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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82화 (82/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82화

18. 0X1=LOVESONG(1)

솔직히 듣고 나서 ‘그래서 어쩌라고?’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어디 가서 이야기해 본 적 없는 것 같은 말이라, 나도 조금 생소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게다가 아무래도 이런 말은 멤버 동생들 앞에서는 할 수 없으니까.

“나는 만에 하나 데뷔를 못하거나, 데뷔하더라도 활동을 다 하고 나서 스테리나인으로 돌아가고 싶고, 이 생각은 안 변해. 금전적인 문제나 마케팅이나 이미지, 비전, 이런 거 다 떠나서 내가 그러고 싶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바라는 것.

미래를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누가 시켜서도, 누군가를 위해서도 아닌 목적.

내 의지. 내 욕심. 그 이글거리는 마음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 성격이 살짝……. 한번 정 붙이면 오래 가고, 뭘 해도 생각이 잘 안 바뀌는 성격이라서고.”

내 입으로 직접 말하려니까 민망하지만…….

예컨대 식당도 하나 마음에 들면 단골이 되고, 매일 걷는 길만 걷고, 친구 깊게 사귀고, 물건 오래 쓰고, 잘 안 버리고.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일 뿐이었다. 다른 이유가 있더라도 그 성질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내가 팀 활동을 하겠다는 이유는 결국 그런 거야. 내가 좀 고집이 있어서.”

다시 말해, 나도 어느 정도는 유난스러운 구석이 있는 것이다.

“결론이 그러니까……. 너는 내가 스픽스 활동을 더 해야 된다는 거야?”

“그런 느낌으로 들리나. 그건 아니고, 음.”

채호원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내게 질문해서, 나는 잠시 말을 가다듬었다.

“내 마음은 결국 팀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애착이거든.”

“잘 모르겠어.”

“으음, 말하자면……. 팀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과 팀원을 아끼는 마음은 또 다르다고.”

아홉 명으로 시작하여 일곱 명으로 끝난 스테리나인.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멤버들을 원망했냐고 하면, 글쎄. 나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다.

활동한 기간 동안 멤버 변동은 원래 많았다.

3년 차, 〈데프아〉 전 공황 장애로 활동을 중단한 막내 서드림, 〈데프아〉 출연으로 인해 그룹 활동을 중단했던 김지상과 안승준, 이후 김지상의 탈퇴, 안승준의 개인 활동으로 인한 그룹 미복귀, 서드림과 안승준의 복귀, 마지막으로 천진섭의 탈퇴까지.

안승준이 그룹에 돌아왔을 때에는 더없이 기뻤으나, 다른 활동 중단이나 탈퇴가 화가 날 일은 아니었다.

‘김지상 일이라면 난처하고 조금 서운했고, 무엇보다 걱정이 많았지만.’

스캔들이나 범죄 사건에 얽힌 것도 아니고, 개인 사정이라면 얼마든 이해할 수 있었다.

열심히 살다가 불행하게 고꾸라졌는데, 일어나서 달리라고 채찍질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김지상의 탈퇴 일도 연락을 끊은 게 문제였지 탈퇴 자체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결론은 단순했다.

“팀을 좋아하지만, 멤버들이 고민 끝에 한 결정이라면 나는 지지할 수 있어.”

그게 더 잘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면 멀리서도 행복을 빌어주겠다.

“별로 애들 인생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도 않고…….”

내가 그쯤 말하니까, 중간에서 듣고만 있던 황정현이 입을 열었다.

“그래, 호원아. 나도 주제에 충고라는 것을 조금 해보자면. 해도 되지?”

“네.”

“너는 아직 어리니까, 하고 싶은 것도 좀 해도 돼.”

황정현의 두 눈은 채호원에게 고정된 채였다.

조금 전까지 빈정거리고 핀잔했던 태도와 달리 따스한 말투와 눈빛이었다.

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다면적인 면모와 이중성에 관해 생각하며, 잠자코 두 사람에게 남은 대화를 넘겼다.

“어차피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직업이지 않냐. 무슨 선택을 해도 욕할 사람은 해. 그러니까 도덕적으로 틀린 일이 아니라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맞고, 네가 나중에 후회 안 할 일을 하는 게 맞아.”

“……괜찮을까요?”

채호원이 조심스레 질문했다.

솔직히 여성도 아니고 남성 솔로로 성공할 가능성은 그룹보다 한참 낮다.

하지만 〈데프아〉라는 특수 상황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보면 〈데프아〉는 이전 생에도 남성 솔로 아이돌의 흥행 가능성을 열었다.

대중적인 성공까지는 아니어도, 팬덤을 구축할 수는 있을 것이다. ‘〈데프아〉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고 하면 대개 인정할 테니까.

즉 정현이 형의 충고는 그렇게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었다.

“네가 얼마나 운이 좋고……. 잘하느냐에 달려 있겠지.”

형은 대답을 그렇게 정리했다.

……열심히 하라는 말은 없었다.

* * *

“네 생각이 어떻다고 멤버들한테 좀 더 솔직하게 얘기를 해봐.”

그날 저녁, TV에 이튜브를 연결해 같이 영상이나 보며 떠들고 밥을 먹고……. 문득 발생한 여유 시간.

나는 조용히 싱크대에서 플라스틱 컵과 용기를 헹구는 채호원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황정현이 TV가 말썽이라며 혼자 거실에 달라붙어 기계를 만지고 있을 때쯤이었다.

“그래야 멤버들이 생각을 바꾸거나, 반응을 보고 네가 생각을 하나로 굳히거나 할걸.”

사실 채호원의 진술만 들어서는 상황이 어떠한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그쪽 멤버들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단편으로 전해 들었을 뿐이니 전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스픽스 멤버들이 악의가 없었을 수도 있고.’

그리고 채호원도 무조건 자기 편을 들어주기를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녀석도 감정적인 지지보다는 더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나는 딱 한마디, 스픽스 선배님들 편에 서서 채호원에게 조언했다.

“네가 연락 끊고 잠수 타지만 않으면 돼.”

“……?”

채호원은 이해를 못 했다는 눈빛이었지만, 난 대답 대신 사연 많은 엄지나 척 들어주고 말았다.

“그리고 아직 모르는 거기도 하고.”

“뭐를?”

“우리 이번 투표 정원이 세 명이었어. 이제 파이널은 한 명이고. 제도가 바뀌니까 결과도 달라질지도 몰라.”

불현듯 몇 가지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채호원과 잠시나마 같은 그룹으로 묶이는 것과 〈데프아〉 파이널 후 그룹으로 묶였는데 그중에 채호원이 없는 것.

짤막하게 내가 파이널에서 탈락하는 모습과 둘 다 최종 데뷔 그룹에 없는 미래까지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의 일도.

‘데뷔 무산.’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 마지막 회를 앞둔 지금은 아예 뉴스 기사마저 스멀스멀 업로드되고 있었다.

OTV 측에서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이르게 ‘표절 논란’을 물 위로 끌고 올라왔다.

그야말로 일촉즉발. 빌드업이 다 된다면 이 이슈는 곧바로 KMC의 비리와 맞물려 터질 것이다.

‘무엇이 옳은 일인가.’

데뷔도 전에 그룹이 해체한다면 말이다.

사고 흐름을 꼬지 않기 위해……. 다른 가능성은 일단 배제하기로 하고.

‘소송에 판결에 각 소속사 합의까지 얼마나 걸렸더라?’

아무리 시간을 단축한다고 해도 예상 소요 시간은 수개월에서 반년.

어느 쪽이든 참가한 연습생들은 모두 마음고생을 한 번씩은 겪게 되는 셈이다.

TOP10으로 데뷔를 약속받은 승자들은 꿈이 좌절되는 경험을 할 테고, 탈락자들에게는 탈락 자체가 쓴맛이니까.

‘따지자면 시간 낭비를 더 하는 것은 승자 쪽이지.’

물론 이쪽은 금전적인 보상 같은 것을 받을 수도 있고, 인기도 탈락자보다 더 누리겠다만.

데뷔를 준비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팬덤의 마음은 식을 수밖에 없다.

엄밀히 말해 비슷한 인기라면 사실 파이널에서 떨어지는 것이 누구든 효율적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나야말로 너무 순위가 높게 나오는 중 아닌가?’

하지만 팬 많은 게 싫다는 생각도 이상하니까, 받아들일 것은 적당히 받아들이기로 하고.

나는 생각을 조금 더 길게 늘어뜨렸다.

무엇이 이 연습생들에게, 그리고 채호원에게 나은 결말인지에 관한 고민이었다.

‘이런 고민도 웃기네.’

이러나저러나 해도 나는 채호원이 보다 더 좋은 상황에 놓이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묘한 부채감일 수도 있고, 그냥 정일 수도 있었다. 둘 다일 가능성도 없지 않았고.

“야, 호원아.”

나는 힐끔 황정현에게 눈짓으로 ‘둘이 대화 좀 하겠다’고 신호한 뒤, 채호원을 다시 불렀다.

테이크아웃 컵을 분리수거하던 녀석이 나를 휙 돌아보았다.

첫 합숙 때 같은 팀이 되었을 때에는 머리가 묶일 정도로 길었는데, 녀석은 저번 합숙에 들어 스타일링을 다시 했다.

여전히 어깨에 닿을 듯한 긴 길이지만 베이지색에서 더 짙은 연갈색이 되었고, 굵은 컬을 넣어 레이어드컷으로 잘랐다.

그러나 느낌 자체는 많이 변하지 않았다.

처음 말을 섞었을 때와 지금. 과거와 현재. 변하지 않은 것과 변한 것…….

왜냐고 묻는 녀석에게 내가 대답했다.

“뜬금없는 말인데……. 나 스나 데뷔할 때쯤에는 성격 되게 안 좋았다.”

“……지금보다 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들어, 인마.”

나는 부엌 싱크대 바로 뒤편 식탁에 딸린 의자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데뷔 전에는 사람 자체가 신경질적이고 화가 많아서 이상했고, 나중에 일부러 성격을 바꾸었다는 말.

하지만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변화하지는 않았다. 당연하게도.

“그때 나는 정말 여유가 없었거든.”

“…….”

“너무 잘되고 싶어서 그랬어. 내가 너무……. 너무 그룹을 좋아해서.”

채호원은 말없이 의자를 끌어 앉았다. 정확히 내 맞은편이었다.

“그런데 너도 알잖아. 그런 마음만으로 되는 세계는 아니라는 거.”

“응.”

“아무리 애써도 좋은 결과가 안 나오는 거야. 그래서 그냥……. 너무 초조해하지 않기로 했어.”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는 삶을 대하는 방침을 새로이 정립하였다.

남을 미워하지 않고, 나를 미워하지 않고도 버티는 법을 있는 힘껏 익혔다.

‘여러 방법으로.’

크든 작든 당장 눈앞에 놓인 일부터 성실히 소화하는 것.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것.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

작은 일에 만족하고 또 욕심을 덜 부리는 것.

다짐을 마음에 새기고 체화하자, 어느 순간 나는 고요함을 느꼈다.

천천히 평온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또 노력할 수 있게 되더라.”

나는 식탁 위를 손톱으로 톡톡 두드리며 작게 웃었다.

“……너무 미리 걱정하지 마. 너 이렇게 말해도 막상 뽑히면 열심히 할 거 안다.”

적어도 채호원은 뽑은 사람 마음을 무시할 놈은 아니었으니까.

채호원은 무슨 생각인지 모를 무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고, 아무런 답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냥 녀석을 내버려 두고 먼저 일어났다.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게 맞을 것 같았다.

“형, 다 됐어요?”

그리고 나는 부엌에서 거실로 자리를 옮겨 소파에 앉은 황정현에게 말을 걸었다.

한참 TV와 셋톱박스, 노트북을 가지고 씨름을 하더니 이제야 평화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형은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뜬구름 잡는 소리로 응수했다.

“야, 의헌아. 우리 잠깐만 나갔다 오자.”

이렇게까지 덧붙여가면서.

“호원이 두고 둘이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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