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93화
20. DNA(1)
‘제13회 〈오렌지 디스크 뮤직 어워드〉, 2017년 2월 개최.’
사실 지난 며칠 동안 과거를 떠올려 보려고 애썼는데……. 〈오디뮤〉는 조금 가물가물했다.
2017년 〈오디뮤〉는 스테리나인이 출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2014년 데뷔 후 11회에는 출연했고, 12회는 교통사고 때문에 출연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그리고 13회부터는 출연 제의 자체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오디뮤〉가 어떤 패턴으로 무대를 연출하는지는 알아.’
그보다 원래 〈오디뮤〉는 대부분 시상식과 구성이 비슷했다.
기본적으로 지난 1년 동안 히트하거나 케이팝 팬덤의 주목을 받은 곡의 무대 퍼포먼스.
그리고 몇 개의 콜라보레이션, 커버, 특집 등 특별 무대.
무대를 하려면 〈오디뮤〉 버전으로 편곡은 필수였고, 댄서나 밴드 라이브 등을 추가해 무대 규모를 키우거나 장르에 변화를 주는 게 보통이었다.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몇 주는 기본으로 준비해야 했다. 대규모 시상식이니까.
‘그거야 열심히 하면 되니까 괜찮은데.’
사실 무대 구상 계획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참가 명의.’
행동의 주체.
‘누가’ 〈오디뮤〉에 참가하느냐.
참가할 경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세 갈래였다.
첫 번째, 개인. 정의헌 솔로 무대를 의미한다.
두 번째는 에이레. 인기든 사건 사고든 화제성 하나는 보장 가능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테리나인.
‘가장 가능성이 낮지만, 내가 가장 선택하고 싶은 방향.’
스테리나인으로 참가하는 방법도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스테리나인 유닛이다.
쉽게 말해 몇 명 뽑아서 무대에 세우는 거다.
그중에 가장 현실성 있는 것은 당연히 〈데프아〉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어나더즈’ 세 명 조합.
일명 ‘KMC 게이트’라고 불리는 사태가 진행 중이어도 특별 커버 무대 정도라면 가망이 없지는 않았다.
〈오디뮤〉 제작진 측에서도 화제성을 고려해 스테리나인 완전체보다는 유닛을 받아주고 싶어 할 테고.
적어도 〈오디뮤〉 제작진은……. 완전체보다는 유닛의 그, 단발성 특별함을 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스나 완전체 무대를 하고 싶다는 거잖아.’
그리고 슬슬 미래의 스테리나인 완전체 활동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오고 있었다.
사실 느낌 자체는 전보다 좋았다.
과거 이 시기에는 하루하루 다음날 상황이 걱정되었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라서 말이다.
김지상 있고, 안승준……. 착하고. 서드림도 연락 되고.
‘스나 생각을 해보자. 만약 에이레가 해체된다면…….’
스테리나인에게는 조만간 이른바 ‘골든 아워’라고 하는 시간이 올 테다.
‘환자가 부상을 입은 직후, 응급 처치의 성공률이 가장 높은 한 시간’을 뜻하는 의료계 은어처럼, 최대한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기가 에이레 해체 직후 찾아온다는 뜻이다.
그때 어영부영하다가는 그룹으로 밀어붙여도 ‘안 산다’고 반감을 사고, 개인 활동을 해도 탈퇴부터 하라는 사람만 많아진다.
무슨 짓을 해도 불만인 사람 수는 일정하지만, 그 수가 많아지면 결국 곤란한 건 우리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한 시 한 초도 시간 낭비 없이 단호하고 신속하게 스나의 노선을 정해야 해.’
그 시간, 과거의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윗선의 결정을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나 우리 회사 직원분들이든 KMC든, K14엔터든, 법원이든 다른 소속사든……. 누구도 그런 특수 상황을 마주한 적 없었던 것이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나는 시간이 아깝고 답답한 마음에 매일 전전긍긍했다.
‘전생에서는 사실상 2017년 상반기를 홀랑 날려 먹었지.’
시간을 되돌리기 전, 2016년 말과 2017년 초.
김지상과 안승준의 재데뷔 성공으로 결원이 확정되고, 우리는 6명 버전으로 앨범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 했다.
우선……. 어나더뮤직은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라서 앨범 프로모션 하나 돌리려면 회사 전체가 움직여야 한다.
앨범을 준비하기 시작하면 회사 다른 그룹 일은 거의 올스탑이 되었고, 그걸 못하면 앨범 제작 속도가 눈에 띄게 더뎌졌다.
‘이맘때부터 연말까지는…….’
KMC 방송국에 스캔들이 발생해 K14엔터테인먼트는 〈데프아〉 데뷔 멤버들을 데뷔 없이 붙잡고만 있었다.
아마 문제가 잠잠해지면 데뷔시킬 셈이었거나, 경연진들은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고 바빴던 게 아닐까.
선배 보이그룹 멤버가 솔로로 싱글 음원을 발매한 뒤(KMC 음악방송 못 나온 그 활동 말이다), 슬슬 다음 플랜은 스테리나인이라고 이야기가 나오던 시기.
‘의욕은 좋았지. 우리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 외에 시즌 그리팅도 촬영하고 팬들과 소통하고, 띄엄띄엄 개인 커버 콘텐츠를 낸다거나 알찬 공백기를 보냈다.
그리고 찾아온 2017년 연초.
에이레가 공식 해체하고, 재결합을 논의하기 시작하며 계획에 변수가 더 추가되었다.
스테리나인이 몇 명으로 활동할지 불분명했다. 소속사는 우리에게 김지상과 안승준 언급을 하지 말고 잠시 기다려 보라고 했다.
‘……이때 생각하면 아직도 한숨만 나온다.’
몇 개월이 더 지나 2017년 봄.
에이레는 재결합 합의에 최종 실패했고, ‘스테리나인 완전체’를 주제로 소속사 내부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다.
그 와중에 두 멤버를 그룹으로 돌려보내지 말고 제대로 활동 지원을 하라고 회사 앞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회사 앞길에 대형 현수막을 걸고, 시도 때도 없이 팩스나 메일을 보내고, SNS로 해시태그 운동을 하거나 회사 대문에 포스트잇 쪽지를 다닥다닥 붙여놓는 경우까지 비일비재하던 시간.
대화는 빙빙 돌고 김지상은 연락을 끊고……. 회사는 고민 끝에 두 멤버의 그룹 미복귀와 개인 활동을 결정했다.
‘아마 이때 매니저팀이 서드림을 고향 집에서 데려왔나?’
그렇게 확정된 멤버 수 7명.
앨범 콘셉트를 조금 고치고, 파트 조정하고, 안무 동선 다시 짜고 녹음도 다시 해서 스테리나인은 겨우 컴백할 수 있었다.
‘회상하니까 순식간에 우울해지는군.’
아무튼 그 기약 없는 희망 고문은 두 번 겪을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입장이었다.
‘회상이 길었어. 다시 차근차근 계산해 볼까.’
중간 정리.
나는 개인도, 에이레도, 유닛도 아닌 스테리나인 9명 무대로 〈오디뮤〉에 참여하고 싶다.
그렇다면 새로운 문제로 자문할 수 있다.
스테리나인이 지금 〈오디뮤〉에 출연 가능한 입장인가.
‘일단 노래는……. 있다.’
2016년 4월 발매한 6번째 미니 앨범 타이틀곡 〈Run and Run〉.
이게 뭐라고 해야 하나……. 잘 안 된 앨범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판매고로만 따지면, 이 시점 스테리나인의 ‘커리어 하이’를 달성하기는 했다.
데뷔 이래 앨범을 제일 잘 팔았다는 뜻이다.
‘초동 판매량이 2만 장 조금 넘었을 텐데.’
해외 케이팝 시장이 활성화되어 음반 판매량이 급등하기 전의 데이터다.
상대평가를 하면, 저 2만 장 기록은 2016년 아이돌 앨범 판매량 순위 40위 조금 안쪽이 된다.
덧붙이자면 초동 판매량은 대부분이 예약 구매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서, 사실상 그 직전 활동의 성적표 역할을 한다.
그리고 〈Run and Run〉 전 활동인 〈Express〉는……. 멤버들이 손꼽는 ‘리즈 시절’ 활동이었으니까, 뭐.
아무튼 〈런앤런〉 이후 성적은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완만한 하향 곡선을 그렸다.
그래서 내가 판매량 커리어 하이에도 〈런앤런〉을 ‘힘이 빠진 활동’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 〈런앤런〉으로는 부족해.’
제13회 〈오디뮤〉 기준 〈런앤런〉은 10개월이나 전에 발매한 노래가 된다.
시즌 맞고 듣기에도 신선한 신곡 활동이 있는 편이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고 ‘남은 멤버들은 인원 변동이 생겨도 그룹 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고 세상에 알려야 했다.
광고, 그러니까 글자 그대로 프로모션이 필요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스테리나인을 인지하고 시상식에 부르거나 할 테니까.
‘결론은 그룹의 체급 키우기다.’
스테리나인의 ‘1월 컴백’ 계획을 우선 논의해보고.
그리고 이후 에이레가 해체하면……. 바로 완전체 활동을 한다.
활동 중 합류하는 형태로.
그 컴백 무대를 〈오디뮤〉로 삼을 수 있다면 더 좋을 테고.
‘애들 상황 보게……. 조만간 회사 한번 가 볼까.’
나는 핸드폰을 들어 톡 알림을 확인하면서 생각했다.
잡담을 하는 스테리나인 9명 단체방은 남겨두었지만, 사실 숙소 생활을 할 때 쓰는 5명 톡방은 따로 있을 거다.
김지상도 그 숙소를 몇 주 사용했으니까 인원은 6명일 수도 있고…… 이제 숙소를 옮기니까 5명 톡이 새로 생겼을 수도 있고.
하지만 톡에 새로운 단체 채팅방이 생긴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에이레 송수민: 저 6시 도착 예정입니다 :D !!!]
[에이레 박지웅: 저는 밤에 가요]
[에이레 박지웅: 지금은 학교에 있어요]
[스테리나인 안승준: 지웅이 수업은 어쩌구]
[에이레 박지웅: 중학교는 지금 점심시간이에요]
[스테리나인 안승준: 미안... 점심 맛있게 먹어]
며칠 전, 핸드폰에 저장된 몇몇 이름 앞에 붙어 있던 ‘데프아’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새 그룹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지금 에이레 단톡방에는 두 그룹 이름이 섞여 채팅이 올라오고는 했다.
나는 안승준이 되도 않는 장난을 쳤다가 의젓한 리액션에 깨갱 하는 모습에 잠깐 웃고, 채팅 목록으로 나왔다.
그리고 스테리나인 공지 톡방에 올라와 있을 멤버들 스케줄을 확인하려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직 말을 걸 때가 아니야.’
다시 소파에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에이레는 이제 막 결성되었다.
‘하지만 그렇잖아. 아무리 내가 스나가 좋아도…….’
에이레 멤버들에게 무례하게 굴 수는 없었다.
솔직히 그림이 이상하지 않나. 누구보다 빠르게 탈주 계획을 세우는 것 같고.
아무 일도 일어나고 결정된 것이 없는데 내가 스나 일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매너도 매너고……. 세상 좁다. 게다가 연예계는 더 좁다.
소문이 잘못 퍼져도 곤란하고, 에이레 멤버들도 그룹이 깨져도 연예계 생활 관둘 친구들이 아니었다.
즉 서로 의 상한 채로 각자 그룹 활동하다가 만나면 어색하고 민망하기나 하겠지.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타이밍은 중요해.’
요즘 뉴스 보면 길어봤자 한 달 안에 대대적인 KMC 비리 고발이 시작될 기색이었다.
생각보다 언론 플레이가 빠르고 강력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OTV-KMC 전면 대립 시작하나’ 같은 뉴스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보였고.
‘한 달은 길고, 일주일 정도는 기다려 보기로 할까.’
결론을 내기 무섭게 누군가 현관 비밀번호를 밖에서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낸 주인공이자 문을 열고 등장한 두 번째 입주자는……. 김지상이었다.
“형 혼자 있어?”
“어, 네가 2등.”
그리고 김지상은 인사도 없이, 얼굴을 보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제 핸드폰을 내게 건넸다.
지상이가 바로 직전까지 보고 있던 인터넷 페이지가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 뉴스 기사였다. 헤드라인은…….
– [속보] ‘데프아’ 총괄 PD 입건, ‘접대’, ‘술값 결제’ 강요 의혹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