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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83화 (83/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83화

18. 0X1=LOVESONG(2)

처음에는 거절했다.

“예? 싫어요. 저 담배 연기 근거리에서 마시면 죽어요.”

“누가 가르친 말본새야, 이거. 편의점 갈 거니까 따라오기나 해.”

황정현은 아이돌로 데뷔하고도 금연을 못 한 골초 중의 골초다.

하루 이틀 단위로 한 개비만 피우니까 ‘라이트 오브 라이트 스모커’라는데, 비흡연자 입장에서 보면 솔직히 도긴개긴이었다.

못 이기는 척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더니 형은 편의점 반대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흡연 구역에서 사진 찍히면 손해배상 청구하겠다’고 내가 귀찮게 굴어도 무시해 가며, 형이 나를 데려간 곳은 동네의 무인 카페.

직원 없이 자판기 같은 기계만 벽면에 놓여 있었고 테이블은 둘 있었는데 전부 비어 있었다.

‘바깥은……. 불투명하게 보이는군.’

밖에서도 안이 그렇게 보일 테고, 딱히 따라오거나 기웃거리는 사람도 지금은 없는 듯했다.

내가 주변을 살피는 사이 정현이 형은 안쪽 테이블에 겉옷을 벗어두고 기계에서 아메리카노를 두 잔 뽑아 손짓했다.

“누구 있어?”

“아뇨, 없네요.”

나는 창밖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저었다.

미행은 없었고 이 상황에서 피곤한 건 얼굴을 알아보는 일반인인데, 카페가 외진 위치라 경계를 누그러뜨려도 될 것 같았다.

내 몫의 커피를 받아 양손으로 감싸 잡자 정현이 형이 초조하게 운을 떼었다.

“이것만 마시고 금방 들어가자. 별 이야기는 아니고…….”

형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고 말을 이었다.

“네가 호원이랑 잘 지내주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굳이 따로 나와서 대화를 시도한 것을 보면 채호원이 주제일 것 같기는 했다.

다만 내용이 이럴 줄은 몰랐다. 기껏해야 근황이나 물을 줄 알았지.

“그렇게 안 보였을 수도 있지만, 내가 많이 아끼는 애야……. 호원이.”

“좋은 애죠~”

나는 대답하며, 내가 접한 채호원의 면면을 조용히 회상했다.

음악 방송 활동했을 때 선후배로서 인사했을 때부터 〈데프아〉 첫 촬영 때 만남, 그리고 최근 합숙에서 룸메이트가 되었던 것까지.

‘지금까지 연습하면서 제일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다른 연습생들과 새벽까지 연습했을 때요. 어렵던 노래나 동작이 익숙해지는 게 너무 좋았어요.’

지난주 순위 발표식 사이사이에는 마지막 합숙 전 촬영한 ‘36인 비하인드 토크쇼’ 콘텐츠가 특별 편성되었다.

여섯 팀이 따로 모여 앉은 촬영장, MC 남소리가 질문하자 채호원은 수줍게 대답하면서 웃었다.

……좋은 애다. 열심히 하는 애고.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지만, 그래도 나는 열심히 하는 사람을 좋아했다.

“아무튼 남은 시간 동안 잘 좀 부탁할게.”

“방송 닷새 뒤면 끝나지만요…….”

파이널 생방송이 이번 주 금요일이었다. 평소 방송 시각보다 한 시간 당겨진 오후 9시부터 시작한단다.

내가 중얼거리자 황정현은 그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영수증을 접었다가 손톱으로 누르고 펴면서.

한참을 망설인 끝에 형이 꺼내놓은 말은, 멋쩍은 자백이었다.

“솔직히 내가 좋은 리더였던 건 아니거든.”

“음, 호원이는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던데요.”

“걔는……. 걔가 안 그렇게 생겨서 좀 순진한 게 있어.”

그런가?

“찔리는 게 있어서 내가 욱했나 봐.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실수했어.”

“고민하지 말고 그냥 사과하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그렇지, 음. 그래야지.”

“나중에 하지 말고 오늘 해요. 제가 지켜봅니다.”

농담하는 투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를 잠시.

형이 빈 종이컵의 겉 부분을 만지작거리다가 넌지시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너는 왜 방송 같은 데 나온 거냐.”

“방송이면, 〈데프아〉요?”

“어, 궁금하잖아. 너 정도 책임감이면……. 그룹을 떠나 활동하는 게 이상하다고나 할까.”

정현이 형은 의연하게 말했지만, 말투에서 말할지 말지 오래 고민한 티가 났다.

나는 가볍게 웃었다.

김지상의 탈퇴를 막기 위해서라거나, 미래를 보고 왔다든가, 데뷔 무산을 알고 있다거나, 그런 말은 여기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말로 포장해 돌려주었다.

“글쎄요, 뭐……. 저도 막막했던 거겠죠.”

“…….”

“과장 조금 붙이면,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모든 방법을 다 써봤거든요.”

이미 데뷔한 그룹을 두고 오디션 서바이벌 출연?

틀림없이 편법이다. 편법이고 일시적인 미봉지책일 뿐이다.

그래도 선택했다.

훌륭한 프로듀서, 자체 제작, 방송 출연, 콘텐츠, 소통, 행사, 챌린지, 다 해봤으니까.

성공은 어차피 어렵고 샛길로 가면 언젠가 탈이 난다.

안다. 그래도.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고 후회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그래도, 멈춰 있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진지함을 덜어낸 어조로 말했다.

언젠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치르면 된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데프아〉에서 좋은 성적을 꾸준히 유지한 것은 사실이고, 이는 틀림없는 성과였다.

그리고 인지도가 높아지면……. 내 의사대로 운용할 수 있는 자본 규모에 차이가 생긴다.

‘이름값이 생길수록, 문제가 발생해도 더 폭넓고 공격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돼.’

형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황정현이 조그맣게 헛기침하며 말했다.

“크흠……. 그렇구나. 너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

“없지는 않아요.”

“좋겠네, 너희 멤버들은. 리더가 좋은 사람이라.”

비꼬는 말 같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이번에도 웃어넘겼다.

칭찬은 좋았지만, 왠지 외국에서 개고생하고 입국한 이영하의 존재가 양심을 아프게 스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그쯤 빈 종이컵 두 개를 수거함에 넣고 자리를 정리하는데, 정현이 형이 내 등 뒤에서 말했다.

“의헌아, 네 핸드폰으로 전화 온다.”

“누구요?”

“그……. 매니저팀이라는데? 노민정 씨.”

한달음에 달려와 핸드폰을 집어 드니, 화면에 스테리나인 매니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뭐지?’

정현이 형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회사에서 내게 이렇게 갑자기 전화할 이유가 딱히 없었으니까.

“네, 민정 누나.”

노민정 매니저는 짧은 인사 다음 바로 본론을 말했다.

- 의헌아, 네 연락처를 묻는 분이 계셔서.

“……예?”

- 혹시 알려드려도 될까? 너와 이야기하고 싶으신가 봐.

그리고 스피커 너머로, 내가 오랜 시간 기다렸으면서도 기대하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아니, 기대하지 않은 게 아니다. 차마 기대할 수 없었다.

“그분이 누구신데요?”

- 서자람 씨라고……. 드림이네 친누나셔.

서드림.

이름을 듣자마자 글자 그대로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드림이는 스테리나인의 막내다.

2016년 2월,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고향으로 내려간.

* * *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부터 부산행 기차를 탔다.

- 이렇게 갑작스럽게 부탁드려서 죄송해요. 연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드림이랑……. 대화를 조금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영상 통화든 음성이든, 아니면 문자라도 괜찮으니까요. 시간에 여유가 되신다면…….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전화 때문이었다.

매니저에게 내가 연락하겠다고 전화번호를 받은 뒤, 나는 모임을 일찍 파하고 서자람과 유선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누나 이야기는 서드림에게도 많이 들었고, 오며 가며 몇 번 얼굴을 보기도 했으므로 대화가 어렵지는 않았다.

‘우리 가족이 지금은 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데……. 그전까지 나랑 누나는 같이 살았어. 수도권에 사는 게 누나밖에 없어서……. 중학생 때부터 누나 집에 얹혀살았거든. 나이 차도 많이 나서 누나가 거의 엄마처럼 돌봐줬어.’

남매가 열 살쯤 터울이 진다고 하니까, 내게도 서자람은 한참 연상인 셈.

하지만 그분은 아주 깍듯한 태도로 내게 간청해왔다.

지금 서드림은 아버지와 함께 부산에 있는데, 몇 개월째 연락을 하거나 주말에 찾아가도 반응이 활발하지 않았단다.

집은 물론 자기 방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고, 온종일 컴퓨터를 들여다보거나 멍하니 벽을 보고 누워있기만 한다고.

-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제가 키워서 원래도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그 애가 정말 그러다가……. 아, 아니에요. 제가 정말 불안해서…….

‘진정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다 할게요. 말씀해 주세요.’

서자람은 말끝을 흐렸지만, 나는 하지 않은 말을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다.

‘동생이 정말 그러다가 죽어버릴 것 같아서…….’

걱정하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승낙 의사를 전하자, 그분은 깊은 심호흡 끝에 천천히 ‘내게’ 연락한 진짜 이유를 말해주었다.

- 며칠 전에 전화했을 때 드림이가 의헌 씨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무슨 이야기였는데요?’

- 그, 방송 나오시는 거요. 약간……. 의헌 씨와 대화해 보고 싶다는 식으로 걔가 말을 해서.

서자람은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사정을 전하는 태도를 보면……. 적어도 서드림이 내 칭찬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엄청 마이너스한 이야기를 했나 보군.’

나는 전화로 말을 나누는 동시에 황정현의 핸드폰으로 달력을 확인했다.

목요일은 생방송 리허설이고, 금요일은 파이널 생방송.

그전에 하루 추가로 같이 연습하자고 팀원들과 합의했으니까…….

딱 하루, 여유 시간이 있었다.

‘지금 드림이는 부산에 있는 거 맞죠.’

- 아, 네. 그렇죠.

‘혹시 주소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 엇…….

‘드림이한테도 물어볼 건데, 얘가 문자에는 답을 잘 안 해서요.’

내가 그렇게 덧붙이자 서자람은 전화를 마친 뒤 문자로 주소를 찍어주었다.

이후 기차표를 끊어 출발과 도착 예정 시각을 서드림에게 문자로 예고했지만, 이쪽은 예상대로 답신이 없었다.

시간 지나서 보니까 ‘읽음’ 표시는 되어 있기에 나는 더 재촉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안 만나주면 광안리에서 혼자 대하나 구워 먹고 집 가야지.’

대충 그런 각오로 결정한 당일치기 부산 여행.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빠르게 시야를 훑고 지나가는 풍경에 정신이 조금 멍해졌다.

‘……서드림.’

생각이 많아졌다.

사실 서드림은 일찍 탈퇴한 김지상이나, 탈퇴하고 연예계 활동을 아예 접은 천진섭에 비해서는 얼굴이 익은 녀석이다.

일 년의 활동 중단 후에는 결국 복귀했고……. 해체 당시까지 그룹에 함께 있었던 멤버니까.

‘그렇지만 이 시기에 애가 어떻게 지냈는지는 전혀 몰라.’

연락은 꾸준히 시도했는데, 드림이가 전화는 안 받고 메시지는 읽기만 해서 말이다.

일대일 톡방은 8월 말에 내가 생일을 축하했을 때 ‘고마워’라고 답이 온 것을 빼고는 발신 메시지만 가득해 노랑 일색이었다.

나도 근황 보고 말고는 할 말도 딱히 없어서, 그냥 일기장 내지 메모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생각 날 때마다 아무 말이나 보내고 있다.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이라서.’

서드림은 ‘어떤 사건’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고 고향 집 자기 방에 틀어박혔다.

모두 그 애의 컨디션 난조와 정신적 충격을 이해했다. 멤버들도, 회사 직원들도, 팬들마저도.

누구든 멋대로 드림이의 손을 잡고 끌고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

나는 기차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서드림이 활동을 중단한 까닭.

그때 일이 머릿속에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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