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안 그만두겠습니다 65화
15. Tamed-Dashed(2)
김지상의 감탄인지 질린 건지 모를 애매한 표정을 보며 나는 조금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도 봐봐.”
녹음기와 호신용 스프레이에 이어 등장한 세 번째 준비물.
130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낸다는 ‘불지 말고 눌러요’ 전자 호각이었다.
나는 알루미늄 통에서 호각을 완전히 꺼내 기계 측면의 스위치를 눌렀다.
삐이이이–.
방이 떠내려갈 만큼의 큰 소리가 울리자, 김지상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시끄러워!”
“사람 부르려면 어쩔 수 없어!”
소리를 뚫고 대화하느라 나도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가둔 사람들이 주워가면 곤란하니 밖에 던져놓을 수도 없고, 소리가 밖과 잘 통하려면 호각을 문 가까이에 두어야 하는데.
이제부터 양손을 써야 해서 나는 호각에 달린 끈을 이로 물고 문고리를 딸깍거리기 시작했다.
“……뭐 해!”
“어?”
“정의헌 뭐 하냐고!”
“문 열게!”
등 뒤에서 외치는 김지상에게 뭉개진 발음으로 대답해 주었다. 서로 고함을 지르는 통에 분위기가 왠지 필사적이었다.
호기롭게 도전하고 있지만, 사실 영상만 보고 배운 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틴케이스에서 나온 것은 락픽 세트, 그러니까 자물쇠 따기 도구였다. 역시나 인터넷에서 샀다.
어깨로 문을 고정하고 양손에 쥔 쇠꼬챙이를 이튜버가 알려주었던 순서대로 잠긴 문고리에 밀어넣었다.
‘왠지 전략 세워 승부해야 할 타이밍에 육탄전으로 고생하는 기분이군…….’
하지만 근력이 있으면 머리가 쉴 수 있으니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찰칵.
문고리에서부터 들리는 소리에 잡념이 멈추었다. 우선 첫 번째 잠금은 풀렸다.
다음 관문이 두 번째 잠금, 밖에서 문가를 막고 있을 막대.
그리고 그 막대를 반대 방향으로 넘어뜨리기 위해 내가 문에 몸을 두어 번 부딪혀 충격을 주고 있을 때였다.
‘응?’
어느 순간 별다른 기척 없이 문이 밖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누군가의 굵은 비명이 터졌다.
“억!”
밀리는 문과 함께 넘어질 뻔한 몸을 겨우 세우고 나는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밖에서 누가 열리는 문짝에 부딪힌 것 같았다. 그것도 내 체중이 실리는 바람에 조금 세게…….
“괜찮으세요?!”
까만 후드를 입은, 까무잡잡한 피부톤의 남자였다. 머리는 갈색으로 염색했는데 앞머리 색만 조금 더 밝다.
시끄럽게 울리는 전자 호각 전원을 끄고, 뒤로 넘어진 남자를 일으켜 주고, 다가오는 김지상을 위해 옆으로 조금 물러나는 일이 순서 없이 뒤죽박죽 이루어졌다.
손발이 바쁜 와중에도 머리로는 이 사람의 정체를 기억하는 게 있는지 열심히 생각해 보며 말이다.
처음 보는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자주 보거나 아주 익숙한 사람은 아니고. 그러니까 아마도…….
“……그, 남소리 선배님 매니저님?”
‘남소리’는 또 누구냐면, 이 방송 〈데뷔 프로젝트: 아레나〉 MC다.
드라마 위주로 활동하는, 청순한 스타일의 여자 배우.
방송 노출은 드라마나 신작 홍보 시기가 고작이고, 그 외의 TV 예능 출연은 잘 하지 않는 타입이라 MC도 〈데프아〉가 처음이란다. 지금이라면 아마 무대 위나 출연진 대기석에서 큐 카드를 넘기고 있을 것이다.
지금에야 몇 달째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긴 하지만……. 애초에 MC는 분량 자체가 많지 않고, 남의 매니저와 친해지는 건 원래 쉽지 않은 일이므로 기억 로딩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헉. 바로 아시네요.”
“아니, 인사부터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그렇지만 저희가 여기서 이러는 건 다 사정이 있거든요…….”
“아, 네…….”
난데없이 도움을 받기는 했는데, 뭔가 정리하기 쉬운 상황이 아니다.
내가 먼저 문밖으로 나서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런데 저희 시간이 얼마 없어서, 이동하면서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헉, 넵. 그럽시다.”
세 사람 머리를 맞대 모아 가까스로 대기실로 향하는 길을 찾아가며, 나는 간단히 이제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말하며 생각한 건데, 어디까지 요약해야 하고 어디까지 밝혀야 할지 도통 애매했다.
하지만 당당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었으므로.
나는 아주 짧은 정리 끝에 ‘갑자기 어떤 사람들이 관계자라고 하며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는데, 들어오니까 문이 밖에서 잠겨서 곤란하던 차였다’ 정도로 일의 내막을 알렸다.
“그런데 용케 그런 호각 같은 것을 들고 다니시네요.”
“저희도 사건이 조금 있어 가지고요.”
매니저는 사건이라는 말뜻을 ‘연예계 활동하며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 같은 것으로 이해했는지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말았다.
사실 저 호각은 배송비 제외 이만칠천 원 주고 인터넷에서 열흘 전에 산 거지만.
“저 궁금한 게, 어떻게 오실 수 있었던 건가요. 저희도 누가 진짜 오실 줄은 몰랐어요.”
“어어, 그게요. 소리 누나가……. 아니, 소리 님이 느낌이 뭔가 안 좋다고 그래서요.”
음? 무슨 일로 주변을 지나가고 있었냐는 질문이었는데, 의외의 답이 나왔다.
예상하지 못한 비하인드에 내가 고개를 기울이자 매니저가 손가락으로 인중을 문지르며 말을 덧붙였다.
“소리 님이 신기 비슷한 게 조금 있어서요. 이번에도 어떻게 잘 맞았네요.”
지금까지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주변인이었는데, 당황스러운 정보다.
문득 연예인 팔자는 무당 팔자와 비슷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대충 그런 건가.
‘누가 나는 오던 귀신도 달아나는 체질이라던데, 그러면 내 팔자는 어떻게 되는 거지?’
흠……. 진로 걱정할 때가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그 묘한 능력 덕분에 어느 정도 탈출 시간이 단축된 건 사실이었다.
“경연 끝나고 감사 인사드리러 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럼요, 좋죠. 소리 누나도 도움 되었다고 하면 엄청 신기해하고 좋아할 거예요.”
기세를 타서 만날 약속까지 대충 정해놓고, 우리는 대기실에 도착했다.
남소리 MC의 매니저는 바로 떠났고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러 있었다.
“저희 왔어요!”
대기실 문을 노크하고 열자마자 방 안에 있던 스태프와 팀원들이 모두 화들짝 놀라 다가왔다.
“왜 이제 와!”
“어디 갔던 거예요?”
“무슨 일이었어요?”
오디오가 사정없이 겹치고, 특히 류희재는 말을 무슨 비명처럼 외쳤다.
“제가 천천히 설명할게요. 시간 얼마나 남았어요?”
“어, 지금 무대 세팅 중이에요. 약간 시간 있으니까 수정만 하고 바로 올라갈게요.”
메이크업 스태프가 벽에 붙은 TV를 곁눈질로 확인하고 말해주었다.
같이 시선을 돌려보니 스태프들이 여러 명 붙어 우리 세트를 무대에 세우는 모습이 화면으로 보였다.
최대한 빠르게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앞 순서 무대를 하나 통으로 놓친 것 같았다.
“네, 네. 저 의상 뒤에 풀렸는지도 한번 봐주세요.”
내 말에 주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이크업 스태프 한 분은 지상이 쪽으로 보내고, 나도 다리를 넓게 뻗고 서서 의상 확인과 메이크업 수정을 받았다.
셔츠 핏 때문에 허리에 집어둔 집게를 반듯하게 다시 끼우고 지워지거나 흐려진 화장을 덧그리는 일이 쏜살같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얌전히 스태프들의 손길을 받고 있는데 한쪽에서 김지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요, 저 잠깐. 앉을게요…….”
그 말과 함께 의자에 툭 등을 대고 앉는 김지상의 안색이 창백하기 짝이 없었다.
“야……. 김지상, 괜찮아?”
“어지러워서 그래. 그러지 말고 설명부터 좀 해줘.”
다가오는 것도 거부하겠다는 김지상의 손짓에, 나는 일단 사건 이야기를 모두에게 발표했다.
가서 나눈 대화의 디테일 정도만 생략하고 MC의 매니저에게 말했던 내용 그대로 말했다고 보면 된다.
‘그 사람 따라가서 갇혀 있게 될 뻔했는데, 경보를 울리니 마침 찾아온 사람이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급으로 당한 것을 숨기지 않았다.
“뭐, 만난 게 어떤 사람이었는데. 특징 같은 거 없어?”
류희재가 초조하게 질문했다.
“동그란 안경 쓰고, 눈썹 위에 작게 흉터가 나 있었는데……. 아, 배우 중에 조현모 선배님 닮았어요.”
“어…….”
얼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자 류희재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배우 얼굴을 떠올리는 건지, 아는 얼굴을 대조해 보는 건지 모르겠다.
“뭐 생각나는 거 있나요.”
“음, 아니.”
있나 보다. 이 건은 나중에 무대 끝나고 따로 물어봐야지.
“저희 이제 무대 뒤쪽으로 이동할게요!”
매무새 다듬기와 대략적인 구술이 겨우 마무리되었을 무렵, 막내 작가님이 무전기로 연락을 받고 대기실에 쩌렁쩌렁 공지했다.
벽에 걸린 화면으로 거의 완성된 현장 세트가 송출되었다.
카메라는 돌아가고, 스태프들은 바쁘고, 관객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팀원들이 문가로 몰리는 와중에 나는 김지상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는, 핏`없는 얼굴. 젖은 이마와 물방울이 맺힌 코끝.
메이크업 스태프가 미니 선풍기로 땀을 말려주고 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지상아, 괜찮아?”
김지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괜찮지 않아 보였다.
“저 지상이 데리고 바로 갈 테니까, 먼저 출발해 주세요. 일이 분 안에 따라갈게요.”
내가 부탁하자, 막내 작가님은 몇 초 입가를 만지며 고민하시더니 빠르게 승인해 주었다.
의상 스태프 한 분이 스태프 대표로 우리와 같이 남았고, 다른 사람들은 우르르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남들이 나가는 모습을 확인할 여유도 없어서 나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김지상 앞으로 다가가 자세를 숙였다.
무릎이 바닥에 닿아 옷이 더러워지지 않게 주의하며, 그 낯빛을 가까이에서 시선을 올려 살폈다.
……숨까지 가쁘게 몰아쉬는 모양새가 누가 봐도 아픈 사람이었다.
“김지상, 너 지금 상태 어때.”
“나 멀쩡해. 오버하지 마.”
“오버 아니야. 너 지금 표정 너무 안 좋아.”
톡 쏘는 듯한 말에 칼같이 대꾸하자마자 아차 싶었다.
밀어붙일 게 아니라 소프트하게 달래야 하는 때였는데, 나도 마음이 조마조마해 말투가 의지와 달리 거칠게 나갔다.
“미안해. 너한테 뭐라고 하려던 건 아니야.”
실수했으니까 빠르게 사과하고, 덧붙였다.
“그런데 나는 네가 무리 안 했으면 좋겠어.”
“…….”
“내 말은……. 걱정되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응?”
횡설수설하다. 나도 모르는 게 아니다.
김지상을 상대할 때마다 내가 자꾸 예민하게 군다는 것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같은 그룹 동생이라서? 아니, 이 수준이면 멤버 중에서도 특별한 대우였다.
당연하지만 멤버 모두를 내가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
멤버가 나 빼고도 여덟이나 되고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인지라.
내가 애들을 대하는 방식은 여덟 가지로 달랐고, 김지상을 상대로는…….
‘솔직히 너무 걱정이 많은 게 맞지.’
원인은 이 녀석의 건강.
김지상에게는 선천적인 병이 있었고, 그로 인해 체력이 좋지 않다.
‘……심장병은 백 명 중 한 명 꼴이라던데.’
왜 내 주변 가까이에는 이 병을 앓은 사람이 두 명이나 있을까.