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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96화 (96/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96화

20. DNA(4)

카메라가 돌아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우선은 인터뷰에 성실히 임했다.

정해진 룸메이트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개인 촬영은 시작되었다.

“룸메이트 저는 완전 만족해요. 지웅이가 진짜 귀여워요. 애가 살짝 엉뚱해서……. 노아도 은근 웃기고요.”

처음으로 정해진 룸메이트들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었다.

“아! 저 그리고 저만의 어필 포인트가 있어요. 제가 까다로운 게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 시끄럽게 해도 안 깨고, 불 켜고도 잘 자고, 옆에서 코 골고 키보드 두드려도 새벽에는 절대 안 깨요. 환기랑 청소기 돌리는 걸 자주 하는 편인데 그거 말고는 솔직히 같이 살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옷이나 가진 거, 먹을 거 포함해서 잘 빌려줍니다. 대박이죠.”

검지로 총을 쏘는 시늉과 함께 자기 PR도 하고.

그다음에는 제작진의 요청대로 캐리어를 꺼내서 카메라 앞에서 열어 보였다.

“제가 캐리어를 세 개 가져왔는데, 사실 두 개는 옷만 들어 있어요.”

나는 큰 캐리어 두 개를 바닥에 눕히며 말했다.

“이 캐리어가 겉옷이랑 상의 위주고, 이쪽은 바지랑 집에서 입는 옷이랑 양말 같은 거 넣어뒀어요. ……아, 여기는 안 됩니다. 속옷 들어 있어서. 제가 약간 패션에 관심……? 관심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보이는 모습에 신경을 좀 쓰는 편이거든요.”

혼자서도 주절주절 잘 말하는 편이다.

“이거 약간 저만의 룰이에요. 집 앞 편의점, 운동하러 가는 거 아닌 이상 밖에 나갈 때는 조금이라도 꾸미고 나가자. 제 얼굴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니까 잘 보이고 싶기도 하고, 원래 노력은 평소에 해야 된다는 말도 있고. 그냥 제가 가진 것 안에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느낌입니다.”

옷이 가득한 캐리어를 닫고, 마지막 캐리어 지퍼를 열었다.

“이쪽 캐리어에는 생필품 같은 거 챙겼어요. 겨울옷 한 벌 들어 있고……. 노트북, 물티슈랑 탈취제랑 가습기……. 이건 혹시 몰라서 가져온 구급상자~ 이 약병들은 영양제랑 비타민이고요. 어, 이건 향수입니다. 전에 희재 형이 추천해 준 건데 짐 싸려고 보니까 전에 아는 분께 선물받은 게 집에 있더라고요? 원래 향수 잘 안 뿌리고 다니는데, 이사하는 김에 기분 좀 내려고 챙겨왔어요.”

그렇게 캐리어 소개에 추가 인터뷰까지 전부 마치고…….

기다리던 때가 왔다. 나는 캐리어를 하나씩 밖으로 옮기는 척 오가면서 슬쩍슬쩍 틈을 엿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스태프들이 카메라와 조명 등을 들고 거실로 나가느라 잠시 방을 비운 순간.

“미진 PD님, 저 잠시만요.”

“어, 깜짝이야. 정의헌 연습생……. 아니, 이제 연습생이 아니구나. 의헌 씨?”

묘하게 업그레이드된 호칭을 쓰며, 김미진 PD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괜찮으시면 저 10분 정도만 시간 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오……. 무슨 일이지. 좋아요.”

미진 PD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오려는 사람을 막아내는데, 문가에 서 있던 허윤아 작가가 슬쩍 우리 눈치를 봤다.

나는 괜찮다고 눈짓했고, 윤아 작가님은 쪼르르 안쪽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미처 밖으로 못 내보낸 내 캐리어 하나와 나, 김미진 PD, 허윤아 작가만 덩그러니 자리한 방 안.

가장 먼저 미진 PD님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려고요?”

“엄청 대단한 건 아니고요, 그……. 뉴스 보셨나 해서요.”

어른 둘이랑 대화하는 마음이 아주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운을 떼었다.

‘뉴스’라는 단어가 나오자 두 분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 봤죠. 오늘 뜬 거 말하는 거죠?”

“네. 어떻게 된 일인지 아시나 싶어서 여쭤봤어요.”

김미진 PD는 지난 생 과거에서도 KMC 윗선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인물 중 하나였다.

나도 KMC 윗선 인물들은 도덕적 악당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김 PD가 현재 이렇게 싱글벙글한 것에는 사실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고 있는 에이레 멤버들이 불안해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니까.

촬영 전에 뉴스 이야기를 하며 쑥덕거리거나, 쉬는 시간마다 표정 관리가 묘하게 안 되는 멤버도 분명 몇 있었다.

나는 미진 PD님이 이런 배려는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에, 그 태도가 더 미심쩍게 느껴졌다.

“흠, 좋은 질문이네요.”

김미진 PD가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

“그, 부장님. 그러니까 CP님 일은 방송국 문제예요.”

“……어,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요. 여러분에게 피해는 없을 거라는 뜻이에요. 물론 우리 리얼리티 방송이랑 관련해서는 자잘하게 처리가 늦어지는 등 문제가 생길 수는 있죠. 그런데 우리 멤버들이 데뷔하고 활동하고, 이런 일에는 큰 지장이 없을 거예요.”

“아…….”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한 말이었다.

나는 순간 깨달았다. 미진 PD님은 당연히, 미래를 모른다는 것을.

‘그러네. 매니지먼트 대표가 회사 문 닫고 그대로 도망가는 건 아무래도 예측이 어렵지.’

거기다가 남은 소속사끼리 합의가 불발되어서 데뷔조가 터져 버릴 줄은 더더욱 몰랐을 테고.

맥락을 파악해 보니까, PD님은 내가 데뷔나 미래의 불투명성을 걱정해 질문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음, 내가 듣고 싶었던 답은 이게 아니지만……. 질문이 왜 그렇게 받아들여졌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의헌아. 네가 막 신경 쓸 일은 아니야.”

허윤아 작가가 끼어들었다.

“그냥 박 CP님이 연습생들 오디션 합격 조건으로 소속사에 접대를 요구했다, 이런 이야기거든.”

“어? 그거 오디션 합격이 조건이 아니라……. 음?”

“……헐. 아니에요?”

PD님이 무언가 말하려다가 황급히 입을 닫았고, 작가님은 고개를 기울였다.

‘어? 왜 두 사람 사이에 소통 오류가 생기지?’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이 오류의 원인을 찾아 올라갔다.

김미진 PD가 3차 경연, 그러니까 9회 차 방송부터 편집을 총감독했다는 것은 나도 아는 사실이다.

짐작하건대 미진 PD님은 그 권한을 빼앗아오기 위해 ‘부장님’이라고 불리는 인물과 어떤 합의를 하게 되었을 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PD님은 절대 온순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KMC랑 제일 가까운 기업이 K14엔터라는 것을 모르시지는 않을 텐데.’

그렇게 ‘응용’할 수 있을 만큼 정보가 있고, 뒤를 캐낼 노력을 했다면……. 미진 PD님은 K14엔터의 비리를 모를 리가 없었다.

이번 KMC 일에 K14엔터테인먼트가 깊게 얽혀 있다는 것은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진실이었다.

‘추측도 추측인데, 내가 겪은 일도 있으니까.’

그쯤 생각을 전개했을 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가설이 하나 있었다.

……설마?

“그런데요, 미진 PD님.”

하나 생각이 나는 게 있었다!

“그……. 제가 드린 녹음, 들어보셨어요?”

“네? 당연하죠. 그러고 보니 고맙다는 말을 했어야 되는데. 잘 썼어요.”

“아니, 고마워하실 일은 아닌데, 그게……. 저랑 같이 녹음되신 분 KMC 관계자가 아니에요.”

“……어?”

그러니까……. 김미진 PD는 알아채지 못한 거다.

“그분 K14엔터테인먼트의 유금평 대표님이세요.”

목소리의 정체를.

두 회사가 이런 일에 직접 나설 만큼 가까운 관계고, 그들이 하나 되어 사건을 벌였다는 것을.

“잠시만요, 잠깐만. 우리끼리 크로스 체킹을 한 번만 해보자.”

허윤아 작가가 이마를 짚고 있던 손을 떼어내며 상황을 중재했다.

그 시점부터 우리는 빠르게 각자가 가진 퍼즐 조각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우선 K14엔터테인먼트의 폐업으로 그룹이 파탄 날 미래를 짐작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두 사람은 아무리 K14엔터가 얽혀 있어도 데뷔 무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럴 수 있었다.

K14엔터가 책임을 내버린 것은……. K14엔터의 사기죄니까, 애초에 PD님과 작가님이 고려할 사항이 아니기도 했다.

“일단 그거, 접대 요구로 협박한 게 아니라 뇌물을 받은 거야. 술값은 그냥 뇌물의 형태지.”

그리고 작가님이 착각하고 있던 것을 PD님이 정정해 주었다.

KMC에서 연습생들 소속사 몇 곳을 상대로 뇌물을 받았고, 대가로 편집 스포트라이트와 분량을 약속했다는 것.

그리고 뉘앙스를 통해 ‘미진 PD님이 편집을 하게 되어 돈 낸 사람만 억울하게 되었다’는 정보까지 나는 흡수했다.

‘아하, 그래서 생긴 변화였구나.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었네.’

이런 비밀까지 일개 출연자인 내가 알아도 되는 것인가 의문은 들었지만…….

두 사람 다 흥분해서 앞뒤 정황 맞춰보는 희열에나 집중하고 있으니, 나는 후련한 마음으로 주워 먹기로 했다.

‘그런데 윤아 작가님이 잘못 알고 있던 거……. 엄청 이상한 일은 아니야.’

나도 사건 관련 인터넷 기사를 수십 개 찾아보았기 때문에 안다.

언론은 팩트가 모호한 추측성 정보를 기사에 잔뜩 실어 보도하느라 바빴다.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협박을 당했다’는 가해자의 행동뿐이었다.

‘신고자 쪽에서 언론 플레이를 하는 거지.’

대부분 기사가 노골적으로 신고자 편이었다.

가해자의 행위를 제외한 모든 정보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뭉개져 있었다.

그래서 돈을 주었는지 주지 않았는지, 돈을 주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은 뉴스에서 밝혀진 바 없었다.

KMC가 대가 제공을 약속했다는 게 밝혀지면 신고자도 배임증재, 즉 부정한 돈을 건넸다고 수사를 받아야 될 테니까……. 머리를 쓴 거다.

“하아아…….”

김미진 PD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미진 PD님이 모르고 있었던 것은……. 이 무렵, K14의 잘못이 지니는 정치적인 가치였다.

‘방송 후반 회차 편집으로 대충 복수하고 넘어가기에는, 사실 큰 죄야.’

PD님은 그 사건을 전에 윤아 작가님이 나와 지상이, 승준이를 불러서 하차 요구를 했던 사건의 반복 정도로 여긴 것 같은데.

‘의도는 같을지 몰라도 주체가 달랐지. 사실 당한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 같지만.’

K14엔터테인먼트는 (1)매니지할 데뷔 그룹 인원을 뒷공작 하려고 했고, (2)뜻대로 되지 않자 연습생들을 협박했다.

(3)또한 협박이 듣지 않자 감금 미수 사건을 일으켰으며, (4)그 외에 방송 내용을 주무르려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5)그 방송국과의 커넥션이 더러운 돈과 유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즉 PD님은 2번과 3번을 K14엔터의 문제라고 인지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 잠깐, 3분만 생각 좀.”

그때 미진 PD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나는 PD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내부 고발 일 때문이로군.’

이 시점 이분께서 신경을 쓸 만한 일이 그거 말고 더 있을까.

신고가 내부 고발 계획에 좋은 영향을 끼쳤는지,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그 입장이라면 저 신고를 나쁜 영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좀 나설까.’

사건이 신속하게 확장 및 처리되고, 확실하게 죄를 따지는 편이 내게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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