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69화
15. Tamed-Dashed(6)
조명 장치로 인해 공기가 온통 뿌옇게 보이는 공연장, 무대 위.
소음과 눈에 보이는 사고, 사고의 냄새, 혼란이 들끓는 순간…….
류희재는 밀물처럼 동시에 밀려드는 여러 정보에 오히려 정신이 멍해졌다.
주변의 변화가 느릿느릿 느껴졌으며 자신의 몸을 빠르게 놀리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그리고 돌발 사건에 당황해 행동이 굼뜬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대부분이 그랬다.
정확히 묘사하면, 그 무대 위에서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지 않은 사람은 정의헌밖에 없었다.
바삐 자세를 바꾸어대는 그의 옆얼굴을 응시하며 류희재는 무심코 생각했다.
‘쟤도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무슨 상황에서도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대처는 신속했지만 지금 정의헌은 묘하게 허둥거리고 있었다. 실신한 동료를 옆으로 눕혀주는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이 보였다.
수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상황에서도 정의헌은 꽤나 재빠르게 응급조치를 취했다.
“형, 빨리. 신고부터요.”
그에 더해 가까운 시선이 느껴지면 바로 부탁까지 해온다. 눈과 손으로는 환자의 몸을 조이는 단추를 푸는 데 집중하면서도.
류희재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무대에 올라오는 스태프에게 구급차부터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고개를 돌려 보게 된 객석은……. 엉망이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저 보기만 하는 사람들, 빨리 대처하라고 제작진에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
핸드폰은 입장할 때 걷는다고 들었는데, 몰래 반입했는지 머리를 숙이고 타자 치듯 어깨를 들썩이는 사람이나 어깨와 어깨 사이로 스마트폰 후면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사람도 보였다. 그러한 규정 위반 행위도 통제되지 못할 만큼 실내는 아수라장이었다.
무대 바로 밑에서는 동그란 안경을 쓴 방송 작가 한 명이 카메라 감독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 지금 찍어요, 빨리.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간신히 입 모양이 보였다.
어떤 스태프는 객석에 설명하기 위해 뛰어가고, 현장에 있던 PD도 여러 명 달려오고, 저마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애쓰는 상황.
금방 앰뷸런스와 의료진이 도착하고 김지상이 들것에 실려 나갔다.
기절해서 들리지도 않을 텐데 ‘지상아, 지상아’ 하고 그 이름을 부르는 팬도 몇 있었다.
그들이 가까스로 통제된 직후 스태프들이 무대 위를 먼저 정리하는 동안, 류희재 바로 옆에서 PD와 정의헌이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
본 계획대로라면 무대가 끝나자마자 사후 인터뷰를 해야 했기에, 그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는 듯했다.
“같이 가 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인터뷰는 하고 가야죠, 그래도.”
정의헌은 단호하게 대답했으나, 지금 당장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이 두 눈에 역력했다.
감정을 숨기지도 못하면서……. 본인이 맡은 역할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 분명했다.
류희재는 잠시 며칠 전 정의헌에게 들었던 말을 상기했다.
‘막냇동생이 태어날 때 몸이 조금 안 좋았거든요.’
그래서일까, 이렇게 능숙하게 응급처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동시에 정의헌의 불안한 옆얼굴을 기억했다. 그 잔상이 눈꺼풀 아래 남아 눈을 감을 때마다 선명히 보였다.
류희재에게는 그 모습이, 김지상이 혼절한 사건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그래서, 그는 평소답지 않은 행동을 했다.
“야, 정의헌. 너도 가.”
PD와 정의헌 사이의 대화에 끼어든 것이다.
류희재는 제 어깻죽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너도 다쳤잖아. 그거 병원 가야 돼.”
조금 전, 쓰러지는 김지상을 받아낸 게 정의헌이었다.
그는 무려 무대 저 끝에서 한달음에 달려와 바닥과 사람 사이에 끼어들 듯이 몸을 던졌다.
이 덕분에 충격이 분산되어 김지상은 머리와 같은 급소를 보호할 수 있었지만……. 정의헌도 세게 부딪쳤으니까.
의상을 집어 놓은 집게가 바닥재에 밀려 뜯기고, 벗겨진 구두와 함께 나뒹굴던 모습을 류희재는 또렷하게 보았다.
우당탕 소리가 날 정도로 소란스러운 충돌이었으니 어깨나 등, 팔에는 타박상이 남았을 게 분명했다.
“내가 네 얘기까지 대신 할 테니까 다녀와.”
류희재가 말했다.
리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연장자였으니까, 인터뷰 리드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일순 정의헌 그리고 김미진 PD가 눈으로 ‘형이……?’, ‘네가……?’ 하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류희재는 읽어내지 못했다.
“그렇게 해요. 분위기가 이래서 아예 인터뷰가 취소될 수도 있기는 한데…….”
PD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자, 정의헌은 짧게 고민하는 듯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기 전 깍듯하게 인사했다. PD에게도 류희재에게도.
그리고 단거리 질주를 하듯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 * *
보리 @kimjisang_bori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너무 놀라가지고... 플로우 끝난 것 같아서 상황 설명은 많이 안 하겠는데, 지상이 쓰러진 거 맞아요. 제가 2번째 줄이었어서 다 보였습니다;; 넘어질 때 ㅈㅇㅎ 님이랑 부딪혀서? ㅈㅇㅎ 님이 지상이 받아줘서? ㅈㅇㅎ 님도 나중에 따라 나갔어요. 분위기 엄청 심각했고요;; 무대 끝나고 인터뷰도 4명만 남아서 했어요... 터치 팀이 마지막 무대였어서 못 돌아오고 촬영 끝났습니다 ㅠ
쥬나 @jujyuna
터치 너무너무 잘 어울렸고, 팀원 다 잘해서 무대 완벽했어요
앵콜 요청도 나오고 호응 엄청 좋았거든요
팬들 다 속상해하고 있는데 애 자기관리 못한 게 잘못이라고 욕하는 분들은 ㅋㅋㅋ 꼭 돌려받으시길 바랄게요
쏘르니 @10_UP_07
진짜 쿵 소리 나게 넘어졌어요 아무리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도 그렇지 현장 스태프들 아무것도 못하고 멀뚱멀뚱 보고만 있고 ㅋㅋㅋ 오죽하면 같팀 멤버가 응급처치를 했을까요... 애초에 이 상황 방송국 책임 없다고 할 수 있나요? 데프아 제작진들 전생에 부모 원수 진 것처럼 애 악편한 거 누가 몰라요 얼마나 스트레스였으면 애가 녹화 도중에 쓰러지냐고요 출연진 컨디션 사전 케어도 못한 거죠 이건...
????아드???? @kimjisanglover
아 진짜 속상해 죽겠다 ㅋㅋㅋㅋㅋ 이번에도 어떻게든 꼬투리 잡아서 악편하거나 방송에서는 없던 일 될 거 아니까 더 속상해 애가 쓰러졌다고요 문제 절대 덮지 말고 정식으로 사과하세요 니들이 인간이면 #데프아_제작진_사과해
뉘 @stnstnjsjs
아니 난 애 생일 얼마 안 남았다는 게 제일 눈물나 지상이 행복만 해야 되는데
* * *
‘아오, 스트레스받아…….’
정의헌의 팬, ‘밀월여행’의 밀월은 툿투에서 공유가 많이 된 글 중 중요해 보이는 글을 몇 개 리툿한 뒤 잠시 핸드폰 화면을 껐다.
월요일 아침을 앞둔 새벽인데, 그는 벌써 네 시간 넘게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3차 경연 방청만 당첨되었다면 일 분에 한 번씩 툿투, 인리얼그램, 페블로그 같은 SNS나 복덕방, 썰캐스트, 리플페이퍼, 쇼라우드, 메모톡, 천하여장군 따위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돌아가며 새로고침 하지 않았을 텐데……. 불운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다.
‘피곤하다, 피곤해.’
처음에는 낚시 글인 줄 알았는데 수많은 증언과 사진, 영상 클립까지 공유되자 온 커뮤니티가 들썩였다.
속상해하는 반응, 걱정, 분노 등 날것의 마이너스한 감정이 너무 많았다. 접하다 보면 피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주 안에는 공식 입장 나오겠지. 잠이나 자자.’
밀월은 방 전등을 끄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누우며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깜깜한 방, 혼자 빛나는 핸드폰 화면 도착한 새 알림이 하나 보였다.
Another Music Official @Another_Music
[공지]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 김지상, 정의헌 건강 상태 관련 안내
▶ anothermusic.com/…
현 시각 새벽 두 시 오십 분, 어나더뮤직 공식 툿투 계정에서 온 ‘새 글 업로드 알림’이었다.
‘미친……. 이 시간에 일하시다니 고생 많으십니다.’
밀월은 당황 반 안심 반으로 링크를 클릭했다.
본문은 제목에 충실한 내용이었다. 김지상이 무대를 마치고 실신한 것이 사실이며, 현재 병원으로 옮겨져 정신을 되찾아 회복 중에 있단다. 이때 부딪혀 다친 정의헌의 손가락 염좌는 가벼운 수준이라 치료를 마쳤다는 이야기.
덧붙여 어나더뮤직은 기존에 〈데프아〉 제작진에게 악의적인 편집에 관해서도 공문을 보내 사과 및 정정 방송을 요청한 적 있는데, 그조차도 해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이 겹치니 몹시 유감스럽다는 입장도 공지에 적어 놓았다.
게다가 소속 아티스트의 악성 게시물에는 지속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제보 역시 받고 있으니 언제든 연락을 해달라는 추신까지.
어나더뮤직은 언제나 아티스트의 권익 보호에 힘쓰고 있으며 강경하게 대응할 예정……. 어쩌고저쩌고 미주알고주알.
뒤로 갈수록 과해지는 감은 있었지만, 같이 벅차오른 밀월은 글을 비판적으로 읽지 못했다.
‘크윽……. 이거지.’
밀월은 글을 인용해 타임라인에 공유했다.
밀월 ˚₊ᄋ—̳͟͞͞♡ @H0N3YM01N
얘들아 어나더 메일함 비웠대 새로 총알 쏴주자 ლ(˃ᴗ˂ ლ)
소속사 공지가 방송국 공지보다 빠를 줄은 알았지만, 이번에도 이렇게 빠를 줄은 밀월로서도 몰랐다.
회사가 워낙 작다 보니……. 해외투어 중에는 대응이 비교적 느리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공지 글을 해외에서 낮에 썼든 한국에서 새벽에 썼든 소속사 직원들만 불쌍하게 된 건 매한가지였다.
‘신경 잘 써주니까 좋긴 해.’
그렇기 때문에 스테리나인 멤버들이 〈데프아〉를 통해 데뷔해 새 둥지를 트는 모습이 조금은 걱정되는 그였다.
〈데프아〉 데뷔 그룹 매니지먼트를 맡을 KMC의 자회사 ‘K14엔터테인먼트’가 신생 기획사라는 점도 불안했다.
언제 한번 인터넷을 찾아보았는데, K14엔터테인먼트의 대표라는 사람도 인상이 부리부리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현모 닮았다.’
스마트폰 속 조그만 사진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던 적도 있다.
배우 조현모의 성격 나쁘고 잘못 늙은 버전처럼 생겼다고 해야 하나.
밀월은 관상학을 믿지는 않으나 얼굴 취향은 확고한 편이었다.
‘음?’
잠을 자기로 마음먹었지만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괜히 인터넷을 여기저기 찾아보던 때였다.
익명 질문함인 ‘퀴즈폼’에 도착한 메시지 한 통이 밀월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 밀월님 이거 보셨나요... ???? 이거 진짜인 걸까요...? [사진]
익명의 게시자가 보낸 사진은 한 캡처 이미지였다.
텍스트가 가득한 캡처 상단에는 ‘증권신고서(지분증권) - [기업] K14엔터테인먼트’라고 적혀 있었다.
소속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문서였는데, 문제는 글에 포함된 새 그룹 계약 및 프로모션 관련 계획이었다.
- 당사는 KMC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 예정인 10인조 보이그룹(가칭 ‘A’)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변동 가능성은 존재하나 계약 종료일은 2021년 상반기 중으로 예상합니다.
밀월은 글을 읽자마자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웠다.
‘2021년이면……. 5년?’
방송 시작 전 공지된 데뷔 그룹 활동 기간은 분명 ‘데뷔 준비 기간 포함 1년 8개월’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