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91화
19. Cinema(5)
깨달음을 마음에 새기며, 나는 주제를 조금 바꾸어 질문했다.
“그리고 제가 본 것이, 하나 더 있어서요. 혹시 그것도 확인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하나 더…… 라면, 어떤 걸까요?”
“미션이었어요. 정확히는 ‘두 번째 미션’이요.”
‘미션’이라는 단어에 남소리 선배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짧은 정적, 나를 살피는 시선.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처럼 허공에 눈을 깜빡이더니 선배님이 입을 열었다.
“……그러네요, 두 번째 미션…….”
“찾으셨어요?”
“네. 〈오디뮤〉 참여예요. 〈오렌지 디스크 뮤직 어워드〉. 100일 조금 넘게 남았으니……. 내년 개최 회차겠네요.”
조용조용한 목소리가 미션 내용을 읽어주었다.
적어도 내가 잘못 읽었거나, 틀리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남은 기한은 처음 들었으나, 어차피 13회 〈오디뮤〉라고 하면 내년 시상식을 말하는 것이 뻔했다.
〈오디뮤〉는 OTV 주최 대중음악 시상식으로 연말이 아니라 연초, 1월 말이나 2월 초에 개최한다.
‘주최사가 OTV인 것도 문제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이건 천천히 알아보기로 하고.’
개최 초반에는 시기가 매년마다 변경되고는 했으나, 2010년대 중순이면 거의 2월 초로 시기가 고정이 되었을 터.
시즌이 연말이 아닐 뿐 10년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꾸준히 행사를 꾸린 만큼 권위는 분명했다.
유독 팬 투표나 판매량 집계 비중이 낮고 심사위원 점수를 중요시해 매년 수상 논란이 자잘하게 일기는 하지만…….
지금 목적은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대 참여이므로 내 상황과는 상관 없는 논란이었다.
‘기한을 굳이 주었다는 건, 개최 시기를 미루는 꼼수를 쓰면 안 된다는 경고겠지.’
어차피 나에게 천재지변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도 없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내 의지와 관련 없이 천재지변이 발생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내 기억상 2017년 〈오디뮤〉는 화창한 날 잘 열리고 마무리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오디뮤〉가 어떤 시상식인지 궁금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음, 제가 알고 싶은 건……. 그 미션을 수행해도 되느냐 여부거든요.”
“아하.”
“달성했을 때, 아니면 실패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가 적혀 있지 않잖아요.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질문하자 선배님은 이번에도 오랫동안 말없이 고민했다.
결정에 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듯해 나는 빈 컵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운을 떼었다.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먼저 말씀드려도 될까요.”
“……좋아요, 해보세요.”
“그러니까 선배님이 말씀하신 ‘상태창’이라는 게, 게임과 비슷하다고 했잖아요. 그게 맞다면 미션도 게임 시스템일 것 같아요.”
게임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면서 접해온 건 있었다. 주변에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고.
내가 아는 여러 게임에서 ‘미션’이나 ‘퀘스트’ 따위는 경험치나 돈, 명예 업적을 보상으로 주는 경우가 많았다.
시키는 것을 포기하거나 미룬다고 해서 페널티를 먹이는 일은 솔직히 게임에서는 본 적이 없었던 것 같고.
‘하지만 내가 첫 번째 미션을 클리어했을 때에는 아무런 보상이 없었지.’
물론 경험치나 명예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보상이라면 내가 받고도 모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불분명한 성취를 플레이어에게 쥐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보상이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이면, 굳이 미션이라는 단어를 쓸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이런 가설을 세워볼 수도 있을 것이다.
“보상은 존재하지만, 제가 보상을 수령할 수 없는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도 드네요.”
데이터를 읽는 것과 수정하는 것은 다른 영역이었다.
상태창 속 내 기상천외한 데이터를 귀로 들었어도 딱히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왜,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무를 외우는 것과 외운 안무를 따라서 추는 것은 다른 능력이지 않나.
‘그리고 보통 후자가 더 어렵지.’
다만 받지 못한 보상을 원하냐고 하면, 사실 딱히 필요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야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당장은 우선순위가 낮았다.
“중요한 건 제가 그런 일에 계속 접근해도 되는지, 시키는 대로 따라갔을 때 후유증 같은 게 없는지…….”
“…….”
“그런 게 궁금해서 조언을 구하는 거였어요. 솔직히 저는 초자연적인 상황을 자꾸 접하는 게……. 약간 무서워서요.”
나는 그렇게 추리와 함께 내 입장을 추가 설명했다.
초조하게 엄지와 검지 손끝을 맞부딪히던 남소리 선배님은, 그제야 내 말을 받아주었다.
“접촉하지 않는 게 좋아요. 저희가 이렇게 가까이서 대화하는 것도……. 사실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죠.”
“저희가 대화하는 것도요?”
“사정을 다 알려드릴 수는 없지만……. 쉽게 말하면, 네. 힘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에요. 비슷한 맥락으로 상태창이 정의헌 씨 눈에 보이게 된 것도 일종의 사고죠. 그래서 접속이 끊기고 충돌이 없는 원래 상태로 돌아간 거예요.”
“흐음.”
“하지만…….”
말하기 힘든 것을 전하려는 듯, 말을 끊는 심호흡. 나는 기다려 주었다.
“미션은 달리 말해 힌트나 가이드라인, 같은 거예요. 지켰을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날 거예요.”
‘가이드라인’이라.
문득 반 년 전에 들었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다시 울리는 듯했다.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가이드라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곧 시작하는 방송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첫 단추로서 좋을 겁니다. 참가하는 편이.’
나를 과거로 돌려보내 준 목소리, 정체불명의 ‘천사’가 내게 말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방송 참가’라는 결정은 기어이 최종 1위라는 성적을 내었고, 내게 막대한 인지도를 가져와 주기는 했다.
‘그게 먼 미래까지 고려했을 때 좋은 결과인지, 당장 좋은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과거에 비해서 지금은, 내가 느끼기에 상황이 꽤 좋아졌다.
김지상도 탈퇴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서드림도 전보다 빠르게 그룹으로 복귀하게 될 것 같고.
몇 가지 문제의 가능성도 미리 싹을 잘라내었으며……. 개인적으로도 괜찮은 친구를 새로 사귀기도 했으니까.
그러므로 〈오디뮤〉 참여도 참여가 끝이 아닐 수 있었다.
〈데프아〉 때처럼 부가 이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으며, 이 문제는 나중에 따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게 좋을 듯했다.
“그런 거라면 미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겠네요.”
“그렇게 결정하시겠다면 어쩔 수 없죠.”
결론이 났다.
다음 목표는 2월 〈오디뮤〉 시상식이다.
지금이 10월 말이니까, 남은 기한은 100일 남짓.
“오늘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그게, 상담은 어렵지 않았는데요. 정의헌 씨…….”
내가 자리를 마무리하려고 하자, 선배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이런 이야기, 남들에게 너무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아.”
“특별한 비밀…… 이잖아요? 이런 건……. 영화 같은 거 보면, 소문내다가 나쁜 사람에게 노려질 수도 있고…….”
순수하게 내가 걱정된다는 말투와 표정이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않는다고요. 정의헌 씨 같은 사람 정말 처음 봤어요. 아무리 일부여도, 비밀스럽게 여겨주세요…….”
방음이 잘된다는 것은 이미 확인한 데다가, 더 은밀한 이야기는 다 끝났는데도, 남소리 선배님은 속닥속닥 소리 낮춰 말했다.
그 조심스러운 목소리와 내용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남들에게 말 안 해요. 선배님이 처음이라고요.”
“…….”
“그리고 저도 사람 가려요.”
“……정말요?!”
왠지 내가 사람을 가린다는 게 선배님께 처음 말했다는 것보다 놀라운 일인 듯 반응하신다.
……왜 믿기 어려운지는 대충 감이 오지만, 실제로 살면서 사람 잘못 신뢰해서 손해 본 적은 없다.
뭐,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어쩔 수 없으니 적당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소리 선배님.”
“네.”
“선배님은 제게 호의적이시죠. 저는 그 호의가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어갔다.
“사람을 가린다는 건, 저도 누가 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눈치는 본다는 말이고요.”
대충 살고 싶을 때에는 종종 눈치가 없는 척을 하기도 하지만, 이건 이 대목에서는 알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여전히 불안 겸 불신이 눈동자에 비치고 있어 나는 일부러 농담조로 질문했다.
“저 그렇게 안 그럴 것처럼 보여요?”
“……그, 그건 아닌데.”
“이미지 관리를 너무 잘했나 보네요. 머리 쓰는 거 귀찮아하는 건 맞아요.”
분위기를 풀 생각이었는데 괜한 농담 하나 붙였다가 역효과나 얻었다.
이러다가는 이미지까지 이상해질 것 같아서, 손에 턱을 괴고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저 진짜 바보 아닌데……. 말을 잘 안 해서 그런 거지.”
“말 안 한 게 있어요?”
“흠, 뭐가 있나……. 저희요, 저랑 선배님.”
이것까지 말해, 말아. 짧게 고민했다.
그러나 기회가 왔을 때 끝까지 가는 게 맞는 것도 같았다.
“방송 전에 한 번 만난 적 있지 않나요.”
“……으음. 아니, 아니요.”
헷갈리는 기색이 전혀 없는 부정이었다.
정말 만난 적이 없다면 망설여야만 했다.
속이 훤히 보이는 거짓말.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선배님이 ‘천사’예요. 그렇죠?”
“…….”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늘 궁금했는데 말이에요.”
추리의 결과를 서두에 붙여버리자 선배님은 잠시 말이 없었다.
시선이 먼저 움직였다. 바닥으로, 천장으로, 그 다음에는 벽으로, 마지막은 나에게로.
천천히 입을 열어 나온 그 말은 평소와 같았다.
부드러운 어조, 정확한 발음, 단정한 호흡,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
“근거를 말해봐요.”
그리고 상냥하지만 당당한 태도.
“언제부터 의심했냐는 질문인가요?”
“좋아요. 그 이야기부터 들어보죠.”
묘한 압박에 나는 자세를 다시 바르게 했다.
다음 스케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효율적인 요약이 필요했다.
우선 빠르게 시간순으로 사건을 머릿속에 정리해 보았다. 그중 맨 처음이라고 하면…….
“원래 제가 사람 기억을 잘하는 편이라서……. 선배님 필모그래피 중에 유명한 드라마가 많았잖아요. 저도 몇 개는 봤거든요. 〈춘향열애사〉나 〈오사연〉이나, 〈마불〉이라든가.”
〈춘향열애사〉는 2015년, 〈오늘의 사연〉은 2018년, 그리고 〈마귀라고 불린다〉는 2021년 드라마였다.
셋 다 배우 남소리가 원톱 혹은 투톱 주연으로 열연해 평가도 성적도 좋았다.
“그래서 연기할 때의 호흡 분배나 톤이나……. 왜, 사람마다 습관이 있잖아요. 처음 가상 공간에서 만났을 때 그런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잠깐 했죠. 그런데 음성 변조가 들어갔으니까, 당시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어요.”
“…….”
“그런데 가상 공간에서 과거로 보내주실 때 제게 ‘가이드라인’을 주며 말씀하셨잖아요.”
정확히는, 헤어질 때였다.
‘그러면 행운을 빌어요. 안녕.’
‘모쪼록 저도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었기 때문에 회귀 후 주변을 꽤 집중해서 살펴왔다고, 나는 선배님께 설명했다.
중요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는 표현 같기도 했으나, 당시에는 단서가 적어 한마디 말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여기까지가 〈데프아〉 출연 전에 생각한 내용이로군.’
이후의 근거가 세 가지, 그리고 보너스 하나가 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