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66화
15. Tamed-Dashed(3)
정해나, 그러니까 내 동생이 겪은 병과 김지상의 질환이 아주 같은 것은 물론 아니다.
증상이나 관리 방법, 그리고 어렸을 때 치른 수술의 종류까지 자세히 따지고 들어가면 오히려 비슷한 게 없을 터.
하지만 나는 해나가 어릴 때부터 고생하는 모습을 계속 봐왔고, 내게는 그 기억이 조금 깊게 남아 있다.
‘두 사람을 겹쳐 보지 않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까운 누군가 그렇게 앓는 게 솔직히는 두렵다. 조금은 반사적으로.
아무튼 내가 김지상 상태가 조금만 안 좋아 보이면 바로 걱정하고, 지나치게 보호하려고 드는 것도 그 후유증이다.
본래 김지상도 아이돌이 본업인 만큼 춤을 추거나 콘서트 세트리스트 급으로는 달리는 게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지상이는 내가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 자체를 귀찮게 여겼고, 그래서 나도 웬만하면 걱정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보통은.
‘그런데 지금은……. 물러나기에는 긴급한 상황 같다.’
음, 이렇게 갑작스레 컨디션이 악화된 것은 역시 스트레스 때문일까.
방금 전 고위 관계자로 추정되는 아저씨와의 만남이 이제까지 차근차근 쌓아놓은 불안의 도미노를 넘어뜨린 셈이다.
당연히 이 비유라면 오랜 시간 도미노 패를 빼곡하게 세워둔 원인도 따로 있다.
‘그게 아마도 최근 방송된 〈데프아〉 분량이겠지.’
악의적인 방송 내용과 그로 인한 네티즌의 비난 말이다.
이제 와 따지자면……. 휴식하는 장면을 짜깁기한 편집은 정말이지 최악의 아웃풋이었다.
김지상은 일상생활은 무난하게 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체력과 지구력이 약해 남들보다 더 자주 쉬며 충전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다. 음식도 가려 먹어야 하고,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며,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검진을 해야 하는 등 지상이에게는 아직도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하는 요소가 많다.
그리고 그게 김지상의 콤플렉스라는 것을……. 우리 멤버들은 모르지 않는다.
‘걔가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는데 어떻게 몰라.’
지상이는 본인의 건강 문제로 주위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지난 방송 촬영에서도 남들보다 몇 배로 노력했을 게 틀림없다.
원래 그러는 애다. 촬영 파일을 잘라 붙인 사람들은 무심코 저질렀겠지만.
‘다시 말해, 비협조적이고 게으른 이미지란…….’
김지상이 가장 ‘그렇게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피하고 싶은 모습이지 않을까.
즉 저번 방송은 막말로 제작진이 김지상의 멘탈 나가는 스위치 위에서 탭댄스를 춘 셈이나 다름없었다.
“형.”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의상 스태프가 건네준 생수병 뚜껑을 따 지상이 손에 쥐여주었다. 물병을 받아가는 손아귀 힘이 느슨했다.
“형, 나는 그런데.”
입안을 헹구듯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대답하는 김지상의 목소리가 침착했다.
“지금 포기할 수는 없어. 형이야말로 알잖아.”
그리고 일어선다. 나도 따라 일어서 부축해 주려고 했으나, 저지당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거고…….”
중얼중얼 말하며 김지상이 대기실 문을 열었다.
메이크업 때문에 발간 눈가가 실내 조명을 교묘하게 받아 더욱 붉어 보였다.
“나는 진짜, 지금 안 하면 안 돼.”
“…….”
“쓰러져도 끝나고 쓰러질 거야.”
찐득한 집착이 묻어나오는 목소리.
말리면 안 된다, 그럴 수는 없다, 이성이 내게 아우성쳤다.
그게 다른 누구도 아닌 김지상을 위하는 길이라고 머리가 계산해 냈다.
‘원하는 결과가 나와야 본인을 긍정할 수 있을 거야, 김지상 같은 성격은.’
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했다.
최선을 다해 불사르고 싶다는 것은 이 녀석의 욕심이고, 욕심으로 도전하는 자세라면야 나쁜 것이 아니다.
‘믿자, 얘가 할 수 있다고.’
달리 생각해 보면 나의 목표는 김지상이 그룹을 나가서 개인으로 성공하는 미래를 없애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도 조금은 보고 싶다.
김지상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게 제 몫을 성취하는 모습을.
‘내가 기회를 뺏은 게 아니라고 증명해 줄 사람은, 결국 이 녀석 본인뿐이니까.’
나는 앞서는 김지상을 (메이크업한 얼굴을 터치하지 않는 선에서) 잡아세워 내 쪽을 보게 했다.
“김지상.”
“왜.”
그래도 이런 필사적인 각오는 모쪼록 정신적으로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분위기 좀 풀고 가려는 거다. 원래 좋은 것으로만 채워도 아쉬운 게 무대 공연이다.
“우리 며칠 전에 회사 근처에서 먹은, 그 육전덮밥. 네가 맛있었다고 했지.”
일주일 전인가 열흘 전인가, 김지상이 인터넷 보다가 찾아와서 ‘회사 근처니까 한번 먹자’고 해서 같이 가줬다.
원래 맛집 탐방은 다 같이 가는 재미인데 멤버들은 한국에 없고 안승준은 귀찮다고 해서 둘이서만 갔다.
난데없는 주제에 김지상은 갸웃하면서도 ‘응’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끝나면 우리 그거 또 먹으러 가는 거야, 알았어?”
나는 지상이 얼굴 주변에 두었던 손을 어깨로 내려 힘주어 주물렀다. 역시나 근육이 굳어 있었다.
“어깨 힘 빼고. 생각을 비워. 끝나면 뭐 할 건지만 따져.”
“도레미식탁 육전덮밥…….”
“그래, 너 거기 비빔만두도 먹어보고 싶다면서. 다 시켜, 사줄 테니까.”
그제야 김지상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내가 무슨 애인 줄 알아, 먹을 거 사주면 얌전해지게.”
“남이 뭐 사준다고 하면 ‘예,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야, 짜샤.”
‘예, 예. 감사합니다’ 심드렁하게 말하며 지상이가 내 등을 가벼이 밀었다.
계단을 오르는 마음으로 주어진 과제를 해낸다. 우선은 무대, 그다음은 사건 뒤처리, 그다음에는 또 다른 일이 생길 테고…….
숨 돌릴 틈 없이 발생하는 사건의 연속에 도리어 내가 비장해지는 기분이다.
‘나야말로 생각을 비워야 할지도 모르겠어.’
되뇌며, 나는 무대와 연결되는 복도를 걸었다.
* * *
“3번 스피커에 이상 발생했습니다!”
“뭐, 무슨 이상?”
“소리가 찢어져요! 선만 교체하겠습니다!”
출연자들이 무대에 오르기 직전, 다급한 고함이 오가는 백스테이지.
‘저렇게 소리칠 바에는 무전기를 사용하지’라고 누군가는 생각할 법했으나 다들 마음이 급해 어쩔 수 없었다.
3번 스피커에서는 말마따나 ‘지지직’ 소음이 흘러나왔고, 음향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그 방향으로 뛰어갔다.
뒤섞이는 스태프들의 목소리 사이에 허윤아 작가가 끼어들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5분, 아니, 7분은 걸립니다!”
“연습생들 무대 전 인터뷰 지금 올려도 되나요?”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각자 다른 스태프가 대답했다.
약간의 침묵 끝에 나온 ‘불가능하지 않다’라는 결론. 부정이 두 개나 들어간 말은 사실상 안 된다는 의미일 테다.
“현장 양해 구하고 MC 멘트 길게 갈게요~”
현장 연출 담당 김미진 PD가 지시를 내리며 혼란이 일단락되었다.
지금껏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느라 고생만 했지만, 본래 이런 때에 트러블을 정리하고 해결책을 내는 게 그의 업무였으므로.
김 PD의 말에 스태프 몇 명이 공지를 돌리러 MC에게로, 관객석 방향으로 흩어져 뛰어갔다.
그리고 짧게나마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허윤아 작가는 그 즉시 앉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허 작가의 움직임에 따라 김 PD가 고개를 돌렸다.
“윤아, 어디 가. 지금 바쁜데.”
“애들 확인하게요.”
“시간 없을 텐데. 알았어, 빨리 와.”
김 PD가 어렵지 않게 허락했다. 그도 〈TOUCH〉 팀 대기실을 지키던 막내 작가의 보고를 들었으므로.
아직 상부에 연락을 넣지는 않았지만, 중간에 낀 입장인 김 PD와 허 작가는 사태의 심각성을 즉시 깨달았다.
특히 허 작가는 생각했다.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어.’
보고에 의하면 연습생들은 멀쩡한 듯했지만, 별개로 가해자(어쩌면 가해자들)의 범죄 행위가 명백했다.
허 작가가 보기에 김미진 PD도 지금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 같았다. 당장 일이 많고 보는 눈을 의식해서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아무튼 허윤아 작가는 재빠르게 달려 일 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TOUCH〉 팀원들이 대기하는 복도에 도착했다.
“의헌이, 지상이! 지금 괜찮아?”
“……어, 작가님?”
가장 먼저 막내 작가가 꾸벅 인사했고, 호명을 당한 두 사람 중에서는 정의헌이 먼저 반응했다.
김지상은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둘 다 어디 다치지 않고 대기 줄에 멀쩡하게 서 있었다.
메이크업도 흐트러지지 않고 옷차림도 단정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후속 조치를 취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상태가 된 듯했다.
허 작가는 막내 작가에게 확인을 구하고 두 사람을 다른 팀원들과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왔다. 아주 먼 장소는 아니었으나,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면 서로 들리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이야기 들었거든요. 상태는 어때요? 무대 올라갈 수 있겠어요?”
허 작가의 시선이 자연스레 김지상에게 고정되었다.
파리한 것이 아무래도 좋아 보인다고 표현할 수는 없는 낯이었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하지만 김지상은 단호했다.
“무대는 저희가 하고 싶어서요. 이번만 무리 좀 할게요.”
그 옆에서 정의헌이 웃으며 설명을 추가했다. 너무 의연한 모습에 오히려 허 작가의 가슴이 조마조마 두방망이질을 쳤다.
방송 측에서 잘못한 일이 맞는데,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상대의 생각이나 감상을 알 수가 없어 허 작가로서는 혼란이 더욱 심해졌다.
화가 났는지, 충격을 크게 받았는지, 아니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 괜찮은지. 알아야 대응책을 떠올릴 텐데 말이다.
“저, 그러니까. 일이……. 일이 그렇게 된 건 우리도 예상을 못 해서. 미안해요. 그건 대신 먼저 사과하고, 그러니까…….”
말을 하면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허 작가 스스로가 이는 자신이 대신 사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객 민원 해결이 그녀의 본업이 아닌지라 일어나는 소통 실수였다.
‘아!! 지금 나 너무 바보 같아……!’
허 작가 잘못이라기보다는, 개인의 힘으로 수습할 수 없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 것이 문제였지만.
마음을 허둥지둥 졸이며 실시간으로 자존감을 뚝뚝 떨어뜨리던 허 작가에게 브레이크를 건 것은 공교롭게도 정의헌이었다.
“잠시만요, 작가님.”
그가 조용히 말하고는, 등 뒤로 손을 돌려 허리에 미리 붙여둔 마이크팩을 짚었다.
그리고 마이크와 연결된 코드를 툭 뽑아냈다.
지금 스피커와 마이크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무슨 말을 해도 객석에서는 듣지 못한다는 것은 세 사람 모두 알았다.
이는 그저 앞으로 조심스러운 말을 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퍼포먼스였을 뿐이다.
달랑거리는 마이크 연결선을 한 손으로 잡고 정의헌이 말했다.
“말씀 먼저 드릴게요. 요청이 아니라 부탁인데요.”
“네?”
“윤아 작가님이 저희 좀 도와주세요.”
의외로 그러나 한결같이 상냥한 어투였다.
그가 단조로운 목소리 톤을 유지하며 말을 이어갔다.
“전에 통화했던 거, 녹음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