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89화
19. Cinema(3)
화면에 ‘10위 후보’랍시고 4명의 연습생 얼굴이 동시 공개되었다.
십자선에 의해 4개로 분할된 화면을 보며, 안개는 탈락 후보가 된 연습생들의 면면을 무심하게 살폈다.
‘채호원…….’
그동안 자잘한 방송 분량이나 토크쇼 당시 영상을 생각하면 정의헌과 꽤 친한 연습생 같았다.
‘승준이 하고도 은근 가까워 보였고.’
그러나 그 정도가 감상의 끝이었다.
자취방에 모인 안개의 친구들도 정의헌과 김지상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툿투 타임라인을 보거나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13위부터 한 명씩 이름이 불리고, 12위를 지나 남은 것은 11위와 10위.
화면이 세로로 반 갈라져 후보의 모습을 한 사람씩 담았다.
고요히 숨을 쉬는 채호원과 안쓰러울 정도로 벌벌 떠는, 16살로 생방송 진출 20인 중 막내인 박지웅 연습생이 보였다.
- 최종 10위, 박지웅 후보생입니다.
그리고 이름이 불렸다.
“아…….”
“난 호원이 넘 좋았는데……. 헌이랑 관계성도 좋고.”
“나도 채호원이 밸런스 면에서 더 나았을 듯……. 역시 다들 어린 게 좋은가 봐.”
“쟤는 저러면 원래 그룹으로 돌아가게 되나? 나 스픽스 노래 좋아하는 거 있는데.”
각자 쑥덕거리면서 가벼운 감상을 나누었다.
안개는 아쉽고 슬프기는 했지만, 그건 채호원이 승리하고 박지웅이 탈락해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데뷔 그룹의 마지막 멤버가 된 박지웅이 마이크를 두 손으로 잡고, 입술을 깨물었다가 놓으며 감사 인사를 남겼다.
‘겨우 중학생인 애가 열심히 눈물 참으려고 하는 게 귀엽다’면서 지방 방송이 슬쩍 나오다가 말았다.
방송 소리도, 친구들의 목소리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안개는 미지근해진 물로 목을 축였다.
‘이게 이렇게 끝나는구나.’
기나긴 〈데프아〉의 여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를 애청해 주신 후원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직사각형 배너가 조그마한 화면 하단 중앙에 팝업되었다.
* * *
- 먼저 저를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넥스트레코드 직원분들, 〈데프아〉 PD님, 작가님, 스태프분들, 가족들, 그리고 저를 후원해주시는 팬분들……. ‘호랑단’이라고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호랑단 분들께도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지내온 이 모든 시간이 저를 성장하고 열매 맺게 했다고 믿어봅니다. 오늘 보내주신 사랑과 후원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채호원이 마지막 순서로 소감을 발표했다.
최종 11위.
수십 개의 무대 조명이 상하좌우로 빙빙 돌고, 종이 꽃가루가 비처럼 내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는 트레이너들, 그리고 물러나지 않고 연습생들 원샷을 잡는 여러 대의 카메라까지.
MC가 자리에서 내려와도 좋다고 우리에게 신호하여 나를 포함한 열 명의 연습생은 앉은 데서 일어났다.
우승자 좌석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피라미드 모양이라 유달리 내려가는 길이 길었다.
‘1위가……. 되었네.’
실감은 둘째치고 이게 이래도 되는 상황인가 싶었다.
속이 울렁울렁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도파민이 너무 돌아서 머리가 멍할 지경이었다.
‘일단은, 뭐……. 꽤 좋은 기분인 것 같긴 하다.’
오히려 너무 벅차올랐다가 진정해서 지금은 약간 힘이 빠진 느낌일까.
분명한 것은, 내가 1위 후보로 지상이와 함께 이름이 불렸을 때부터 기뻤다는 거다.
느긋하게 무대로 내려와서 보니, 승자와 탈락자가 한데 뒤섞여 부둥켜안고 울어대고 있었다.
어차피 오늘은 이어셋 마이크 없이 핸드마이크만 사용했기 때문에, 나는 눈치를 볼 것도 없이 채호원에게 넌지시 다가가서 물었다.
“괜찮냐.”
“응. 걱정 안 해도 돼.”
채호원은 눈가를 손가락으로 슥슥 닦으며 대답했다.
녀석의 어깨를 감싸 안아 두드려 주며 나는 작은 목소리로 한 번 더 질문했다.
“기분은 어때.”
“그냥 그래. 뭔가……. 생각보다 홀가분해.”
“좋은 거야?”
“좋은 거지.”
채호원은 멀끔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무언가 안심이 되는 듯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고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데 채호원이 뒤에서 나를 불렀다.
“아, 정의헌!”
“……어?”
“1위 축하해.”
돌아보면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고마워.”
그래서 나도 그냥 웃었다.
촬영은 일사천리로 마무리되었다. 방청객들에게도 손 흔들어 인사해 주고, 출연진 대기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스태프들이나 다른 연습생들, 트레이너들, 그리고 승준이, 지상이와도 서로 축하해 주고 여운을 즐겼다.
“우리 회사 분들 다 오셨더라…….”
“둘이 1위 후보 불리는데, 나 위에서 객석 진호 쌤이랑 눈 마주쳤거든? 쌤 울고 계시더라.”
“와, 진호 쌤이 우는 것도 보고……. 우리 오래 살았다.”
양진호 선생님은 어나더뮤직 신인개발팀의 안무 트레이너다…….
자주 얼굴 보는 매니저팀뿐만 아니라 우리를 연습생 때부터 키워준 신인개발팀, 홍보팀이나 영상팀 직원들까지 총출동한 모양이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장에서는 좋은 결과를 보여드려서 다행이었다.
“지상이는 어떻게 할 거야?”
“난 숙소 가려고. 민정 누나가 태워준대서.”
“잘됐네. 나는 부모님 오셔서……. 헌이 형 부모님도 오셨다고 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에 동생 둘까지 보러 와서, 다들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무대 의상에서 사복으로 환복할 때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까 주차장 위치가 메시지로 도착해 있었다.
사람이 네 명이나 대기 중이었으므로 나는 그대로 모두와 헤어져 연습생 대기실을 나섰다.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비교적 일찍 끝이 나서인지, 복도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조금은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발을 옮기기 막 시작한 그때였다.
띠링.
이상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처음에는 핸드폰에서 나는 벨소리인 줄 알았는데, 핸드폰을 들어 살피기도 전에…….
시야에 낯선, 반투명한, 푸른 빛을 내는 홀로그램 직사각형이 떠올랐다.
‘……?’
순간 놀라서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주변을 지나가는 다른 연습생이나 스태프들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자 다들 왜 그러냐고 오히려 내게 되물어왔으니까.
아무런 무늬도 없는 사각형에 슬쩍 아닌 척 손을 올려보자, 손이 쑤욱 통과되었다. 통과되는 감각도 없이.
그리고 다시 손을 거두었을 때, 타이밍 좋게 직사각형 위에 문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濡쒕"© 以'ì�…宥덈떎...」
「蟻좎떆留뗞湲곕떎溜ㅼ<淫몄�"」
그런데 이걸 문자라고 해야 할까.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 같았다.
급하게 나는 복도 구석으로 빠져 핸드폰에 온 연락을 보는 척 홀로그램 직사각형을 쳐다보았다.
홀로그램 창은 마치 내 시야에 고정된 것처럼, 내가 움직이자 일정한 거리감으로 내 눈앞에서 움직였다.
천천히 경험을 되짚어 적응해 보려니까……. 이는 묘하게 시간을 되돌아올 당시 ‘천사’가 보여준 SNS 홀로그램 창을 닮은 것도 같았다. 디자인이나 크기, 투명도, 색상 따위가.
‘그런데 사실…….’
비슷한 것이 조금 전에 한 번 눈앞에 보이기는 했다.
1위로 이름이 불린 그 순간, 폭죽이 터지고 소감을 말하기 직전.
그런데 그건 이렇게 외계어를 내뱉지도 않았고, 몇 초 만에 바로 사라졌기 때문에 나는 내가 잠깐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다.
그때 본 홀로그램 속에는……. 짧은 문장이 몇 글자로 적혀 있을 뿐이었다.
「MISSION CLEAR」
「축하합니다!」
그리고 눈을 깜빡이자 곧바로 사라졌다.
게다가 생방송 중이었고, 정서적으로도 너무 흥분해서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둘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STATISTICS」
「悠'肆þ?壬?젰: D
邑좎�: E+
乙댄댁ó쎷乙щ엺 飮-ø 0
絪щ━一곗뺄 林瑜 : 34%
嫄닿°: S
蟻좎옱 怨듦꺽溜ㆈ A」
내가 생각하는 동안에도 홀로그램 창 속에서는 그런 문자가 한참 텍스트를 밀어올리며 덧붙다가, 한순간 뚝 멈추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물론 ‘STATISTICS(통계)’ 정도는 뜻을 알 수 있었지만– 낱말이 등장했다.
「두 번째 미션」
「〈제13회 오렌지 디스크 뮤직 어워드〉 생방송 공연에 참여하세요」
「남은 날짜 D-……」
글자가 한 자씩 타자 치듯 떠오르다가, 문득 기한을 알리는 데서 멈추었다.
그리고 홀로그램 창 자체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ERROR」
「비정상적인 접근입니다」
「프로그램이 강제 종료됩니다」
그렇게 홀로그램의 푸른 빛이 회색으로 채도가 낮아지더니…….
크게 번쩍이고는, 홀로그램 ‘프로그램’은 언제 나타났냐는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뭐지?’
창이 완전히 없어지고 나자 한 박자 늦게 팔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최종 1위를 했다는 사실보다도 더 현실성이 없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미션이 뭔지도 모르는데, 두 번째라고?’
물론 ‘미션 클리어’라는 말이 나타난 타이밍과 두 번째 미션의 디테일을 고려해 생각해 보자면…….
〈데프아〉 최종 데뷔조에 들어가거나, 〈데프아〉에서 1위를 하라는 내용이었으리라고는 추리할 수 있었다.
새로 받은 ‘두 번째 미션’의 난이도나 달성 가능성은 일단 그렇다고 치고…….
‘그래서 이게 뭔데.’
과거로 돌아올 때에는 설명해 주는 사람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했다.
본격적으로 생각을 펼쳐보려고 단서를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려는 그때, 문득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은하공주: 엄마가 오빠 빨리 나오래]
……사람이 네 명이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자리부터 옮기기로 했다.
* * *
그날 밤.
아니, 방송이 자정 가까이에 끝났으니까, 정확히 말해서는 새벽.
나는 혼자 내 방 책상 앞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홀로그램 창은 그 에러 메시지 이후 재등장하지 않는군.’
불러보려고 소원을 빌듯이 정신을 집중해 보아도 마찬가지로 무응답이었다.
내가 과거로 돌아온 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전까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면…….
나의 자의로 부르고 물릴 수 없는 시스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진 글자는 기억도 못 하고 의미도 알 수 없으니 당장은 패스.’
그다음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두 번째 미션’ 내용이었다.
〈오렌지 디스크 뮤직 어워드〉는……. 이름에서도 나타나다시피 음악 시상식이다.
영어로 ‘ODMA’가 공식 약칭이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오디뮤〉라고 줄여 부른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음악 시상식에 생방송에 공연으로 참여하라는 미션.
상을 받으라는 것도 아니고, 무대를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특히 모호했다.
‘그보다 시키는 대로 해야 할 이유가 있나?’
성공했을 때의 보상이나 실패했을 때의 페널티가 존재하는가……. 그것도 의문이었다.
잠시 기억을 뒤적여 보며 생각을 더 해보았다.
‘아, 어쩌면…….’
이 문제를 상담할 만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데프아〉 MC인, 배우 남소리 선배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