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73화
16. Monster(3)
나는 멋대로 결정한 뒤 김지상에게 질문했다.
“그래도 돼?”
“……어, 응. 그래.”
지상이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떨떠름한 반응이었지만 동의는 동의였다. 차가 매끄럽게 출발해 도로를 달렸다.
이동하는 차 안은 조용했다. 그 와중에 안승준에게 형편을 묻는 메시지가 와서 답은 해주었다.
[스테리나인 안승준: 그럼 이따 아침에 옷이랑 짐 챙겨서 갈게]
뭐……. 얘도 좋은 녀석이다.
숙소 건물 앞에서 차가 멈추고, 우리는 대표님께 꾸벅 인사드린 뒤 1층 숙소에 들어섰다.
아무도 없이 몇 주나 방치되어서 혹은 새벽이라서, 실내는 꽤나 적막했다.
형광등을 켜도 사위가 떠들썩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싸늘하기만 한 분위기에 조금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어디 가냐.”
들어오자마자 몸을 돌려 다시 나가려는 김지상을 내가 붙잡았다.
“2층 가려고.”
“왜?”
“왜…… 라니, 원래 내 방이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따지자면 내 숙소가 1층이고 얘는 2층 사니까…….
하지만 사람이 감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왠지 지금 가버리면 내일 아침에도 얼굴을 못 볼 것 같은 그런 예감.
그 이후 여러모로 흐지부지하게 되고, 이번 일에 관해 대화할 기회도 못 잡을 미래까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너 갔다가 내려올 거 아니면 나랑 얘기 좀 하고 가라.”
“……무슨 이야기?”
“그냥 오늘 있었던 일이라든가.”
김지상의 대꾸는 꽤 퉁명스러웠다.
“난 할 말 없어.”
“야, 내가 있어. 피하지 좀 마. 내가 너한테 화를 내겠냐, 욕을 하겠냐.”
비꼬지 말고 날카롭게 말하지 말자고 백날 다짐해 봤자 실전에 닥치면 이렇게 된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거친 말투는 김지상의 신경질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나 네 걱정 많이 했어.”
“…….”
“몸 좀 살펴……. 속상하니까.”
사람이 다친 그 상황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주변에 사람이 얼마나 많든, 이게 방송 사고든 아니든, 옆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계산 자체가 불가능했다.
내가 평소에 얼마나 다양한 생각을 차근차근하며 살았는지 흐름이 멈추자 자각이 되었다.
팬들이나 다른 멤버들, 보고 있던 사람들 입장은 병원에 도착하고 난 뒤에야 천천히 고려가 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좋게 해결될 가능성이 보였다고 해서 이미 일어난 일이 사소하거나 유쾌한 사고로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는 김지상도 알 것이다.
한참 뒤에 답이 돌아왔다.
“……알았다고. 씻고만 올게.”
그 말을 끝으로 김지상이 현관을 나서고, 나도 그사이에 재빨리 메이크업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소파에 기대어 앉아서 지상이가 내려오는 것을 기다렸다.
아니, 기다리려고 했다.
삑삑삑삑.
언제 눈을 감았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다시 눈을 뜬 것은 그 소리 때문이었다…….
그건…….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기계음이었다.
철컥 소리가 곧바로 이어 들렸다. 요란하게 부스럭부스럭대는 소음과 함께.
“뭐야, 왜 둘 다 여기 있어?”
“어…….”
“형은 손이 왜 그래?!”
“지금 몇 시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건만 여기가 어디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좀처럼 파악이 되지 않았다.
뻑뻑한 눈을 비비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사방이 온통 밝았다.
‘설마……. 아침?’
핸드폰을 찾기 위해 상체를 숙여 손을 더듬거리자 무릎 옆에 남의 머리카락이 닿았다.
김지상이 내 무릎 옆 쿠션을 베고 소파에 길게 누워 있었고, 내 움직임에 깼는지 부스스 눈을 떴다.
그러니까 나는 소파에 등을 지탱해 앉아서 자고 김지상은 내 옆에서 가로로 누워 잠에 든 상황 같았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온 안승준에게 인사도 못 하고, 앉은 자세 그대로 나는 먼저 김지상에게 물었다.
“왜 안 깨웠어?”
“깨웠는데 형이 안 일어난 거야.”
“내가?”
믿을 수가 없다.
“깨우는 거 왜?”
“형이 얘기 좀 하자고 그러던데.”
“승준이 빼고 둘이서만 또 무슨 얘기…….”
일어나서 비틀비틀 세수하고 나오자 거실에서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프라이빗한 대화는 물 건너간 것 같지만, 김지상이 별로 숨기려고 하는 뉘앙스는 아니라서 어떤 의미로는 다행이었다.
냉장고를 열어도 먹을 게 없어서 아무거나 어플로 배달을 주문하고 우리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다시…… 라고 칭하기에는 사람이 한 명 늘어났지만. 아무쪼록 삼자대면이다.
“둘이 무슨 얘기하려고 한 건데.”
제일 먼저 입을 여는 안승준에게 김지상이 툭 핀잔의 말을 던졌다.
“너는 지금 궁금한 게 그거야?”
“네가 어그로를 끌었잖아…….”
주의력 참 얄팍하구나.
그런데 나도 자다 깨니까 생각이 잘 안 나서 말이다. 얼기설기 대답했다.
“몸조심하라는 얘기였지, 그냥.”
“그래……?”
“나도 이래라저래라 하고 싶지는 않지만……. 걱정되니까.”
대충 뉘앙스를 알아들었는지 안승준이 ‘아~’ 하고 반응했다. 얘는 내 동생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안승준은 김지상보다 연습 기간이 더 기니까, 언젠가 내가 전에 말했겠거니 싶다.
그때 김지상이 제 눈가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나 그런데…….”
그리고 질문했다.
“내가 그렇게 잘못했어?”
……하고, 조금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서로 실실 웃으며 잡담을 나누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때는 무대 올라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야, 김지상…….”
“형도, 안승준 너도. 같은 상황이면 솔직히 그렇게 했을 거잖아.”
안승준이 이름을 부르는데도 김지상은 단호하게 끊어내고 제 할 말을 끝냈다.
그리고 안승준이 가져온 쇼핑백을 들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하게 한 건 미안하고, 내가 내가 무리했다는 건 알겠는데.”
“…….”
“아니다……. 됐다, 미안해. 됐어.”
지상이는 한참 입술을 들썩거리며 말을 고르는 티를 냈으나, 소리가 되어 나온 것은 결국 사과의 일언반구였다.
귀찮다는 뉘앙스는 아니었으나 지친 듯이 힘이 빠져 있어서, 사태 수습을 목적으로 한 발언처럼 들렸다.
일방적으로 대화를 마무리한 김지상은 그렇게 쇼핑백을 손에 쥐고 문이 열린 방으로 덜컥 들어가 버렸다.
어차피 1층에 있는 방이면 내 방 아니면 안승준 방인데, 당첨된 것은 내 방이었다.
‘내가 들어간다?’
‘그러세요~’
승준이와 시선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안승준이 들어가 보라는 듯 손바닥으로 방문을 가리켰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문 앞에서 삼 분쯤 기다려 준 뒤 노크하고 방에 들어섰다.
김지상은 내 책상 앞,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내가 들어오는 동선에 맞추어 의자 중심축을 빙글 돌렸다.
지상이가 ‘뭔데……’ 하고 중얼거렸지만, 나는 슬그머니 무시하고 침대에 앉았다.
“어제 하려던 얘기 좀 마저 하자.”
나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여 무릎 위에 아래팔을 내려놓고 양손을 깍지 껴 잡았다.
시선이 자연히 바닥을 향했다.
“네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고.”
“…….”
“내가 너한테는 말을 안 했던 것 같은데……. 나 어릴 때 동생이 아팠어.”
그래서 이런 사건에는 내가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병력이 비슷하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는 거라고……. 나는 김지상에게 말했다.
말하자면 긴 사연이었지만, 최근에 한번 남에게 이야기한 적 있던 터라 이번에도 제법 담백하게 요약해 말할 수 있었다.
“어제 이미 말했잖아. 내가 속상해서 그러는 거라고……. 넌 잘못 없어.”
“그냥 좀 잘했다고 해주면 안 돼?”
“잘했어. 그래, 고생 많았어. 힘들었을 텐데 무대도 잘 끝내줘서 고맙고.”
“…….”
“무대 실수 없었고, 잘 뽑혔잖아. 난 만족해.”
적어도 무대 하나는 잘 나왔다.
결과물 모니터링이 아직이더라도, 무대에서 객석을 보았다면 김지상도 느꼈을 테다.
〈TOUCH〉 무대 최초 공개는 누구도 이견을 내지 못할 만큼 성공적이었다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퇴원하면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 육전덮밥인지 뭔지. 그 약속 아직 유효하다.
그리고 김지상에게는 말하지 않았는데……. 사실 이번 일은 나에게 좋은 영향도 주었다. 어떤 면에서는.
적어도 이번에는 내가 곁에서 보고, 나서고, 외상을 막고, 응급처치를 하며 도울 수 있었으니까.
‘어릴 때는 방법을 몰라서 헤맸다. 그래서 계속 해나에게 미안했고.’
다음에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며 배운 게 응급처치 요령이었다.
물론 까먹거나 모르는 것도 없지 않아서 예전에 김병석이 발목 접질렸을 때처럼 가끔 삽질도 하지만…….
아무튼 이번 사건은 구급치료를 배워둔 값을 치를 수 있는 기회였다.
덕분이라고 하면 부적절하겠지만, 어제 일을 겪어 내 마음에 얹힌 답답한 응어리도 조금은 녹았다. 그건 정말로 좋은 영향이었다.
정적이 흐르는 동안 나는 잠시 본가에 있을 동생 생각을 했다.
되게 애틋한 사이 같은데 그래 봤자 한집 사는 가족이라, 마지막으로 대화한 내용도 어제 걔가 ‘내 텀블러 여기 분리해서 씻으라고 내가 그랬잖아아아’ 하면서 나한테 짜증 낸 거다.
‘사춘기란…….’
거기다가 대고 나는 ‘아 네가 설거지하시든가요’라고 했다가 걷어차일 뻔했다.
점점 삼천포로 흘러가는 회고의 흐름을 김지상의 한마디가 끊어주었다.
“무대 진짜 괜찮았어?”
“당연한 거 아니야. 너 날아다니던데.”
그렇게 대꾸하자, 지상이는 조용하고 느리게 의자를 돌려 내게 등을 보였다.
나도 움직임에 따라 목을 뻗어보았지만 내 위치에서 얼굴이 보일 리 만무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들렸다. 물기가 축축하게 어린 음성이었다.
“나가 있어 봐.”
“주문대로 말 다 해줬는데 또 무슨 문제냐…….”
“아, 빨리 좀.”
재촉을 두 번이나 해서 나는 그 이상 토 달지 않고 순순히 내 방에서 쫓겨나 주었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옆에서 기웃거리는 안승준과 부딪힐 뻔했다.
‘어쭈……?’
가깝게 마주치니 승준이가 작게 헛기침을 했고, 나는 검지와 중지로 서로의 눈가를 번갈아 가리키는 시늉만 해주고 말았다.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다.
뒷걸음질로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은 안승준이 말했다.
“공지 띄운 건 봤어.”
“아, 맞다. 그거 얘기해야지.”
대화가 중간에 새면 이게 문제다. 이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안승준에게 알려줄 때였다.
나는 처음부터 사건을 차근차근 묘사했다. 누구를 만났고, 무슨 이야기를 들었고, 어떻게 탈출했는지까지.
회사와 대화한 내용까지 덧대어 상세하게 고하자 승준이가 ‘으……’ 하는 소리를 내었다.
“우리 무슨 보복 같은 거 당하는 거 아니야?”
“여기서 더?”
“아…….”
반박 몇 글자에 침몰하는 안승준을 보자 싱거운 웃음이 나왔다.
글쎄, 승준이와 달리 나는 앞으로가 그렇게까지는 걱정되지 않았다.
“슬슬 풀릴 것 같은데.”
“풀리다니.”
“제한이라고 해야 되나……. 억압이?”
내가 말하자, 안승준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넘겨짚은 것 같기도 하지만, 지금은 좋게 생각하며 믿고 기다릴 때였다.
애초에 ‘3차 데스 매치’ 합숙에 앞서 내가 세워둔 플랜이 무엇이었나.
‘위협에서 탈출할 수 있게 준비해 두기, 증거 모으기, 그리고 내 편이 될 증인 만들기.’
계획은 진행 중이었다.
만들어두었으니까……. 내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