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90화 (90/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90화

19. Cinema(4)

‘남소리 선배님은……. 이른바 ‘신기’가 있다고 했지.’

아주 친분이 두터운 상대는 아니지만, 일단 나보다는 (겉으로) 어른인 사람이고…….

저번에 적절한 타이밍에 나와 지상이를 구조했던 것도 그렇고, 방송 사이사이에 대화해 보았을 때도 괜찮은 사람 같았다.

더불어 몇 가지 미심쩍은 구석도 있어서, 기회가 된다면 대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연락만이라도 해보자.’

그렇게 나는 다음날 해가 밝자 어나더뮤직 매니저팀을 통해 남소리 선배님의 연락처를 받았다.

‘방송 끝나고 연락을 드리기로 했는데, 연락처가 없어서 여쭤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대충 그런 구실이었다.

낮이 되었을 때쯤 매니저에게서 전화번호가 포워드되었고, 나는 곧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남소리 선배님: 1위 축하해요...!!]

그렇게 시작된 메시지는 짧은 잡담 후에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 선배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일이 생겨서요]

[전에 3차 경연 직전 있었던 사건과 비슷한 일인데요]

[만약 실례가 아니라면 잠깐 시간 내서 봐주실 수 있으실까요]

표면적이자 가장 단순한 의문은 그 홀로그램 창이 선배님의 눈에도 보이는가.

혹시 내가 보지 못한, 혹은 볼 수 없었던 추가 내용이 있는지도 궁금했고.

메시지가 읽혔다고 표시된 지 고작 몇 초 만에 답장이 왔다.

[남소리 선배님: 오...]

[남소리 선배님: 그래요!!]

조심조심 공손하게 말한 부탁이 무색하리만큼 흔쾌한 응답.

우리는 너무 프라이빗하지도, 너무 오픈되어 있지도 않은 장소를 한참 논의한 뒤 약속을 잡았다.

[남소리 선배님: 앗 저도 월요일 낮에 상암 가요]

[남소리 선배님: 매니저 일인데 제가 껴도 되긴 해서...]

[남소리 선배님: 거기서 얼굴 보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넵 그러면 장소는 그렇게 픽스해 둘까요?]

[남소리 선배님: ㅎㅎ 네 좋아용]

[네 그러면 당일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서 확정된 약속 일정과 장소는 이틀 뒤, KMC 본사 건물이었다.

내부에 방문객 및 직원을 위한 카페도 있고, 말하면 장소를 빌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방송국은 같이 들어가는 모습을 남들이 보아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주말 이틀은 쉬어야겠어…….’

너무 느긋하게 잡은 일정인가 싶기도 했지만, 뭐.

숨을 돌리리면 이틀은 필요할 것 같았다.

* * *

이박사~ @take3339

와 나 방금 복덕방 보다가 엄청 무서운 얘기 들었음

업이 팬덤은 무조건 상승세 찍고 데뷔시키자고 의견 통일했는데

의언이랑 쭈니 팬덤에서는 데뷔하자vs스뎅으로 돌아가자 주장 많이 갈렸엇대

안씨는 그래서 순위내려간거고 이언군은... 그게 갈린 거였다니 정체를 모르겠다

멜로우 @m_e_llow

이런 말 미안한데 왜 그서바 데뷔멤은 몇명빼고는 인상이 이렇게 흐릿한걸까 나만그래? 인기 많았다는건 머리로 알겠는데 데뷔멤 누군지 대보라고 하면 몇명은 이름도 가끔 까먹음

일개미 @gaemi_sh

내가 의헌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네가 항상 다정하고 변하지 않는 사람이라서야 좌절해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단단한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ʚ̴̶̷̆ ̯ʚ̴̶̷̆⸝⸝) 헌이의 또 다른 시작을 언제나처럼 응원할게 가끔 힘이 들면 팬들을 의지하며 쉬기도 했으면 좋겠다 사랑해 헌아❣️❣️ #데프아 #에이레 #스테리나인 #의헌

dengde @dengde100

정의헌 좋은이유 데프아 파이널 아침에 내가 미역국 끓여줘도 오늘 중요한 날이라서 네가 요리도 해준다고 싹싹잘먹고 출근해서 1위해올것같음 #헌사연애

???????????????????????????????????? @H0N3YM00N

160820 데프아 신촌 게릴라 버스킹

최종 1위 데뷔를 축하해 ????

우리 의헌이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

[사진] [사진] #정의헌 #의헌 #데프아 #에이레 #EUIHEON #dpARENA #AiRe

강석이 @ilovemalrang___

㉻ㅎㅏ...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거지

도파민 너무 돌아서 우리 상황을 잊고잇었네...

생각해보니까 이렇게 좋아할 때가 아니다... (????돌아와)

* * *

‘너무 잤어…….’

그리고 나는 이틀 동안 수면량 27시간이라는 기록을 달성하고 말았다.

깨어 있는 시간에도 연락을 확인하느라 〈데프아〉 끝나면 보려고 했던 드라마도 한 편 못 봤다.

들어오는 연락은 대개 방송 봤다는, 축하한다는 메시지였다.

모바일 상품권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고, 고등학교 친구들은 집에까지 찾아와서 파티를 벌여놓고 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주말이 지나가서……. 나는 아침에 겨우 일어나서 택시를 타고 KMC 본사로 이동했다.

“와~ 1위~ 일찍 왔네요.”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김미진 PD가 싱글벙글 인사해 주었다.

특유의 빈정거리는 것 같은 투였는데, 표정이 좋아서 미심쩍게 들리지는 않았다.

본래 내가 여기 오늘 불려온 까닭은 〈데프아〉 시퀄로 제작할 ‘에이레’의 콘텐츠와 연습생들의 투어 콘서트 공지 전달을 위해서였다.

더불어 부른 시각은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반 뒤니까, 내가 정말 일찍 도착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오늘 남소리 선배님 잠깐 만나기로 해서요.”

“무슨 일로요?”

“그냥 커피 사주신다고 하셔서요. 안부 조금 묻고 하지 않을까요?”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상자를 가까운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동일한 제과점 로고가 그려진 길쭉한 상자 두 개였다.

“오. 이거 뭐예요?”

“그동안 고생하셨다는 의미로 제작진분들 선물을 조금 준비해 봤습니다~”

집 근처에 있는 가게인데 전에 먹어보니까 괜찮더라고요. 하고 내가 덧붙였다.

김미진 PD와 근처에 있는 제작진들이 관심을 보이며 슬금슬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와, 이게 뭐야. 맛있겠다.”

“이거 초록색은 녹차 맛이에요?”

“이건 딸기인가?”

박스 내용물의 정체는 바로 마카롱 세트.

초록색은 녹차고 분홍색은 딸기가 아니라 라즈베리라고 대답하며, 나는 잠시 남소리 선배님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공의 등장.

짧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1층 카페에서 커피를 두 잔 테이크아웃해 다시 올라왔다.

“어? 다시 올라오셨네요.”

“오늘 손님이 많은 건지 카페에 자리가 없더라고요. 혹시 빈 방 있으면 잠깐 있어도 괜찮을까요?”

김미진 PD가 다시 알은척을 하자,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김 PD님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는 옆자리에서 컴퓨터를 노려보는 다른 직원에게 물었다.

“그러세요. 야, 우현아. 우리 지금 회의실 빈 곳 있나?”

“소회의실 하나 비었어요!”

그 스태프가 간식을 우물거리다가 대답했고, 김 PD님은 왼쪽에서 두 번째 방을 향해 손짓했다.

어째 간식거리 하나로 몇 개월 동고동락한 시간보다 더 호감을 산 것 같기도 해서……. 미묘하게 웃겼다.

‘아닌가? 프로그램이 다 끝나서 다들 혈색이 도는 건가.’

하여간 나와 남소리 선배님은 단둘이 소회의실로 들어섰다.

우리는 회의실 방음을 잠시 확인한 후,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았다.

“그, 정의헌 씨. 방금 선물 같은 거……. 빌드업…… 이었어요……?”

“에이, 선물은 선물이고. 다른 건 임기응변이죠.”

나는 웃으며 남소리 선배님 몫으로 준비한 선물 상자를 건네주었다.

같은 베이커리에서 산 호두 파이, 청포도 타르트, 그리고 딸기와 크림치즈 타르트까지 다양하게 들어 있는 상자였다.

“뭐 드시고 뭐 좋아하실지 몰라서, 제일 유명하다는 애들로 골라봤어요.”

“와아…….”

받은 사람들 반응이 다 좋은 축이라서 다행이었다.

잠시 데프아 파이널에 관해서 스몰토크를 나누다가, 우리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는 게 뭔가요?”

“아, 네. 그러니까…….”

나는 짧게 말을 골랐다.

“혹시 선배님께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실 수 있는지 궁금해서요.”

“음.”

“그게, 귀신은 아니고…….”

나는 양손 검지로 허공에 네모를 그렸다.

“이렇게 생긴 네모 홀로그램인데. 글자가 적혀 있거든요.”

콜록.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선배님이 입가를 가리고 기침을 내뱉었다.

“……선배님?”

“죄, 죄송합니다. 깜짝 놀라서요.”

“괜찮으신 거죠……? 그 비슷한 걸 보신 적 있냐고 물어보려고 했거든요, 저.”

“으윽……. 잠시만요.”

남소리 선배님은 그 말을 끝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긴 시간 테이블만 노려보면서 침묵했다.

분명히……. 아는 것이 있는데도 말을 해도 되는지 고민하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시간이 충분히 지나가기를 멀뚱멀뚱 대기하기를 잠깐, 선배님은 결국 입을 열었다.

작은 한숨과 함께.

“우선은, 그……. 명칭을 알려줄게요. 그건 ‘상태창’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상태…… 창?”

“고유명사니까 띄어쓰기 없이 쓰는 건데, 네. 그, 그렇거든요…….”

“상태창…….”

너무 낯선 단어가 나와서 순간 당황했다.

띄어쓰기 유무의 차이가 무슨 변화를 낳는 건지도 솔직히 알 수 없었다.

단어를 습득한 김에 몇 번 읊조려 보았으나, 공간이 차츰 썰렁해지는 것 외에는 낯섦 그대로였다.

남소리 선배님은 민망하신 건지 점점 빨라지는 목소리로 상태창의 보편적인 디자인, 기능, 매체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그리고 ‘상태창’이나 ‘시스템’, ‘퀘스트’ 등은 보통 게임에서 쓰이는 말이라는 것까지 내게 설명했다.

듣고 보니 내가 보았던 홀로그램 창과 게임 시스템의 공통점이 어느 정도 머릿속에 입력되었다.

‘그러니까 사람의 능력치를 수치화해서 볼 수 있는……. 표나 차트 같은 건가.’

판타지로군. 새로운 지식을 제 속도로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러면 저의 그……. 상태창, 이라는 걸……. 선배님은 보실 수 있는 건가요?”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선배님의 미간이 좁아들었다.

시선은 마주 앉은 내가 아니라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흐릿한 초점을 가까이에서 보니까 기분이 묘했다.

“저, 무슨 34퍼센트에……. E+나 S 같은 알파벳이 막 나왔거든요. 그게 무슨 수치였는지 궁금해요.”

틈새 질문.

“아, 뭐라고요? 34퍼센트……? 아, 이거네요. 어…….”

“……뭐였나요, 그거?”

“크리티컬 확률이네요.”

……기본 수치가 좀 높은 것 같은데?

“D는……. 독 저항력이고요. E는……. 신앙, 살해한 사람 수가 0명…….”

“이런 질문을 해도 되나 싶은데……. 그런 능력 평생 안 쓰고 살아도 괜찮죠?”

“그럼요. 그리고 건강이 S 랭크에 잠재 공격력이 A네요. 그리고 방어 관통률 27퍼센트……?”

“장비 좋은 거 두르면 전사로 살아도 되겠군요…….”

세계가 멸망하면 빼박 전사로 전직해야 할 것 같은 스테이터스다.

‘그래도 전사보다는 아이돌로 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나는 슬쩍 손에 쥔 테이크아웃용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내려다보았다.

세계 멸망을 한 걸음 부추기는 악마의 일회용 용기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내일부터는 텀블러라도 들고 다녀야겠다…….’

지구 환경 보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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