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79화 (79/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79화

17. DDARA(3)

물론 류희재는 별로 즐거워 보이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대기석에서 일어나 단상 위로 오르면서 곁눈질로 봤는데, 녀석은 긴장했는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웃었으니까, 서로 대비되는 태도가 제법 재미있었다. MC의 1위 후보 소개사를 마저 들으며 혼자 그렇게 생각했다.

“네, 두 후보생 모두 3차 데스 매치에서 〈TOUCH〉 무대를 선보인 ‘아미고’ 팀이었죠. 무대 위에서 완벽한 페어 안무를 보여주었는데, 이렇게 1위 후보로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어나더뮤직 정의헌 후보생,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무래도 같은 무대를 준비하며 동고동락한 사이다 보니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데요. 희재 형이 워낙 강적이라 긴장이 많이 되네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져 보겠습니다.”

적당히 대답했다.

류희재는 괜히 지난 1위가 아닌 실력자라서……. 어렵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베네핏 의미도 없는 상대고.’

3차 경연도 1차와 2차 경연처럼 현장 투표 및 동영상 조회 수 집계로 사전 성적을 매겼다.

그 결과 〈TOUCH〉의 ‘아미고’ 팀원은 6명 전원 받은 투표수에 1.12를 곱해 점수를 계산한다는 베네핏을 받았다.

‘무슨 복잡한 계산을 거쳐 나온 1.12배인지는 모르겠지만…….’

100표 받으면 112점으로 결괏값이 뻥튀기처럼 부푸는 셈이므로 꽤 괜찮은 혜택이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6팀 중 가장 높은 점수였으니까.’

팀 안에서 경쟁해 MVP를 뽑는 규칙이 아니기에 인기 많은 연습생이 똘똘 뭉쳐서, 표를 꽤나 많이 흡수한 듯했다.

아무튼 류희재가 짧게 후보에 오른 소감을 발표하고, 자질구레한 문답도 끝나자 MC가 외쳤다.

“3차 탈락자 발표식, 대망의 1위는……!! 광고 후에 공개합니다!”

음……. 순위 발표는 1위를 발표하고, 이름이 불리지 않은 쪽이 자동으로 2위가 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1위와 2위가 공개된 뒤에는 20위로 문 닫고 생존하는 연습생이 호명될 테다.

그런 식으로 다른 생각이나 하고 있는데, 제작진이 MC에게 사인을 주었다……. MC 남소리가 다시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네! 그러면,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 3차 탈락자 발표식, 1위가 될 후보생은.”

MC가 큐카드를 확인하고, 카메라가 있는 방향을 보며 활짝 웃었다.

“축하합니다! 류희재 후보생입니다!”

펑. 타이밍 좋게 폭죽이 터져 시야를 가리며 흩날렸다.

중앙 스크린에 류희재의 얼굴과 이름이 떠올랐고, 류희재는 크게 심호흡을 내뱉으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내가 2위이며 각자 몇십만 점을 받았는지 말해주는 MC의 목소리를 귀로 들으며, 나는 옆에 선 류희재를 끌어안아 주었다.

“축하해요, 형.”

기대 따위 없는 듯 냉하던 녀석이 1위로 이름이 불리자마자 뚝뚝 눈물 흘리는 모습은 웃기기도 했지만…….

그 온도 차이는 조금 가슴 뭉클하게 벅차기도 해서, 나는 류희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며 떨어져 나왔다.

‘2위라.’

2위도 좋다. 시원섭섭한 감정은 들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소속사 심사 때도 이랬던 것 같은데.’

그때도 내가 2위고 류희재가 1위였다.

상황이 많이 바뀌었는데도 순위를 잘 지켰다고 생각하니 다소 심정이 가뿐해졌다.

MC는 큐카드에 적힌 대로 류희재의 결과와 지난 방송 분량에서의 커리어를 소개했다.

“류희재 후보생은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의 대표 ‘비주얼 보컬’로 손꼽히며 매 경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뛰어난 콘셉트 소화력과 안정적인 라이브 실력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빛나는 매력을 지닌 후보생입니다.”

류희재가 〈TOUCH〉 팀원들과 투표해준 팬들에게 솔직하게 감사를 전하는 사이, 나도 머릿속으로 소감문을 정리했다.

무대 아래에서 스태프가 내게 마이크를 건네줄 때쯤 MC가 나에 관해서도 소개를 해주었다.

“아쉽게 2위가 되었지만, 정의헌 후보생은 ‘TOP2’로 마무리한 소속사별 훈련 경기 이후 튜토리얼 경기 〈승전가〉부터 1차 데스 매치 〈늑대의 시간〉, 2차 데스 매치 〈일일구〉, 그리고 3차 데스 매치 〈TOUCH〉까지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무려 ‘승률 100%’라는 역사를 쓰며 기복 없이 높은 퀄리티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지요. 무대 장악력이 압도적인 후보생입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승률 백 퍼센트는 사실 김지상도 마찬가지다.

둘 말고는……. 더 있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우선 이제까지 제가 저희 후원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정말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높은 순위로 마이크를 잡게 되어 기쁘네요.”

아무튼 나는 다른 생각을 적당히 정리하며 소감을 발표했다.

먼저 투표해 주신 팬들부터 〈TOUCH〉 팀원들, 제작진, 가족들, 우리 집 바보 고양이들 구름이와 여름이까지 ‘땡스 투’를 빠르게 훑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더 올라갈 순위가 있어서 저는 오히려 정말 좋습니다. 모두 감사하고 사랑해요.”

생존자 자리에 가 앉아 머리에 은빛 관을 쓰자마자 다음 순서로 마지막 생존자, 20위 발표가 이어졌다.

네 명 후보를 발표해 23위부터 22위, 그리고 마지막으로 20위와 21위를 알려주는 식.

나와 1차 경연, 2차 경연을 함께한 주태훈이 21위로 마지막 탈락자가 되었다.

‘그래도 원하던 리더 캐릭터는 3차 경연 때 얻은 것 같더라…….’

2차 경연, 〈일일구〉 팀 리더였던 함경우라든가 채호원이 소속된 그룹 ‘스픽스’ 멤버 강서연, 전영진도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MC 남소리는 시청자에게 파이널 생방송 관련 공지를 짧게 말하고 곧 클로징 멘트로 촬영을 마무리했다.

“그러면 이제, 후원자분들께 후보생 전원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생존자들을 멀리서 찍던 지미집 카메라가 물러나고, 다들 일어나 탈락한 연습생들을 위로해 주고 작별 인사를 했다.

좋은 성적을 받고도 친한 친구가 탈락해 펑펑 우는 애도 있었고,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못 하는 연습생도 있었다.

‘아이고…….’

그 등을 쓸어주며 손바닥에 남은 온기는, 왠지 숙소로 이동하고 나서도 손금 사이에 고여 있는 듯했다.

묘한 기분은 바쁘게 진행된 촬영 일정 때문에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탈락자들을 보내주자마자 우리도 숙소로 이동했으므로.

직전 경연들은 팀 배정 연출이 있어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이었는데, 이번에는 구두 전달이 고작이라 바로 장소를 옮긴다는 것 같았다.

숙소 위치는 스케줄이 빠듯하고 인원도 많이 줄어 경기도에서 서울로 바뀌었는데, 시설이 더 좋아져서 왠지 마음에 들었다.

기본 3인 1실이던 방 배정도 2인 1실로 형편이 꽤 좋아졌고 말이다.

“와, 이게 누구야.”

“하아…….”

604호 문 앞에 적힌 명단을 보며 방문을 열자, 그 안에는 한숨을 쉬는 채호원이 있었다.

좋으면서 저런다.

“우리 밥 먹고 집합인가?”

“파트 분배 촬영까지 하고, 저녁 먹고 연습 들어갈걸.”

“아……. 아까 먹은 게 점심이었구나.”

받은 음식이 빵 쪼가리 같은 거라서 간식인 줄 알았다.

우리는 잡담을 나누며 집합 장소라는 체육관으로 내려갔다.

김미진 PD가 이번 경연 규칙 설명을 맡아, 빔 프로젝터로 암막에 PPT를 쏘아 공지했다.

“데뷔조 여러분!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고요, 빠르게 파이널 생방송 관해서 이야기 좀 해볼게요.”

‘데프아 최종회는 생방송으로 진행된다’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고지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코너 이름은 ‘아레나 파이널 매치 - 라스트 맨 스탠딩’, 매 경연마다 붙는 ‘A 키워드’는 ‘Athena’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아테나’가 마지막 키워드입니다.”

최종 투표는 생방송 문자 투표와 마지막 주 투표수의 합산으로 점수를 집계한다. 문자 투표 비율이 조금 더 높아 영향을 많이 준단다.

2시간이라는 생방송 시간을 채워줄 무대는 이런저런 VCR과 교차되어 네 개가 삽입될 예정.

‘시그널 송 〈승전가〉 데뷔조 버전, 무대에 올리는 신곡 댄스곡 두 개, 감동 분위기 조성을 위한 마지막 발라드 곡.’

그중 신곡은 여기서 열 명씩 반으로 나누어 공연하므로, 개인이 참여하는 무대는 각자 세 개씩이 되는 것 같았다.

공연에 따른 베네핏은 주어지지 않기에 본인 무대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될 거라고, 김미진 PD는 첨언했다.

“시간이 많이 촉박하고 생방송이라서 부담도 있겠지만, 다들 다치지 않고 웃는 모습으로 피날레를 장식해 봅시다.”

오디션 방송을 어떻게 눈물도 아니고 웃음으로 끝냅니까…….

“신곡도 지금 같이 공개할게요. 영상 틀겠습니다.”

김 PD가 옆으로 빠지자, 유명 작곡가가 보내준 곡 소개 영상이 암막 스크린을 채웠다.

요약하자면……. 공연용 신곡 둘은 서로 다른 두 작곡가 팀이 의견을 교환하며 연작 형식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제목은 각각 〈Youth〉와 〈Young〉.

가이드 녹음과 안무 시안 영상에 따르면 둘 다 몽환, 청량, 스포티, 감동 코드가 적절히 짬뽕된 스타일이었다.

마지막으로 현직 유명 아이돌 선배님께서 직접 쓰고 프로듀싱한다는 발라드 곡은 〈첫인상〉이라는 이름이었다.

‘노래 다 좋은데?’

둘 중에는 트랩 힙합 기반 청량인 〈Youth〉가 더 취향이었지만, 빠른 템포의 신스팝인 〈Young〉도 잘 소화할 자신은 있었다.

〈첫인상〉은 퍼포먼스가 없는 노래겠지만……. 스무 명이 다 같이 부르는 모습을 생각해 보니 묘하게 달가웠다.

이어 공지된 신곡 팀 결정 규칙도 악독함이 거의 없었다. 전에 비해 랜덤 요소, 경쟁 요소가 많이 줄어든 덕분이었다.

“1위~ 희재부터 출발할게요.”

보조 MC나 다름없이 김 PD 옆을 지키던 허윤아 작가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런 규칙이었다.

〈Youth〉 팀 연습실은 3층이고 〈Young〉 팀 연습실은 4층이라, 연습생은 한 명씩 희망하는 곡 연습실로 이동하면 된다.

단, 이동 순서는 등수와 동일하다. 1위가 첫 번째고 20위가 마지막.

원칙적으로는 누가 정원이 먼저 찰지 모르니 낮은 순위는 원하는 곡을 고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추가 규칙으로 ‘팀 결정 후, 양측 팀원의 동의가 있다면 팀원 교환도 가능하다’는 항목이 있어서 말이다.

‘솔직히 교환 안 해줄 이유가 없어…….’

두 곡 분위기가 아주 상반되는 것도 아니고, 베네핏이 달린 것도 아니고, 경연 곡이 기존 유명 곡도 아니니까. 당장 나만 해도 못 바꿔줄 이유가 없었다.

내 예상대로 스무 명이 어울려 양보하고 응원하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팀 배치는 마무리되었다.

두 번의 팀원 교환이 있기야 있었는데, 반대하거나 아쉬워하는 사람은 좀처럼 없었다.

“그러면 우리 〈Youth〉 팀, 잘 부탁할게요.”

일단 이번에도 내 직책은 리더였다. 지금은 연습 봐주는 것 말고는 크게 할 일도 없을 것 같지만…….

팀원은 나와 채호원, 그 외 여덟 명……. 김지상이나 안승준, 류희재, 송수민은 4층 연습실에 있을 거다.

‘슬슬 끝은 끝인가 보다.’

다들 악에 받쳐 화를 내거나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고 하지 않고, 두루두루 사이좋게 어울리는 것을 보면 달라진 분위기가 실감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애들이 열심히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제법 변화가 흡족했다.

‘마음에 걸리는 건……. 한 명인가.’

그것도 말을 안 들어서가 아니라, 집중하지 못하는 티가 나서 문제였다.

“야, 채소야.”

“왜……. 뭔데.”

“너 무슨 일 있냐.”

물론 이런 문제도 직접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그날 밤 604호, 내 침대에 기대어 앉아 나는 채호원에게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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