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77화 (77/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77화

17. DDARA(1)

‘편곡 회의에서 방송 나올 만한 장면 없었는데?’

내가 의문을 가지든 말든 방송은 계속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방송 서사를 전부 부정하듯, 나를 무슨……. 세기에 한 번 나올 천재에 아이디어 뱅크로 포장하면서 말이다.

제작진이 부여해 준 캐릭터의 시비 여부를 떠나 이렇게 좋은 인물로 포장되는 상황 자체가 낯설었다.

- 감정선 이해가 안 된다, 발음이 어렵다, 음역대 안 맞는다, 지금 불러보고 이런 거 사소한 것도 전부 얘기해 줘.

- 원래 다 고쳐가면서 하는 거야. 녹음 들어가기 전에 미리 체크해 두자.

- 아……. 그래? 그러면 안 되겠네. 가사 수정 한번 말씀드려 볼게.

내가 팀원들에게 말하는 내용이 몇 컷 스피디하게 이어 붙어 방송에 나왔다.

회의가 끝난 뒤 연습 장면까지 그 서사 흐름은 유지되었다.

이 순위까지 살아남은 이상 다들 팬층이 있는 연습생이라 팀원 이미지를 섣불리 부정적으로 소모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제작진이 연습 장면에서는 내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적이 없던 터라……. 나로서는 조금 이질적으로도 느껴졌다.

나는 영상으로 남은 〈데프아〉 1회부터 8회까지의 내 방송 분량을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재생해 보았다.

‘처음 소속사 평가 때는 나름대로 조명을 받았다.’

개인보다는 소속사와 그룹 활동 경력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분량이 제법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직후 첫 합숙, 튜토리얼 경기인 시그널 송 〈승전가〉 연습 장면에서 편집의 혜택을 누린 것은 김병석이었다.

이때 김지상은 김병석의 대적자처럼 묘사되었고, 첫 번째 데스 매치 〈늑대의 시간〉 연습 때에도 제작진의 김병석 사랑은 이어졌다.

〈늑대의 시간〉 준비 과정에서는 심지어 내가 ‘악마의 편집’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다음 두 번째 데스 매치 〈일일구〉에서는 팀 리더였던 함경우의 빅픽처와 안승준의 노력이 연습 서사의 주 소재였다.

‘안승준은 셋 중에서는 그래도 잘 살아남은 편이야.’

첫 데스 매치 〈속삭여〉에서는 팀원의 태만을 지적하는 냉정한 리더로, 두 번째 경연 〈일일구〉에서는 프로듀싱 능력자로.

하지만 안승준이 빛을 받는 바람에 나는 〈일일구〉 팀에서 방송 분량을 거의 못 받았다.

아마도 남들 눈에 정의헌이라는 인물은 ‘성적 좋은 콘셉트 잘 당첨되는 행운의 연습생’ 정도로만 보이지 않을까.

‘억울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

그 무대 잘 나온 것도 내가 안무 미리 외우고 하나하나 가르치고 연습하도록 시켜서니까 말이다.

방송 주제곡 〈승전가〉도, 〈늑대의 시간〉도, 〈일일구〉와 〈TOUCH〉까지 내 손이 닿지 않은 퍼포먼스가 없었다.

– 난 춤잘추는멤 좋아해서 첨부터 정의헌 고정픽이었음

– 춤은 진짜 정의헌이 안정적임 얘는 진짜 재능인듯 ㅋㅋㅋ

– 정의헌은 일일구 개다리춤같은거 다 삭제수정한것만으로도 평생까방권 줘야됨 ㅋㅋㅋ 솔직히 그거랑 개사 없었으면 일일구팀 연생들 다 이정도로 팬 많이붙지는 못했을걸

– 헐헐 정의헌이 키가 크구나 직캠만 봐서 그런느낌 못받았어 춤이 펄럭거리는게 전혀없어서; 왜 키크면 춤출때 팔다리 휘적휘적하는 거 좀 있잖아 그런걸 정의헌보고는 전혀 못느낌 그냥 비율좋아서 다리 길어보이는줄 알았음 그런데 지금 다른 사람 옆에 서있는 사진으로 보니까 다리길이 자체가 개깡패네...

그래도 인터넷에서는 때때로 춤을 잘 추는 연습생으로 내 이름이 뽑히는 것 같기는 했다.

다행인 일이다.

사람들이 그다지 알지 않아도 되는 역사까지 너무 많이 끌려 나온 것은 문제다만…….

– 정의헌 이름이 익숙하다 했더니 진짜 내 후배 맞는 것 같은데 ㅅ모대학 무용학과 13학번 전설의 과대라고 유명했음 과 대표가 연락이랑 공지랑 과대 일은 다 하는데 학교에서 볼 수가 없다고 무슨 전설 레어 아이템같은거 아니냐고 막 그러면서 ㅋㅋㅋㅋ

– 페리도트 백댄서 이 사람 정의헌 아니야? 오피셜 있어? 키랑 피지컬이 지문인데 그냥

– 정의헌 JLB 출신 맞는 듯 같이 있는 사람들이 다 JLB 강사들 ㅇㅇ (JLB=홍대에서 제일 큰 케이팝 댄스학원)

과대는……. 실수였다. 2학년 올라와서 그만두었고, 댄서 시절은 민망해서 제발 영상 퍼지지 않기를 하늘에 빌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디션 서바이벌 형평성 망치는 고인물 경력직’이라고 욕도 하던 것 같지만…….

‘그건 됐고, 이 타이밍에 캐릭터를 몰아줄 줄은 몰랐다.’

화면 속 나는 아이디어를 내고, 의견을 모아 프로듀서에게 전달하고, 곡을 해석하고 팀원들과 어울리게 수정하며 완성해나갔다.

그리고 류희재와 페어 안무를 연습하거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팀원을 병원 보내자고 제작진에게 청하기도 했다.

- 괜찮아, 긴장 풀어. 무대 하는 날까지는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잖아.

그리고 그 팀원이 ‘컨디션 난조’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다가가 격려하는 모습까지.

전부 내가 제정신으로 저지른 일이긴 하지만……. 모든 모습이 낱낱이 방송에 실리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래도 이후 장면은 병원에 다녀온 애가 열심히 연습하며 팀원들을 따라잡는 내용 위주로 나와, 초점이 나를 비껴갔다.

너무 우호적이거나 편애하는 티가 나도 반감만 사므로 완급 조절이 적당히 잘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 네, ‘아미고’ 팀의 〈TOUCH〉 무대! 잘 봤습니다.

〈TOUCH〉 팀 분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 번째 바통 터치.

무대가 끝나고 (무대 편집도 쓸데없이 리플레이하는 것 없이 탄력 있게 잘 된 것 같다) 조명이 꺼졌다가, 다시 켜진 뒤.

MC가 팀원을 불러모으고 다 같이 선 자리를 다시 잡던 그때.

[돌발 상황 발생]

자막과 함께, 방송 사고 현장을 촬영한 영상이 전 세계에 동시 송출되었다.

물론 영상은 일부 흐리게 처리를 하고 카메라 각도를 조정해 소리만 들리게 하는 등 아주 직접적이지는 않았다.

‘오.’

며칠 전 출연자 보호 미흡을 인정하며 공식 SNS 계정에 사과문까지 업로드해 놓고, 이렇게 나오시다니.

사실 나는 최악의 경우 〈데프아〉 제작진들이 부상 사건을 없던 일로까지 덮어버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예상과 정반대로 나오는 셈인데.’

나는 순간 고개를 돌려 김지상의 표정을 살폈는데, 녀석은 의외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태연자약했다.

태도를 보아하니 지상이는 분명 제작진에게 미리 언질을 받은 것 같았다.

‘아는 게 있으면 말을 하라고…….’

방송 끝나면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속으로 혀를 차며, 나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사고 이후로는 걱정하는 팀원들 및 다른 연습생들의 표정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TOUCH〉 팀원들과 기존에 김지상과 같은 팀을 해본 연습생, 안승준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 눈앞이 깜깜했어요. 오늘 무대 직전부터 형 상태가 안 좋았단 말이에요.

- 지상이 탓하고 싶지는 않아요. 애 잘못이 아니니까요.

- 무리한 거죠, 무리한 건 맞는데……. 저였어도 그렇게 했겠죠.

심지어 류희재는 꽤나 강경하게, 김지상 잘못이 아니라고 입장을 변호해 주었다.

몇몇 발언은 방송에 알릴 수 없는 어떠한 사건의 존재를 암시했으나, 제작진은 말을 따로 잘라내지 않았다.

안승준의 인터뷰는 이런 내용이었다.

- 걔는 다 좋은데, 걱정하는 사람 생각을 너무 안 해요.

내가 TV 화면을 보며 반사적으로 물었다.

“승준이는 저거 말하려고 샵 갔다가 녹화까지 한 건가?”

“셀프로 했거든요. 착각할 정도?”

“그래? 잘 나왔네.”

안승준이 키위가 꽂힌 포크를 내 쪽으로 휘저으면서 말해서, 나는 키위를 쏙 뺏어 먹고 대꾸해 주었다.

하여간 이제껏 숨기기에 급급했던 우리 그룹 멤버 셋의 친분을 굳이 보여주는 연출은 제법 신기했다.

내 인터뷰가 〈데프아〉 시그널 송 〈승전가〉의 피아노 버전을 BGM으로 깔고 감동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 지상이가 무대 올라가기 전에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 자기는 지금 포기할 수 없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거라고…….

- 원래 그런 애예요.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애.

마지막 인터뷰는 김지상의 것. 퇴원한 뒤에 스튜디오에 불려갔단다.

- 원래 선천적으로 심장 쪽이 좋지 않아요.

김지상은 본인의 병력을 짧게 고백했다.

선천성 병으로 체력과 식단 관리가 꾸준히 필요하다는 투의 음성과 함께 몇 주 전 영상이 슥슥 지나갔다.

〈데프아〉 녹화에 참여하며 김지상이 쉬는 모습, 음식을 가려 먹거나 계속되는 연습에 힘들어하는 모습 등.

이미 방송에 나온 장면을 재활용하는 의도가 ‘사실 이래서 쉰 겁니다’라는 해명처럼 읽혔다.

- 현장에 관객분들, 팬분들이 기다리고 계셨잖아요.

- 저는 그분들이 쉽게 오셨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멀리서 한참 걸려서 오셨을 수도 있고, 많이 기대하셨을 수도 있고.

- 그래서……. 무대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 욕심이 들었던 것 같아요.

- 많이 걱정하셨을 텐데, 죄송해요.

자칫 김지상 개인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화면이었다.

그러나 늘어지기 전에 편집이 활약했다.

녹화 영상이 아니라 자료 화면을 이어붙여 김지상의 발언과 태도를 ‘아이돌의 노력’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한 것이다.

팬들의 사랑을 받고 노력하는 모든 아이돌 및 연습생의 청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돌이 이렇게까지 피땀 흘려가며 열심히 하는 이유는 응원해 주는 팬들 덕분이다’……. 뭐 이런 이야기 말이다.

다른 연습생들의 미방송분, 비하인드 영상 따위가 전개되는 모양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진짜 사죄 방송이로군…….’

신곡 무대가 모두 공개된 회차 말미에 사연이 들어가서, 자극적인 장면이 감동 코드로 변화했다.

준비 과정에서 김지상은 거의 분량이 없었던 탓에 녀석이 잡아먹은 시간도 전체적으로 따지고 보면 생각보다 적었다.

또한 연습생이 이제 몇 명 남지도 않은 지금이라 몇 분 정도는 이렇게 소모해도 문제가 없었다.

이 방송을 보고도 싫어할 사람은 계속 싫어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방송이 나서서 우리의 이미지를 수복했다는 점에 있었다.

나는 조용히 머리로 수식을 그려보았다.

* 나: 사람 잡는 독재자에서 노력하는 팀원을 위할 줄 아는 시야 넓은 리더로…….

* 지상이: 지난 회차들이 ‘악편’의 결과였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함.

* 그 외: ‘어나더즈 불화’, ‘어나더즈 서로 안 친함’ 루머를 전면 부정해 버리는 솜씨까지.

조금 감탄스러웠다.

‘괜히 전문가가 아니네.’

사연은 부각하고, 논란은 피하고, 반감은 억제하며, 군더더기는 덜어내고, 드라마는 매끄럽게 말이 되도록.

방송 뒤 며칠 동안 쌓이는 반응을 보아야 제대로 실감이 날 것 같았지만, 첫 감상은 긍정적이었다.

반면 김지상은 들고 있던 접시를 소파 앞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고저 없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내가 방송에 써도 된다고 한 거야.”

“너는 진짜, 이런 거 했으면 미리 좀 말하라고.”

“어? 뭔데?”

알아듣지 못한 안승준이 묻자, 지상이는 ‘사고 장면’ 하고 말하며 옅게 웃었다.

“혹시나 오해하지 말라고. 생일 끝내준다.”

그 웃음은 조소인 것 같기도 했고, 기쁜 것 같기도 했으며, 그냥 순수하게 웃긴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웃지는 못하고 김지상이 놓은 접시를 내 무릎 위로 가지고 왔다.

‘성격 진짜……. 골 때리네.’

지상이가 남긴 케이크를 포크로 긁어먹으며 잠시 생각했다.

입안에 퍼지는 달콤한 크림 맛과 달리 생각은 무미건조했다.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놈 어디 갔냐고.’

내가 보기에는 얘도 아직 멀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