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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86화 (86/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86화

18. 0X1=LOVESONG (5)

의식의 흐름으로 던진 질문에, 정의헌이 눈썹을 찡그렸다.

“……음?”

“아니, 이주만 그런 게 아니라……. 멤버들 다.”

서드림은 친구만 너무 콕 집어 말한 것이 뒤늦게 민망해 말을 바꾸었다.

정의헌은 놀란 티는 숨기지 못했으나, 곧 침착하게 서드림에게 하나씩 설명을 해주었다.

몇몇 멤버들이 〈데프아〉에 출연을 결심한 사정, 촬영하며 있었던 일, 남은 멤버들의 해외 투어, 공식적으로 알려진 스케줄뿐만 아니라 멤버들만 알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 자잘한 비하인드까지.

한이주는 미국에서 발에 맞지도 않는 신발을 사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가, 구매하고 보니 기어코 불편해서 강주찬에게 주었다고 한다.

“원가가 150달러였는데, 강주찬이 2만 원에 사갔대.”

“아무도 못 신으면 버려야 되는데 2만 원이라도 받았으니까 다행이지…….”

“너 지상이랑 똑같은 말 한다.”

차갑게 말하니까 정의헌이 소리 내어 웃었다.

‘지상이랑 드림이는 말하는 투나 이목구비가 조금 닮았다’고, 본래 자주 듣던 말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새삼스레 드러나게 되니, 괜히 서드림도 피식 웃음이 났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이미 다 끝나서 결말이 나온 스토리였는데도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았다.

이런저런 것이 궁금했다. 그리고 사람과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었다.

반년 넘게 외출도, 타인과 어울리는 것도 무서워했던 그였지만…….

‘할 만한데, 생각보다.’

서드림의 흔들리는 속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드림아.”

정의헌이 넌지시 물었다.

“우리 단톡 다시 초대해 줄까.”

끝내기 한 수를 두듯이.

뜻밖에 고요했다.

“……아.”

서드림은 고민에 빠졌다.

걱정이 앞섰다. 어떻게 하고 싶은지는 전혀 계획된 것이 없었으므로.

정의헌은 ‘데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게 바로 돌아오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서드림의 부정적인 사고가 정의헌이 숨기려고 했던 진실을 한 꺼풀 예리하게 벗겨내었다.

여전히 스테리나인은 멤버 구성에 공백이 있고 그 상태는 앞으로도 몇 개월 이어질 터였다.

‘그렇지만…….’

지금 ‘싫다’고 말하면 언제 다시 제안해 올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당장 활동에 복귀하라는 것도 아니고, 같이 잡담이나 나누자는 말 아닌가.

그는 결정을 끝냈다. 그리고 대답했다.

“응.”

사소취대(捨小就大).

바둑을 잘 두기 위한 십계명 위기십결(圍棋十訣) 중 하나.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매달리지 말고, 미래와 큰 그림을 보아라.

당장 보이는 작은 가치를 탐내다가는 큰 것을 잃을 수 있으니.

본가에 돌아오는 것, 몸은 편했다.

그러나 언제나 어떠한 갈증이 있었다.

그 욕심을 인정하는 것은 앞으로의 큰 이익으로 이어질 것이다.

무엇이 사소하고 무엇이 거대한가.

계산은 언제나 쉬웠다.

그는 승부사였으니까.

* * *

[단체채팅] 스테리나인 멤버방 || 9명

「공지」 이주야 법인카드 쓰고 바로 반납 좀 해 (영하 형이)

– 정의헌 님이 스테리나인 서드림 님을 초대했습니다 –

[(털썩 엎어지는 흰 강아지 이모티콘)]

[스테리나인 한이주: 얼레]

[스테리나인 서난영: 드림이다!!!!]

[스테리나인 한이주: 뭐야 이거]

[(식당에서 정의헌, 서드림 함께 찍은 사진)]

[부산에서 직접 모셔왔으니까]

[이주 급발진 금지]

[스테리나인 한이주: 나도 부산갈줄아는데]

[스테리나인 한이주: (울먹울먹 우는 까만 고양이 이모티콘)]

[스테리나인 이영하: 우리 드림이 형이 기다렸어 ????]

[스테리나인 한이주: 둘이 뭐해 나도 갈래]

[스테리나인 안승준: 드림아... 잘 지냈니...]

[스테리나인 강주찬: ㅎㅇㅎㅇ]

[스테리나인 천진섭: 보컬방 컴퓨터 안 끄고 간 사람 누구야???]

[스테리나인 천진섭: 어 뭐야 안녕]

[스테리나인 서드림: (이불 덮고 눕는 판다 이모티콘)]

[스테리나인 안승준: 이주야 드림이가 말걸지 말래]

[스테리나인 이영하: 헉 컴 켜둔거 나같은데 ㅜㅜ 미안 ㅠㅠ]

[스테리나인 서드림: 한이주 법카 반납해]

[스테리나인 한이주: ㅡㅡ]

[야 너희 진짜 산만하다]

[원래 이랬나]

[스테리나인 안승준: 원래 이랬어]

[스테리나인 서난영: 새삼 ㅋㅋㅋ]

[스테리나인 한이주: 헐 법카 나한테 있네]

[스테리나인 이영하: 야!!]

[스테리나인 김지상: 정신머리 레전드]

[스테리나인 김지상: 드림이 어서와]

+ + +

비밀스럽게 스테리나인 멤버가 모두 단톡방에 결집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며칠 뒤.

드디어 예능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의 파이널 생방송의 막이 올랐다.

닉네임 ‘안승준의 개’, 줄여서 ‘안개’는 오늘 방송을 보기 위해 친하게 지내는 친구의 자취방에 도착했다.

스테리나인 팬들로 이루어진 단체 오픈 채팅 참여자들의 모임이었다.

〈데프아〉에 최애가 없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도 투표를 하거나 영상 클립은 찾아보고는 했으니까……. 기꺼이 모였다.

“우리 여섯 명이니까 두 명씩 나눠서 투표하는 거야, 알았지?”

“솔로몬이 따로 없네. 나는 지상이 할래.”

문자 투표 계획을 자체적으로 합의하며, 그들은 배달음식을 플라스틱 접이식 탁자에 올려놓았다.

TV나 소파가 없는 투룸이라 노트북 모니터 앞에 다닥다닥 모여 그들은 방송 실시간 중계에 돌입하였다.

“오, 시작한다!”

“아니, 왜 컴으로 보면 1분씩 느려? 남들은 광고 다 끝났다는데.”

“순위 스포 미리 들으면 땡큐지, 뭐 어때.”

잡덕 성향이 강한 리스너 ‘김빵’이 핸드폰으로 툿투 타임라인을 보며 투덜거렸고, 정의헌 팬 ‘강석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안개는 벽에 몸을 기대고 익명 커뮤니티의 ‘실시간’ 게시판과 툿투 타임라인을 번갈아 새로고침했다.

‘어디 보실까.’

사실 안승준이나 김지상이나 정의헌이나 인기는 많았다.

‘3픽’이 ‘1픽’이 되었기 때문에 순위 자체는 변하겠지만, 그것도 간헐적으로 불안할 뿐, 일주일 내내 미칠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스테리나인 ‘어나더즈’ 세 명을 제외하면 누가 떨어지고 붙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니까.

그보다 안개의 관심사는 (안승준의 생존을 제외하면) ‘정의헌이 1위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밀월 ˚₊ᄋ—̳͟͞͞♡ @H0N3YM01N

파이널... 와라

헌캔두잇

안개의 지인이자 정의헌 최애로, 이제 유명인이 된 ‘밀월’의 투잇이 타임라인에 보였다.

프로필 사진이 정의헌이 언젠가 공식 카페에 올린 셀카에서 ‘정의헌 #0077’라는 텍스트로 바뀌었다.

안개도 일찌감치 프로필 사진을 ‘안승준 #0077’로 바꿔두었으니 별다를 것 없는 처지였다.

정의헌은 특히 ‘정이현, 정의현, 장이헌, 정인헌’ 등 세 글자 모두 오답률이 높아서……. 밀월이 걱정하던 것을 안개는 기억해 냈다.

‘그래도 헌이는 잘 될 것 같던데…….’

안개가 괜히 정의헌을 1위 후보로 점치는 게 아니었다.

저번 주 순위 발표식에서 기록한 2위도 물론 센세이션했지만, 더 눈에 띄는 점은 팬덤의 흐름이었다.

〈데프아〉가 인기를 얻으며 연습생들은 각자 거의 제로부터 팬덤을 구축해 나갔다.

그리고 정의헌 개인 팬덤에는……. 더러 신기한 사람들이 등장하고는 했다.

– 야이 ㅋㅋ 이제 입덕해서 찾아보려니 어떻게 제대로 해놓은 게 없네 노답엔터 어나더 ㅜㅜㅗ

– 어나더뮤직 부수자. 지금 잘되는 김에 어나더도 나와.

– 이렇게 멋진 애들인데 왜 지금까지 띄우지를 못했을까 신경 좀 쓰자 소속사야 #정의헌

왠지 모든 원한을 소속사에 쏟아내는 사람이라든지.

– 일찍 퇴근한 김에 굿즈 다 꺼내서 혼자 패션(?) 쇼하는 중 ㅎㅎㅎ #정의헌 #데프아

– 흐리지만 등산을 가야겠어요. 어제 일일구 영상 보면서 코 훌쩍훌쩍하다가 힘 좀 내고 싶더라고요 가는 길에 백숙도 먹을 계획 ㅋㅋ #데프아 #의헌

– 꿀벌단 모여!! ㅎ 동생 꿀벌단들과 오랜만에 사우나~ 하루종일 이튜브 보고 수다 떨고 ㅎㅎ #정의헌

본인 일상 이야기를 가수 이름 해시태그와 함께 게시하는 사람들.

– 울 이쁘고 멋진 리더님 흑흡흡 #의헌 너~무 좋다! ㅎㅎ 이때도 송수민, 함경우를 도와주고 있네 ㅠㅠ

– 채호원도 자꾸 리더를 어필하려고 하네. 약간 겹치는 느낌? ㅋㅋㅋ

그리고 좋지도 않은 소리를 다른 연습생 이름을 또박또박 서치 방지 없이 써가며 하는 사람들까지…….

이런 인간들은 밀월이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에게 들키기 전에– 쓱싹 암살자처럼 해치우고 있었지만.

‘이거 그거지……?’

안개는 긴긴 관찰 끝에 결론을 내렸다.

정의헌 팬덤 ‘꿀벌단’의 연령대가……. 굉장히 높아진 것 같다고.

‘지상이 지금 초통령 된 거 생각하면 당연히 우리도 늙은이겠지만…….’

평생 아이돌 덕질이라고는 해본 적 없어 보이는 사람들마저 정의헌 팬덤에 몰려들고 있으니, 안개 입장에서는 마음이 조금 복잡했다.

축하해야 할지 의헌이 최애인 친구들을 연민해야 할지…….

대중을 상대로 하는 방송이 낳은 예측불허의 변화였다.

‘그런데 의헌이가……. 원래 좀 이모 팬들이 좋아할 요소를 다 가지고 있긴 하지.’

우선 피지컬. 키 크고, 비율 좋고, 건강하고, 어깨 넓고, 선이 뚜렷한데 험상궂은 것은 또 아니고…….

그리고 성격. 주변 사람 잘 챙기고, 싹싹하고, 팬서비스 잘하고, 우직하게 착한 면이 있었다.

‘……아닌가?’

안개는 다만 지금 이 생각이 덕후의 주접인지 주변에서 세뇌한 영향인지 스스로 가늠이 잘되지 않았다.

하여튼, 어떤 의미로는 난처한 상황이었지만, 사실 나이대가 있는 팬덤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의헌이 팬덤은 투표 독려 경품으로 TV를 걸더라?”

“TV 한 명에 일본 여행권 두 명일걸.”

“맞아, 숙박 포함.”

안개가 운을 띄우자 꿀벌단 친구들의 간증이 들려왔다.

〈데프아〉 파이널 문자 투표를 인증하면 추첨을 통해 선물을 주는 이벤트가 여러 팬덤에서 횡행하는 지금.

독보적인 자금력과 모금 참여력으로 ‘꿀벌단’은 값비싸고 다양한 경품을 이벤트에 쏟고 있었다.

가장 값싼 경품인 아이스크림 상품권, 아메리카노 상품권도 무려 삼백 장씩이나 뿌린다고 하던가.

안개는 TV가 없어서 노트북 화면에 여섯 명이 달라붙어 보고 있는 자취방 현장을 보며 우수에 잠겼다.

‘과열된 건 맞는데, 뭐 말릴 수도 없고.’

안승준 팬덤에서도 경품으로 노트북을, 김지상 팬들도 데스크톱을 걸 만큼 모두가 광기에 젖어 있었다.

심지어 안개까지도 개인적으로 팬덤 내 투표 독려를 위해 ‘안승준 미공개 폴라로이드 사진’을 걸고 이벤트를 주최했다.

어쨌건 모두 흥분하여 기다리는 것이 이 파이널 생방송이었으니…….

“진짜 도파민 돈다.”

안개가 중얼거리자 주변에서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은 남은 연습생들의 짧은 인터뷰 VCR과 20인 버전의 시그널 송 〈승전가〉 라이브 무대로 시작되었다.

의상은 처음 〈데프아〉가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연습생들이 입은 유니폼이었다.

하계 올림픽 선수단복을 위시한 디자인으로, 남색 재킷과 하얀 하의, 중절모가 한 세트인 의상.

처음 입었을 때에는 여름이라 반소매 티셔츠 내의만 입은 연습생도 꽤 있었는데, 기온이 떨어져 다들 재킷을 겉에 걸쳤다.

모자 디자인을 조금씩 다르게 하거나 타이나 스카프 등으로 각자 다른 포인트를 주어서 차이를 찾는 재미도 있었다.

“와……. 종이 날리는 거 봐.”

“진심. 나 저기 세워뒀으면 A4 종이 한 장은 먹었을 듯.”

무대(와 친구들의 방송 코멘트)가 끝나자, 연습생 이름 슬로건을 든 스탠딩 방청객과 탈락한 연습생들이 카메라에 비쳤다.

직후 카메라 프레임에 들어오는 것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아름다운 비주얼의 〈데프아〉 MC, 남소리.

그녀가 무대 중앙에 서서 연습생들의 고유 번호를 소개하고 외쳤다.

- 지금, 후원자 문자 투표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VCR이 화면을 채웠다.

신곡 무대, 〈Youth〉와 〈Young〉의 준비 과정이 담긴 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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