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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84화 (84/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84화

18. 0X1=LOVESONG(3)

신인 아이돌 사생팬 택시 사고.

사람들은 사건을 그렇게 요약해 입방아에 올렸다.

당시 내가 보고 겪은 것과 진술서, 뉴스 기사 따위에 의존해 사건을 객관적으로 짚어보자면…….

첫째.

그날 그때 스테리나인은 인천에서 지역 축제 행사에 참여해 무대에 서고 숙소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둘째.

사고가 일어난 당시는 한겨울 새벽으로 오전에 눈이 내려 길이 얼어 있었다.

셋째.

스테리나인은 보통 장거리 이동 시 승합차 두 대에 인원을 나누어 타고, 매니저가 운전한다.

그런데 그날 서드림은 편두통 증세로, 나는 감기 기운으로 귀갓길에 병원이나 약국에 방문하기 위해 둘만 따로 영상팀 직원이 모는 소형차를 타게 되었다.

넷째.

이 사건에 얽힌 사생팬, 그러니까 스토커 두 명은 각각 중국인과 대만인으로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외국인이었다.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스테리나인 및 다른 관심 있는 아이돌들을 보기 위해 한국에 방문했다.

다섯째.

다시 말해 이 사람들에게는, 다른 스토커들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가 달리 없었다.

그래서 무릇 스토커라면 알고 있을 숙소 주소조차 알지 못했다.

여섯째.

인천과 우리 회사까지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인천에서 택시를 타고 스테리나인 뒤를 쫓기로 결정했다.

숙소가 회사와 걸어서도 오갈 수 있을 만큼 아주 가깝다는 것은, 멤버들이 그동안 말한 내용에서 유추했을 것이다.

일곱째.

나와 서드림의 소형차 탑승은 갑자기 결정되었다.

스토커들은 같이 가지 않고 옆길로 빠지는 차를 보며 혼란에 빠졌다.

여덟째.

두 명 중 한 명의 최애가 서드림이기도 했고, 그들은 돌발 상황을 기꺼워했다.

소형차를 따라가면 ‘자신들만 볼 수 있는 장면’을 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듯했다.

아홉째.

그러나 급히 방향을 바꾸려니 짧은 한국어 때문에 택시 기사와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았다.

승객이 외국인 여자들에, 중국어 성조가 세게 들리는 느낌이 있다 보니 택시 기사도 그만 언성을 높이며 흥분하고 말았다.

열.

그렇게 택시 기사는 집중력을 잃고, 운전의 컨트롤을 놓쳤다.

열하나.

택시가 뒤에서 우리 차를 들이박았다.

열둘.

택시 뒤로 쫓아오던 차도 하필 음주운전 차량이라……. 반응이 늦어 이중 추돌까지 발생.

한마디로 여러 가지 우연이 겹쳐 가장 나쁜 형태로 빚어진 게 그 사건이었다.

‘기구하군…….’

결과만 따지면 사실 그렇게 큰 사고는 아니었다.

사고 발생 위치가 고속도로라든가 미친 듯이 속도를 내는 큰길은 아니었기 때문에.

유리창이 깨진다거나, 차가 찌그러진다거나, 머리가 깨져 피가 막 흐른다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는 의미다.

당장 나만 해도 사고 후 병원에서 검사했을 때에도 모든 상태 정상으로 결과가 나왔고, 후유증도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렇지만 서드림은 보았다고 했다.

코팅이 되지 않은 택시 정면 창문을 통해……. 스토커의 얼굴을.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어.’

그날 밤 서드림은 병원 의자에 앉아, 덜덜 떨며 중얼거렸다.

그 사람들은 웃지 않았고 뒤틀리지 않았고 평범했다.

아주 평범한 팬처럼 사과했다.

서드림은 그 평범함이 무섭다고 말했다.

사고 후 몇 주 동안 녀석은 몇 번의 공황 발작을 일으키더니, 휴식을 취하라는 의사의 소견을 받고 활동을 중단했다.

공지에서는 ‘심리적 불안 증세와 컨디션 난조’라고 휴식 사유를 모호하게 표현했지만, 다들 교통사고가 원인임을 알고 있었다.

– 드림아 푹 쉬고 와 건강해져서 보자 사랑해

– 힘들었을 텐데 정말 고생 많았어 우리 막내 꼭 웃는 얼굴로 우리 다시 만나기야

– 사생은 팬 아님 스토커고 안티다 모르면 외워 제발 ㅋㅋㅋㅋ

– 절대 미안해하지 마 네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니까 ㅠ 많이 보고 싶겠지만 기다릴게 잘 회복해서 돌아와 드림아 ㅠㅠ

– 아 진짜 힘들다 잘못한 건 그 (험한 말)들인데 왜 우리 애가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지금이 10월이니까 단순 계산으로는 8개월 정도 지난 셈이었다. 짧다고는 할 수 없는 기간.

내가 기억하기로 본래 서드림은 〈데프아〉 이후 그룹 활동에 복귀했다.

김지상과 안승준이 개인 활동으로 빠지고, 김지상이 탈퇴하기 직전.

‘사실 드림이가 왜 돌아오기로 결심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의외로 그룹 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나서는 언제 트러블이 있었냐는 듯 잘 적응했지만…….

캐묻기 어려운 문제였고, 본인이 주제가 나올 기미라도 보이면 입을 다물기도 했으므로.

회사에서 드림이나 그 가족들에게 꾸준히 연락을 취해 열심히 설득했다고만 들었다.

‘괜찮겠지?’

나로서는 이 연락이 서드림의 상태 악화 시그널이 부디 아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드림이가 더 좋아졌기를, 과거보다 더 빠르고 수월하게 회복하기를 하늘에 빌며 나는 기차에서 내렸다.

‘최근에 부산 언제 왔더라. 〈데프아〉 게릴라 버스킹 때?’

그때는 단체 버스를 타고 이동했으니, 기차역으로 도착한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모자와 마스크를 단단히 점검하며 나는 서드림의 누나가 알려준 장소로 찾아갔다.

역에서 택시를 잡아 타고 삼십 분쯤 이동해 도착한……. 사 층쯤 되어 보이는 빌라 건물.

띵동.

메시지에 적힌 호수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는데도 대답이 없었다.

시간을 두고 다시 벨을 누르고, 문을 똑똑 두드려 봐도 묵묵부답.

‘음…….’

그렇게 오 분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계단에 앉아 있던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집에 없는 거 아니야?’

실내에서 인기척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일부러 숨어 없는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그 느낌…….

즉시 서드림에게 전화하고, 부재중이라고 해서 ‘지금 어디 있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십 분이 더 지나서……. 몹시 간만에 답장이 왔다.

[스테리나인 서드림: 깜빡했어]

[스테리나인 서드림: (위치 정보를 전송했습니다)]

서드림이 보낸 것은 현 위치에서 십오 분은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건물 주소였다.

‘뭘 이렇게 오라 가라 해’ 하고 반항심도 순간 들었지만, 어떻게든 잘 누그러뜨리고 나는 빌라를 나섰다.

그래서 이렇게 멀고 먼 여정의 끝, 서드림이 어디에서 발견되었냐고 하면…….

[가야 기원]

낡아서 색이 바랜 간판이 달린, 붉은색 벽돌로 외벽을 시공한 건물의 꼭대기 층이었다.

실내는 겉에서 보이는 것만큼이나 먼지투성이에,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대충 청소해 놓은 모습을 자랑했다.

기원은……. 나도 직접 찾아오는 건 처음인데, 바둑을 두는 곳이라고 한다.

PC방이나 보드게임 카페처럼 엔터테인먼트 공간인 셈.

‘동네에 같이 바둑 둘 사람은 있는 건가?’

서드림은 어릴 때부터 바둑 프로 기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고, 여러 사정으로 진로를 바꾸어 아이돌이 되었다.

바둑은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했다고 하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 기간이 훨씬 짧은 녀석이다.

물론 길을 틀었다고 해서 드림이가 바둑이라는 분야에서 아예 손을 뗀 것은 아니다. 지금 나를 기원으로 불렀듯이…….

스테리나인이 해체할 때까지 서드림은 바둑을 줄곧 취미로 즐기고는 했다.

가끔 온라인으로 인공지능과 바둑을 둔다거나 경기 소식을 찾아보는 식으로.

‘입장하는 데 6천 원…….’

계단에서부터 나던 짤그락대는 소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더 크게 울렸다.

문을 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주 보는 형태로 쌍을 지은 의자와 가운데에 둔 테이블, 바둑을 두는 사람들.

테이블 사이에는 군데군데 이름 모를 식물 화분이, 벽 근처에는 옷걸이나 바둑 잡지가 꽂힌 책장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서드림은 맨 끝 창가 자리에 혼자 앉아서 흰 돌과 검은 돌로 꽉 찬 바둑판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툭툭.

나는 바둑판 끄트머리를 손끝으로 두드렸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놀라는 애라서 (몇몇 멤버들을 대할 때와 달리) 막 대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조심스레 접근했는데도 서드림은 어깨를 움찔 떨며 고개를 천천히 올렸다.

“잘 지냈냐.”

들고 온 크로스백을 빈 의자에 던져놓고, 나는 드림이 맞은편에 앉으며 인사했다.

둘 다 시꺼멓게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이 아이돌보다는 범죄자들의 중상모략 장면 같았다.

나는 마스크로 얼굴을 다 가리고 서드림은 안경으로 눈에 그늘을 만들어 어두운 오오라가 막상막하였다.

‘관리는 꾸준히 한 것 같은데.’

면도가 잘되어 말끔한 얼굴이나 단정한 머리카락, 눈썹 등은 아무래도 ‘살이 안 붙는 체질’ 영향권 밖일 테니까 말이다.

전문가의 관리가 없으니 연예인 같은 느낌은 꽤 흐려졌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낯빛이 괜찮기도 했고…….

집에 틀어박힌 만큼 피부가 하얘지고, 살이 빠져 손목이 얇아진 것 등 변화도 보였다. 볼살이 말랑말랑하게 더 붙었다든가.

‘……아니, 이건 애가 어려졌으니까 그런 거구나.’

그래, 지금 서드림은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어렸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나이……. 고작 스무 살.

어느 모로 봐도 차분하게 공부나 잘할 것 같은 안경잡이 고등학생 같은 외양이었다.

복기를 중단한 건지 마친 건지, 서드림은 그제야 바둑판에서 눈을 떼고 내게 물었다.

“무슨 일로 왔어.”

“톡 좀 읽어라. 내가 A부터 Z까지 다 말했다.”

슬쩍 핀잔하고 ‘서자람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재방송을 해주니까, 서드림의 눈 밑이 서서히 붉어졌다.

“누나는 뭐 그런 걸 가지고…….”

내가 한달음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온 것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서 누나가 자기 이야기한 것은 민망해한다.

오냐오냐 키웠더니 감사할 줄 모르는 아이가 되었지만, 귀여우니까 봐주기로 했다.

“무슨 뒷담을 그렇게 했는지 들어나 보자.”

서드림을 바둑알을 분류해 다시 통에 집어넣는 것을 한 손으로 도우며 내가 운을 떼었다.

“누나가 말했다면서.”

“내용은 안 알려주셨어.”

“별 이야기 안 했어…….”

말해달라고 귀찮게 굴기를 몇 분, 서드림은 기어코 피곤한 눈을 하고 진실을 고백했다.

“진짜로 별말 안 했어. 나는 그냥…….”

“응.”

“그냥 의헌이 형이 순위 잘 받는 거 보고……. 저러다가 거기서 데뷔하겠다 싶어가지고…….”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가는 듯 작아졌다.

“데뷔 안 했으면 해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누나한테 말한 게 다야…….”

……이러면 안 되는데 말하는 내용이 듣다 보니 너무 하찮아서 역시나 귀여웠다.

드림이가 혼자 생각하고 말하는 사이에 나 혼자 바둑판에 둔 오목을 보여주자, 나를 째려보는 것까지.

진지한 대화 중에도 자꾸 웃음이 나고 장난을 치고 싶은 게, 내가 드림이를 굉장히 반가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럴 때가 아닌데 얼굴 보니까 너무 좋네…….’

표정을 관리하는 대신 나는 마스크를 고쳐 써 입가를 가렸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우선 제일 먼저 해주어야 하는 말은…….

“나 데뷔 안 할 수도 있어.”

“……어?”

“아니, 안 해. 이대로 가면.”

이제까지의 진행 상황 보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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