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72화
16. Monster(2)
* * *
몰랐는데, 왼손 새끼손가락을 삐었다더라.
병원에 도착해서 보니 손가락이 부어올라 있어서 알았다.
아마 쓰러지는 애를 반사적으로 붙잡다가 체중에 눌려 손가락이 꺾인 듯했다.
회사와 연락하고, 김지상이 무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손가락에 테이핑 치료를 받았다.
그 외에 찰과상이나 타박상 따위도 있었는데 이 역시 심각하지는 않았다. 의상 허리 쪽을 집어둔 집게가 부러져서 살갗이 까졌다든가 하는……. 이래저래 연고 바르고 밴드 붙이면 낫는 수준이었다.
민망할 정도로 가벼운 상처였는데, 회사에서 진단 기록을 남겨두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조언해서 말을 들었다.
그리고 지상이네 부모님께도 문자는 드렸는데 돌아오는 답장이 없었다.
호들갑을 떨며 당장 병원에 찾아와 상태를 봐야겠다고 하는 회사 매니저팀 팀장님, 대표님과는 영 딴판인 반응이었다.
‘후우…….’
병원 위치와 내가 어디 있는지를 문자로 찍어 보낸 뒤, 나는 병원 로비 의자에 앉아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화장은 못 지웠지만,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무대 의상도 갈아입었기 때문에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누가 알아본다면……. 모르겠다. 어쩔 수 없다.
시간은 벌써 새벽.
김지상은 앞에 대기 시간이 길어져 아직 진단 중이라고 하고, 회사 분들은 이제 막 출발하셨을 테니 도착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다.
금방 조치가 끝난 나 홀로 잠시 여유가 생겼다.
내가 지금 긴장이 풀린 건지, 아직 긴장 상태인지도 제대로 판단이 되지 않는데 말이다. 괜스러운 여유였다.
‘아……. 졸려.’
애가 옆에서 의식을 잃었을 때에는 불안으로 미치는 줄 알았는데, 폭풍이 지나가니 무서우리만큼 마음이 고요해졌다.
걱정해야 할 일도 많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많았는데,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까지 신경 쓰였다.
‘감각이 너무 날이 섰어.’
스스로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게 너무 뼛속 깊이 느껴졌다. 평소에는 누가 보고 무엇을 청해오든 크게 의식하지 않는 편이니까.
그래도 말 붙이는 사람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웃으며 응해줄 자신이 없었다.
정신이 멍해서 오는 연락에만 간신히 답하고 천장만 보고 있던 게 몇십 분.
어쩌면 단순히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스테리나인 김지상]
핸드폰 진동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김지상 핸드폰은 내가 쫓아와서 간호사님께 전해드린 건데 잘 받았나 보다.
화면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어, 왜.”
- 어디야.
“나 로비에.”
- 기다려. 내려갈게.
스피커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고저 없이 무덤덤했다.
‘그런데 벌써 퇴원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 무섭게, 김지상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등장했다.
옷은 무대 의상 그대로였지만, 액세서리를 전부 빼고 겉옷을 벗어 그렇게 생김새가 요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인사나 겨우 나누었을 때, 대표님과 매니저팀 팀장님이 줄지어 병원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얼굴을 보자마자 질문을 퍼붓는 팀장님에 나도 김지상도 조금은 당황했다.
“지상아, 상태는 괜찮아? 의헌이는?”
“아, 네. 괜찮아요. 말씀을 드려야 될 텐데 어디서…….”
“차로 가자.”
내 말을 끊고 팀장님이 답했고, 우리는 곧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대표님 차가 더 크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이야기하기로 했다. 로비에서 대화하기에는 어디서 누가 들을지 몰라 내린 결정이었다.
운전대에 대표님이, 조수석에 팀장님이 타고 우리는 뒷좌석에 앉아 설명을 시작했다.
낯선 사람이 우리를 골방에 가둬두려고 했던 사건부터 병원에서 받은 진단 내용까지.
무대에 오르기 전 허윤아 작가님과 이룬 모종의 타협은 슬쩍 주제를 피했더니 김지상도 눈치껏 언급하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남소리 선배님…….’
잠긴 문을 열 때 도움을 받았는데, 감사 인사를 드린다는 게 일이 이렇게 되어 찾아가지를 못했다. 이건 나중에 말을 드려야겠군.
그리고 나는 이 틈을 타서 조금 전에 새로 알게 된 사실도 한 가지 발표했다.
“그 사람이 저희 데뷔하면 들어가는 엔터 대표라고 하더라고요.”
“……형은 그걸 어떻게 알아?”
“희재 형이, 그러니까 저희 저번 팀에 류희재라고 EX엔터 출신 연습생이 있었는데요. 그 형이 아까 전화로 알려줬어요.”
김지상의 질문에 나는 정보 출처를 추가해 알렸다.
병원에서 대기하는데 전화해도 되냐고 류희재에게 문자가 와서……. 내가 전화를 걸고, 이야기를 들었다.
‘네가 봤다는 사람 누구인지 알 것 같아.’
류희재는 그렇게 말해왔다.
그 중년 남성은 원래 류희재가 있었던 EX엔터테인먼트에서 PR매니저를 하던 사람이라고 한다.
류희재가 EX에서 다른 곳으로 소속사를 옮긴 몇 년 사이에 EX엔터를 그만두고 회사를 직접 차린 것 같았다.
이름을 듣고 검색해 보니 정말 그 사람 얼굴이 ‘K14엔터테인먼트 대표 유금평’이라고 포털 기사 사진으로 나왔다.
PR매니저의 직무가 원래 방송 등에 줄을 대고 아티스트를 영업하는 것이다 보니 방송국과 연이 닿아 새 감투를 쓴 게 아닐까 싶다.
“K14 대표……. 그렇구나.”
팀장님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쌤, 뭐 알고 계시는 거 있어요?”
내가 그렇게 질문했을 때 대답은 팀장님이 아니라 대표님에게서 나왔다.
대표님은 특유의 얇고 매가리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애들한테 이런 얘기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사실 돈 문제야, 그거.”
놀랍지는 않았다.
돈 문제가 아닌데 이렇게까지 하는 쪽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나…….
“우리가 계약 조건이 조금 다르거든.”
그리고 뒤이어 밝혀지는 비밀은…… 설마 했건만 진실이었다.
대표님이 공개한 비하인드는 이랬다.
처음부터 방송사 측에서 어나더뮤직을 상대로는 ‘다른 조건’의 계약을 제시한 것이다.
“처음에는 의아했지. KMC와 우리 회사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니까요.”
그 당시 어나더뮤직은 섭외 요청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라는 프로그램의 흥행 규모를 예측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내부적으로 골치 아픈 고려 요소도 많았다.
예컨대 스테리나인이 그룹 명의로 다른 회사와 맺고 있는 장기 계약이라든가. 자잘한 개인 활동이라든가.
멤버가 반년이나 활동을 중단하게 되면 일본 대행사, 팬클럽 플랫폼 등과 계약 내용이나 일정 조정하는 등 손발을 맞춰야 한다.
‘남들이 보면 부당한 섭외일 수는 있겠지.’
그러나 심사를 패스한 것도 아니고 오디션도 본 데다가 출연료 외 방송에서 특혜받은 것도 없다.
오히려 우리를 자기들 밑으로 봤으니까 좋은 조건을 베풀어주고, 수틀리니까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해서까지 도로 뺏어가려고 하는 거다.
……물론 내 등장으로 밀려난 연습생에게 미안한 마음은 있다. 나중에 기회 닿으면 갚자.
“그렇지만 KMC가 꾸준히 좋은 조건을 들어가며 설득을 해서…….”
어쨌든 KMC는 초반 방송 이슈몰이를 위해 어나더뮤직의 ‘경력직’ 연습생들을 원했다.
나는 지금 연습생 수준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데프아〉 제작진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러니까……. 저렴하게 요약하자면.
KMC는 어나더뮤직한테 ‘제발 나와주세요’라고 했고, 그 ‘제발’의 대가로 출연자 계약의 특약 조항을 걸었다.
‘특혜는 두 가지.’
첫째는 회당 출연료 인상.
둘째는 추후 연습생들이 데뷔 그룹에 소속될 경우 수익 비율 조정이었다.
비율 조정이라고 해도 일, 이 퍼센트 정도.
예를 들어 다른 연습생 소속사가 연습생의 수익금을 20퍼센트 정도 가져가면 어나더뮤직은 21퍼센트 정도 가져간다.
그리고 ‘옛날 일’과 얽힌 사람도 협의 장소에 나오지 않고, 소속 아티스트가 〈라이브 뮤직 채널〉에 출연할 시 잘 대해주겠다고 약속했단다.
그들도 방송이 시작하기 전에는 그 정도쯤 내주어도 괜찮으리라고 판단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 일 퍼센트도 이제 너무 큰 돈이 되어버린 거겠지.’
〈데프아〉 방송도 너무 잘되고 있고, 스테리나인 멤버인 우리 셋도 예상 이상으로 좋은 성과를 뽑아내고 있지 않은가.
KMC나 K14 쪽에서 왜 기를 쓰고 우리를 떨어뜨리려고 하는지 이제 조금 이해가 되었다.
심지어 현재 방통위가 날을 세우며 〈데프아〉를 지켜보고 있어서, 이 정도 방법이 악당들이 동원할 수 있는 한계란다.
투표 수를 조작하지도 못하고, 악마의 편집도 효력이 미미하니까, 하차 권유나 강력하게 하는 것 말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아닐지 감을 못 잡고 있는데, 팀장님이 첨언하셨다.
“지금 〈데프아〉 총연출이 전에 투표 조작으로 구속된 적 있어서 그래. 또 그럴까 봐 감시하는 거지.”
……그랬단 말이야?
이번에 무슨 일이 생겨서 또 구속되면 가중 처벌을 적용할 수 있을지 짧게 궁금해졌다.
하여간, 왜 그렇게 계약 조정을 했고 왜 미리 말을 안 했냐고 회사에 투덜거리는 것은 인제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일 처리가 막 깔끔한 건 아니지만…… 솔직히 사건 발생했을 때 대응이나 수습은 열심히 했잖아.’
이렇게 새벽 밤중에 허겁지겁 달려 나온 것만 봐도 그렇고.
‘회사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슬슬 KMC와 다시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거 아닐까.’
그러니 적당히 참작하고 아군 취급을 하는 게 낫겠다. 일이 이 상태까지 커질 줄은 아무도 몰랐을 테니까.
“그래, 그쪽은 이제 알았고. 지상이는 어때?”
“저요? 아, 음…….”
팀장님의 물음에 김지상이 응급실에서 의사에게 권유를 받은 세부 사항을 전달했다.
우선 김지상은 의식을 몇 분 내로 회복했기에 구급차를 타고 이동할 때 직접 의료진에게 상태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외상도 없었다. 쓰러질 때 머리나 몸을 부딪혀 출혈이 일어나는 환자도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행인 일이었다
의사도 소견을 내기를, 실신의 원인은 심장이나 뇌 문제가 아니라 혈압과 신경계에 발생한 트러블이었단다.
한마디로 스트레스와 흥분 상태가 원인이었던 셈이다. 그 이상 의학적인 이야기는 나도 잘 모르겠고…….
“그래도 되도록 빨리 입원해서 정밀 검사는 받아보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러려면 어차피 밤사이 대기하다가 병원을 옮겨야 하니 해 뜨면 제 발로 걸어가라고 의사가 권했단다.
준비해 온 옷가지나 생필품도 없는 데다가 회사와 사건 후처리도 해야 하니까, 김지상도 그 권유를 수락한 것이고.
자초지종을 다 들은 대표님과 팀장님은 짧게 대화하시더니 대략적인 대응 계획을 우리에게도 말씀해 주셨다.
“이미 파장이 꽤 크게 오고 있어서, 우리도 공지를 세게 할 거야.”
지금까지 어나더뮤직은 물밑에서 KMC에게 연락을 걸었을 뿐 두세 번 이상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방송 내용과 별개로 우리 성적이 좋은 편이었으므로, 공문과 연락은 문제를 널리 알리기보다는 상황을 기록하는 용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기록을 토대로 일을 공론에 올리고 유감을 표명해 KMC와 전면 대결을 하고자 한다고, 팀장님은 말씀했다.
“너희도 병원 가거나 다른 문제 상황 겪으면 서류, 증거 같은 거 되도록 남겨두도록 하고.”
그 당부의 말을 끝으로 임시 브리핑이 마무리되었다.
두 분은 이 시간에 회사로 가서 긴급 공지를 올리고 모니터링을 한다고 하지만……. 나나 지상이까지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팀장님은 몰고 온 차를 찾아 가시고, 대표님이 똑바르게 앉으며 뒷좌석에 물었다.
“집으로 가지요? 태워줄게.”
짧은 침묵이 감돌았다. 지상이는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녀석을 보며, 내가 선수를 쳤다.
“숙소로 갈게요.”
“음? 숙소로?”
“회사로 가시잖아요. 가까운 데서 내려주세요.”
숙소와 회사는 차로 오 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다.
그리고 바로 이때 숙소는 두 집 다 비어 있을 것이다.
‘투어 끝내고 귀국까지 일주일쯤 남았나.’
한국에 도착한 직후에는 며칠쯤 휴가를 받을 테니, 실제 복귀까지는 2주는 걸리지 않을까.
마침 나도 김지상과 둘이서 대화를 하고 싶었으니까……. 딱 좋았다. 아무도 없는 공간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