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 안 그만 두겠습니다-68화 (68/192)

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68화

15. Tamed-Dashed(5)

〈TOUCH〉라는 곡은 애초에 ‘이어질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 남성의 노래’였다.

시청자 투표를 받기 위해 곡 소개를 한 줄로 요약해서 달라고 했더니 프로듀서 대표가 그렇게 정리해서 주었다.

그리고 연습생들이 곡 녹음을 위해 프로듀서 작업실에 찾아갔을 때 그는 진지하게 곡 제작 비하인드를 추가로 설명했다.

‘이어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은 ‘이미 임자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면서.

매니악한 코드일 수는 있지만, ‘새 사람과 새 사랑’이라는 취지는 서바이벌 방송과 어울리지 않냐며 프로듀서는 호탕하게 웃었다.

현장에 같이 있었던 허윤아 작가는 그 말을 ‘우와, 통편집 각 나온다’라고 속으로 평가했던 것 같다.

‘불륜 같은 가사인 줄 알았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투표 안 했겠지.’

하지만 곡은 이미 나왔고, 〈TOUCH〉는 치열한 경쟁 끝에 이 여섯 명에게로 도착했다.

연차가 있는 가수도 아니고 방송에 참여하는 연습생들이 이미 만들어진 노래를 수정해 봐야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가사를 해석해 스토리나 소재거리를 추가해 그나마 덜 어색하게 만들기, 그 정도가 최선이었을 테다.

‘그렇게 노래 서사가 과해지면 오히려 더 애매해지는데.’

아무리 세계관이나 판타지 콘셉트가 유행이라고 해도, 클래식은 간단하고 직관적인 멋이었다.

유행이 나쁜 것도 아니고 유행에는 대개 유행의 이유가 있었지만……. ‘클래식 이즈 베스트’가 허 작가의 취향이었다.

허 작가는 괜스레 아쉬운 기분이 들어 입맛을 다셨다.

난 알지 내 손길이 닿을 때

네 눈 속 날 보는 작은 떨림

Uh Uh, 날 더 세게 당겨줘 더 내게 빠져

Umm Umm, 네 끌리는 맘 알아 다가와

도입부가 지나고 정의헌이 중앙 대형에 섞이면 왼쪽 끝에서 김지상이 나와 1절을 이어갔다.

음을 높이는 ‘다가와’ 가사 파트는 뒤로 빠진 정의헌이 더블링, 즉 같이 불러주는 서포트가 들어간다.

부드럽고 유혹적이면서, 조금은 애절한 느낌마저도 들었다.

한편 허윤아 작가는 자신이 아는 내용과 지금 보이고 들리는 스토리를 대조하는 데 집중하며 무대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손을 더 뻗어 Touch my Body

멈추지 마 Touch me like this

1절이 조금 더 전개되고, 후렴이자 ‘킬링파트’라고 불리는 포인트 안무 구간이 찾아왔다.

연습생들이 가사와 박자에 맞춰 오른손을 왼쪽 어깨로, 손가락을 건반 두드리듯 움직이며 서서히 올렸다.

그리고 ‘Touch’, ‘Me’, ‘Like’, ‘This’ 구절에 맞추어 입가, 어깨, 허리, 골반으로 손끝을 짚고 내려갔다.

두 손이 허리와 골반을 짚고 짧은 순간 엑스 자로 교차하면, 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시작하기 전 VCR로 상영된 파트가 바로 이 대목이었다. 끈적한 움직임에 허 작가도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말을 해줘 Why don’t you do it

닿게 해줘 너 이끌린다면

후렴의 뒷부분은 메인보컬을 맡은 류희재가 불렀다.

특이하다고 할 수는 없는 음색이었지만, 스킬은 꽤 좋은 편이었다.

‘가사가 바뀐 것 같은데?’

허 작가가 생각했다. 처음 가사는 ‘어서 말해 Why don’t you do it’, ‘숨기지 마 네 이끌리는 맘’이었으니까.

묘하게 유혹적인 해석이 되었으면서도, 파괴적인 색채가 한 단계 흐려진 것 같았다.

무언가 깨달을 듯했으나 애매했다. 허 작가가 홀로 고뇌하든 말든 음악은 계속 진행되었고.

1절이 끝나자마자 무대 위 연습생들은 가운데로 뭉쳤다가 서로 다른 위치로 흩어졌다.

One Stop 난 다 이용할 수 있어

더 납작 빌라면 빌어볼게

2절을 시작하는 파트 주인은 ‘보컬 2’ 김지상.

이 대목에서 허윤아는 깨달았다. ‘아미고’ 팀은 가사 속 불륜을 의미하는 은유를 전체적으로 들어낸 듯싶었다.

프로듀서가 제공한 이 파트의 가사는 원래 ‘너’에게 존재하는 위험 요소, 즉 이미 존재하는 연인을 견제하는 내용이었으니까.

그러나 무대 위 이들은 개사와 편곡을 통해 ‘나’의 위치를 낮추면서도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I Mean 예민한 이 감각을

Touch More 네 손길로 깨워줘

그리고 정의헌과 류희재의 페어 안무를 중심으로 한 파트가 흘러갔다.

두 사람이 거울 보듯 마주 보고 안무를 따라 하는 동작. 허 작가가 보기에는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하는 메타포 같았다.

Uh Uh, 날 더 세게 당겨줘 더 내게 빠져

Umm Umm, 네 끌리는 맘 알아 다가와

교대하듯 류희재의 후렴이 들어오고, 이미 들은 멜로디가 반복되는 동안 허윤아 작가는 입가를 매만졌다.

그는 이 틈을 타 자신이 알고 있던 비하인드를 머릿속에서 지워내기 위해 노력한 뒤, 지금까지의 무대 서사를 복기하였다.

‘상대의 감정은 아직 사랑이 아니고, 이끌리는 수준인 것 같고.’

그래서 노래의 주인공은 과감하고 오만하게 상대를 유혹하려고 하다가도, 상대의 발밑에 엎드리겠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지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세를 숙인다.

상대방의 승인을 바라고, 자신이 가진 모든 –예컨대 목소리나 얼굴이나 몸 같은– 것을 유혹의 도구로써 동원한다.

더 거세게 상대를 휘어잡을 것인가, 간절하게 빌어볼 것인가. 두 마음은 충돌하고…….

‘어울리는데?’

허 작가는 깨달았다. 이건 곡을 해석하는 능력의 문제라고.

서사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

다시 말해 그는 지금까지 정말로 이상한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스토리가 아니야. 클래식하게 생각했어야지! 콘셉트, 심상, 분위기!’

그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

이미 만들어진 곡을 자신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형태로 소화했을 뿐이다.

예컨대 정의헌을 제외한 다섯의 팀원들은 어딘가 예민하면서도 유약한 느낌이 있었다.

몸과 얼굴선이 여렸고 소년 같은 면이 있었으며, 그 건강미가 부족한 특징들은 때로 사람을 맹목적으로 보이게까지 했다.

게다가 정의헌도, 이성이나 친분 있는 이들 앞에서는 매너를 차리는 인상이지 않나.

그러니까 팀원 여섯 명 모두에게는 ‘사랑한다면 자존심을 내려놓고도 매달릴 것 같은’ 이미지적인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 〈TOUCH〉의 콘셉트가 이렇게 변한 것이다.

사랑의 방해물은 ‘상대의 연인’ 따위가 아니다. 문제는 상대의 망설임 그 자체고…….

‘강압적인 요구’는 이제 ‘허락을 구하는 유혹’으로.

‘이어질 수 없는 이유는 아직 상대가 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연습생들은 신기하고 충격적으로 무대를 꾸리려고 노력한 게 아니었다.

단지 이 노래의 원곡자가 되어 최선을 다했다.

‘자기 자신을 알고 팀원들을 알아서 이런 결과를 낸 거야.’

이러한 이미지는 분명 프로듀서가 의도한 ‘불타오르는 거친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 노래는 더는 프로듀서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무대에 오른 이상 이제 〈TOUCH〉는 퍼포머, 즉 아티스트의 소유였다.

말을 해줘 Why don’t you do it

닿게 해줘 너 이끌린다면

2절 후렴이 끝나자 ‘킬링파트’를 맡은 김지상이 중앙에 섰다.

조명을 받아서 은색 귀걸이 장식이 반짝 빛났다.

음악이 조용히 멎고, 관객들은 숨을 죽인다.

김지상이 고개를 들어 중앙 카메라와 눈을 마주했다.

절제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고음 파트를 제하고 삽입된 속삭임.

Touch, Kiss, Chew, Love

손목 안쪽에 입술을 대는 김지상의 제스처 퍼포먼스까지.

직후 노래가 들어오며 15초 내외의 짧은 댄스 브레이크가 시작되었다.

멤버들이 거리를 좁히고 벌리는 움직임에 맞추어 반주 위에 악기 선율이 풍부하게 쌓였다.

정열적인 라틴 리듬. 현장 세션 연주는 아니지만, 트럼펫부터 기타, 피아노, 그 위에 얹히는 낯설지만 우아한 소리까지.

‘반도네온이라고 했나?’

가상악기를 쓰지 않고, 한국에 몇 없는 연주가를 직접 불러 녹음을 부탁할 정도로 프로듀서도 욕심을 냈다고 허 작가도 들었다.

댄스 브레이크가 끝나고 첫 소절에 맞추어 불꽃이 아래에서 위로 터졌다.

소위 3절이라고 부르는 마무리가 ‘만지고, 입 맞추고, 깨물고, 사랑하는’ 가사로 진행되었다.

서서히 하강하는 분위기. 그러나 페이스를 유지한 채다. 성급하지 않게.

손끝에 네가 느껴진 그 순간

돌이킬 수 없단 걸 알았어

Ah Woo 네가 날 숨 쉬게 해

나를 네 것으로 만들어

정의헌의 가창.

여섯 팀원이 무대 위에서 떠돌듯이 걸어 대형을 바꾸었다.

좌측에 선 사람은 우측으로, 우측에 선 팀원은 좌측으로.

Let me feel you

허락해 줘

마지막으로 류희재와 김지상이 화음을 맞추었다.

한곳으로 모이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포즈를 취하며 노래가 종료되었다.

박수, 함성, 그리고 앵콜 요청이 섞인 소리를 들으며 허윤아 작가는 눈을 깜빡였다.

무대에 빠져든 대가로 여운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인기 연습생들의 팀이므로 당연히 앵콜이 나올 줄은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환호가 드라마틱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잘하긴 진짜 잘한다.’

허 작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답을 내놓으며 스테이지 아래에서 오가는 지시를 보았다.

카메라에 소리가 들어가지 않게 카메라 보조 스태프가 손가락을 다섯 개 펼쳐 들고 초를 세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서 ‘엔딩 요정’이라고들 부르는 개인 클로즈업이 끝나면, 사후 인터뷰를 위해 곧바로 MC를 무대에 올리겠다는 신호였다.

5, 4, 3.

카메라 감독이 마지막으로 ‘래퍼 2’ 포지션 멤버의 엔딩 포즈를 카메라에 담았다.

2.

무대를 비추던 조명이 몇 개 꺼지며 관객의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곧 찾아올 다음 신을 기다리며, 모두가 마음을 추슬렀다.

1.

MC가 무대에 오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0.

초를 세던 스태프가 손가락을 모두 접어 주먹을 쥐었다.

흰 조명 여러 줄기가 다시금 무대에 드리우고, MC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사전 인터뷰를 했을 때처럼 한 줄로 설 수 있도록 ‘아미고’ 팀 연습생들이 위치를 옮겼다.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 연습생도 종종걸음으로 옆으로 가는 연습생도 표정이 좋았다.

다들 채 가시지 않은 열기에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뒤로 걷던 그의 두 발이 서로 엉켰다.

힘없이 접히는 무릎.

기울어지는 몸.

우당탕.

갑작스러운 사고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저마다 재빠른 반응을 보였다.

허윤아 작가도 놀라서 상황을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움직였을 정도다.

현장 관객 천팔백 명, 촬영 스태프, 연예 관계자들, 기자, 방송에 출연하는 트레이너, 프로듀서, MC, 연습생들.

모두가 보았다.

“야, 김지상!”

마이크는 꺼져 있었지만, 객석 가까운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웅성웅성 소음은 앞에서 뒤로 번져갔다.

왜, 뭔데. 무슨 일이야. 누가 넘어졌어. 지상이 아니야? 김지상? 진짜 그냥 넘어진 거 맞아? 의헌이 방금 뭐라고 한 거야? 방금 목소리 정의헌인가?

점점 의혹만 쌓이는 까닭은 스크린과 연결된 카메라가 무대 위 현장을 제대로 비춰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뒤에 선 사람들은 제대로 볼 수 없었으나,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깨달았다.

이것은 예기치 못한 사고라고.

곧 이천 명에 가까운 이들은 모두 알게 되었다.

김지상이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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