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80화
17. DDARA(4)
사실 나와 채호원이 이야기를 나누게 된 시간대는 밤도 아니고 새벽이었다.
더 정확히 하자면, 자정에 맞추어 다 같이 안승준에게 서프라이즈 생일 축하를 해주고 방에 들어온 뒤 시도한 대화였다.
‘안승준 생일 건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짧게 요약하자면 생일 축하 케이크를 하루 몰래 보관할 수 있을지 제작진에게 합숙 전에 미리 문의해서 오케이까지 받았는데…….
무슨 유명하다는 카페에 주문 넣고 준비하는 중에 왠지 쎄해서 찾아보니까 승준이랑 정확히 생일이 겹치는 연습생이 있는 것 아닌가.
‘저, 윤아 작가님……. 혹시 케이크 두 개도 괜찮을까요…….’
‘……제작팀에 아이스박스 하나 달라고 해볼게요.’
사실 그 연습생 친구는 파이널 생존이 아슬아슬한 것 같아서 조금 고민도 했지만, 그래도 같이 축하해 주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방송 때문에 혼자 바다를 건너온 외국인이라 여기서 챙겨줘야 할 것 같기도 했고……. 탈락하더라도 어차피 케이크는 남으니까 말이다.
‘걔도 잘 생존했으니 별 의미 없는 고민이지.’
허윤아 작가는 내 깜짝 파티를 도와주는 대가로 ‘생일 축하 이벤트’를 방송 콘텐츠로 쓰기를 원했다.
그러다 보니 기획에 살이 붙어, 두 연습생의 생일 축하는 모든 연습생이 동원되고 카메라도 몇 대나 붙는 본격 촬영이 되었다.
방송 분량 뽑을 만큼은 화려했다는 소리다. ‘최소 비하인드 브이로그라도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의지가 느껴졌다.
‘승준이 엄청 좋아하던데.’
고깔모자를 씌워주며 ‘이제 한 풀었냐’고 놀리니까, 볼에 생크림 묻히고 ‘허어엉 김지상 넘어지게 해주세요’ 하더라.
아무튼 그런, 흥이 고조된 상황에서도 구석을 맴돌던 채호원이……. 나는 유독 신경 쓰였다.
연습할 때 집중을 못 하는 것은 컨디션 문제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노는 와중에도 억지웃음을 짓는 것은 무슨 곤란한 일이 있어 보였다.
‘생일 맞은 애들이랑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적어도 안승준과 채호원 두 사람은 그럭저럭 잘 지내는 사이였다. 막 절친은 아니라도.
여러 눈치를 조합해 볼수록 채호원의 뒷사정에 대한 내 의심은 짙어져 갔다.
내가 기어코 대놓고 질문하자, 녀석은 두 번이나 못 들은 척을 하다가 가까스로 대답했다.
“……티 났으면 미안. 무대 퀄리티에는 피해 안 주도록 할게.”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살짝 발끈했다.
“아니, 내가 무대 때문에 이러냐고.”
“그러면?”
“뭐가 또 ‘그러면’이야. 걱정도 못 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심정에 직구를 던졌더니, 채호원은 미묘한 표정을 했다.
사실 그 시각 채호원은 얼굴에 팩을 붙이고 있어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미묘했을 것이다.
나는 (혼자 생각할 시간 따위 더 주지 않고) 바로 이지선다로 밀어붙였다.
“고민 있어, 없어.”
“음……. 있어.”
“말할 수 있어, 없어.”
“지금 생각 중.”
“나 씻고 나올 때까지 10분 준다.”
10분이 지나 내가 욕실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채호원이 나를 불러냈다.
윙윙거리는 드라이기 소음 사이로 채호원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너 이리 와.”
“생각 끝나셨어?”
“아마도.”
채호원은 그사이에 팩을 버리고, 숙소 벽과 천장 사이에 붙은 카메라가 완전히 꺼진 것을 확인한 뒤 의자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덧붙이자면 이런 관찰 카메라는 마지막 합숙을 맞아 연습생들이 원할 때 녹화하고 종료할 수 있게 제도가 바뀌었다.
‘그전이 인권침해 수준으로 카메라를 돌렸던 거지만…….’
워낙 CCTV처럼 카메라를 달아놓은 통에 오히려 다들 녹화가 되든 말든 은어도 쓰고 옷도 갈아입고 살고는 했다.
당연하지만 그런 방송 불가 장면은 본방송에 쓰이지 않았다. 제작진이 돌려보기도 힘들었을 거다.
아무튼 룸메이트인 채호원은 웬만하면 방 안은 찍지 말자고 주장했고, 따라서 저 카메라는 현재 벽 장식 신세다.
“야.”
“왜……. 수영장.”
“헛소리하지 말고, 듣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해결책을 내봐.”
……혼났다.
채호원은 자기 침대에 앉아 내게 손짓하고, 내가 옆에 가서 앉자 제작진에게 받은 태블릿PC의 메모장 어플을 열었다.
녀석의 손가락이 메모장에 글씨와 낙서 사이의 무언가를 그렸다.
우선 맨 위에 적힌 글자는 ‘스픽스’, 채호원이 데뷔한 아이돌 그룹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 ‘앤섬, 유현, 알트, 서연, 영진, 호원, 토오루’라고 탈퇴한 인원을 포함해 멤버 이름이 하나씩 적혔다.
“이 중에 친한 사람 있어?”
“……너?”
“나 말고…….”
“서연이 형이나 영진이는 〈데프아〉 촬영하면서 연락처 받았어.”
“연락은 자주 하고?”
내가 고개를 젓자, 채호원은 각 멤버 이름 밑에 나이나 간단한 특징을 적어 내려갔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옆에서 ‘아, 음색 좋은 분’, ‘잘생긴 분’, ‘노래 잘하는 분이지?’, ‘춤 잘 추셨던 것 같은데’ 하고 내가 어떻게 기억하는지 코멘트를 붙여주었더니, 채호원이 약간 질린다는 듯이 말했다.
“신기할 정도로 사람 장점만 보네…….”
“자주 실망해. 네 첫인상은 좀 더 귀여운 쪽이었는데.”
“…….”
녀석이 대답 없이 ‘앤섬(29), 유현(28), 토오루(21)’ 이름 위에 파란 선으로 가위 자를 그렸다.
무슨 의미냐고 물어보니까 당장은 활동할 수 없는 멤버들이란다. 앤섬은 탈퇴, 유현은 입대, 토오루는 지금 고향인 일본에 있어 불러오기 애매하다는 것 같았다.
“남은 건 이렇게 네 명이고.”
‘알트(26), 서연(25), 영진(23), 호원(23)’에 초록색 동그라미 표시가 생겼다.
이 네 명 중 연기에 더 관심이 많다는 ‘알트’를 제외한 세 명은 〈데프아〉에 출연했다.
맏형과 막내 나이 차가 무려 여덟 살이나 나는데, 네 명 묶인 멤버들은 나이만 보면 큰 이질감이 없었다.
“우리가, 그러니까 이렇게 넷이서……. 되게 오랜만에……. 회사랑 이야기를 했어.”
채호원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본론을 꺼냈다.
“이 넷이나……. 〈데프아〉 출연한 세 명이 유닛 활동을 하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오…….”
“내가 최종 데뷔하면 나는 빠질 수도 있고, 다 정해진 건 아니긴 해.”
채호원의 손가락이 메모장의 빈 공간 위에서 맴돌았다.
알록달록한 낙서 위에 손끝이 닿을 때마다 까만 흔적이 점점이 생겼다.
“그게 왜? 하기 싫으냐.”
이어지는 말이 없어서 내가 먼저 물었다.
채호원이 ‘모두 지우기’ 버튼을 눌러 낙서를 삭제하고, 흰 빛을 내는 화면을 보며 말했다.
“그걸 모르겠어.”
“모르겠다니.”
“말 그대로……. 하기 싫은 건지 아닌지 내 마음을 모르겠다고.”
녀석은 태블릿PC 측면 버튼을 눌러 화면을 끄고, 기계를 내게 건넸다.
“까놓고 말해서 내가 여기서 데뷔할 수 있을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잖아. 너야 안정권이지만……. 나는 탈락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거든, 진짜.”
“…….”
“그래서 데뷔하지 못했을 때에 대해서 미리 생각을 해두어야 되는데, 나는…….”
채호원이 짧게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나와 눈을 맞추었다.
“그룹 활동이든 유닛 활동이든, 사실 제대로 할 자신이 없어.”
솔직한, 조금은 충격적인 진심이었다.
내가 겪은 미래에서 채호원의 〈데프아〉 최종 순위는 10위.
녀석은 마지막 순번으로 그룹에 합류하지만, 데뷔 무산 사태로 몇 개월 만에 다시 원래 소속사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유닛 활동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적어도 데뷔조 해산 직후에는 소식이 없었어.’
몇 개월을 쉬고 해가 바뀐 뒤에야 ‘스픽스’ 이름을 단 앨범을 발매하고, 그 다음에는 개인 활동을 했던가.
군대에 간 멤버가, 일본으로 돌아간 멤버가 어떻게 돌아왔는지 혹은 탈퇴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아예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웬만큼 유명한 업계 일은 예나 지금이나 모르고 싶어도 알게 된다.
여기서 유명하다는 것은 대중의 인지도와는 별개다. 주워듣는 것도 많고, 연예계 소식은 뭐든 모니터링을 틈틈이 하니까.
다시 말해 내가 모른다는 것은……. 결과물이 여러 면에서 변변치 못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이야기를 채호원에게 해주는 건 이상해.’
굳이 절망적인 말을 해줄 이유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내가 본 것과 현 상황은 다른 점이 많았다.
일단 나의 등장, 김병석의 자진 하차, 송수민의 순위 상승, 출연진의 잔류와 방출 사정도 많이 바뀌었고…….
그게 아니어도 내 두 번의 삶은 결코 같지 않았다. 과정이든 결과든.
‘이래저래 소문 들어보니까 데뷔 무산될 가능성만 높아진 것 같던데.’
나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채호원이 10위로라도 생존하기를 바랐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사뭇 헷갈렸다.
내가 이 녀석의 어떠한 미래를 바란다고 딱 자를 수가 없었다.
“……조금 더 말해봐. 자신 없다는 건 무슨 말인데.”
그래서 인제는 내가 확실하게 알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예컨대 대화 상대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라든가.
“너는 이해 못 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 나는 좀……. 피곤해. 그, 멤버들이.”
채호원이 말했다.
“싫다는 건 아니거든. 그런데 활동을 나름 오래 했으니까, 나는 멤버들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잖아. 단점도 알고…….”
“응.”
“우리가 다 함께 열심히 해보자는 분위기면 그래도 어떻게든 참고 해보겠는데……. 사실대로 말하면 그 정도는 아니야. 나는 그 아닌 게 다 느껴져. 잘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마음이……. 그냥 다 보여. 당장 기세가 좋으니까 괜히 막, 아무것도 없는데 들뜬 거 있잖아.”
숨기거나 돌리는 것도 없었다. 채호원의 처지와 마음이 내게 속속들이 와닿았다.
“활동하면 멤버들이 미워질 일이 더 많이, 더 자주 생길 것 같아서…….”
“…….”
“뭐랄까, 그렇게 되기 전에 피하고 싶은 거. 뭔지 알아?”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채호원이 침대에 옆으로 쓰러져 눕는 통에, 나는 슬쩍 이불에 파묻힌 태블릿PC를 꺼내 옆으로 빼놓았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까……. 데뷔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지더라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했는데.”
“그냥……. ‘나 사실 그룹 활동이 안 맞는 거 아니야?’ 하는…….”
그 말에 자연스럽게 나는 지난 삶의 김지상을 떠올렸다.
물론 내가 채호원과 대화하는 인생 2회차 이 시점, 지상이의 잠수 및 탈주 문제는 거의 수습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그야 김지상 붙잡고 말 좀 하는 거였지만, 이건 과거로 돌아온 시점부터 공쳤고.’
애가 하는 행동을 보면 아무튼 붙어서 감시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내게는 그런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게 중요했으니까, 만족 못 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걱정은 들지 않았으나……. ‘그룹 탈퇴’라는 키워드를 들으면 그냥 그 일이 연상되었다.
‘다른 탈퇴 멤버는 사유가 확실하니까 비교 대상에서 논외다.’
그 친구는 천진섭이라고 하는데, 며칠 전에 멤버들이랑 투어 다녀와서 귀국했을 거다.
‘하여간.’
요점은 스테리나인과 스픽스의 사정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동시에 다수 존재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채호원이 나를 상담원 역으로 세웠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