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99화
21. Too Bad(1)
보컬 연습실에 들어서면서 류희재가 중얼거렸다.
“네가 무슨 수민이 아빠냐.”
“밥을 포장하거나 배달시키면서도 일회용품을 줄이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갑자기 미쳤어? 수저, 포크, 김치, 단무지 받지 마.”
착실하게 대답해 줄 거면서 험한 말은 왜 하는 건지…….
자그마한 고민은 마음에 담아두기로 하고, 나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둘이 무슨 이야기한 거예요?”
“어? 아니, 뭐……. 불안한가 봐. 네 말마따나 스트레스인지 뭔지, 잘은 모르겠어. 좀 너랑 다른 애들이랑 연습하고 어울리고 얘기하고 이러는 게 팀 분위기 같다고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서 안 멈추더래.”
“아…….”
나는 작게 탄식했다. 정말 원인 제공자가 나였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솔직히 안타깝기만 한 일이었다. 왜 송수민이 유독 불안해하는 건지도 짐작할 수 있었고.
‘뭐라고 할까, 운이 좋으면서도 나쁘다.’
송수민은……. 에이레 멤버 열 명 중 유일하게 소속사가 없는 개인 연습생이었다.
개인 연습생으로서 높은 성적을 낸 것이 행운이었으나, 보호해 줄 소속사가 없는 것은 불운이었다.
폼을 보면 언젠가 회사에서 트레이닝을 받은 듯한 티가 났지만……. 그래도 현 소속사는 없었다.
그리고 〈데프아〉와 연예계 흐름, 미래에 관해서까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도 송수민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원래, 그러니까 과거의 송수민은 〈데프아〉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않고 초반에 탈락했으니까.
‘그리고 딱히 이후에 연예계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도 않았을 거야.’
물론 내 기억력의 한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은 낮았다.
나는 직접 얼굴 본 사람은 오래 그리고 잘 기억하는 편이므로. 음악방송에서든 행사든 이런저런 촬영장에서든.
내 기억의 문제보다는, 송수민이 이후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뿐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에이레 해체 후 채호원이나 류희재도 마찬가지였어.’
또한 다른 에이레 멤버들도 지금만큼 신통하지는 않은 활동을 이어나갔다.
더러 소속사로 돌아가 새로운 그룹으로 데뷔했을 때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는 경우에도, 에이레보다는 화제성이 낮았다.
보통은 새 그룹으로 데뷔하고, 솔로 활동을 하거나, 한둘은 짧은 텀을 두고 배우로 전향해 버리기도 했다.
아무튼 그들이 공통적으로 들은 악담은 ‘퀄리티가 기대에 못 미친다’, ‘급조한 티가 난다’…….
‘그야 실제로 급조를 하기도 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에이레 각 멤버들의 소속사가 중소기업이라서였을 것이다.
더 노골적으로 따지자면 회사에 돈이 없어서고, 투자금을 당겨올 수가 없어서였을 텐데.
‘여기서 다시 송수민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송수민은 그 경우들보다도 더 활동하기가 힘에 부칠 것이다. 개인으로 세상에 던져진다면.
내가 사연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유라면 송수민이 그룹 활동을 유독 원했다고 해도 이해가 되었다.
‘마음이 무겁군.’
에이레로 묶인 열 명의 멤버 모두 괜찮은 녀석들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나 적응하기 어려운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만, 그건 성향 차이일 뿐이었다.
‘다 피해자들이지, 정말로.’
하물며 그 녀석들이 악당이라고 하더라도, 이 사건에 있어서는 피해를 입은 것이 분명하지 않나.
나는 여러 생각을 짧게 해보다가, 목표를 굽히기에는 너무 멀리 왔음을 떠올리고 곧 그만두었다.
이제는 그냥 흘러가는, 기다리며 낭비해야 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건 지금 이야기가 끝나면 생각해 보기로 하고.’
우선은 류희재에게 질문부터 했다.
“그래서 형은 뭐라고 해줬는데요?”
“어? 그게, 아니……. 생각보다 너의 미래가 밝다고……?”
“…….”
무슨 소리야…… 라는 심정을 담은 눈으로 쳐다봐 주었다.
“……흠, 흠. 전에 우리 회사 이사님이 파이널 보러 오셔서 수민이 보고 괜찮은 애 같다고, 소속사 어디 들어갈 계획 없다면 데려오고 싶다고 하셨거든. 별거 안 하고 그 말만 그대로 전해줬지.”
“와……. 형 진짜 많이 발전했네요.”
“…….”
내가 아까 보낸 것과 아마도 똑같은 속뜻을 지녔을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발화자가 류희재라는 것을 고려하면 정말로 노력이 느껴지는 한마디였다.
심지어 그 상황에서는 제일 알아듣기 쉬운 설득이자 위로였을 테니까.
‘인지도가 생겼으니까, 당연히 다들 계약을 맺고 싶어 하겠지.’
한둘이 아닐 거다, 그런 소속사가.
우리 회사는 새 그룹 런칭 계획이 아직 없기 때문에(없어야 한다!), 류희재가 대화한 게 백번 나았다.
그 말이 송수민에게 좋게 와닿았기를 바라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했다는 말이에요. 형은 좀 괜찮아요?”
“나? 나는 왜.”
“음, 그냥요. 분위기가 좀 그렇잖아요.”
가벼운 안부 질문이었는데, 류희재는 의외로 꽤나 질문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나도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문 근처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나야 뭐, 글쎄…….”
“말 못 하는 사정인가요.”
“아니, 그. 이야기하려니까 어색해서. 당연히, 음. 불안한 건 있지만……. 아, 몰라. 됐어.”
“……왜 말을 하다가 말지??”
마음은 황당했지만, 대충 뉘앙스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질문할 때마다 ‘아니’로 대답을 시작하는 말주변이나 평소 센 척하는 류희재의 화법을 고려하면, 말한 것만큼 단순한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자주 마음을 졸이는 상황 같았다.
불안정의 원인쯤은 보편적으로 많았으니까 굳이 캐물을 필요가 없을 듯했고.
“괜찮겠죠.”
“난 네가 긍정적인 건지 아니면 그냥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어.”
“주변에서는 보통 후자로 생각하는 것 같던데요.”
나는 웃어넘겼다.
“괜찮을 거예요.”
“…….”
“피해는 회복될 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손을 뻗어 책상 위, 두 사람이 미처 챙겨 나오지 못한 페트병을 집어 들었다.
“주변에 불안해하는 사람 있으면 제가 매번 하는 말이 있는데.”
“뭔데, 그게.”
“잘 모르겠으면 절 믿어보세요.”
나를 보는 두 눈에는 여전히 불신이 어려 있었다.
차가운 물이 반 넘게 남은 물병.
“원래 조금씩 돕고 도움받으면서 안정되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세상 산다는 게.”
“……넌 그래?”
“당연하죠.”
반이 채워지고 반은 빈 페트병을 내려다보며.
나는 말했다. 그러니까 우선 콘서트 준비부터 할까요, 라고.
* * *
투어 콘서트의 마지막 일정은 일본 오사카 공연이었다.
일본 공연은 다른 중요한 일이 있거나, 몸 상태가 나쁘거나, 출국에 어려움이 생긴 사람 등으로 결원도 조금 생겼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스케줄은 계속 진행되었고, 심지어 서울에서 앵콜 콘서트도 계획이 생겼다.
KMC와 K14엔터테인먼트 사건이 점점 악화됨에 따라 반대로 콘서트 수요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 이번 아니면... 앞으로 못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ㅠㅠ 일본 가야되나...?
– 정말 마지막일 것 같아 그런데 마지막도 못 볼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해 티켓팅이 피켓팅이라ㅜㅜ
– 마플 미안한데 우리 데뷔는 할 수 있겠지...? 나 에이레 쇼케이스 콘서트 팬미팅 다 가야 되는데 ㅋㅋㅋ
– 겉돌이라도 갈까 진심 고민돼 가서 분위기라도 느끼기 vs 묘비명으로 콘서트 못가서 사망이라고 쓰기
윗선의 공연 기획자들은 그 사람들의 불안을 맛있게 잡아먹고, 앵콜 콘서트 표를 만이천 장 더 팔아치웠다.
앵콜 콘서트는 오사카 공연 후 입국해서 일주일 쉬고, 크리스마스에 연말 느낌으로 꾸릴 예정이라고 한다.
‘빡센데…….’
부산이랑 광주 콘서트도 한 주 여유 없이 토요일, 일요일 연이어 잡더니 그 다음 주말에는 곧바로 도쿄 콘서트가 이어졌다.
내가 알기로 옛날에는 일본과 앵콜 콘서트까지는 없었을 텐데, 방송이 지나치게 흥행해서 그런 건지…….
겨우 한 달 반, 겨우 6주에 일정을 욱여넣으니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래도 일이 없는 것보다는 바쁜 게 낫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은 콘서트 준비와 공연 말고는 몰입하거나 손을 댈 수 있는 일이 없었다.
A&R 팀에서는 ‘데뷔 앨범 준비는 합시다’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더니, 이렇다 할 준비가 없고…….
경영진은 돌아가며 경찰 조사를 받느라 일손을 거의 놓아버린 것 같고, 가끔 회사 와서도 서류 파쇄한 뒤 떠나고.
에이레 멤버들은 신인이라서 회사가 굴러가는 꼴에 아직 적응이 어려운 것 같았다(심지어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중도 아니니까……).
나는 나대로 반쯤 안무 트레이너 내지 디렉터 대우를 받고 있었으므로 36명의 퍼포먼스를 봐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더불어 어나더뮤직과의 회의는 콘서트 끝나고 입국한 뒤가 나을 것 같아서, 구두로만 약속을 잡았다.
‘괜찮아, 열심히 할 일이 있는 건 좋은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수건을 옆에 선 스태프에게 돌려주며 빠르게 뛰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오늘은 이틀짜리 오사카 콘서트 중 마지막 날.
이천 명 조금 넘게 수용하는, 이번 투어 중 가장 작은 규모의 극장이 현 위치였다.
“의헌 씨, 이제 마이크 다시 찰게요!”
“아, 네!”
스태프의 외침에 나는 목에 대롱대롱 걸어두었던 마이크를 귓바퀴에 끼웠다.
굵은 마이크 선 때문에 귀가 아파서 대기 시간에는 잠시 빼두었는데, 다시 착용할 때였다.
말마따나 무대 위 〈Young〉 무대가 슬슬 마무리를 향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순서나 다름없었다. 편한 청바지에 반소매 티셔츠, 운동화라는 세 번째 착장으로 오르는 무대.
10명 퍼포먼스 〈Young〉과 〈Youth〉가 이어지고, 직후 20명의 발라드 곡 〈첫인상〉 공연이 시작되는 세트리스트였다.
‘무대 좁으니까 간격 조정 잘하고, 안 미끄러지게 조심하고.’
리허설 때 느꼈던 점을 머리에 재차 입력하며 나는 무대 위로 발을 내디뎠다.
먼저 파이널 신곡 〈Youth〉. 편곡을 따로 거치지 않아, 신나는 분위기 그대로 달릴 수 있었다.
이번엔 내가 너를 기억할게
Please don’t be afraid
거기서 만날 너
언제나 날 보고서 웃어줘
노래를 마치면, 열 명이 더 무대에 올라오며 짧게 여유 시간이 생겼다.
하얀 조명이 무대를 넘어 앞 열까지 돌았고, 그 빛무리 아래에 서 있으면 공연장 전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잠시 이곳에서만 보이는 광경을 눈에 담고자 숨을 멈추었다.
‘좋아, 이런 거.’
심장은 두근두근 빠르게 뛰고, 정적은 짜릿했다.
기분 좋은 기다림을 모두와 공유하는 순간.
그 순간, 절대 논리로는 따라갈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어둡고 흐릿해 객석에 앉은 사람들 하나하나의 생김새나 얼굴을 분간할 수가 절대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것도 1층도 아닌 2층에 있는 관객이라면, 누가 왔는지 무대에서는 알 방법이 없는데. 그런데.
왜일까.
선명히 보였다.
‘……어?’
익숙한 얼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