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85화
18. 0X1=LOVESONG(4)
서드림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전에 〈구공드〉 알지, 〈90’s Dreamers〉. 그 서바이벌 제작한 방송국 OTV 쪽에서 계속 꼬투리를 잡아서 KMC를 공격하고 있대.”
우선은 내가 내부에서 소문을 주워듣고 파악한 내용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프로그램 표절이라든가, 스태프들을 일부러 뽑아갔다거나……. 지금은 자잘한 논란 수준인데, 일을 키우려고 하는 기미도 보인다나 봐. 그 문제가 심지어 방송국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회사인 K14엔터테인먼트, 그러니까 매니지먼트까지 흘러가고 있고. 일이 커지면 데뷔 자체가 엎어질 수도 있다는 것 같더라.”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추측하는 미래까지 살짝 주장에 덧대었다.
서드림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이런 내용일 것 같아서 그대로 해준 셈이었다.
그러자 미심쩍은 듯, 그러나 부정적이지는 않은 뉘앙스의 질문이 돌아왔다.
“진짜……?”
“그리고 문자 좀 읽으라고……. 내가 ‘다녀온다’고 6월인가 7월에 분명히 말했다.”
슬쩍 타박했더니 서드림은 바로 입술을 내밀고 시선을 바닥으로 향했다.
손끝으로 바둑알을 훑으며 중얼거리는데 표정이 나빴다.
“사람 마음은 또 언제 변할지 모르는 거잖아……. 난 그런 건 안 믿어.”
“계약서라도 써줘?”
“됐어! 그리고 형은 말을 너무 쉽게 해.”
나야말로 왜 사람들은 쉬운 말에는 진심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만…….
드림이가 말허리를 뎅강 끊어놓아서 나는 또 새로운 주제를 던졌다.
“방송으로 보니까 어때?”
“형 엄청 바보처럼 나오더라.”
“억울하다, 진짜……. 그거 악편이야.”
방송에 이상하게 나온 장면 모으면 논문 한 권은 쓸 수 있을 거다.
‘흠.’
이번에도 대화가 오래 가지 않고 중단되었다.
게다가 서드림은 왜인지 아직도 석연치 않은 얼굴이었다.
팩트에 추리, 진심과 농담까지 동원했건만 움직임이 없는 게 돌부처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되면, 뭐…….’
나는 테이블 밑에 떨어진 바둑알 하나를 찾아내 통에 집어넣으며 서드림에게 질문했다.
“점심은 먹었냐.”
물리적으로라도 움직여 보기로, 전략을 바꾸어서.
* * *
“택시나 버스 타는 건 좀 힘들지?”
“몰라. 타본 적 없어.”
“그, 공공 자전거 대여는 안 되나.”
“부산은 그런 거 없어…….”
서드림은 두 번이나 연이어 불평했지만, 정의헌은 굴하지 않고 대안을 냈다.
“그러면 걷자.”
쉽게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참 쉬운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고, 서드림은 정의헌을 보며 생각했다.
원하는 식당까지는 도보로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렇게 오래 걷기 싫다며 투덜거려 보아도 소용없었다. 정의헌은 ‘그래도 가자’며 손을 흔들었다.
‘하아…….’
속으로 한숨을 푹 쉬면서도 서드림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높은 가을 하늘, 날씨는 더없이 좋았다.
환절기 기온 변화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여 겉옷이 조금 얇은 것을 제외하면, 문제는 없었다.
“추워.”
“이거 벗어줄까.”
“싫어…….”
그러나 상대가 아우터로 입은 라이더 재킷을 펄럭거리며 묻기에 단박에 거절.
기어코 서드림은 약간 쌀쌀한 기분 그대로 걸었다.
사람이 옆에 붙어 있어서 그런지, 운동으로 열이 올라서인지, 점점 적응이 되어서인지 걷다 보면 그렇게 춥지도 않았다.
서드림이 입을 꾹 다물자 걷는 동안에는 정의헌도 귀찮게 말을 붙여오지 않았다.
정의헌은 그저 주변을 둘러보거나 하면서 –어차피 다 같은 한국인데 무엇이 그렇게 신기한 건지 서드림은 알 수 없었다– 동행인의 보폭에 맞춰, 조금 느리게 걸어주는 게 다였다.
‘피곤하다.’
서드림은 양손을 카디건 주머니에 끼워 넣고 생각에 잠겼다.
본가 생활 반년째.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는 날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보다 가까스로 조금 많은 수준이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현저하게 많은 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이 많아지다가도 없어지고 없어지다가도 많아지고는 했다.
그리고 요즘은 생각이 많아지는 주간이었다.
또한 생각을 다스리는 데에는 역시 바둑이 제격이었다.
정확히 따지면, 바둑 말고는 떠오르는 일이 달리 없었다.
그에게는 그것이 가장 익숙한 방식이었으므로.
온라인으로 바둑을 두거나 한참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동네 기원에 방문하는 것.
원장도 단골 손님들도 오래 알던 사람들이라, 낯가림이 심한 서드림도 부담 없이 대국을 할 수 있었다.
‘늘 좋은 사람들이라는 건 아니지만.’
아저씨들 나이가 나이인지라, 묘하게 발언에 조심성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이 무심코 자신을 ‘아까운, 실패한 인재’ 보듯이 볼 때에도 이따금 짜증이 솟구쳤지만.
서드림에게는 그보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과 어울리는 일이 더 스트레스였으므로…….
그래서 그는 견디고, 바둑판에만 온 정신을 쏟았다.
반듯한 사각형과 희고 검은 원만 존재하는 세계에 들어서면 바깥의 시끄러운 소음 따위 들리지 않았다.
집.
집처럼.
바둑은 같은 색의 돌로 에워싼 빈 공간, ‘집’을 더 넓고 많이 보유한 사람이 승리하는 스포츠다.
빈 곳에는 집을 짓는다.
서드림은 여섯 살 적부터 지금까지 수만, 수십만 채의 집을 바둑판 위에 지어가며 살았다.
동네에서는 신동 소리를 들었고 서울로 올라가 ‘바둑 연구생’이 되고 나서는 평범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바둑 연구생은 프로 기사가 되기 위해 모인 바둑 ‘신동’ 청소년들의 모임이었다.
그중에는……. 천재가 너무 많았다.
그들과 경기를 꾸리면 7집 차이로 지기도, 3집 차이로 이기기도, 반 집 차이로 지기도, 1집 반 차이로 이기기도 했다.
아슬아슬하게 지는 날이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날보다 많았다.
‘더 나이 들어서 그만두는 것보다는 낫잖아.’
서드림은 너무 늦지 않게 바둑 연구생 생활을 청산했다.
그런데 너무 빠르게 아이돌이 되었다.
데뷔까지 일 년이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
따라서 그는 여태 바둑을 둘 때의 버릇과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서드림은 오늘날까지도 승부에 집착했고 집중력과 기억력이 뛰어났다.
그렇게 부작용처럼 남았다. 교통사고의 기억은.
‘활동을 중단한 건……. 후회하지. 그렇지만, 할 수가 없었어.’
서드림은 정의헌의 옆얼굴을 슬그머니 올려다보았다.
같은 일을 겪고도 괜찮았던 사람.
같은 일을 겪었지만, 트라우마가 없는 사람.
솔직히 사고당한 사람을 정면에서 보았다고 해도 정의헌이라면 멀쩡할 것 같았다.
‘지금도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은 얼굴이잖아…….’
바둑으로 비유하자면……. 서드림은 이런 사람과 완전히 상극이었다.
서드림의 기풍, 그러니까 ‘경기 스타일’은 온고하게 버티며 집을 지키는 식이었다.
반면 끊임없이 쳐들어오며 공격적으로 돌을 놓아 난전을 유도하는 사람과의 경기에 유독 약했다.
고요함이라고는 없는 돌, 나무판 위의 폭풍.
그 순간순간 싸움에 정신이 팔리면……. 어느 순간 지게 되어 있었다.
“헐. 브레이크 타임이래.”
“……언제까지?”
질문하자, 정의헌은 ‘4시 반’이라고 대답하며 잠긴 식당 문에서 떨어져 나왔다.
서드림은 괜스레 시간 낭비를 한 것 같아 속으로 다소 울컥했지만, 상대는 의연했다.
“바다 보러 가자.”
길을 건너 몇 블록만 가면 해변 모래사장이 있었다.
여름도 아니고 평일인지라, 한산한 그림을 머리에 그려보며 서드림은 망설였다.
그러나 제대로 수락 의사를 전하기도 전에 껑충 앞서가는 정의헌 때문에, 이번에도 뒤를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서드림은 간만에 몇 시간이나 움직여서, 아주 기진맥진한 채로 바닷가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많은 사람이 군데군데 보였다.
“와, 이렇게 보니까…….”
뭍으로 불어오는 찬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정의헌이 말했다.
“……한강 가고 싶다.”
“무슨 바다를 보면서 강에 가고 싶대.”
“좀 다르지, 한강은. 한국 사람의 정신적 고향 같은 거잖아.”
“서울 사람이겠지…….”
서드림에게 한강이라고 하면, 연습생 때나 데뷔 후 형들과 같이 갔던 기억밖에 없었다.
특히 데뷔 초에 안승준 형이나 한이주가 연습이 조금만 힘들면 한강 가고 싶다고 난리를 부려서 몇 번 같이 가준 게 다였다.
대체 그 사람도 많고 소란스럽기만 한 곳이 뭐가 좋은지. 솔직히 서드림은 알 수 없었다.
‘혼자 놀 거면서 꼭 남을 데려가고 싶다는 심리도 모르겠고.’
따라서 이번에도 그는 근처 계단 같은 구조물에 쪼그리고 앉아, 정의헌이 모래사장을 한 바퀴 돌고 오는 모습을 구경할 뿐이었다.
정의헌이 혼자 신나서 신발을 벗고 바짓단까지 바닷물에 적시고 노는 동안.
서드림은 개인 채팅 메시지에서 정의헌이 몇 개월 동안 보낸 메시지를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다 실없는 내용이었지만, 몰아서 읽어보니 묘하게 생생한 느낌이 전해졌다.
서드림이 메시지를 전부 읽고 바닷가의 정의헌을 핸드폰 카메라로 몇 장 찍어 남겼을 때쯤, 정의헌은 돌아와 웃으며 말했다.
“야, 내가 생각해 봤는데 한강도 결국 태평양이랑 이어지잖아. 그러니까 그게 그거 같아.”
“딱히? 그리고 태평양이 아니고 동해야.”
“그래도 저 너머에는 태평양이 있을 거 아니야.”
알 수 없는 소리에 서드림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앉은 자리에서만 보아도 섬들이 점점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서드림에게는 그 너머가 아니라, 오직 섬의 존재만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지. 바다 자주 와?”
아무리 퉁명스럽게 대답해도, 정의헌은 한껏 높은 텐션으로 몇 번이고 다시 말을 걸었다.
“나도 꽤 오랜만에 온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언제 왔어.”
서드림은 잠시 기억을 되짚었다.
최근에는 계속 집안에만 있었고, 외출이라고 해도 기원을 가거나 편의점 정도가 고작이었다.
식사 조달은 배달이나 냉동 음식을 택배로 받아 데워먹는 것으로 해결.
외출 자체보다는 대중교통이나 택시 등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힘들었다.
그렇게 좁고, 낯선 사람과 가까이 부대끼는 공간에 갇히면 숨부터 막혀왔다.
부산으로 내려오는 기차도 몇 번이나 중간에 내려 다시 예매했을 정도니까…….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해수욕장에 온 것은 사고가 있기 전이었다.
“작년에 일본 갔다가 휴가 받았을 때.”
“3월 아니야? 한참 됐네.”
“그때 한이주가 일본에서 회 맛있는 거 못 먹었다고 부산 가자고 해서…….”
한이주는 아홉 명이나 되는 멤버 중 유일하게 서드림과 동갑인 멤버였다.
엄밀히 말해 성격이 맞는 구석은 하나도 없었지만, 어떻게든 계속 붙어 있다 보니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떄 한이주가 인터넷에서 찾아온 가게가 지금 브레이크 타임인 그곳이었다.
서드림은 그때 한이주랑 갔다가 좋아서 기억하고, 이번에 정의헌과 찾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걔도 연락 자주 했었는데.’
한이주는 정의헌보다도 자주 메시지를 보냈는데, 차일피일 미루거나 잊어버려서 대부분은 답을 못했다.
핸드폰에 쌓여 있던, 조금 전에 대충 훑어 읽었던 수신 메시지가 생각나자 문득.
“형, 그런데…….”
문득 서드림은, 옆에 와 앉는 정의헌에게 묻게 되었다.
“한이주 요즘 어떻게 지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