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87화
19. Cinema(1)
첫 번째 곡은 〈Youth〉.
방송 당일 정오에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음원이 선공개되어, 노래는 웬만한 팬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최애가 참여한 〈Young〉에 한해서였지만, 안개는 외워서 부를 수 있을 만큼 하루 동안 노래를 많이 들었다.
〈Youth〉, 〈Young〉, 〈첫인상〉 모두 짧은 준비 기간에 비해 곡이 좋았다.
그리고 준비 과정 영상도, 무난하게 좋은 축에 들었다.
‘편집이 순해졌군.’
연습생끼리 잘 놀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준비를 열심히 하는 모습 등이 화면에 착실히 담겼다.
아무래도 파이널의 콘셉트는 노골적인 경쟁 맛을 빼고 화합과 우정으로 테마를 정한 모양이었다.
거의 매번 리더 역할을 빼놓지 않고 해내는 VCR 속 정의헌을 보며 ‘아임’이 질문했다.
“그런데 리더는 뽑히면 원래 무슨 역할 하는 거야? 그냥 좀 제작진들이랑 연락하는 반장 같은 건가?”
“그냥 그룹 리더면 그렇겠지만……. 미션을 계속 주는 방송이니까, 그것보다는 춤 가르치는 역할일걸?”
“맞아, 맞아. 춤 선생님. 미리 안무 카피해서 다른 팀원들 가르쳐 주고 피드백해 주고 이런 거 할 거야.”
“그래서 그때 〈일일구〉 할 때도, 리더 아닌데 의헌이가 춤 지도 다 해서 사실상 리더였다고 그러잖아.”
안개는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승준과 정의헌이 참여한 〈일일구〉 조는 제비뽑기로 리더를 결정해서 함경우라는 연습생이 리더였다.
‘의헌이 형이 많이 도와줬어요, 안무 따는 속도도 빠르고 되게 잘 가르쳐 주셔서요.’
그런데 〈일일구〉 팀원이었던 연습생 중 한 명이, 지난주 순위 발표식과 함께 방송된 토크쇼 콘텐츠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뉘앙스가 함경우를 공격하려는 것도 아니었고 발언자가 함경우보다 인기가 많은 연습생이었기 때문에 별 논란은 일지 않았다.
게다가 토크쇼 분위기 자체가……. 몹시 전투적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로는 논란이 될 수 없었다.
‘좀 재밌었는데!’
토크쇼는 한마디로 제작진이 악의적으로 편집해 버리거나 방송에 내보내 주지 않은 비하인드를 합법으로 폭로하는 방송이었다.
억울한 게 많은 연습생들은 서로 마이크를 잡겠다고 경쟁하며 기를 쓰고 합숙 썰을 풀어댔다.
물론 안개는 마음 한구석으로는 ‘연습생들 좋은 거나 먹여주지, 저가로 방송 분량 채웠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의헌이는 경쟁하러 나와서도 주변 진짜 많이 챙기더라. 처음 보는 애들한테도 잘해주고.”
“너 그 최근에 리툿 많이 됐던 글 몰라? 잠깐만, 내가 웃겨서 캡처해 뒀는데.”
앞에서 두 친구가 이야기하다가, 옹기종기 핸드폰을 같이 보면서 풋 웃음을 터뜨렸다.
안개가 보여달라고 하자 ‘삼새두’가 SNS 스크린샷 화면을 내밀었다.
퇴않 @showmymoney
나 사실 첨에는 정이언 욕심안부리는 모습 약간, 아주약간 띠꺼웟거든
뭐 데뷔조 맡아뒀나? ㅋㅋ 돌아갈 그룹잇어서 저러나? ㅋㅋㅋ
글케 생각했는데 무대하는거 보고 생각바뀜 (제가어리석엇죠^^;;)
그이는 실력이 빌런이라 성격이라도 좋아야되는 상황이엇던거임...
한편 안개가 캡처를 보고 웃는 사이에도 주변 지방방송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의헌이는 ‘남자한테 인기 많은 남자 비호감’이라고 싫어하는 사람들 은근 있어서 웃겨.”
“그런 캐릭터 왜 싫은지는 알겠는데 아 제발 우리 애 그런 애 아니라고…….”
또 단체로 까르륵거리는 동안, VCR이 끝나고 〈Youth〉 무대가 시작되었다.
〈Youth〉는 트랩 힙합과 퓨처 하우스 장르를 섞은, 스포티한 노래였다.
여름 느낌이 나기는 했지만, 어차피 노래를 듣게 되는 이 계절도 완전히 겨울은 아니었으므로 이질감은 없었다.
연습생들은 통일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흰 와이셔츠에 컬러가 조금씩 다른 넥타이, 남색 슬랙스 바지. 질감이 수트보다는 교복에 가까웠다.
킬링파트를 맡은 멤버는 캡 모자로 포인트를 주었다.
이미 여러 번 들은 노래라고 해서 벌써 지루해진 것은 아니었다. 퍼포먼스는 새롭게 또 좋기까지 했으므로.
희미한 희망 따라 달려왔어
Thank you my Youth
여기서 만난 Us
덕분에 나 꿈꿀 수 있었어
무대가 종료되자마자, 노래가 흐르는 동안 조용했던 사람들이 동시에 ‘크윽’, ‘흑’, ‘으우우우’ 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사람이 여럿 모여서 잡담만 나누는 장소 특성상 감상은 꽤나 원초적이었다.
“……개 잘생겼다.”
“내 말이.”
주어는 없었지만, 약 3분 내내 모두의 시선은 한 사람에게 몰려 있었던 터라 소통이 되었다.
“서바 극혐인데, 여기까지 와서 떨어지면 더 기분 나쁠 것 같아. 의헌이 잘돼야 되는데.”
“아니, 그런데 저 제작진이 경력직 안 좋아해서 과연 붙여줄까 싶다.”
“아무래도 세 명 다 데뷔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를 수밖에 없는 팬들은 오늘도 신나게 추측을 늘어놓았다.
“저번 순위 생각하면 지상이가 떨어지려나…….”
“근데 나 〈데프아〉로 입덕한 상상단 툿친 좀 있는데, 얘기 들어보니까 그냥 저번에는 현타 때문에 투표 대충하는 사람이 많았대. 다들 방송 나오고 미쳐서 마지막 날부터 불탔잖아. 이번에도 이를 악물고 투표했을걸.”
짧은 침묵이 흘렀다.
정의헌도 김지상도 아니라면……?
안개가 다급하게 앞에서 떠드는 두 친구의 입을 막았다.
“부정 타는 얘기 하지 마!!”
그 순간 TV 속에서는 〈Young〉 팀의 무대 준비 비하인드가 재생되고 있었다.
〈Young〉 팀에는 안개의 눈에 밟히거나, 그녀가 호감을 느끼는 멤버가 비교적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Young〉 팀이 〈Youth〉 팀보다 실력이 두드러지게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
각각 연습생들의 캐릭터, 포지션, 밸런스는 두 팀이 비슷한 수준.
‘랜덤 요소 빼고 애들이 직접 조정하니까 아웃풋이 좋다.’
즉, 이 팀도 연습 과정에서 큰 트러블 없이 그럭저럭 훈훈하게 의견을 조율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극적인 요소가 적어 약간 밋밋하기는 했으나, 안개는 마지막 회까지 경쟁 구도에 노출되는 것보다는 피로감 없는 방송이 좋았다.
하여간 그는 방송을 BGM으로 두고, 친구들과의 잡담을 주 콘텐츠 삼아 방송을 즐겼다.
“헐……. 컨셉 뭐야. 너무 귀여워…….”
“진심 새삼 안승준 동안이야…….”
〈Young〉은 〈Youth〉보다 멜로디컬한 곡으로, 자유롭고 파워풀한 〈Youth〉와 달리 몽환 콘셉트를 한 스푼 첨가한 노래였다.
앞선 곡과 모티프가 조금은 비슷했지만, 의도해서 연결한 티가 충분히 나서 오히려 공통점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무대 의상은 야구 점퍼에 청바지. 킬링파트 팀원만 점퍼 색이 다소 밝았다.
더불어 김지상은 이번에는 킬링파트를 추천받고도 양보하여, ‘모든 무대 킬링파트 달성’은 하지 않게 되었다.
끝도 없이 나는 타올라
달려 뛰어올라
하늘에 닿아
더 멀리 Forever, Young
무대가 끝나자 안개는 탄식처럼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승준이 1위하면 어떡하지…….”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99.9%인, 뼈와 살을 깎는 조크였다.
-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 생방송 파이널, 그 문자투표가 이제 종료됩니다!
MC의 발표 후 아마도 합숙 도중 촬영한 것 같은, 캠프파이어 풍의 영상 VCR이 이어졌다.
정신 없는 방송 구성이었지만, 안개는 생방송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투표 집계에도 시간이 들 테니까, 뭐.’
중앙에 캠프파이어를 틀고 옹기종기 야외에 모여 앉은 연습생들.
그때 가족이나 친구들, 이미 탈락한 연습생들의 응원을 담은 영상 편지가 깜짝 상영되었다.
첫 합숙 때쯤 촬영한 듯 보이는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영상도 있었다.
머리색이라든가 스타일, 메이크업, 심지어는 체격까지 부쩍 달라진 사람이 많았다.
- 절대 포기하지 말고……. 멈추지 말자. 정의헌. 주변 사람들한테 잘하고, 지지 말고 살아. 사랑해.
- 할 수 있다, 승준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 네가 원하는 거 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어, 안녕~
- 미래의 지상아. 어렵겠지만……. 너 자신을 믿어봐. 음, 자신감을 갖고……. 단단해져야지. 힘내.
영상 편지를 녹화하면서 우는 연습생, 보면서 우는 연습생, 모든 순간에 다 펑펑 우는 연습생까지…….
아니나 다를까 시그널 송 〈승전가〉의 피아노 편곡 버전이 BGM으로 몇 분 내내 흘러나왔다.
“무력하게 슬프다…….”
“쟤들 솔직히 다 애기들인데…….”
쉬운 시청자들은 제작진의 꼭두각시가 되어 슬프라고 할 때 슬퍼하고, 감동받으라고 할 때 감동을 받아가며 시간을 보냈다.
직후 연습생들이 다 같이 나와 한 소절씩 부르고 후렴구는 다 함께 떼창 하는 발라드, 〈첫인상〉 무대까지 이어지고.
오랜 공허했던 시간
너의 존재가 필요했던
나와, 눈이 마주친
네가 좋았어
첫눈에 느껴진 사랑의 시작
세 번째 무대가 끝나고, 연습생들이 마지막으로 매무새를 점검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간 동안.
MC는 트레이너 및 방청객으로 온 탈락 연습생들과 간단히 실시간 인터뷰를 주고받았다.
그 뒤로 광고가 두 번.
화면이 전환되고 비로소 본격적인 순위 발표가 시작되었다.
처음 이름이 불린 것은 9위 연습생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 최종 8위는 개인 연습생 송수민 후보생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사전투표 때와 비교해 무려 90위나 상승한 송수민을 보고 다 함께 감탄 한 번 해주고…….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긴장감이 도로 찾아왔다.
순위권이 한 명 더 발표되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자리에 기다리던 이름이 불렸다. 드디어.
- 6위, 어나더뮤직 안승준 후보생입니다. 축하합니다!
지난 발표 때보다 두 계단 하락한 순위.
그러나 안개에게는 그런 사소한 등락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됐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친구들의 무릎과 무릎을 건너 자취방을 한 바퀴 도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달리 복잡한 수식어를 붙일 필요도 없이, 너무 좋았다.
저번 방송에서 순위 변동을 정확히 예측한 지혜로운 면도 너무 귀여웠고, 늦지 않게 호명되어 팬을 안심하게 해주는 배려심도 좋았다.
안개는 무논리로 생각을 밀어붙이며, 여기저기 감사 인사를 소감으로 남기는 안승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저번주랑 토씨 하나도 안 틀리고 같은 말 하는 것도 너무 귀엽다.”
“저번 소감을 외웠어?!”
“벅차서 말 빠르게 하는 것도 천재 랩스터 같아서 진짜 귀여워.”
“랩……. 갱스터?”
“햄스터겠지…….”
안개가 감정이 북받쳐 입으로도 손가락으로도 –SNS를 통해– 시끄럽게 구는 사이, 순위 발표는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어느덧 3위.
- 축하합니다, CK미디어 류희재 후보생!
3위는 류희재였다.
“응?!”
이름을 듣자마자 안개는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고, 노트북 모니터 화면에 집중했다.
그 자리 모두가 비슷한 반응이었다. 허리를 펴고, 목을 빼고, 혹은 아예 등받이에 등을 대고.
“아니, 류희재가 3위라고?”
“아니, 잠깐만…….”
“아니, 이러면? 지상이……. 떨어지나?”
삼진 ‘아니’가 나왔다.
그렇지만 모두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최종 승자’는 10위, 2위, 1위만 남은 상황.
안개는 무의식 중에 엄지 손톱을 잇새로 가져갔다.
‘아직 이름이 안 불렸어.’
김지상도, 정의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