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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94화 (94/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94화

20. DNA(2)

나는 내가 두 눈으로 본 것을 이해하고자 잠시 노력해 보았다.

그러니까 〈데프아〉 총괄 PD, ‘치프 프로듀서’의 이니셜을 줄여 CP라고 불리는, 총연출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

말하자면 잡혀갔다는 이야기인데……. 지상이가 보여준 기사는 속보라서 내용이 없었다.

‘잠시만, 아니. 이해를 못 하겠다.’

나는 소파에 내려놓았던 핸드폰을 들고 와서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것저것 키워드를 넣어 검색해 보았다.

대충 찾아본 바에 따르면, 과거와 타이밍이 다를 뿐만 아니라 고발의 주체 또한 달랐다.

내가 알고 있는 ‘코리안 뮤직 채널 게이트’, 즉 ‘KMC 게이트’는 일약 OTV와 KMC 사이의 정쟁 같은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OTV와 KMC의 정치적이고 원한 섞인 분쟁이라는 비하인드를 다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KMC의 〈데프아〉가 OTV의 〈구공드〉를 표절했다는 이슈가 이 시기쯤에 시작되었어.’

지금은 파이널 방송도 전에 문제가 제기되었으니……. 물론 시기가 당겨지기는 했다.

하지만 본래 ‘표절’ 다음으로 OTV가 KMC의 이미지를 깎기 위해 뽑아 든 카드는 ‘갑질’, ‘안전 부주의’ 등의 키워드였다.

‘접대’나 ‘술값 강요’ 같은 이야기가 나오려면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야만 했다. 과거처럼.

‘처음에는 사람들이 비리 고발을 심각하게 느끼지 않았단 말이야.’

사람들이 고발을 거짓으로 여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욕이나 한 번 하고 말았다.

〈데프아〉 시청자나 일반인들이 무슨 행동을 취하기에는 애매한 상황이었으므로.

대개 ‘KMC는 그럴 줄 알았다’, ‘〈데프아〉 2편 만들지 마라’, ‘또 하면 불매하자’ 정도가 반응의 전부였다.

게다가 OTV도 KMC만큼이나 사업을 이리저리 뻗어대는 기업에다가 말단 직원들 대우가 나쁘고, 논란도 많아서 말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그런 폭로전에 선역이 없다고 여겼다.

‘OTV가 원한을 품은 까닭을 알았기 때문이겠지.’

OTV가 먼저 생각하고 기획한 아이템으로 KMC가 초대박을 냈기 때문에.

원한 관계가 섞였으므로 폭로는 공익 목적이 아니다. 대중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KMC의 꼬투리를 잡고 문제를 공론화해도, 그들만의 진흙탕 싸움으로 치부한 것이다.

뭐, 사실 OTV는 여기까지만 계획을 그렸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공익 목적의 발화자가 등장해 흐름이 바뀌었고.’

KMC의 내부 고발.

그때 KMC의 노동자들이 직접 들고 일어나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세상에 내놓기 시작했다.

KMC는 접대에 금품수수 따위의 문제를 일으키고도 자정하고자 노력하지 않고, 문제를 꼬집는 직원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

증거와 함께 고발이 시작되니 그 무렵부터는 검찰 및 경찰이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KMC는 그 이후 완전히 뒤집어지고……. 추후 종합편성채널의 하위 음악 채널로 합병된다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에 더해 KMC의 자회사인 K14엔터테인먼트는 비리에 얽히고 모회사의 끈까지 떨어져 아예 폐업을 하게 되었고.

‘……여기까지가 과거에 일어난 일인데.’

이 기승전결에 따르면, 접대와 술값 강요 등의 언급은 KMC의 직원들이 폭로전에 올라탄 뒤 시작된다.

그러나 무언가 달라졌다.

우선 지금 총연출을 신고해 잡아넣은 행위자가 OTV가 아닌 것 같았다.

‘내부 고발은 더더욱 아니고.’

어디의 누가 신고했다고 명명되거나 특정 가능하게 적어놓은 기사는 없으나……. 뉘앙스에 따르면, 신고자는 ‘피해자’였다.

다시 말해, ‘〈데프아〉 총연출이 저한테 술 사고 접대하라고 시켰어요’라는 내용으로 신고를 진행한 것이다.

‘일이 과거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건 좋아. 그런데 갑자기 왜?’

알아도 달라지는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았지만, 솔직히 이유가 꽤나 궁금했다.

“왜 형이 그렇게 심각해져?”

그 순간 김지상이 내 소파에 털썩 앉으며 물었다.

익숙한 목소리에 불현듯 정신이 들었다.

너무 정신이 팔려 있었다. 소파 옆에 우뚝 서서 핸드폰만 쳐다보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는 않았을 테니…….

나는 그쯤 핸드폰 화면을 끄고 주섬주섬 빈 소파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아, 정신 차리자. 이 일은 혼자 있을 때 생각하고.’

내가 혼자 심각해하는 사이에 김지상은 가져온 캐리어도 다 한쪽에 몰아 치워둔 것 같았다.

그런데 지상이가 가져온 캐리어 두 개 중 하나가 뭔가 묘하게 익숙하게 생긴 것이…….

“저 캐리어 내 거 아니야?”

“뭐래? 강주찬 거 빌렸어.”

“내 거랑 똑같이 생겼는데…….”

“색만 비슷하지 저게 어떻게 같아.”

평소에 하는 그런 실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곧 세 번째와 네 번째 하우스메이트가 찾아와 우리는 자연스레 대화의 포커스를 옮겼다.

다른 에이레 멤버들과 있을 때는 우리만 아는 이야기는 최대한 하지 않기로, 전에 안승준까지 셋이 있을 때 미리 합의했기 때문이다.

‘따로 주의를 주지 않아도 적당히 눈치는 볼 줄 아는 애들이지만…….’

중요한 거니까 굳이 한번 말로 이야기를 했다.

에이레 멤버들은 방송 전에는 친분 있었던 사이가 몇 명 없는 데다가, 아직도 낯을 가려 서먹서먹한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면 스나 셋이 너무 친한 감이 있어서…… 좋게든 나쁘게든 우리가 튀면 분위기가 이상해질 게 분명했다.

아무튼 넷 다 아는 주제라면 오늘 스케줄만 한 게 없어서 –밥 얘기 제외– 결국 대화는 스케줄 이야기로 흘러갔다.

“우리 그러면 촬영 저녁부터 시작인 거예요?”

“일곱 시에 오신대. 여섯 시에 수민이랑 노아 도착한다고 하니까, 애들 오면 뭐 먹고 기다리는 거 어때.”

“난 촬영 직전에 뭐 먹는 거 별로……. 얼굴 붓잖아. 차라리 지금 간단하게 먹고 끝나고 나서 대충 간식 먹는 건?”

“어……! 저도 지금 배고파서 점심 먹고 싶어요.”

밥 이야기도 했다…….

“카메라 돌 때까지 캐리어 열면 안 되는 거죠?”

“물건 필요한 거 있으면 몇 개 빼내는 건 괜찮을걸. 아예 풀고 정리하지만 않으면 될 거야.”

우리는 인당 2~3개씩 가져와 총 10개나 거실 구석에 쌓인 캐리어를 보며 잡담을 나누었다.

저번에 공지를 듣자 하니 첫 번째 콘텐츠는 숙소에 입주하고 대략 서로 인사하며 분위기를 잡는 기획이란다.

뭐라고 해야 하나, 서바이벌 분위기를 싹 빼고 일상적이며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달까.

캐리어를 열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가방 내용물 보여주는 ‘왓츠 인 마이 백(What’s in my bag)’ 콘텐츠 때문이 아닐까 싶고.

‘그러고 보니 리얼리티를 담당하는 PD가…….’

김미진 PD라고 들었던 것 같다.

단독 연출은 아니라지만, 조금 있다가 미진 PD님께서 우리 숙소에 촬영 장비를 들고 온다는 건 확실했다.

‘오시면 눈치를 한번 볼까?’

무슨 일인지 잘 모르시는 것 같거나, 함부로 말 걸면 안 될 느낌이면 까불지 않기로 하고…….

내가 은밀하게 물어보는 것 정도는 괜찮을 분위기면 슬쩍 찔러나 봐야겠다.

‘이 사건이 내게 호재라면 좋겠는데.’

우선 상황 파악을 한 다음에, 다시 머리를 굴려보자고.

* * *

“아아, 사랑하지도 않았던 나의 남은 가셨습니다…….”

그 시점 김미진 PD는 공동 간식 선반에 놓여 있는 개별 포장 초콜릿을 하나 까먹으며 조용히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현 위치는 〈데프아〉 팀 PD 사무실.

CP였던, 박 부장 자리가 공석이었다.

박 부장은 아침에 출근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그냥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점심시간 직전에 무슨 전화를 받더니 한숨을 푹푹 쉬며 외출해서 벌써 몇 시간 째 부재중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인터넷을 확인해 보니까, 구속되었다는 뉴스 기사가 포털을 도배하고 있는 것 아닌가…….

‘무슨 경찰서를 오후 반차 내고 은행 가듯이 가시네…….’

아무튼, 김 PD는 이 상황이 조금 웃겼다.

사무실에 있는 다른 동료 및 선후배들도 난데없는 사건에 대개 헛웃음이나 짓고 있었다.

물론 동료 PD 중에는 박 부장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눈치 없는 이들도 몇 있었지만, 우연찮게도 그들은 지금 사무실에 없었다.

박 부장과 박 부장을 아끼는 상사들과 박 부장의 자발적인 따까리들을 욕하는 것이 취미인 PD들만 남은 사무실.

김미진 PD는 작금의 꽤나 좋은 기분을 그다지 숨길 마음이 없었다.

“미진이지니, 웬일로 회사에서 웃고 있어.”

“아, 그러게요. 오늘은 왠지 누추한 곳에서도 웃음을 낭비하고 싶은 기분이라.”

그때 김 PD의 선배 스태프 하나가 전달해야 할 외장 하드를 들고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녀는 음향 기계를 다루는 전문 엔지니어였는데, 김 PD와는 웹 예능 부서에서 일 년 동고동락하며 친해졌다.

방송국 앞에서 동료의 부당 해고 진상을 규명하라며 1인 시위를 하다가 웹 예능부로 좌천된 바로 그 인물.

“그래, 좋겠다. 너는 박 부장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

엔지니어 선배는 가까이 와서 외장하드를 건네주더니, 은근히 김 PD에게 귓속말을 했다.

김 PD도 그 선배가 한참 내부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대충 눈치를 알아들었다.

돌발사건으로 플랜에 잡음이 생겨 곤란하다는 뉘앙스였다.

“아주, 뭐……. 탈주하셨죠.”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김 PD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제 자리에 외장 하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 구석에 놓인 간식 포장 쓰레기와 컵을 하나 들고 다시 일어섰다.

탕비실 싱크대 앞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졌다.

“미진아, 아는 거 있으면 썰 좀 풀어봐.”

“지금 이야기하기에는 엄청 긴 일인데요…….”

김미진 PD는 사실 이 일이 왜 발생한 것인지 얼추 짐작이 되었다.

박 부장을 신고한 사람의 정체를 그녀는 유추해 낼 수 있었기에.

정확히 누구라고 콕 짚을 수는 없었으나 후보가 몇 명 있었다.

‘업보~ 자업자득~ 지 팔자 지가 꽈배기처럼 꼬셨네~’

김 PD는 생각에 멜로디를 붙여가며 박 부장을 속으로 비꼬았다.

하여간 천부당만부당하게도 박 부장의 잘못이었다.

KMC의 매니지먼트 자회사 K14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 연습생들 중 뽑아서 그룹을 만들고 싶다’고 박 부장에게 리스트를 보냈다.

박 부장은 그 연습생들을 살릴 결심을 하고, 그들의 소속사한테 가서 ‘돈 내면 애들 밀어주겠다’고 금품을 받아냈다.

신고자는 박 부장이 그렇게 접대를 요구한 소속사 관계자들일 게 분명했다.

김 PD는 이상의 상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저 때문에 그렇게 됐어요.”

김 PD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선배 엔지니어가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김 PD는 그 표정 따위 못 본 척 싱크대 물을 틀어 컵을 씻었다.

보통은 자리에 장식용으로 올려놓기만 하던, 그녀가 아끼는 머그컵이었다.

“방송 9주 차부터 편집 총괄 제가 했거든요…….”

물이 흐르는 소리 사이로 진실이 슬그머니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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