 어디 업로드할 수는 없겠지만– 단체 사진이나 몇 장 찍었다.
손님을 먼저 보내주고 자리를 정리한 뒤에는 직원들에게 허락 구하기를 빙자한 외출 계획 보고를 했고…….
이후에는 빠르게 숙소로 돌아가 내일 가지고 나갈 짐을 싹 정리한 다음 –셋 중 아마 나만 그랬을 거다– 약속 장소로 향했다.
라멘은 기어이 먹으러 가겠다는 녀석이 세 명쯤 있었는데, 그쪽에는 손님이 왔다고 사과하고 빠져나왔다.
그렇게 김지상, 안승준과 삼십 분을 뚜벅뚜벅 걸었다.
편의점에서 음료나 간식거리를 사서 도착한 숙소는 아니나 다를까 휘황찬란했다.
게다가 우리 숙소보다 보안이 훨씬 좋기까지 해서 쫓아오는 몇몇 사람들을 피할 수까지 있었다.
“올라가자, 우리 402호야.”
“방을 셋이 같이 써?”
“여행 와서 정 없게 각방 쓸 거냐고 내가 설득했지.”
1층 로비로 내려와 준 한이주와 함께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목소리도 큰데 말마저 많은 한이주가 쉬지 않고 오게 된 계기와 과정에 관해 썰을 풀어주었다.
사실 콘서트 공지가 떴을 때부터 천진섭이 오고 싶어 했고, 한이주도 같은 마음이었단다.
제일 보고 싶었던 건 서울 콘서트였지만, 사람이 너무 많을 듯해서 그건 자제했고…….
그렇게 콘서트의 꿈은 잠시 접어두었는데, 우리가 출국하자마자 일본에 가고 싶다고 천진섭이 너무 짜증을 내서 끌려왔다는 사연까지.
외국인 데다가 장소가 프라이빗 하고, 복도나 엘리베이터에도 우리 말고는 사람이 없어서 이주가 신나게 떠들게 두었다.
게다가 딱히 몹시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아니니까 말이다.
“입장 티켓은?”
“그건 민정 누나가 초대권을 구해줘서.”
“아, 잘했어…….”
그러지 않아도 비행기값에 숙소까지 낭비가 아닌가 걱정했는데, 매니저팀에서 준 표라고 하니까 겨우 다행이었다.
그리고 한이주는 천진섭이 짜증을 냈다고 잔뜩 투덜거렸지만, 사실 둘 사이는 평소에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한이주와 서드림의 ‘막내즈’가 친한 것과 또 다른 의미로 상호 보완이 되는 관계라고 해야 하나.
물론 겉으로는 넉살 좋고 성격이 완만한 한이주가 천진섭의 변덕이나 까탈스러운 불평불만을 다 받아주는 것 같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덤벙대고 실수가 잦은 한이주를 천진섭이 타박하면서도 하나하나 다 챙기는 모습도 보이고는 했다.
‘막내 둘은 오히려 무슨 느낌인지 설명이 잘 안 된다……. 개와 고양이?’
어쨌든 천진섭에 강주찬, 한이주면 대충 천진섭의 최애 두 명 같은 느낌이었다.
‘하여간 걔도 참 제멋대로지.’
천진섭. 스테리나인에서 유일하게 동갑내기가 없는 멤버로, 서브 보컬 포지션이자 김지상과 함께 그룹의 비주얼 라인이었다.
서울 강남 노른자 땅에서 나고 자란 부잣집 장남에 자기 주관 확고하고, 고집도 세고, 프라이드도 높고…….
의외로 팬들은 살뜰하게 챙기는 데다가 노력파에 감수성이 풍부한 면도 있지만……. 녀석은 스테리나인의 끝까지 같이 가지는 못했다.
‘미안, 부모님이 이제 그만하라고 하셔서 더는 안 되겠어.’
천진섭의 탈퇴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숙소 짐을 빼고 나가 살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공백기마다 활동을 중단하며 콘서트나 행사, 팬사인회 등에 종종 불참했다.
그리고 어느 날, 재계약이 한참 남은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탈퇴를 선언하고 그룹 활동을 종료했다.
‘부모님의 반대’는 꽤나 강력한 무기였다. 다음 활동 잘하면 된다는 말도 설득력을 잃은 시기였으므로…….
‘회상하면 좀 처지는데, 여섯 명이나 일곱 명으로 활동한 시기도 부정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때 만난 팬도 팬이고, 인연도 인연이고……. 나는 최애 활동도 사실 7인조 활동 중에 있다(아무래도 옛날 활동은 세련된 맛이 없다 보니…….).
아무튼 탈퇴한 뒤 천진섭은 노래나 연기 등 연예계 활동은 물론이고 SNS 등의 인터넷 활동도 모두 그만두었다.
가뭄에 콩 나듯 아주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기는 했으나, 진섭이가 외국에 나가 살기 시작하면서는 그마저도 잘 안 되기 시작했다.
‘지상이는 계속 솔로 가수든 배우든 활동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진짜 오랜만에 얼굴 보는 건 천진섭이긴 하지.’
그리고 오늘날 2017년을 한 달 앞둔 스물한 살 천진섭은 건강하게 아이돌로서 잘 지냈다.
한이주가 402호 문을 카드키로 열면, 그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걸어오느라. 편의점 간식 좀 사왔어.”
쫑알거리는 진섭이를 적당히 달래주며 나는 식탁 위에 편의점 먹거리들을 내려놓았다.
숙소 내부는 부엌에 인덕션까지 설치된 데다가 방이 두 개나 되어서 제법 쾌적했다.
내부 구경을 빠르게 한 뒤에는 그저 앉아서 떠드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 근황 토크부터 시작하여 콘서트 이야기를 하고, 오사카 여행 계획과 회상을 듣고, 쇼핑했다고 보여주는 새 옷들 구경하고…….
알콜이 들어가니까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는 말이라든가, 에이레는 어떻게 될 것 같냐는 말까지 나왔다.
“모르겠네……. 분위기가 진짜 안 좋아서.”
“확실한 거 하나도 없이 콘서트 연습만 계속 시켜서 다 불만 장난 아니야.”
“우리 형들 데리고 갔으면 잘할 것이지 짜증나게잉…….”
안승준이 말을 아끼고 김지상이 투덜거리는데, 한이주가 지상이 무릎에 엉겨 붙어 애교를 부려댔다.
그렇게 접촉하기를 삼 초쯤……. 이주는 돌연 벌떡 일어나면서 훈훈하던 분위기를 깨부쉈다.
“타코야끼 데워 올래.”
“취해서 저랬구나? 무슨 타코야끼?”
“그거 싱크대 옆에 있어. 아까 공연 끝나고 숙소 오는 길에 노점에서 사 온 거.”
천진섭이 대신 대답해서 슬쩍 등을 돌려보니까, 정말 그 자리에 뚜껑 닫힌 종이 포장 상자가 있었다.
한이주가 타코야끼 포장을 손에 들고 주섬주섬 슬리퍼를 꿰어 신었다.
“데운다는 거 전자레인지야? 방에 없어?”
“아, 내 말이! 인덕션도 있는데 왜 전자레인지가 방에 없는지 모르겠어.”
“쟤는 그러면 지금 어디 가는 거야?”
“복도에 전자레인지 있어. 그거 찾으러 가는 거겠지.”
애들이 사이좋게 한마디씩 잡담을 주고받는 사이에 내가 나섰다.
“이주 저러고 가다가 백퍼 넘어져서 데운 거 엎을 것 같은데. 가서 보고 올게.”
모두 묵언으로 동의하는 기색이어서, 나도 슬리퍼를 신고 복도로 나섰다.
갈림길에서 방향을 찰나 헤매다가 곧 도착한 복도 끝 전자레인지 공간.
공용이라고 해서 위생을 걱정했는데 아예 자판기나 커피 머신 따위와 함께 시설이 따로 차려져 있었다.
한이주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한 뒤 옆에서 기다려 주기를 잠시.
째깍째깍 균일한 박자와 함께 살살 오르던 취기가, 문득 싹 가셨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야, 이주야.”
“어? 왜.”
“너 발이 왜 그래.”
발견해 버렸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